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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49화 (149/200)

149화 이변 (9)

우리가 성장하면 기다렸다는 듯 더 강한 괴물들을 뱉어 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 종류가 조금 달랐다. 매번 조금씩 단계를 넘어간다는 인식은 받았지만 지금처럼 ‘벽’을 넘어 버린 적은 없었으니까.

“……보이십니까? 디스트로이어라고 이름 붙은 새로운 종류의 침략종입니다.”

협회장 백승철이 정부 기관과 함께 입수한 정보를 협회 사람들에게 발표하는, 어째 익숙하고 낯익은 자리.

그곳에서 그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등장한 새로운 적에 대해 브리핑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전과 사뭇 달랐다. 전보다 더 충격적이고 어이없는 결과에 다들 할 말을 잃고 멍하니 하는 이야기나 듣는 신세였다.

‘초거대 신종 침략종 디스트로이어.’

나는 이지연이 받은 자료를 흘끔거렸다.

이미 인터넷 상으로 파다하게 퍼진 지 오래인 거대 괴수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들이 기록되어 있다.

몸 길이 856m, 폭 90m, 암갈색 빛을 띠는 단단한 외갑, 그 외갑 밑에 잠든 거대한 촉수, 거대한 몸에 알맞은 강력한 출력 등등.

생김새는 기괴한 모습을 가지고 있던 침략종들 중에서도 더욱 묘하고 이상하다.

적어도 생물이라는 느낌은 들었던 기존의 괴물들과는 달리 눈코입이 어디 있는지, 배설 기관이나 생식 기관은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운 생김새였다.

“웃기게도 생겼군.”

“포신을 뽑아서 포격하는 모습만 봐도 이상해. 도저히 평범한 괴물 같지가 않아. 지금까지와는 다르다고.”

실제로 내 근처에 앉아 자기들끼리 떠드는 저 두 각성자의 말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을 타입, 디스트로이어에 이질감과 어색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게는 저런 것이 너무나 익숙했으니까.

이미 루시는 저런 괴물들을 초거대 부유 생명체 아일랜드의 데이터를 얻은 이후 각종 유전 데이터를 섞어 생산하고 검증하여 양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저쪽 세상의 일일 뿐이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저 괴물들을 단순히 익숙하게 여긴다는 사실 따위가 아니었다.

루시는 아직 넘을 수 없는 벽에 가로막혀 있고 우리는 당장 눈앞에 나타난 신종 괴물과 싸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긴급 소집……이라고?”

“응. 그만큼 상황이 심각한 모앙이야. 자칫하단 던전이 터질 수도 있다고 하고.”

심지어 그런 와중에 세계에서 알아주는 영웅이 된 이지연에게 도움을 청하는 강제적인 연락이 도착했다.

* * *

“조사를 하든 섬멸하든 어쨌든 놈과 싸우고 죽여야 합니다. 더 큰 화로 돌아오기 전에.”

이지연을 소집한 것은 몇 개국이 합심해서 만든 각성자 연대. 각국의 고위 각성자들에게 의무적인 활동을 부여한 이 연대는, 지금까지도 고위 각성자들을 동원하여 각국의 위기를 넘겨 왔다.

그리고 지금, 마법 코드 관련 일로 잠시 현장에서 배제되었던 이지연도 다시 호출받은 것이다.

“아군의 화력은 놈을 잡을 수 없습니다. 일반 화기들은 물론 마도 병기들도 역시. 핵폭탄을 연달아 수십 발 이상 터트릴 수 있으면 모를까, 과연 순순히 당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지연에게 처음으로 호출 사실을 알린 국제 연대 관계자는 군대의 화력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그 거대한 몸을 잡을 수 없을 거라 말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루시가 거대한 몸집을 가진 병사들에 집착한 이유는 더 크고 더 강한 강심의 출력을 견딜 수 있는 몸을 가진 병사들을 부리고 싶었기 때문.

결국 그 크기만 집채만 한 강심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체급을 키운 병사들은, 그 체급만으로 상대를 짓누를 수 있는 거대한 괴물이 되었다.

침략종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력이라는 힘을 한계를 초월하여 다루기 위해 계속해서 거대해진 몸. 그 몸을 역으로 이용하여 어지간한 화력 따위로는 흠집도 내지 못할 엄청난 크기의 괴수가 탄생한 것이다.

“그런 거대한 괴물을 저희가 잡아야 한다고요?”

“어쩔 수 없습니다. 한 점에 힘을 집중해 놈의 방어막을 뚫을 수 있는 것도, 그 안에 침투해 놈의 몸에 흠집을 낼 수 있는 것도 여러분뿐입니다.”

이지연을 비롯한 각성자들에게 부여된 임무는 소수 정예로 그 거체의 적에게 덤벼들어 내부에서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이론상 불가능할 건 없어 보였다. 그들이 적의 내부에 침투하여 그곳에 핵탄두 하나만 던져 넣을 수 있다면 작전은 성공할 수 있다.

“한,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싸움이에요. 상상도 못 해 봤던.”

“그렇습니다. 저희도…… 압니다.”

문제는 이 싸움이 그 누구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당연히 그 전례가 전혀 없는 방식의 싸움이라는 것.

이지연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따져 봤지만 그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떨굴 뿐이다. 다만 어차피 해야 한다. 누군가는 스타트를 끊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발버둥 치며 데이터를 만들어 나가야 하니까.

차라리 게이트 같은 곳에서 놈들이 튀어나오기 전에 던전에서 상대법을 찾고 정립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할 수밖에 없죠.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거부하려면 거부할 수 있지만 이지연은 늘 그렇듯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선택이 그렇다면 나 역시 어쩔 수 없다. 따라가는 수밖에.

[화력도 병력도 밀리는 와중에 거대 함선을 공략하는 데이터를 지구의 인류를 통해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루시는 그것을 알아보고 오히려 좋아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데이터들이 지금의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긴 것이다.

하긴 잘 생각해 보면 루시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이거나, 강요할 수 있다. 라비즈다에서 마주친 새로운 적들이 바로 이런 이들이었다.

“직감이지만 혹시 몰라, 루시. 이번 일에 큰 일이 터지면, 네가 나서 줘야 할지도.”

나는 이제 익숙하다 못해 지겨워진 출국을 준비하며 루시에게 넌지시 말했다. 엄연히 경험이 적은데도 일단 던져 보는 도박수였다. 그리고 도박수는 실패하면 그만한 대가를 치른다.

그 대가를 막아야만 했다.

* * *

“놈은 던전을 지키는 파수꾼답게! 아군을 쫓아낸 이후로는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저런 놈이 던전이 아니라 게이트를 통해 대량으로 등장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지금, 그 상대법을 확정해야 합니다!”

붉은 흙으로 사방이 뒤덮여 있는 척박한 황무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던전 내부. 그리고 그 던전 내부를 가로지르는 수송 헬기.

출입문이 개방된 헬기 소리에 묻히지 않기 위해 소리치는 군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긴장한 얼굴의 남녀 십여 명이 자리를 지키며 앉아있었다.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야. 무, 무섭지 않아.'

그중에는 이지연도 있었다. 눈을 꾹 감고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그녀는 고소 공포증을 이겨 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앞으로 있을 일에 비하면 높은 곳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일 따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단, 당신이 저 방어막을 뚫어 주지 못하면 모든 작전은 의미가 없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그런 와중에 모두의 시선이 한 남자에게 향했다. 문이 개방된 창가에 있는 그는, 북미 대륙에서 게이트 발생 초기부터 리암과 순위를 다투는 강한 각성자 중 하나.

그가 자신의 무기인 활을 들었다. 조금 많이 특별한 활이었다. 그가 끌어올린 힘에 공명하고 휘몰아치는 이 활의 출처는 사실 에단조차 모른다.

당연히 어떤 원리로 이렇게 강한 힘으로 사용자를 보조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그저, 눈앞에 펼쳐진 저 거대한 붉은 돔 같은 방어막을 화살을 쏴 깨부술 수 있냐는 것 뿐.

“놈들이! 놈들이 몰려옵니다! 에단, 어서!”

동시에 그들을 발견한 적들이 비행이 가능한 병력들을 파견해 덮쳐들었다.

함께 온 다른 헬기들이 기관포와 미사일을 쏘며 자신들의 몸으로 적들을 가로막았다. 오직 그들을 위해 희생한 것이다.

‘힘을 한 점에 집중.’

에단은 그런 상황에서 전력을 끌어올린 일격을, 힘을 증폭시키는 활을 통해 쏘아 보냈다. 강렬한 섬광이 꽂힌 곳은 단 하나의 점.

그러나 한 발로는 부족하다. 전체 크기에 비하면 바늘만도 못한 그들은 오직 하나의 점에 모든 힘을 집중해서 기적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였다.

“서, 성공했다. 에너지 방어막의 일부가 소멸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임무를 에단은 기어코 성공시켰다. 옆에서 펑펑 터져 나가는 아군 헬기와 그 안에 탑승한 이들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 수 없다는 필사의 각오 덕분이었다.

“투, 투입! 투입! 더 늦기 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곧 틈이 생긴 방어막을 향해 그들은 급격하게 방향을 튼 헬기에서 몸을 내던졌다. 잔뜩 굳어 있는 이지연 역시 마찬가지.

그녀의 눈앞에, 거대한 괴물의 넓은 등판이 보였다. 그 거체 덕에 넓고 평평한 등은 마치 거무튀튀한 돌로 뒤덮인 평야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큭, 다들 착지해!”

“으아악!”

그래도 워낙 넓은 덕분에 길을 잃거나 착지에 실패하는 이들은 없었다. 애초에 그들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각성자들만 긁어모은 최정예 팀이고 초인들이다.

다른 이들과 함께 착지한 이지연은 비틀거리면서, 마치 땅과도 같은 단단한 등갑 위에 서서 낙하산을 버렸다.

“방심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놀란 놈들이 제대로 붙을 생각인 것 같으니까.”

그런 그녀에게 에단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다만 그 손을 잡고 일어난 이지연은 곧바로 자신의 무기인 방패를 들어야 했다.

그녀 자신의 몸보다 커다랗고, 전체가 금속으로 만들어진 방패. 그것으로 쏘아진 마력포를 막아 내었다.

‘많다.’

그들이 발로 밟고 있는 디스트로이어는 단순히 덩치만 큰 괴물이 아니었다. 루시가 병력 수송을 위해 운용하는 아일랜드ㆍ알파와 같이 그 내부에 병력을 잔뜩 태우고 있다.

갑판과도 같은 넓은 등짝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저 괴물들이 바로 그런 병력들.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이 괴물의 갑주 안에 핵탄두를 묻을 수 있는 시간을!”

에단의 외침에 그들이 서둘러 전투 준비를 시작했다.

사방에서 적들이 몰아치는 거대한 괴물의 등 위에서 싸우는 것은 경력이 차고 넘치는 그들 중에서도 그 누구도 겪어 보지 못한 일.

그래서 사력을 다해야만 했다. 이번에도 앞에 선 이지연은 날카로운 갈고리 발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적을 향해, 황금빛이 터져 나오는 방패를 들이밀었다.

언제나와 같다. 죽을 각오를 하고,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소수 정예로 방어막을 깨고 내부에 침투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미 주변 모든 곳이 적들에 뒤덮였는데 과연 효율적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준비하자, 루시. 만약을 대비해서.”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이가 베이스의 지휘부 말고도 또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고함과 비명, 폭음이 터져 나오는 전장에 쏠린 사이, 홀로 빠르게 허공을 가로지르는 검은 생물체 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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