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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40화 (140/200)

140화 폭군 (10)

‘엘프들의 싸움법, 충분히 알고 있다.’

충돌 직전, 육중한 중갑을 입고 돌진하던 라이베르는 자신이 넘쳤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이기도 했지만, 스스로가 엘프들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대전쟁 시절 엘프 영웅 라온과 어울렸던 경험 덕분이었다.

라온에게 듣고, 실제로 겨뤄 보기도 하면서 그는 엘프들의 전투법이나 전술 등을 보고 배우며 머릿속에 새겨 둔 참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처음 싸워 보는 것도 아니니 충분히 할 만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 덤비시오! 나에 맞설 엘프족의 강자는 누구인가!”

묵직한 대검을 들어 올린 그는 당당히 엘프들을 상대로 소리쳤다.

비록 그것을 들은 엘프들 중 그 누구도 반응해 주지 않고 자기들 할 일을 할 뿐이지만 이미 전투의 흥분에 취한 라이베르는 미처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신인가? 나는 성기사 라이베르라고 한다만.”

그런 그의 앞에, 엘프·델타가 무기를 들고 턱하니 섰다. 그는 피식 웃으며 상대를 도발했으나 현재 루시가 조종하는 엘프·델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신기하군. 이름 정도는 알려 주는 것이 엘프들 사이에서도 예의라 들었…… 크윽?!”

오히려 여유를 부리는 라이베르를 향해, 먼저 땅을 박차고 검을 휘두르며 공격을 시도했다. 폭발적인 마력이 터져 나오는 그 공격에 그는 황급히 힘을 끌어올려, 자신을 베어 버리려는 칼날을 가로막아야 했다.

‘이게 무슨?!’

이어서 퍼부어지는 연격을 막아 내던 라이베르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엘프·델타가 시전하는 검술은 사실 마왕군의 것과 완전히 같았다. 신체 능력과, 마력을 극한의 효율로 깎아서 움직이는 특유의 검법은 일반적인 기술과는 그 본질이 달랐다.

전부는 아니지만 라온을 통해 엘프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알고 있던 라이베르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자신의 병력과 충돌한 엘프들의 싸움은, 자신이 알던 것과 전혀 달랐으니까.

“저, 정령술은 어디 갔소?!”

엘프들이 가장 자랑하는 정령술 역시 조금도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마법들이 더 많이 쓰이며, 호기롭게 덤벼들던 교단 병력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결국 직감적으로 뭔가를 느낀 라이베르는 얼굴을 굳힌 채, 마구잡이로 공격해 들어오는 엘프·델타를 향해 진심을 다한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황금색으로 타오르는 그의 대검은 분명 그가 한때 영웅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한 위력을 품고 있었고, 오랜 세월 갈고 닦은 검술은 이런 영웅들과의 싸움에도 이골이 난 루시가 밀릴 정도로 정교하고 야성적이었다.

“잘 가시오. 이름 없는 엘프 영웅.”

끝내 라이베르는 엘프·델타의 목을 베어 버리는 데 성공했다.

그는 허공을 나는 엘프·델타의 머리를 보며 승리를 직감하고 중얼거렸다. 방금 자신에 베어 죽인 상대가 엘프들의 실력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과연 영웅으로 불리는 이들에게는 아직 단일 개체로 맞서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방금 그가 쓰러트린 엘프 영웅은 사실 하나의 병사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매우 많은 자원이 투자된, 매우 값비싼 병사였지만 그마저도 이렇게 시체가 말끔하다면 그대로 재활용이 가능할 정도였다.

“으, 으음?”

[더 많은 데이터를 위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갑니다.]

루시는 이번에는 두 기의 엘프·델타를 출격시켰다.

완벽한 엘프를 연기할 생각은, 그들이 가진 엘프에 대한 정보가 불완전하다는 순간부터 때려치운 지 오래.

대놓고 실험실을 연 루시는 더 효과적인 전략 및 전술 등을 위한 데이터 수집을 위해 계속해서 실험을 시도했다.

“이, 이놈들!”

자신에게 덤벼드는 엘프·델타들을 보며 황급히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라이베르가 당황해서 비틀거렸다.

그는 모르고 있지만 사실 함정에 빠진 것은 무턱대고 돌진을 시도한 교단 병력들이다.

서로 진영을 잡고 겨루는 정상적인 전쟁보다도, 미친 듯이 벌어지는 이런 난전이 루시에게는 더 알맞은 것이었으니까.

이미 준비는 다 되어 있었다. 라이베르가 두 기를 해치우면 세 기가, 세 기가 쓰러지면 네 기가 출격해서 그를 몰아넣을 수 있었다.

마계에서 다른 영웅들을 잡을 때처럼, 결국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후벼 파는 일종의 공략법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 이놈들 엘프는 맞는 것인가!?’

당황한 라이베르는 그제서야 눈치채고 식은땀을 흘렸지만 이미 함정은 그들을 가둔 지 오래였다. 이후 반으로 베어 죽인 엘프·델타의 단면을 흘끔거린 그는 경악했다.

분명 내부는 엘프와 같아 보이긴 하는데 그 몸이, 중갑이라고 생각했던 검은 갑주와 하나로 일체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즉, 지금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엘프들은 끔찍한 저주에 당한 것이거나 엘프가 아니었다라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 당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아차렸습니까?”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당신들 모두 늦었습니다.”

“도주할 곳은 없습니다. 당신은 여기서 죽습니다.”

눈을 휘둥그레 뜬 그의 반응을 본 루시가, 주변 개체들의 입을 움직여 그를 비웃었다.

마치 하나로 연결이라도 되어 있다는 듯한 마디씩 끊어서 이야기하는 그 모습에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갔다.

하지만 루시의 말대로 빠져나갈 구멍은 없으니, 그의 선택지는 곱게 죽느냐 지쳐 쓰러질 때까지 싸우고 온갖 데이터를 다 넘겨 준 채 죽느냐 둘 중 하나뿐이었다.

* * *

“그 영감탱이가 당했다고? 대체 누구에게?”

“북부에서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엘프 놈들을 공격하려던 때에 당하셨습니다. 엘프 영웅 라온이 없는데, 설마 그분께서 놈들에게 당하시다니!”

라이베르의 패배 소식, 당연히 교단에 그대로 전해졌다.

은연중에 엘프들을 깔보고 있던 이들 중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루시가 동원한 엘프 군대가 그리 많은 규모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놈들을 빠르게 치우지 않으면 힘을 쏟아야 할 중부 전선이 위험해집니다. 다행히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들 역시 많은 피해를 보고 거점에서 은둔 중이라 하니, 그들이 다시 회복하여 진격하기 전에 완전히 몰아내어 대수림으로 쫓아내야 한다는 것이 작전입니다.”

소식을 전하는 사제는 말을 하면서도 그의 눈치를 보았다.

여신이 내려보낸 전설로서 일단 같이 싸우고 있기는 한데, 그 태도나 행동은 사실 신실함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나보고 나서라는 건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설 수 있는 이가 그리 많지 않기에.”

리암은 나서달라는 그들의 부탁에 피식 웃었다.

사실 그 부탁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어쨌든 리암은 이곳에 싸우고, 죽이러 왔으니까.

무엇보다 엘프라는 이종족에도 흥미가 있었다.

“아직 그 대전쟁의 영웅이라는 놈들과 아직 붙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잘 되었군. 얼마나 큰 먹이인지 확인해 보겠다.”

리암은 그 길로 엘프들이 점령한 거점으로 향하게 되었다.

지구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싸움과 전쟁에 나름 만족하고 있던 그는, 드디어 잔챙이들이 아닌 제대로 된 상대와 싸울 수 있게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 더 강한 적은 더 많은 힘을 준다. 그것이 당연한 사실. 하지만 이것은 명심해라. 언제나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 두어라.]

그의 성좌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동의했다.

“내가 질 것 같나? 그 영감탱이도 그렇고 분명 밥만 먹고 싸우는 법만 배운 사람들이라 그런지 잘 싸우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 같았는데.”

[결코 자만하지 마라. 네가 이 세상에 대해 뭘 아느냐.]

리암은 코웃음을 쳤지만 성좌는 평소와 달리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경고했다.

‘유독 이상한데.’

리암은 그 경고를 마냥 흘려듣지만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이 이 세상에 와서 활동하는 이유는 더욱 강해져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함이니까.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비명횡사해서야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는다. 덕분에 그 충고를 받아들인 리암은, 만약을 대비한 보험 하나 정도는 들어 두기로 결정했다.

“저기! 저곳입니다! 엘프들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그는 처참한 전장 너머에 보이는 엘프들을 보고 탄식했다.

얼굴까지 투구로 가리고 있는 엘프 군대가 이미 준비를 마치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암 앤더슨, 그가 왔습니다.]

리암은 모르겠지만 엘프들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를 알아보았다.

“명령대로 저희가 그를 상대해 보겠습니다.”

루시는 교단의 다른 영웅들에 비해 움직임이 자유로운 그가 올 것임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고 대비하고 있었다.

그동안 평범한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던 나안과 유리아가 무장을 마친 것이다.

후방에서 마법으로 지원할 유리아는 사실 별 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나안은 과거 김서윤에게 시도한 것처럼 강심을 장착한 육신이 마치 슈트를 입은 듯 강화된 상태였다.

[증명할 기회입니다. 라비즈다에서 싸우고 있는 라온처럼, 엘프들이 충분히 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종족이란 것을 널리 알릴.]

루시는 살짝 긴장한 나안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입술을 깨문 그녀는, 결단을 내리고 검을 뽑아들었다.

자신에게 의무가 있음을 되새긴 것이다. 라온이 종족이 나아갈 미래를 알기 위해 루시에게 협력하고 배우는 것처럼 나안도 루시의 인정을 받기 위해, 힘을 끌어올려 싸우기로 결정했다.

* * *

“에, 엘프들이 먼저 선공을 걸어옵니다!”

“저게 엘프라고? 상상과 너무 다른데.”

근처까지 다다른 교단 병력들은 갑자기 먼저 움직이는 엘프들의 모습에 당황했다.

설마 유리한 이점인 방어를 스스로 포기하고 먼저 다가올 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리암은 자신이 상상했던 엘프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적들을 보고 혀를 찼다.

“저놈이 대장이 모양이군.”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 와중에 그는 다가오는 엘프 군대 위에서 조용히 떠 있는 누군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나안은, 그 가면의 틈 사이로 붉은 안광을 번득이며 최대 출력으로 이끌어 낸 바람 정령과 함께 교단 세력을 향해 접근해 오고 있었다.

‘어딘가, 기분이 나빠.’

리암은 어딜 봐도 부산스럽고 어지러운 교단 세력을 흘끔거리곤 조금의 동요도, 어긋남도 없이 이곳으로 다가오는 엘프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은 분명 이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만을 보고 전진하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임무를 수행하는 기계 같은 괴물들.

“짜증나게.”

엘프들의 모습에서 그동안 지겹게 싸워 온 침략종을 떠올린 리암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동안 나름 즐거운 싸움을 해 왔다고 생각해서 만족하고 있었는데, 여기까지 와서도 저런 적들과 싸워야 한다는 게 큰 불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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