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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37화 (137/200)

137화 폭군 (7)

“기회가…… 그리 잘 오지 않습니다.”

루시는 작게 탄식했다. 상황이 원하는 대로 잘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황은 지금 당장 급박하게 돌아가는 감염체들과의 전쟁이나, 다시금 전쟁이 불붙은 대륙의 상황이 아니었다.

창현이 있는 지구. 그곳에서 언제든 일이 터지면 뛰쳐 갈 수 있게 준비를 다 해 두었지만 막상 루시가 나설 만한 상황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오죽하면 그를 포함한 지구인들이 위기에 처하기를 스스로 바랄 정도였다.

그렇게 그가 위기에 처하면 자신의 도움을 바랄 것이고, 그런 그를 구해 주며 자신의 힘과 존재 가치를 그에게 증명하고 어필할 수 있으니까.

다만 이번은 그 기회가 아니었으니, 루시는 어서 빨리 자신의 성장과 힘을 그에게 보여 주고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들고 싶었다.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고 네가 말한 ‘최적화’까지 모두 끝냈다. 과연 더 수월하게 막을 수 있게 되었어. 이제 다음 계획은 뭐지?”

그때 라온이 루시에게 다가왔다. 루시의 지시를 모두 끝내고 복귀한 것이다.

그가 맡은 임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감염체들과의 전쟁에 관한 것.

루시는 지금처럼 지속되는 소모전이 발생할 경우 미친듯이 발생하는 데이터를 분석하여, 소모되는 양분과 병력의 양을 철저히 나눠 최대한의 효율을 뿜어낼 수 있게 계산했다.

마왕군은 그것을 최적화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을 끌어내는 것이다.

“최적화까지 끝낸 이상 아군이 질 가능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 다시 병력을 이끌고 타락 세계수들을 사냥합니다.”

루시는 적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끌어모아서 만든 위기를 이렇게 부드러이 넘겨 버렸다. 대신 잠시 멈춰 두었던 별동대를 계속해서 운용해서,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타락 세계수들을 하나하나 쓰러트릴 계획이었다.

“변수가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동북부 방향부터 끝내고 오십시오. 서부는 계속 정찰하는 중입니다.”

루시는 초거대 비행종 아일랜드의 데이터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개량하고 개조한 함선형 부대를 라온에게 딸려 주며, 라온이 가진 고대 엘프족의 주문으로 타락 세계수를 무력화시키고 쓰러트리라 지시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다른 부분에도 신경을 썼다.

대륙의 구석, 동쪽 변방에 떨어져 자리를 잡게 된 루시에게 대륙 서부와 남부는 모두 미지의 공간이었다.

타락 세계수와 감염체들이 이 땅을 전부 뒤덮었다면 딱히 상관없는 가설이긴 하지만, 이미 최근에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 이들을 발견한 루시는 혹시 모를 가능성을 위해 새로운 정찰대를 파견했다.

* * *

“계산대로라면 이 세상 전부를 점령한다면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양분은 기존의 수만 배. 거기다 효율을 더 끌어올린다면.”

루시는 고속으로 하늘을 나는 데 특화된 정찰대를 파견하면서 계산을 이어 갔다. 자신이 이 땅을 전부 점령하면 어느 정도의 이득을 볼 수 있는가에 대한 계산이었다.

그 계산 결과 루시는 자신이 이 세상을 온전히 먹어치우기만 한다면 별다른 보충 없이 지금 수만 배 이상 여유로워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 정도면 더 이상 교단과 연합군의 다툼은 의미가 없다. 힘만으로 모조리 찍어 누르고 그쪽 세상을 점령하는 게 가능했으니까.

“그 정도의 양분과 차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정보를 합치면, 아직 불완전한 주문을 고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루시는 그 힘을 이용해 연구와 분석에 많은 것을 투자한다면 분명 그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말 순수하게 그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현재 비거리 1000km 이상, 그러나 별다른 흔적은 발견 불가능.”

루시는 작정하고 보낸 정찰병들을 끝없이 앞으로만 내보냈다.

지금까지 착실하게 구석구석 정찰하던 것과는 달리, 일단 이 세상에 정말 감염체들만 가득한가, 그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전방에 광각 반응.”

그리고 그 의도가 적중했다는 듯 엄청난 거리를 이동한 끝에 정찰병들은 저 멀리 보이는 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태양 빛입니다.”

바로 감염된 타락 세계수가 조작하고 있는, 어둑한 먹구름이 가득 찬 대기가 끝나고 새하얀 구름이 멈추지 않으며 태양빛을 통과시키고 있는 땅을 발견한 것이다.

루시가 점령한 둥지에서 족히 수천 km는 떨어진 곳이었다.

“생명체의 존재 확인, 감염체들의 영역 범위 역시 확인.”

가설이야 세웠지만 정말로 멀쩡한 환경이 드러나자 살짝 동요한 루시는 앞뒤 볼 것 없이 그곳으로 정찰 병사들을 급파했다.

단순히 태양 빛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곳엔 황무지와 죽음뿐이던 이곳과는 달리 푸르른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어쩌면 살아남은 다크엘프 생존자들에게 차원 이동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그러나 정찰병의 시선으로 그곳을 내려다보며 정찰하기 시작한 루시는, 정찰을 이어 가지 못했다.

한 순간에 정찰병들과 연락이 끊어진 것이다.

“포격을 당했습니다. 대체 누구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루시는 그 마지막 광경을 포착했다. 지상에서 쏘아진 푸른 광선포가 일격에 정찰병들을 관통하고 으깨 버리는 모습을.

“포, 포격이라고? 그럼 그 생존자가 정말로 있다는 거네?”

보고를 받은 창현도 놀라며 다크엘프 생존자에 대해 언급했다. 다만 루시는 계산을 통해 어딘가 어긋남을 발견했다.

“엘프들의 공격이 아닐 확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 남은 지성체는 다크엘프들뿐이라며.”

루시는 그 포격이 다크엘프들에 대한 정보와 전혀 다른 유형의 공격이었음을 확신했다.

* * *

“어이, 카셀! 경계선 너머를 확인해줘야겠다.”

“무슨 소리지?”

“자동 포탑이 무언가를 공격했어. 날짐승 같은데, 날아온 방향이 오염지였다. 처음 보는 타입의 감염체들이라고.”

나른한 오후의 숙소. 문을 벌컥 열고 들어 온 상대의 말에 카셀이라 불린 사내는 미간을 찌푸리며 누워 있던 해먹에서 몸을 일으켰다.

뾰족하고 긴 귀를 쫑긋거린 카셀의 피부는 어두웠고 머리칼은 밝은 은색이었다. 그는, 오래 전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 땅의 주인이 된 다크엘프였다.

“호들갑을 떠는군. 대낮에 왔다면 감염체들이 아닐 텐데.”

“나, 난 절차대로 하는 것뿐이다. 철저히 대비해서 나쁠 게 없어.”

그러나 그런 카셀에게,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는 단말기를 전해준 이는 다크엘프가 아니었다. 다부진 체격에 땅딸막한 키를 가진 중년의 ‘인간’ 사내였다.

“모두의 안전을 위한 일이다.”

“나도 알아. 무시하진 않을 테니 너무 들들 볶진 말라고, 로이드.”

카셀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자신의 무기와 장비를 챙겼다.

튼튼한 단궁을 손에 쥐고 허리에는 권총을 차며 각종 도구들이 든 조끼를 걸쳤다.

“세렌, 가서 애들 불러와.”

[응.]

거기다 계약한 어둠의 정령을 통해 자기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의 임무는 이 경계선에 상주하며 이곳을 지키는 것. 지금은 태양이 높게 떠 있어 괜찮았지만, 밤만 되면 오염지에서 감염체들이 공격을 가해 오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제길, 소장급은 필요도 없으니 어서 다른 곳으로 발령 났으면 좋겠군.’

그리고 그런 카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 인간 사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곳에 책임자로 부임한 지 고작 한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어서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광산이 바로 이 근처이기 때문에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 이 일대를 지켜야만 했다.

* * *

“어차피 포탑이 처리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굳이 다 몰려가야 합니까? 쉬고 계시죠, 단장.”

“궁금해서 그렇다. 대낮에 나온 걸 보면 감염체는 아닌데, 그렇다면 오염지 안에서 나온 게 설명이 안 돼. 그곳에 살아있는 멀쩡한 생물은 없는데.”

차량에 올라탄 그들은 두꺼운 바퀴로 거친 숲길을 뚫으며 길을 가로질렀다. 그런 와중에 카셀은 쉬고 있어도 된다는 부하의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서 구경이나 하고 후딱 돌아오자고.”

“거의 도착했습니다!”

차량의 도움을 받아 금방 도착한 그들은 곧 차에서 내려 자동 포탑이 움직임을 감지하고 저격한 시체들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니, 저 앞에 보이는 어둑한 땅이 두렵기는 했지만 위험하지는 않았다.

“대체 이놈들은 뭘까요.”

“생전 처음 보는…… 짐승입니다.”

그들은 땅에 추락한 처참한 잔해들을 보고 탄식했다. 카셀 역시 굳은 얼굴로 앉아서, 박살이 난 시체 조각을 손으로 건드려 보았다.

반으로 조각난, 어떤 생물체의 얼굴 같은 신체 부위였다.

다만 마치 가오리나 가자미를 닮은 듯한 그 모양새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괴물이 존재할 수가 있나?”

그들 중 몇몇이 피식거렸다. 루시의 마왕군이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위해 만들어지는지를 모르니, 그들이 보기엔 그저 못생기고 이상한 동물의 시체일 뿐이었다.

“어쩔까요, 단장. 뭐 건질 것도 없어 보입니다.”

“이것만 가지고 돌아가지.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 태양 빛에 사멸하지 않는 걸 보니 감염체는 절대 아닌데.”

결국 부하들은 물론 카셀도 이렇다 할 아이디어를 얻지 못하고 시체 조각이나 좀 주워서 다시 차량에 탑승했다.

흥미가 가는 건 사실이지만 그뿐이었다. 어차피 자동 포탑에 알아서 당해 버린 이상한 짐승일 뿐이니 그들은 곧 이번 일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애초에 이런 출동도 그리 흔치는 않다.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이지?”

하지만 약 이틀 후.

카셀은 무언가를 내려다보며 심각한 얼굴로 굳어있는 책임자, 로이드를 발견했다.

“본부에서 이걸 보내 왔다고. 이게 보이나? 자네도 이제 뭔지 알겠지? 대기권에서 이 행성을, 이 대륙을 촬영한 사진! 여기, 오염지에 구멍 뚫린 것 보게.”

로이드는 한 가지 사진 파일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정말로 대기권에서 이 대륙을 찍은 사진이었다.

거의 절반 이상이 검은 먹구름에 항상 가려져 있는 대륙. 그런데 그 대륙의 동부 끝자락에서, 지난 세월 꿈쩍도 않던 먹구름의 장막이 쥐 파먹은 것처럼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

“확대해도 안 보이는데, 좀 자세히는 못 찍는 건가?”

“퇴역하고 뜯어고쳐진 군용 위성에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 회사는 돈이 그리 많지 않으니.”

화면을 보며 눈을 찌푸린 카셀의 말에 로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혀를 찬 그는 결국 자기 눈에 힘을 더 주었다.

‘무언가…… 검은 무언가가.’

그는 저질스러운 화질에 지상에 있는 것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카셀은 그 구멍 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검은 무언가를 분명 보았다.

“그래서 어쩌려고?”

“본부는 혹시 모르니 조금 더 단단히 대비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지. 궤도 폭격이라도 하면 얼마나 좋겠냐만 우리가 군벌 회사도 아니니. 그냥 자네도 알고 있으라 전해 주는 것이네.”

로이드는 자기도 쓰게 웃으며 다시 단말기를 회수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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