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이변 (4)
“단장!”
“죽, 죽어라!”
카셀은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어쩔 수가 없었다. 애초에 오염지 바로 앞에서 만난, 생전 처음 보는 기괴한 생물체에게 위협을 느끼지 않는 게 더 이상했으니까.
그러나 맹렬하게 불을 뿜으며 날아간 두꺼운 금속 탄환들은, 적이 자기 몸에 둘러친 마력 방어막에 전부 막히고 튕겨나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총기에서 뿜어진 이 공격에는, 마력이 섞여 있지 않습니다.]
반면 루시는 마력 방어막에 흠집을 내지 못하는 이 일격을 보고 상대의 강함을 가늠할 뿐이었다.
[잡으십시오.]
그리고 다크엘프들의 수준을 판단한 루시는 그 즉시 그들을 생포할 것을 라온에게 명령했다.
‘그저 듣기만 했었던 다크엘프. 우리 일족의 원수였던 이들.’
라온은 강심의 동력까지 모조리 흡수한 티타니아의 힘을 움직였다. 다시 한번 요동치는 대지에, 자동 포탑은 무너지거나 부서지고 다크엘프들은 바닥을 굴렀다.
동시에 라온이 검을 뽑아들고 그들에게 덤벼들자, 다크엘프들 역시 급한 대로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 맞섰다.
“이 자식이, 아악!”
“커헉.”
불타오르듯 마력을 휘감은 라온의 검에 단숨에 두 명의 다크엘프가 손에 든 장비와 무기째로 몸이 토막이 나 쓰러졌다.
어차피 생포하는 건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개체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니까.
“이 자식!”
분노한 카셀이 자신을 돕는 어둠 정령과 함께 달려들며 검을 뽑아들었다. 그렇게 서로의 검이 충돌하자 강한 충격파가 터지고 마력으로 인한 파장에 라온의 방어막에도 타격이 가기 시작했다.
‘숙련되긴 했지만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이런.’
그리고 그 순간 서로에 대한 평가가 교차했다.
라온은 카셀이 별거 아니라고 느꼈다. 극한까지 갈고 닦은 육체의 힘으로 카셀의 공격을 읽어 내고, 알아도 못 막는 위력의 검으로 사방을 두들겼으니까.
반면 카셀은 그런 라온의 모습에 경악했다.
라온이 펼치는 검술은 그가 쌓아 온 경험에 극한으로 개조한 육신이 만나 만들어 내는 일종의 경지에 가까웠던 탓이다.
“대답해. 네놈은 누구냐!”
밀려서 바닥에 쳐박힌 카셀은 이를 갈며 라온을 노려보았다. 검을 들고 땅에 착지한 그는, 그 일갈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카셀에게 덤벼들 뿐이었다.
“감염체가 아닌가?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지금 단계에서의 소통은 금지합니다. 그를 제압해서 데려올 때까지.]
카셀은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라온은 자신의 정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루시가 지금 이 순간엔 그의 행동을 제한한 것때 문이엇다. 생포한 이후 고문해서 정보를 들을 때 괜히 더 귀찮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크학…….”
결국 카셀과 다크엘프들은 덕분에 이 정체도 모르는 괴물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리고 그 점은 상당한 압박감을 주었다.
보안을 위해 라온이 굳이 큰 힘을 끌어올리지 않았는데도, 함께 덤벼들던 다크엘프 경비대가 하나 둘 제압당해 쓰러져 갔다.
“본부, 응답해. 본부!”
그들 중 하나가 서둘러 통신하여 본부를 찾은 게 그때였다. 지원을 허락하면 더 귀찮아진다는 생각에, 루시가 라온의 몸을 시켜 마법을 시전하니 그것은 곧 마력을 이용한 강력한 방해전 파를 흩뿌리는 마법이었다.
지구에서 공수한 무전기 등으로 통신하는 교단 측 이들을 검거하던 것처럼, 오늘 역시 마찬가지로 시도했다.
“이, 이럴 수가. 통신이 끊겼다.”
그리고 그 실험은 성공했다. 그들은 본부와 연락할 틈 없이 이대로 당하기 직전이었다.
“단장, 이대로 가십시오. 시간이나마 벌어 볼 테니 이 사실을 도시에 알려야 합니다. 이 괴물에 대해서요.”
“큭.”
당황한 카셀은 손에 쥔 검을 움켜쥐었다. 부하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통신이 끊긴 이상 어쨌든 그 누군가는 이곳의 정보를 널리 알려야 했다.
“너희들이나 몸을 피해라. 이 괴물은 내가 막는다!”
그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섰다. 성격상 부하들만 두고 도망칠 순 없었으니까.
[생포하십시오. 나머지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문제는 루시도 우두머리인 카셀을 사로잡으려 했다는 것. 몰래 대원 하나를 뒤로 빼돌리고 괴성에 가까운 기합과 함께 우르르 덤벼드는 모습을 보면, 루시는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꿈인가.’
총성과 괴성이 가득한 현장에서 카셀은 부하들이 하나씩 잔혹하게 토막 나 쓰러지는 모습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만큼 상대는 강했다. 단 한 번의 검격으로 방어하던 장비째로 토막을 내버리고, 총을 소고 수류탄을 던져도 마력 방어막에는 사소한 총탄 정도로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레벨을 올리고 루시의 개조까지 받은 라온의 스펙은 마왕군 전체를 통틀어도 최강.
일개 다크엘프 경비대 정도는 몰살하는데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생포 확률 96%.]
루시는 승리를 확신하고 한 걸음씩 카셀에게 접근했다.
“어서 가십시오.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직전에 자리를 떠났던 다크엘프 경비대 일부가 소음을 듣고 달려와, 현장에 도착하여 이를 악물고 라온에게 덤벼든 것이 그때였다. 그들은 휴대용 장비 등에서 포탄 등을 쏘아 내며 라온을 몰아세웠다.
[마력이 섞여 있습니다. 방어막에 타격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힘이 직전의 총탄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루시가 라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뒤로 빼 주는 사이.
[목표물 도주. 추격 및 섬멸은 12% 확률로 가능.]
어둠 정령의 도움으로 어둠을 타넘은 카셀은 결국 부하들을 두고 도망치는 것이 전부였다.
[계획을 수정합니다.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크윽?! 끄아아악!”
“죽, 죽여라! 죽여!”
동시에 루시는 우두머리인 카셀을 사로잡는 건 실패하고, 대신 장렬히 희생하려던 이들을 부상 입히는 대신 목숨을 억지로 붙여 놓았다.
“하지만 놓쳐 버렸다. 우리 정체가 그들에게 알려질 텐데.”
[감수합니다.]
라온은 흔적도 없이 도주한 카셀의 모습에 혀를 찼지만, 루시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하지만, 상대는 어차피 자신에 대해 모르니까.
반면 자신은 이렇게 포로들을 잡았으니 상대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내는 것이 가능했다.
* * *
“지금 심문 중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들은 말단 병사들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저희가 알아야 할 것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빠르게 결단을 내린 루시는 어렵지 않게 정보를 캐내기 시작했다. 늦은 밤 집에 돌아 온 나는 잠을 자는 대신 루시에게서 보고를 들었다.
솔직히 나도 궁금했으니까. 대체 그들은 누굴까 싶었다. 평범한 인간 문명이라기에는 조금 특이한 부분들이 많아보였는데.
[다크엘프 생존자들과 협력하는 이들은 역시 인간 세력이 맞았습니다. 자신들을 카르투스 사의 직원들이라 소개한 그들은,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이곳에 처음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말도 안 돼. 우주에서 왔다고? SF?”
그리고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다른 세상에서 왔겠거니 했지만 내게는 차원문이 더 익숙했고, 당장 루시도 그것을 이용해 저 세상으로 들어갔으니.
하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거대한 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했다.
“그, 그래서. 목적이 뭐래? 개척?”
[그들이 속한 카르투스는 탐사 및 자원 채취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라 했습니다. 이곳에 온 이유도 자원을 얻기 위해서이며, 현지인인 다크엘프들과 협력하는 것 역시 자원을 위해서입니다.]
“기업이라고.”
나는 루시의 보고를 듣고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우주를 날아다니는 이들이 일개 기업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거대 세력은 아니라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루시가 포로로 잡은 다크엘프들은 그 카르투스 사가 어디에 속했는지 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막연히 우주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함선들과 초월적인 기술력 등을 떠올리던 내 상상에 비해서는 조금 덜 한 것 같았다.
[새로운 유형의 인류 문명이라 그 힘을 예상할 수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상상은 결국 상상일 뿐이니까.”
[저희가 관측한 도시의 이름은 베른으로, 다크엘프들과 광산을 개발하는 인간들이 섞여서 살아가는 도시입니다. 경계선 근처에 도시를 세운 이유 역시, 그 광산들 때문입니다]
루시는 심문을 계속했다. 포로로 잡은 이들에게서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뽑아낼 기세로 자세한 내용들을 알아내었다.
그들이 가진 무기, 장비, 숫자 등등.
[그들이 가진 화력과 숫자를 비교할 때. 아군이 밀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과 비교하여 승률을 계산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보다 덩치가 작을 것 같다는 계산이 서자마자 잡아먹을 생각부터 하는 것이다.
나조차도 살짝 버거울 정도의 호전성이었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 대체 어떤 적들을 만나게 될지.
“조금 신중히 생각할 필요가 있어. 그들은 지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문명을 가진 이들이야. 아직 정리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또 새로운 적을 만드는 건 힘들지 않나?”
[그렇습니다. 아직 감염체들의 마무리도 제대로 짓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루시를 달랬다. 벌써부터 새로운 적과 싸우며 전선을 늘릴 이유가 없었다. 거대한 면적을 가진 오염지 전체를 우리 땅으로 만든 이후 싸워도 늦지 않을 테니까.
“듣자니 하늘에서 찍은 사진에 관측된 오염지의 이변을 알아채고 조사하기 위해 드론을 날리려던 것 같은데, 촬영 시점이 대부분 밤이었던 걸 보니 잘하면 숨길 수 있겠어. 타락 세계수가 쓰던 기술, 이제 너도 쓸 수 있잖아.”
[구름으로 하늘을 덮는 것, 시도해 보겠습니다.]
우선적으로 그들이 가진 일방적 정보 습득 능력을 차단했다.
루시는 타락 세계수를 잡아먹고 획득한 능력 중 하나인, 마력으로 주변 대기를 조작하는 힘을 활용해 광합성을 할 수 없는 밤에는 짙은 먹구름을 불러와 하늘을 가렸다.
물론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이미 우리 정체가 적들에게 알려졌으니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 전에, 최대한 빠르게 남은 감염체들을 정리하고 저 땅을 완전한 아군의 둥지로 만들어야 했다.
[적들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경계선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용히 시간을 벌자는 건 결국 우리만의 생각이다. 상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상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이튿날 오전, 루시는 내게 화면을 보여주며 적지 않은 규모의 적들이 자동포탑이 있던 경계선을 향해 몰려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저들도 아는 거 같아. 이대로 가면 답이 없으니, 어떻게든 정보를 획득하려는 것이겠지.”
그들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정보 부족으로 인한 답답함에 그것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다크엘프 다수와 소수 인간으로 구성된 그들은 장비들을 꺼내들었다.
모두 감염체들이 점령한 오염지 내부에 투입하여 그 내부를 살펴 볼 수 있는, 그 효과나 쓰임새를 나도 잘 모르겠는 특이한 장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