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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43화 (143/200)

143화 이변 (3)

변수,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습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완벽한 계산식을 만들어도 한 순간에 나타나 모든 것을 백지로 돌리는 것.

계산이 근본 그 자체인 루시가, 무수한 가능성을 모두 열어 두고 가설을 세우는 식으로 변수에 대처하기 시작한 것 역시 그 변수들에 크게 데인 이후였다.

변수가 바로 자신의 약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무수한 가설들을 세우고 그것에 대비하기 위한 가능성을 열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모든 가설들을 폐기하겠습니다.]

그러나 가설을 세우고 그것에 대비하는 것의 치명적인 맹점은, 바로 자신이 알고 있는 선에서만 대응이 가능하단 것이었다.

어쩌면 데이터 조합, 계산이 아닌 상상이라는 것이 필요한 영역.

다만 루시에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예측이 아닌, 무에서 유를 만드는 상상이란 권능은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크엘프들이 저런 물건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대륙에 흘러든 지구산 화기들과도 그 모양이 많이 다릅니다. 공격에 미약한 마력이 실려 있었는데, 마법 코드를 사용한 마법은 결코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아군이 사용하는 마력 집속탄과 비슷합니다.]

“조금 진정하는 게 좋겠다, 루시.”

그는 말이 급격히 많아진 루시가 혼돈에 빠졌음을 알아차리고 얼굴을 굳혔다. 인간인 그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긴 하지만, 루시와는 달리 그는 그리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상상이 가능했으니까. 아무런 데이터도 없고 징조도 없었지만 인간인 그는 뚝 떨어진 결과만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상상하는 게 가능했다.

“네 데이터에 없는 부분에서 찾아온 변수일 뿐이야.”

[그것이 사실이라면 저는 그것에 대응할 수 없습니다. 마치 타락 세계수가 조종하던 감염체들처럼.]

“너는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아.”

이지연에게 좀 늦을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낸 그는 애써 마음을 다스렸다. 루시가 급격히 성장한 최근 들어 빈도수가 줄긴 했지만, 이럴 때 루시를 돕는 것이 창현의 임무였다.

“아직 시간이 있잖아. 하나씩 생각해 볼 수 있지. 다크엘프들이 지구만큼 문명을 이루었다던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감염체들과의 전쟁에서 저런 무기를 쓴 흔적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외부에서, 우리 같은 누군가가 이곳에 왔다면? 그들이 다크엘프들과 협력 관계라면?”

[그것은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자기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되는대로 말하는 그의 말을 듣고 루시는 자신이 가진 데이터와 하나하나 비교하며 가능성을 따졌다.

그 결과 그나마 합리적으로 생각해 낸 결과물이 바로 마왕군과 같은 또 다른 외지의 세력.

[다만 허점이 많습니다. 협력 관계라면 어디까지 협력 관계인지,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진정한 수준은 어떻게 되는지 모두 모르는 상태입니다.]

“모르면 알아내야겠지.”

그는 혀를 찼다.

흥미가 가는 게 사실이었다. 멸망한 세상인 줄 알았던 곳에 알고 보니 문명을 이룬 생존자들이 남아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저쪽 세상 전부를 먹어치우고자 하는 루시는 그들에 대해 알게 되어도 결국 그들을 경쟁자로 인식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되면 또 다른 전쟁일 뿐이다.

지금까지 해 오던 것과 다를 게 없다. 단지 상대가 미친 증식력과 감염력으로 이 세상을 멸망으로 몰고 간 감염체들이 아닌, 다른 이들로 바뀔 뿐이다.

[격추당하지 않은 정찰병들이 숨어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것을 위해 루시는 움직임을 감지하고 무차별 사격을 시도한 자동 포탑에 격추당하지 않은 정찰병들을,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와 비교되는 푸르른 숲속으로 밀어 넣었다.

* * *

[평범한 자연으로 보입니다. 아직까지……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생존한 정찰병은 고작 둘이고, 까치나 까마귀 수준으로 작다. 체내에 품은 에너지를 전부 소모하면 그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 많지 않다. 루시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정탐하기 위해 두 마리를 위와 아래로 나누었다.

위에서 전체적인 모습을 살피면서, 밑에서는 자세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자동 포탑의 사거리를 피해서 고도를 올리자마자, 루시는 자신이 원하던 흔적들을 발견했다.

애초에 상대는 딱히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울창한 숲은 머지않아 끊기고, 수많은 이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마을 혹은 도시가 보였다.

[면적이 그리 넓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생김새가 데이터와 많이 다릅니다].

루시는 이미 다크엘프들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어떤 형태의 도시나 마을을 만들고 살아가는지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보는 도시는, 결코 다크엘프들의 도시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구의 건물들과 흡사한 면도 보입니다.]

고작 몇 개뿐이긴 하지만, 5층 이상의 고층 건물들도 보였다. 석재로 보이는 그 건물들의 모양새는 루시가 점령했던 대수림 엘프들이나 대륙에 살아가는 인간들, 마계의 마족들보다는 지구의 건물들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지구와도 엄연히 다른, 무언가.]

어디까지나 비슷한 것뿐이다. 다크엘프들과 함께 저 도시를 구성하고 있을 이들이 지구인이 아니라는 건 이미 확신했다.

[경계선 쪽으로 향하는 차량을 확인.]

그렇게 보다 자세히 살피기 위해 도시 쪽으로 점점 더 다가가던 와중, 루시는 포탑들이 있는 경계선으로 향하는 이들을 발견했다.

그들이 4개의 바퀴가 달린 차량을 타고 있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확인 시작.]

루시는 밑에 대기시킨 또 다른 정찰병을 움직여 그들의 정체를 확인하려 시도했다. 상대는 이쪽을 의식조차 하고 있지 않으니 관측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구성은 다크엘프……인 것으로 확인.]

지구의 오프로드 차량과 비슷한 그것에는 여러 명이 탑승해 있었다. 짙고 어두운 피부와, 부드럽게 흐르는 은발은 다크엘프의 특징 중 하나.

그들의 뾰족한 귀를 확인한 루시는 떨떠름한 상태로 그 정체를 확정지었다.

떨떠름한 이유는 그들의 차림새 때문. 그들의 모습은 루시의 데이터에 들어있는 엘프들의 차림새와는 확연히 달랐다.

몸에 걸친 옷은 물론, 각자 들고 있거나 차고 있는 물건들 역시 엘프들의 것은 절대 아니었다.

[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곧 정찰병들이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고 죽어 버리자, 루시는 충동에 가까운 강한 흥미를 느꼈다. 그들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더 듣고 싶었다.

“솔직히 믿기 힘들군. 다크엘프들이 인간처럼 하고 다닌다고?”

[아직도 정보가 부족합니다. 사후 대처를 위해서라도 그들이 과연 어떤 이들인지 반드시 알아야겠습니다.]

루시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라온은 믿기지 않는 듯한 반응이었지만 루시는 무시했다.

대신 소수 병력을 준비시켰다. 경계선으로 향하던 이들을, 공격해서 잡아 버릴 병력들을.

루시가 아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정보 습득 방식이었다.

“그들이 어느 정도 수준일 줄 알고 소수 병력을 구상할 생각이지?”

[…….]

“설마.”

[당신이 가십시오, 라온.]

루시는 라온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적들의 수준을 잘 모르니, 일단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개체를 준비한 것이다.

* * *

“오염지 안에서 이상 현상이라. 솔직히 좋게만 들리진 않네. 그래도 최근 들어 밤에 놈들이 몰려오지 않고 먹구름이 사라졌다는 건, 어쩌면 그 끔찍한 감염체들이 드디어 자멸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단순히 사라지기만 했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야. 먹구름이 사라진 자리에, 알 수 없는 것들이 새로 생겼다. 검은 무언가가.”

멈춰 선 차량 앞. 어느새 달이 떠오른 늦은 밤에 카셀은 자기 부하들과 함께 차에서 내려 포탑들을 점검하고 동시에 가져 온 장비를 준비시켰다.

“반드시 경계해야 해. 적어도 무슨 일이 터진 건지는 알아야 한다.”

장비의 정체는 꽤 커다란 드론이었다. 이것을 안으로 날려 보내, 대체 감염체들이 득실거리는 오염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그리 성능 좋은 드론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냥 값싸지도 않은 물건. 이것을 회수하지 못할 각오를 하고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저곳을 경계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지금이야 이렇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그들은 자신의 선조들이 어떻게 학살당하고 밀려났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포탑 몇 개가 오늘도 대낮에 작동했었다. 너무 작아서 카메라엔 촬영되지 않았지만, 분명 저쪽에서 날아 온 무언가를 보고 쏜 것이 분명해.”

“가서 확인해 보지.”

그는 드론을 출격시키며 부하들에게 명령해 다른 곳을 살펴보라 말했다.

경계선 전체에 걸쳐서 시행하는 행동이었지만, 카셀이 활동하는 도시는 특히나 경계선과 가장 가까운 도시. 그렇기에 오염지에서 무언가 이변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맞이하게 되는 곳이기도 했다.

“드론을 날려 보낸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그래. 잘 보인다.”

소형 무인기 수준의 드론이 제자리에서 이륙해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을 본 카셀은 도시에 있을 관리소장 로이드에게 연락해 확인을 받았다. 이제 로이드가 조종하게 된 드론은, 어둑한 하늘을 가르고 빠르게 오염지 내부로 향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할 일이나 하자고. 오늘도 감염체들은 나오지 않을 모양이군.”

그것을 지켜보던 카셀은 다른 부하들에게 말해 자리를 옮기려 했다.

“자, 잠깐만! 이건! 드, 드론이 격추당했다!”

다급한 로이드의 통신이 들려온 것이 그때였다.

순간 제자리에 굳어 버린 다크엘프들은 당황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력이.’

카셀은 그 와중에 요동치는 일대의 마력을 감지했다.

“뭔가 온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가 이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불길한 기운은 단순한 불길함을 넘어, 엄습하는 공포가 되었다.

“으아악!”

“따, 땅이!”

거대한 진동이 그들이 있던 일대를 덮치더니 땅이 뒤흔들리며 폭발, 거대한 토벽이 세워져 그들을 가두었다.

다른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면서도 가지고 있던 소총을 들어 올린 카셀은 자신들을 자동 포탑과 격리해 버린 존재를 보고 경악했다.

구름은 거의 없이, 다크엘프들이 신성히 여기는 달빛만이 비추이는 어둑한 밤하늘에.

대체 언제 온 것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가만히 떠서는 그 은신을 풀고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대체 뭐지?’

카셀은 순간 시간이 멈추는 것 같았다.

큰 키를 가진 상대는 깡마른 몸을 검은 갑각으로 빈틈없이 두르고, 가슴이나 팔, 다리 등에 빛나는 보석들을 박아 넣고 있었다.

얼굴을 덮은 검은 투구 속에서는 붉은 안광 여러 개가 곤충의 눈처럼 빛나고 있을 뿐.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 모습에 압도당한 카셀은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그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총구를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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