131화 폭군 (1)
“그러니까, 지금 그 연합이라는 세력과 전력이 비등한데 엘프라는 이종족이 갑자기 등장해 균형을 붕괴시키려 한다?”
“그렇습니다, 각하.”
“그들을 아군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한가?”
“거의 설득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상대가 치킨 게임을 건 것 같습니다.”
정보국 국장 넬슨은 침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사에게 모든 내용을 전해 듣고 그 게임 화면을 보기도 했던 그 역시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그 이종족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는 조금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국장, 투자는 할 수 있지만 그만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은 그의 말에 탄식했다. 지원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고 그만큼 얻는 도움도 많았지만 어쨌든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싶은 것은 사실.
대통령은 휴대폰 게임 속 동맹의 승리를 위해 언제까지 투자만 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이곳의 상황도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구닥다리 무기들, 남아도는 곡물들 좀 보내는 건 분명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도움을 위해 계속해서 노심초사하는 건 의미가 있지요.”
“……그렇습니다.”
대통령은 지금도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지구를, 현실을 이유로 들었다. 그들이 이렇게 투자하는 이유는 결국 필요한 순간 상대의 도움을 받아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함.
그것을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교단의 승리인데 지금 그게 막한 상태에서 또 다른 변수가 등장한 셈이다.
“그들이 왜 이기지 못하는 겁니까. 병사가 부족하다던가?”
“그렇습니다, 각하. 교단은 기존의 기득권이 뭉친 연합군에 비해 규모와 인구수가 적습니다. 그런 와중에 적들이 마계와도 손을 잡으니, 저희가 무기를 지원해도 균형만 겨우 맞추는 셈입니다.”
넬슨은 현재 대륙에서 벌어지는 전쟁 현황에 대해서도 자세히 보고했다.
“이미 말했듯 우리는 시간이 여유롭지 않습니다. 아군이 밀리고 있다면 그것을 보충할 수 있는 화력을 지원하는 수밖에. 나도 그곳에서 온 성기사들이 어떤 활약을 하고 있는지 직접 보았으니 지금의 우리를 위해서라도 교단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개인 화기 등의 추가 지원을…….”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은데.”
의자에 몸을 기대고 묘한 표정을 짓는 대통령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본능적으로 긴장을 끌어올린 넬슨은 그의 말을 기다렸다. 절대 소심하지는 않은 이 대통령이 대체 어떤 폭탄 발언을 할지.
“그 지루하고 쓸데없는 전쟁을 끝내 버릴 수 있게, 아주 강한 것을 줘 버립시다. 이미 우리는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가, 각하.”
그리고 그는 대통령의 말을 듣고 경악했다. 도저히 놀람을 감출 수 없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미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그쪽 세상에 핵폭탄을 보내어 쓰게 할 생각이었다.
“듣자 하니 그리 효율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지. 그래도 먼저 터트려버리면, 감히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말을 해놓고 히죽 웃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지만 크게 놀란 넬슨이 생각을 정리하느라 1분 넘게 걸릴 정도였다.
‘설마, 일이 이렇게 되다니.’
심지어 대통령의 각오는 진심이었고 그는 당장 다음 날 멍한 눈으로 극비에 철저히 이송되어 오는 핵탄두를 보며 탄식했다.
역설적으로 이만큼 진심이란 소리였고, 급하다는 소리기도 했다.
* * *
“이것이 여신께서 내려주신…….”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이것이 폭탄이라니…….”
그들이 마리사를 통해서 교단으로 전해 준 물건은 여러 가지 있었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히 그리 크지 않은 은색 가방이었다.
그러나 그 무게는 상당한 그것을, 대성녀 이벨리아는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런데 대체 어떻게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는 폭발을 일으킨다는 것인지.”
“여신께서 주신 것이 일반적인 폭탄일 리가 없지요.”
신기하다는 듯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혀를 찬 이벨리아는 잠시 고민하는 듯 보이더니 이내 그것을 든 상태로 자신의 날개를 펼쳤다.
“내가 직접 이것을 놈들의 도시에 떨어트리고 오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 이후에 하죠. 과연 여신께서 주신 권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될 테니까.”
마리사에게 대강의 사용법을 들은 그녀는 자신이 직접 이 폭탄을 연합군의 도시에 떨어트리고 기폭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대체 이것이 무엇이기에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도시 하나를 지워 버릴 수 있다는 것인지 스스로도 궁금했던 탓도 있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게 낫다고 판단한 탓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시지요.”
“성녀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다른 이들 역시 위험해 보이는 임무에 자원하고 싶지는 않았던 탓에, 굳이 그녀의 행동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벨리아는 그들 중 가장 강한 존재. 이미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초월자로 여겨지고 있으니까.
‘만약 말씀대로 이 심판이 단번에 도시를 지워 버리는 위력을 보여 준다면, 그 누구도 여신의 분노를 거스를 수 없으리.’
단숨에 하늘로 날아오른 그녀는 허공을 가로지르며 희미하게 웃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힘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아직 여신을 따르지 않은 수많은 이들이 불신을 가지고 자신을 거부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한 이벨리아는 그런 이단들에게 더 강한 힘을 보여 준다면 그들이 자신과, 교단과, 여신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저곳인가.’
곧 그녀의 눈에 저 멀리 보이는 대도시 하나가 보였다. 도시의 이름은 녹스. 전방의 경계 지대에 위치한 저 도시는 이미 요새화가 끝나 쉽게 침범하기 힘든 곳이다.
제아무리 그녀라도, 덩치의 한계가 있는 지금 저곳에 빼곡히 포진한 적들과 방어 시설들을 혼자서 돌파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무너뜨릴 가치가 있다. 이번 기회가 전장의 판도를 바꾸고 우리의 운명을 뒤틀 기회가 된다.’
이벨리아는 도시의 상공에 도달하자 곧바로 하강을 시작했다. 다만 이미 방어 준비를 늘 해놓는 녹스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 즉시 병력을 소집하고 방어 준비에 들어갔다.
“하늘이다! 사악한 마녀가 혼자 쳐들어왔다!”
도시 속 적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그녀를 막기 위해 방어 주문을 펼치고 요격 준비를 끝마쳤다.
이벨리아가 공격을 위해 하강하면 거대한 마법 포격들이 곧장 쏟아질 것이다.
‘투하.’
그러나 이벨리아는 굳이 하강하지 않았다. 그저 손에 들고 있던, 엄청나게 무거운 그것을 툭 던질 뿐이었다.
* * *
“대기해라! 사정거리 밖은 공격해 봤자 의미가 없다!”
“분명 내려올 테니 조금의 빈틈 없이 포격한다!”
이벨리아가 나타난 그 순간, 긴급히 소집된 녹스의 병력들은 그녀를 향해 무기를 드러내고 준비된 방진을 짜는 등 최선을 다해 대응했다.
‘간만에 좀 조용한가 싶었더니, 이게 무슨 일이야!’
마법사로서 마도 병단에 징집된 하급 마법사 폴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동료들과 함께 제자리에 배치된 그는, 저 먼 하늘에 점처럼 보이는 이벨리아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한때는 이 세상을 구원한 진정한 하늘의 사자이자 영웅.
그러나 지금은 순백의 깃털 너머에 광기와 살육을 품고 있는 끔찍한 괴물이 되었을 뿐이었다.
“혼자서 대체 뭘 어쩔 셈이지?”
“맞아. 아무리 괴물 같아도 혼자서 이곳 전체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데.”
긴장한 폴 옆에서 다른 동료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일개 하급 마법사인 자신들이 보아도 지금 이벨리아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든 무의미한 짓이었다.
“어.”
그때 시력이 꽤 좋았던 폴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이벨리아가 손에 든 큼직한 무언가를 툭 떨어트린 것이다.
“저게 뭐지?!”
“격추합니까?”
그녀의 예상 밖 행동에 당황한 연합군 병력들이 술렁거렸다. 정작 이벨리아는 그걸 던져 놓고도 그저 가만히 그곳에 떠 있을 뿐.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격추해라!”
결국 지휘관들은 그것을 격추하라 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대기하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뿜어내어, 이벨리아가 투척한 핵탄두를 요격하려 시도했다.
‘대체 저게 뭐지?’
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단 시키는 대로 마법진을 작동시키고 마도 포를 쏘기 시작한 그는, 자유 낙하하며 마법들의 사거리 안까지 도달한 그건을 보고 의문을 품었다.
“격발.”
그리고 그 순간, 이벨리아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격발 장치를 작동시켜 폭탄이 격추되기 전에 그대로 수십 미터 상공에서 그것을 터트렸다.
“?”
폴은 그것이 마법들에 맞기 전 스스로 폭발하는 것을 보았다. 새하얀 섬광, 뜨거운 열기.
“하핫, 아하하핫!”
그것이 전부였다. 뿜어지는 거대한 열풍에 말 그대로 증발해 버린 폴은 함께 있던 동료들과 함께 자신이 죽었는지도 모르고 그대로 사라졌다.
이후 거대한 열과 충격파로 일대를 집어삼키는 뜨거운 폭풍에 그 위력을 제대로 실감한 이벨리아는 날개들로 자신을 감싸고 열과 폭풍을 견디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다. 이것이 여신의 분노다, 이 멍청한 놈들아.’
살아있는 생물은 그 무엇도 없다. 오직 뜨거운 열과 잿더미뿐. 그 지옥과도 같은 폐허에 황금빛 신성력을 두르고 홀로 선 이벨리아는 전율했다.
여신의 진정한 힘을 이렇게 보여 주었으니 이제 지지부진한 전쟁의 균형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그 과정에 굳이 엘프들은 필요 없다. 아니, 엘프들도 자신들을 거부하면 이 거대하고 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대성녀님!”
“보았습니다!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품는 건 그녀만이 아니다. 그녀가 복귀했을 때, 교단의 수뇌부들은 피어오르는 버섯구름과 그 처참한 잔해들을 보고 하나 같이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이 사실을 널리 알리시지요. 어리석은 이들은 참회하며 이제라도 빛의 여신을 찾을 것이고, 사악한 적들은 두려움을 품을 것입니다.”
“틀리지 않으니 지금 당장 전 병력을 움직이세요. 그들이 제정신을 차리기 전에 몰아쳐서 이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성녀님, 혹시 여신께 부탁드리어 이 신의 심판을 더 끌어올 수 있으십니까?”
흥분한 그들은 직접 보게 된 핵탄두의 위력에 심취한 지 오래였다. 이벨리아는 이런 핵폭탄을 여신에게 더 받을 수 있냐는 말에 노력해 보겠다고 답했다.
‘분명 몇 번만 반복해도 놈들은 두려움에 떨고 분열할 것이다. 하지만 여신께서 이것은 굉장히 귀한 기회라고 하셨는데.’
사실 핵폭탄을 건네준 마리사도 설마 자신이 나라에서 반은 핵폭탄을 보내 줄 줄 몰랐기에 다소 소극적이었다.
이벨리아는 그것을 오해했지만 어쨌든 핵폭탄이 그리 남발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것은 확실, 더 많은 공물과 신앙을 바쳐야만 한다.
‘어쩔 수 없다. 위대한 승리로 갚는다.’
그녀는 희생은 감수하기로 했다. 오직 이 땅을 정리하고 승리로 갚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