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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48화 (148/200)

148화 이변 (8)

루시에겐 변수조차 되지 못할 자그마한 사건에 불과했다. 상대가 작은 어린아이든 뭐든 자신의 목적을 방해한다면 결국 하나의 장애물일 뿐.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카를……!”

그러나 루시가 상대하는 이들은 달랐다. 카셀은 하피·감마의 일격에 단숨에 찢겨 나가는 작은 육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조금의 자비도 망설임도 없었다. 상대를 가리지 않는 차가운 현실이자 재앙 그 자체. 혹시 모를 1%의 가능성도 없이 자신에게 덤벼든 소년을 살해한 하피·감마는 다시금 카셀을 향해 몸을 돌렸다.

[기세가 변했습니다. 감정적인 요인으로 추정. 그 원인은 방금 전 덤벼든 소년과 관계된 것으로 보입니다.]

루시 본인도 감정이 가진 힘을 알고 있기에, 직전과는 기세가 달라진 카셀의 모습을 보고 그 변화를 알아차렸다.

[승리 가능성은 여전히 80% 이상.]

하지만 그뿐이다. 감정이란 결국 조미료일 뿐이지 결코 중심이 될 수 없으니, 루시는 지금까지 습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신의 승리를 예상했다.

“죽어라, 괴물!”

카셀은 예상대로 분노하며 루시에게 덤벼들었다.

이미 수많은 주민들이 마왕군의 습격에 쓰러진 이때,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달려드는 그의 몸에서 검푸른 마나가 타올랐다.

[적의 출력이 급격히 상승. 데이터에 없는 기술.]

그 힘이 기존과 비교해 급격히 상승해 루시가 잠시 당황할 정도였다.

지금 카셀이 발동한 것은 다크엘프들 사이에 내려오는 일종의 비기를 사용한 것. 아무나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고, 감염체들에게서 쫓겨난 이후 발달시킨 이 기술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다크엘프들과 싸워 보지 않은 루시의 데이터에는 없는 것이었다.

[효율을 계산, 후퇴.]

루시는 굳이 각성한 카셀과 싸워 주지 않았다. 하피·감마를 후퇴시키고 다른 병사들을 움직이는 데 집중했다.

어차피 카셀 하나 죽이지 못했다고 임무에 실패한 것도 아니다.

이미 도시는 포격과 학살로 초토화되었으며 자신이 원하던 다량의 데이터도 모두 얻었으니까.

“당장 내려와라. 비겁한 괴물 놈아!”

카셀이 마나를 잔뜩 실어 날린 강철 화살이 방어막에 틀어박히며 금이 쩍쩍 가게 만들었지만, 루시는 마력포를 든 병사들을 동원하여 원거리에서 그를 저격할 뿐이었다.

근접해서 싸운다면 모를까, 원거리에서 사방팔방 쏟아지는 포격에 저항할 수 없었던 카셀은 불태우는 자신의 힘이 다 떨어지기 전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도심지는 계획대로 점령 성공했습니다.]

“이쪽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아.”

그리고 그렇게 마왕군이 도시를 초토화시킨 사이, 라온 역시 임무를 거의 성공했다.

* * *

“히, 히익!”

“쏴 버려라!”

도심지와는 살짝 떨어지고 광산 쪽과 조금 더 가까운 관리 본부 건물. 덕분에 도시를 습격한 괴생명체들에게서는 조금 자유로웠지만, 이미 이곳에 지휘부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마왕군은 가장 강력한 단일 개체를 이곳에 파견했다.

[마력이 담긴 공격은 극히 일부.]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화기를 동원해 외벽을 부수고 침투한 라온을 공격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위력을 가진 화기도, 강력한 저항력을 가진 마력 방어막 앞에 위력이 크게 반감되니 무시할 수 있을 지경.

반면 라온이 휘두르는 일격은 강화 슈트를 입은 이들도 벽이나 바닥과 함께 일격에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이런 괴물들이 단순히 변이한 감염체라고?’

관리소장 로이드는 다른 이들이 내지르는 비명과 고함을 들으며 몸을 숨겼다.

저 멀리 보이는,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생물체들은 포격으로 도시 방어를 무력화시키고 병사들을 강습시켜 도시 내부를 초토화시켰다.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감염체들과는 달랐다. 폭주하는 괴물 집단이 결코 아니었다.

“으, 으아…….”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를 찾았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로이드가 숨어 있는 곳 바로 코앞에서 그와 마찬가지로 몸을 숨기고 있던 직원 하나가 라온에게 잡혔다.

로이드라는 이름은 알았지만, 굳이 그 이름을 물어서 대조해 보지는 않은 루시는 일단 그것으로 만족하고 라온을 철수시켰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이곳에 살아가는 이들을 몰살하고 도시를 완전히 점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다만 그들이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 기회에 완전히 없애 버렸으니 사실상 자신이 이 도시를 점령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남은 것은 반드시 이곳을 지원하러 올 이들을 저격하는 것뿐이었다.

* * *

[카르투스는 루브란이라 불리는 세력에 속한 거대 기업으로, 기존에 알던 대로 자원을 얻기 위해 이곳에 인원을 파견, 현지인인 다크엘프들과 협력하여 감염체들과 싸우고 광산을 개발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그들이 가진 전력은?”

[그들은 일개 지부에 불과합니다. 저렴하게 매입하는 구식 군용 장비들이 그들이 가진 무장의 대부분이며 전함은 없다고 합니다.]

“그럼…… 할 만한 건가?”

나는 도시를 습격한다는 작전을 성공시키고 원하던 데이터도 얻은 루시의 말에 피식 웃었다. 상대방의 정체를 알고 걱정한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그 상대방은 하나의 나라나 세력이 아닌 기업, 그것도 작은 지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지부라도 이미 우리에 대한 소식이 퍼졌겠지. 네가 그들이 판단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도시를 공격해 무력화시켰다지만 네가 입수한 지도만 봐도 이런 도시가 십 수 개가 넘어. 게다가 저 우주 너머에는 그들의 본사가 있고, 그 본사가 속한 세력도 있지.”

[그렇습니다.]

“그들이 진심을 다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낙관적으로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우주’라는 개념까지 확장된 마당에 지금처럼 단순히 계산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지금 루시는 타락 세계수와 감염체들을 몰아내며 거대한 대륙을 자신의 영역으로 물들여 가고 있지만, 본래라면 엄청난 힘이 되었을 그것도 우주 단위로 넘어가면 일개 행성의 일부일 뿐이다.

“충분한 힘이 비축될 때까지는 너무 큰 힘을 드러내지 마, 루시. 그들이 이 세상을 점령할 기세로 날뛰던 그 거대하고 많은 감염체들을 고작 일개 회사의 지부 수준으로 막아 내고 있던 걸 생각해. 그들이 너를 ‘진정한 적’으로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압도적인 힘에 단숨에 전멸할지도 몰라.”

나는 루시에게 힘을 숨기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듣자니 그들이 감염체들을 전멸시키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도, 단지 돈을 투자하기 싫을 뿐이지 기술이나 능력이 안 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 논리는 루시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그들이 변종 감염체라고 생각하는 마왕군의 위험도가 일정 한계치를 넘어가면 그들은 자본을 투입해서 루시를 잡으려 들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모든 타락 세계수들을 제거하고 둥지화를 끝낼 때까지 활동을 정지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 너는 지금까지 현지의 강자들을 잡아먹고 여기까지 성장해 왔지만, 지금 만난 상대는 고작해야 대륙 하나 먹어치운 적들에 비하면 비교가 불가능해.”

상대의 정체와 가진 힘을 알게 된 이후 나는 평소보다는 조금 더 깊게 관여하며 루시를 제어했다.

물론 언제까지고 루시를 막을 순 없을 것이다. 루시는 가만히 있는 걸 극도로 혐오하니까. 맞서 싸우고 성장하고 진화해야만 한다. 눈앞의 장애물이 아무리 크고 두터워도 그것을 부숴버릴지언정 가로막혀 주저앉을 리가 없다.

“통화 끝났어?”

“그래. 이제 가자.”

그렇게 루시와 통신을 종료한 내게 이지연이 다가왔다.

오늘은 오랜만에 다시 우리의 일을 하는 날. 이미 던전은 그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며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 * *

“방어막 코드가 활성화된 이후 생존율이 급격히 올라갔습니다. 덕분에 더 안정적인 화력 투사도 가능해진 것은 덤이죠.”

“다행이네요. 생각 이상으로 큰 도움인 것 같아서.”

이지연은 사실 나서지도 않았다. 나와 함께 베이스에서 아군의 전투를 지켜보았을 뿐.

그러나 이번에는 딱히 위기의 순간도 없었다. 돌발적으로 나타나는 상급종도 없었고 무엇보다 적들의 포격에 아군 역시 마력 방어막으로 저항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국내만이 아니야. 해외에서도 다시 한번 던전 공략률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어. 그리고 던전 공략률이 올라갈수록, 게이트 발생률은 줄어들고 있고.”

이지연은 이 결과가 기쁜 듯 자랑스럽게 말했다.

실제로 몸을 보호할 수단을 얻은 인류는 괴물들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던전 공략은 곧 인류의 공격.

공격이 성공할 때마다, 침략종들의 공격인 게이트는 발생 빈도가 역으로 줄어들었다.

게이트 발생이 줄어들면 그만큼 여유와 자원이 생기고 그것을 다시 던전 공략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선순환이다.

“완전히 없애지 않아도 돼. 이 정도만 유지해도 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방에서 게이트가 열리던 때와 비교하면 평화롭기 짝이 없다. 일부는 드디어 승리한 것 아니냐며 설레발을 떨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꼭 한 단계씩 강해져서 초를 치는 게 놈들의 특성이지.”

“맞아. 그래서 솔직히 마음 놓고 좋아할 수가 없어.”

다만 우리는 이미 학습이 완료되었다. 언제나 따라잡았다고 좋아하던 때 더 강해진 모습으로 등장해 그 희망과 의지를 꺾어 버리려는 적들의 특성을 이미 몇 번이나 겪었기 때문에.

“크, 큰일 났습니다. 지금 외국에서 새로운 타입의 침략종이!”

실제로 얼마 가지도 못하고 부정적인 소식이 떠 버렸다.

직원 중 하나가 호들갑을 떨며 알려준 뉴스는 외국의 대형 던전에서 공략 중 촬영된 영상 하나.

“거, 거대종?”

“아니 그 이상이야.”

우리 모두가 그것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침략종은 지금까지 나오던 특대형의 괴물들과도 그 궤를 달리하는 놈이었으니까.

“대체 뭐지?”

패닉에 빠진 이지연이 영상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인지 그 모습이 조금은 익숙했다.

[함선형 병사 같아 보입니다. 다만 아군의 것보다 더 거대한.]

내가 말을 잃은 사이 루시 역시 그것을 알아보고 입을 열었다.

그 말대로, 지금 영상에 나오는 거대한 괴물은 루시가 초거대 비행종을 변형시켜 만든 함선형 병사와 그 모습이 흡사했다.

길고 넓적하게 뻗은, 도저히 생물체 같지 않은 외형과 단단해 보이는 갑피로 두른 몸. 그럼에도 꿈틀거리는 일부 신체 기관들.

그 크기가 km에 달하는 부유 생물체인 아일랜드와 맞먹을 정도였다.

“이놈, 지금 뭐 한 거야?”

그러나 사람들 모두가 경악한 것은 그 생김새 때문이 아니었다. 이 기괴한 괴물이, 다른 괴물들처럼 이빨이나 발톱을 들이민 것이 아니라 마력을 응축한 광선포를 쏘아 대며 포격을 시도한 탓이다.

‘생물체의 한계를 넘어섰다.’

나는 루시가 처음 만든 함선형 병사를 보고 내렸던 평가를 그대로 적용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지금 보이는 이 함선형 병사가 더욱 그랬다.

자유자재로 진화하는 존재들이 결국 그 극의에 달한 결과물. 생물체의 탈을 쓴 생체 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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