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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36화 (136/200)

136화 폭군 (6)

분명 처음의 모습만 보자면 자신만만하게 꺼내든 마도 병기들이 효과를 보는 모양새였다.

기존의 화기들과 조합하여, 침략종들의 마력을 무력화시키고 그 사이로 쏟아붓는 화력은 강력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

던전 내부의 침략종들을 이끌던 놈 역시 예상과는 다른 위력에 살짝 당황할 정도였다.

“노, 놈들이 계속 몰려옵니다. 게다가 저건!!”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어차피 인간들이 사용하는 마도 병기에 대한 모든 정보는 그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었으며 그 대처법이나 상대법 역시 마련한지 오래니까.

그들이 기다려 주는 것이었지, 인간들은 그저 쫓아오는 것뿐이다.

인간들은 절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인간들이 그들을 앞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인간들이 이렇게 한 걸음씩 쫓아오면 그들 역시 자신들의 힘을 하나씩 더 풀어낼 뿐이니까.

애초에 처음부터 이것이 의도된 것이다.

“이럴 수가. 저게 대체!”

그런 와중에 하필 침략종들의 새로운 힘을 선보이는 데 이곳이 걸린 건 한국군이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다.

지휘관은 포격에 초토화되고 있는 전방을 자신만만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기겁을 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분명 아군의 포격은 효과적이었고, 돌진해오는 괴물들을 성공적으로 저지한 것은 사실.

그러나 ‘포격’이라는 행위가 그들에게만 허락된 것은 아니었다.

“피해라!”

“으, 으아악! 전부 대피해!”

하늘을 가르며 날아든 강한 에너지 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일방적으로 침략종들을 포격하던 군병력들 사이에 떨어졌다.

이건 분명 간간히 있어왔던 소규모의 공격이 아니었다. 다급히 포격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 날아오른 드론들은, 저 후방에 위치한 거대한 거북이의 모습을 발견했다.

“움직이는 포대?”

대형 덤프만 한 크기의 거북이들이 등 위에 얹은 생체조직에서 마력을 응집한 강한 포격을 쏘아내는 모습을 본 모두가 당황했다.

[제가 운용하는 생체 포대와 흡사한 구성이긴 합니다. 저와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하는 이들에게 그리 어려운 개념은 아니었을 겁니다.]

“마법보다 더 효율적인 공격…….”

창현과 루시 역시 이 소식을 들었다. 루시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라며 시큰둥하게 답했고, 그는 이것이 루시가 평소 말하던 복잡한 계산식을 사용하는 마법보다 효율적으로 대량의 마력을 쏟아붓는 방법임을 알고 탄식했다.

인간들이 마법 코드를 이용해 이제야 마력 운용 면에서 첫 발자국을 떼었는데, 그걸 알고 곧바로 더 강하고 효율적인 마력 포격을 선보인 것이다.

“정말 우리에게 절망만 주려는 건가? 우리가 무슨 프로그램도 아니고, 결과만 딱 보여 주고 다그치기만 하면 뭐가 되겠냐고.”

그는 곧 쓰게 웃었다. 이곳에 오면서 이지연과 나누었던 대화가 현실이 되어 버렸으니까.

분명 게이트나 던전은 저 괴물들의 힘을 고의로 조절해 가면서 인류의 성장과 진화를 유도하고 있었다. 다만 그는 이렇게 성과를 보자마자 단번에 꺾어 버리는 방식으로는 오래 못 버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버티지 못하면 절멸합니다. 지구의 인류에게 선택지는 없습니다.]

“가불기네. 너무한 거 아니냐고.”

물론 그런 사정 같은 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테지만.

* * *

“놈들의 예상 못한 공격에 일단 물러나야겠습니다. 아군의 방어 능력이 부족합니다. 이 부분을 보강하면 충분히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지금은 여력이 없습니다.”

던전 공략에 메인으로 참여한 군 지휘부는 결국 후퇴를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공격력은 이쪽도 충분하지만 방어력이 부족한 탓이다.

아군의 마도 포격은 상대에게 닿지 않는데 상대의 포격은 한 발 한 발이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저것 좀 보십시오! 상급종이 반응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유리함을 알고 있는 이들이, 상대가 속편하게 도망치는 걸 두고 보는 것도 이상하다.

전장을 관측하던 이들이 지금까진 얌전히 뒤에서 지휘만 하던 상급종이 갑작스럽게 행동을 개시한 것을 보고해 왔다.

그 보고대로, 자리를 이탈한 상급종과 일부 병력들이 포격을 접고 다급히 후퇴하는 아군 병력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그 뒤를 잡아 쫓고 있었다.

마치 곱게는 보내 주지 못한다는 듯이. 함께 따라간 군 소속의 각성자들이 급히 놈을 막기 위해 덤벼들었지만 이미 기세가 넘어간 가운데 현장의 모두가 승리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지연 씨!”

“갑니다.”

한 발 뒤에서 지켜보던 이지연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뛰어간 것이 그때였다.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이런 순간을 위해 대기하던 것이었으니까.

‘역시 저 괴물들은.’

입을 굳게 다문 그녀는 자신을 태우고 달리는 차량에 매달려, 전방을 노려보았다.

사람을 해치고 세상을 멸하려는 악적들. 게다가 저 괴물들은 끝도 없이 강해진다. 따라잡기 위해 아무리 애써도 결국 언제나 한 끗 앞서는 것은 적들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오는 절망은 사람들의 의지와 마음을 꺾어 버렸다.

[그것을 막아라. 네가 기적을 보여 주어, 너희의 저항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증명해라. 그것이 너의 역할이다. 모두가 의지할 수 있는 성녀가 되어라.]

뇌리에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성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녀가 되라는 말에 이지연은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무엇이든 할 생각이었으니까.

“이, 이지연 씨…….”

“모두 물러서세요.”

땅을 박찬 그녀가 방패를 들고 땅에 넘어진 유지훈 대위 앞을 가로막았다. 상급종이 휘두른 4개의 칼날이 마력을 터트리며 그녀의 방패에 막혔지만, 그녀는 그 충격을 견뎌 내며 그 짧은 시간 동안 시체가 널브러진 주변을 보고 분노를 끓어 올렸다. 직전까지 자신과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의 시체였다.

암갈색 갑각의 틈에서 번득이는 안광들이 마치 네가 뭐라도 되냐는 듯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혼자서 적에 맞서는 그녀는 방패를 휘둘러 오히려 적을 밀어내었다.

“우린 틀리지 않았어.”

그리고 연타를 날려, 비틀거리는 적의 몸을 두들겼다. 검은 방패가 황금빛으로 번쩍이기 시작하더니 다급히 휘두르는 적의 칼날을 모두 쳐 내고 그 가슴을 텅 비게 만들었다.

분명 상대가 가진 검술이나 기술은 그녀가 미처 반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정교하지만, 휘둘러진 검이 고작 그녀의 몸에 생채기 하나만 겨우 낼 정도로 우직하고 묵직한 출력에서 그녀가 한참을 앞섰다.

“죽어.”

두 눈도 황금색으로 물들인 그녀가 방패를 들어 그대로 그 가슴팍을 찍어 버리니, 단신으로 각성자 한 개 부대를 박살 낼 수 있다는 공포의 존재인 상급종의 단단하기 짝이 없던 갑각이 박살 나고, 찬란한 섬광이 터지며 그 숨통을 완전히 끊어 버렸다.

“이, 이지연 씨…….”

그녀에게 구해진 현장의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 움찔거렸다.

희망을 부수는 절망을 다시 한번 부순 새로운 희망의 빛이, 꺼져 가던 그들의 의지에 다시 빛을 비추었다.

* * *

“비록 놈들의 예상 못 한 대응으로 일방적인 공략은 실패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상급종을 처치하고 놈들의 병력 40% 이상을 궤멸시켰습니다. 놈들의 포격에 대항할 만한 수단을 가지고 추가적인 공략을 시도한다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을 겁니다.”

던전 내부에서 철수에 성공한 군은 이번 작전을 성공도, 실패도 아니라고 판단하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록 밀려났지만, 그 과정에서 적들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안일하게 덤벼든 적 우두머리를 죽이는 데 성공했으니까.

무엇보다 실패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필요했다. 이번 전투 역시 판도를 바꿀 희망이 되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 죽어 나간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무의미하게 당한 것으로 되어 버린다.

“네 생각은 어때. 네가 우리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지금 이 상태에서 무엇을 가져야 침략종들에게 맞설 수 있을까. 방금 전 이지연처럼 상급종들을 단신으로 잡을 수 있는 슬레이어 등급의 각성자들은 지금도 늘어나고 있지만, 내 생각에 전체적인 전력에서는 많이 밀리는 것 같아. 일단 마력 방어막을 시전할 수 있는 코드는 필수적인 것 같은데.”

[분명 지구의 인류는 침략종에 비해 모든 면에서 부족하나, 말씀하신 대로 외부의 조력이 계속된다면 그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을 루시에게 말하니 이제 내게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성장한 루시는 역시나 답을 주었다.

외부의 조력. 루시의 의도는 사실 뻔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판을 깰 수 있을 외부의 힘을 빌려오는 것.

괜히 그들이 교단과 손잡고 그곳과의 교류에 필사적인 게 아니다.

[마력 방어막을 시전할 수 있는 코드와 그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코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루시는 내게 적들의 마력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방어막을 만들 주문을 알려 주었다. 루시 본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적극적으로 써먹고 있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힘이다. 이 주문이 있다면 더 이상 적들의 마력 포격에 일방적으로 당하진 않겠지.

다만 내 마음에 살짝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마치 보란 듯이 아군의 마도 포격을 파훼한 적들이 설마 이것마저 파훼하는 법을 들고 나올까 하는 것이었다.

[굳이 새로운 무언가를 들고나오진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가진 침략종들의 힘만으로도 마력 방어막은 무력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니, 중요한 것은 싸움에 쓰이는 전술과 전략입니다.]

“큰 기대는 할 수 없다는 뜻인가.”

쓰게 웃은 내가 시트에 몸을 기대었다. 혼자서 거대한 군단을 실시간으로 한 몸처럼 조종하는 루시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는 내게 각자 따로 노는 우리들의 움직임은 언제나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

“……그래도 우리가 가진 강점이 없는 건 아니지. 난 그걸 믿어.”

그때 창밖으로 보이는 모습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결국 하나하나가 다른 존재라서 따로 논다는 것이 단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지연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유지훈 대위의 눈에서 그것을 보았다.

루시가 적과의 싸움을 통해 배우고 진화하는 것처럼, 우리는 적과의 싸움은 물론 서로의 모습을 보고 성장하는 게 가능했다.

[인류 문명의 발전이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대 게이트 시대에서 그런 방식은 한계점은 명확합니다.]

“그건 아무도 몰라.”

루시는 자신의 역할이 부정당하는 것을 경계하는지 애써 내 말의 허점을 찾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루시의 말에 넘어가는 순간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고 판단한 탓이다.

루시와 나는 엄연히 다른 존재. 그것이 우리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나와 루시가 닮는 것을 넘어 하나가 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가진 각자의 장점을 무시하고 씹어 버리는 것.

루시는 계속해서 나와 함께하고 싶음을 어필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루시를 위해서라도 거리를 두어야 했다.

“거기는 어때?”

그래서 화제를 돌렸다. 일단 지금 루시가 바쁜 건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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