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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42화 (142/200)

142화 이변 (2)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그런 건 아닙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당신이 신경 쓸 이유, 전혀 없습니다.”

루시의 덩치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걸치고 있는 일이 너무나 많아서 더 이상 한 가지 사건에만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라온은 마왕군 전체에 작용하는, 동요하는 감정을 느끼고 곁에 있던 루시에게 물었지만 루시는 고개를 저었다.

교단과 연합이 아웅다웅하고 있는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 과거의 루시에게는 생존에 직결된 중대사항이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리암과 마주하고 그를 놓치면서 살짝 분노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오차 범위 이내에서 사건이 벌어진 것뿐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땅을 청소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루시는 사방에 뿌려 놓은 정찰병들을 통한 자신의 시선을 통해, 타락 세계수들을 제거하고 확보하고 있는 자신의 영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타락 세계수와 감염체들과는 달리 태양빛을 원하고 바라는 마왕군의 둥지가 넓은 면적에 걸쳐서 펼쳐져 있는 상태.

그 형태는 하나의 띠와 같았다. 그 띠는 서쪽에 존재하는 경계선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전투를 거듭할수록 예상 시간이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한 달이 아니라 당장 며칠 뒤에 경계선 근처까지 도달할 것입니다.”

“그곳으로 다시 정찰병들을 보내진 않는 건가? 다크엘프 생존자들이 있는 곳으로.”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진다면, 포격을 쉽게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자그마한 정찰병들을 보낼 계획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경계선 너머, 감염체들에게서 살아 남은 생존자들을 만나기 위한 포석이었다. 이전에 덩치 크고 튼튼한 정찰병들을 날려서 그곳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그곳에서 날아온 의문의 공격으로 정찰병들이 모두 격추당한 상태.

루시는 그것을 의식하고 이번에는 크기가 작지만 멀리 나는 건 힘든 소형 정찰병들을 보내서 그곳을 염탐할 생각이었다.

변수를 제거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 루시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공격 계획은? 어차피 공격할 생각 아닌가?”

그러자 피식 웃은 라온이 입을 열었다. 결국 루시가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열을 올리는 이유는 전부 그곳을 공격하기 위함이니까.

루시에게 평화로운 접근 따위는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든 결국은 먹어치우고 자신의 일부로 만든다.

근본적으로는 닥치는 대로 감염시키는 감염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정보가 수집되는 대로 제대로 수립할 생각입니다.”

루시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상대를 공격하고 먹어치우는 것은 자신의 근본이나 마찬가지.

일개 마왕에서 더 나아가려는 루시에겐 다크엘프 생존자니 어쩌니 해도 자신의 먹이에 불과했다.

[목표치 달성. 정찰병 파견.]

그리고 그리 멀지 않아서, 루시는 일단 자신의 첫 번째 목적을 달성했다.

* * *

[소형 정찰병들을 파견합니다. 최대 비행 시간은 72시간입니다.]

루시는 정찰병들을 띄웠다. 자그마한 날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정찰병들은, 다른 정찰병 개체들과 마찬가지로 기동력과 감각 기관에 모든 신체 기능을 투자했다. 전체적으로는 비쩍 마른 날개 달린 박쥐의 모습에, 커다란 눈알 하나가 미간에 박혀 있는 요괴스러운 모양새.

체내에 비축한 모든 양분을 소모할 때까지 날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임무인 이들이었다.

“그렇게 많이 보지는 못하겠네?”

[최우선 목표는, 대체 무엇이 아군 정찰병을 요격했나 그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창현 역시 이 광경을 화면 너머로 보고 있었다. 그에게 실시간으로 보고하는 루시는 정찰병들을 이용해 화면을 돌려가며 아직 점령하지 못한 타락 세계수들의 영역을 가로질렀다.

대형 정찰병들에 비해 약하고 느리지만 공격당하진 않았다. 경계선 근처의 타락 세계수들은 지금 자기들 근처까지 온 마왕군을 견제하느라 온 힘을 다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스스로 암세포를 천명한 루시의 마왕군은 한번 번져 나간 이후로 끝도 없이 증식하며 이미 타락 세계수들의 영토를 갉아먹고 있었다.

[경계선을 지나갑니다.]

몇 시간 후, 루시는 그에게 다시 보고하며 자신을 봐 달라고 어필했다. 그가 퇴근 이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지연과 약속을 잡은 탓이다.

물론 그가 자신은 딱히 관여할 수 없는 이곳의 일 때문에 이지연과의 약속을 취소하진 않았지만.

“당장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고도를 낮추겠습니다.]

마침내 정찰병들이 세상을 양분하고 있는 경계선을 빠져나와 다른 세상으로 향했다. 어둑한 먹구름에 덮여 있지 않은 정상적인 세상으로.

루시는 과거 정찰병들이 격추당했던 지점 바로 앞에서, 정찰병들의 고도를 낮추고 보다 자세히 땅을 살피기 시작했다.

분명 땅에서 날아 온 무언가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으니까.

[현재까지는 아무 일 없습니다. 어쩌면 그날 하루의 이변이었을지도 모르는…….]

긴장의 순간이 몇 분 이어지는데도 아무 일 벌어지지 않자 루시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무언가가 날아와서 이번에도 정찰병을 단숨에 요격해 아예 소멸시켜 버렸다.

“나 방금 본 거 같은데.”

[그렇습니다.]

그 광경을 루시도, 그도 보았다.

다만 이번에는 넓게 흩어지게 만든 모든 정찰병들이 격추당하지는 않았다.

“저거 어째, 많이 익숙한 모양인데.”

그렇게 침투시킨 정찰병을 통해 루시는 드디어 무차별적으로 요격을 시도하는 적의 정체를 알아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루시는 물론 그 역시, 놀라서 잠시 말을 잃을 정도였다.

“어딜 봐도 포탑인데?”

단단히 땅에 고정된 지지대, 360도 회전하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몸체, 길게 뻗은 포신.

자동으로 외부의 움직임을 감지해서 요격을 시도하는 정체불명의 무인 포탑이 경계선의 일정 부분마다 박혀서 감염체들이 점령한 땅을 겨누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 무엇도 이곳으로 오지 못하도록.

* * *

“곧 밤이야. 준비해야지.”

“요 며칠 놈들이 팍 줄었어. 이건 우연이 아니야.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지?”

해가 질 무렵, 다크엘프 수비대장 카셀은 전투를 준비하자는 부하들의 말에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밤마다 경계선에서 몰려오는 감염체들과 싸우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일상이 된 일. 하지만 최근 며칠은 달랐다. 감염체들의 숫자가 점점 줄더니 지금은 그저 자동 포탑들만으로 처리가 가능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이들이 단순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대체 저 먹구름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더 불안했다.

“먼저 가라. 난 소장과 이야기를 좀 해 봐야겠다.”

결국 카셀은 부하들을 먼저 보내고, 관리소장 로이드를 찾아갔다. 이런 일은 그들이 전문으로 하고 있으니까 뭐라도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듣기는 했지.”

그리고 실제로 심각한 얼굴의 로이드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로이드는 찾아 온 카셀에게, 커다란 화면에 띄운 홀로그램을 보여주었다.

“지난 번 오염된 땅에서 이변을 감지한 이후, 위성은 계속해서 그곳을 감시했다. 이 사진들은 매일 한 장씩 찍은 사진들이야. 보이나?”

“이게 안 보이면 두 눈이 옹이구멍이라는 소리겠지.”

카셀은 그가 보여주는 사진들을 보며 탄식했다.

분명 매끈매끈한 계란과도 같은 먹구름들이, 어느 순간 생겨난 작은 점들을 중심으로 점차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검은 반점처럼 번져 가는 그것은 빠르게 자신의 몸집을 불리더니 이제는 수천 km에 달하는 거대한 띠를 생성할 정도. 그리고 그 띠의 끝은 어느새 경계선 근처까지 다다랐다.

“누가 봐도 저 안에서 이상이 생긴 게 분명해. 이걸 보고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건가?”

“보, 본사는 일이 커지는 걸 바라지 않아.”

로이드는 카셀의 말에 당황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그저 우연히 이 행성을 발견하고, 우연히 다크엘프 생존자들과 접했을 뿐이다.

일개 회사에 불과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질 것 같은 이득들을 뿜어내는 이 땅의 광산들에서 캐낸 것들을 가져다 파는 것이지 언제 감염체들이 이곳까지 들이닥칠까 걱정하는 다크엘프들을 살려 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놈들이 득세하면 너희도 큰 피해를 본다. 그걸 원하는 건 아닐 텐데.”

“일단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부터 조사하기로 결정했네. 낡아빠진 위성으로는 지면에서 뿜어지는 방해 물질들을 뚫고 자세히 살필 수가 없어.”

로이드는 흐릿하고 일그러진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리 구닥다리 위성이라지만 위성은 위성. 땅에 무엇이 있는지 마음만 먹으면 m단위로도 볼 수 있는 위성인데도 오염지에 흐르는 대량의 마력 덕분에 제대로 된 관측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관망 하겠다 이건가? 저 괴물 놈들이, 또 한 번 끔찍한 변이를 일으키는 거면 어쩌려고 그러지?”

“자, 자네 마음은 알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어. 그나마 본부에서 추가적으로 병력과 장비를 지원한다니 그것으로 무장하고 지켜보는 수밖에. 아니면 자네가 직접 저곳으로 들어가서 살펴볼 것도 아니잖나.”

당황한 로이드는 식은땀을 닦았다. 카셀 역시,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이 반 대머리 인간이 일개 중간관리자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가? 아니야. 놈들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놈들이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세상의 대부분을 점령한 감염체들과의 싸움은 먼 옛날부터 내려온 일이었지만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그는 다른 이들보다 더 감염체들을 경계했다.

“자네가 정 걱정이라면 탐사 드론을 한 번 보내 볼 수 있지. 가장 가까운 곳 정도는 볼 수 있을 테니. 대체 저기서 무슨 일이 있는지 나도 궁금하긴 해.”

결국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한 로이드가 슬쩍 대안책을 제시했다.

카셀은 딱히 만족하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디냐 싶은 마음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걱정 않는 게 좋아. 별거 아닐 수도 있으니까. 막말로 정말로 광산이 타격을 받으면 본사가 가만있지 않을 거고. 분명 정부와 협상해서 전함을 끌고 오겠지. 하늘에서 폭격하면 저 괴물들은 견딜 수 없어.”

“너희가 맨 처음 타고 온, 하늘을 나는 그 커다란 성 말인가? 전투용이 아니라서 쓸 수 없다더니 전투용도 있나보군.”

그는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로이드의 말에 피식 웃었다.

지금이야 공동의 적을 두고 생존과 이득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 아군이 되었지만, 그들과의 첫 만남은 다크엘프 생존자들에겐 큰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자신들을 카르투스 사의 직원들이라 소개한 그들은 다크엘프들에게도 익숙한 차원문이 아니라 하늘을 통해서 이곳에 온 다른 세상의 인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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