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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56화 (156/200)

156화 시작일 뿐 (6)

분명 마계 연합이 새로운 방법으로 계속해서 덤벼 주길 바란 것은 루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가진 모든 방법을 꺼내게 만들고, 그것을 파훼하여 빠르고 효율적이게 그들을 짓밟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다만 절대 만만하게 당하지 않겠다는 듯 작정이라도 한 그 속도가, 루시의 예상에 비해 빠른 것도 사실이었다.

[언데드들의 공격이…….]

루시는 전장의 한 구석에서 시작한 언데드들의 발현에 신경 썼다. 언데드들의 모습은 얼핏 보면 라비즈다에서 사력을 다해 싸웠던 감염체들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언데드들 역시 루시의 마왕군과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망설임 따위는 없는 전투 기계들이었으며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살아나 덤벼드는 끈질김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물론 아무런 힘도 가지지 않은 일개 해골병 따위는 거대한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수형 마왕군이 체급만으로 밀어 버릴 수 있었지만 해골병들 중 일부는 마법을 비롯한 마력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본래 언데드들을 상대로는 분명 교단의 신성력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만. 그래서 대전쟁 당시에도 언데드들은 대성녀 이벨리아의 앞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신성력은 아군이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닙니다. 근본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유리아는 언데드들의 명확한 약점을 이야기했다. 그들이 왜 대전쟁이나 이번 대륙의 내전에서 별로 활약하지 못했는지도.

하지만 루시는 신성력은 자신이 가져와서 배울 수 있는 힘이 아님을 인정하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다른 곳에서 하는 것처럼 소모전을 해봐야 양분 회수도 거의 불가능한 이들. 원거리 화력으로 찍어 누르는 게 낫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대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빠른 계산을 통해 언데드들의 빈틈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처를 지시한 루시의 명령에 따라, 마왕군은 곧바로 빠르게 증식하고 전진해 오는 적들을 향해 움직였다.

“마도 포격 준비 완료.”

루시가 동원한 방법은 마도 포격이 가능한 장비를 들려 준 마족형 병사들을 전장에 투입하는 것이었다.

강심을 이용해 만든, 지구에서 개발한 마도 병기와 비슷한 장비를 든 병사들은, 체내에 강심이 없어도 원거리에서 마도 포격을 가할 수 있었다.

이것은 루시가 준비한 두 번째 웨이브의 특징이기도 했다. 언데드들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다수의 마수형 일반종 병사들과 사투를 벌이던 마계 연합의 병사들은, 메테오가 무력화되자마자 마왕군에서 등장한 마도 포격에 당황하고 허둥거렸다.

일반적으로 공격하던 입장에서 상대가 대응하기 시작하니 놀란 것이다.

“이제 그들이 다음 방법을 꺼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루시는 여전히 주력을 아끼면서도 손쉽게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동안 루시가 세상을 가리지 않고 쌓아 온 수많은 데이터와 정보들 덕분.

예상보다 빠르긴 하다지만 마계 연합은 여전히 루시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 * *

“큭, 아군의 약점이 원거리 포격이라는 걸 알아차린 것인가.”

아크리치 이포스. 그는 붉은 안광을 번득이며 이를 갈았다. 해골 군단을 부리는 그는 자신이 일으킨 해골병사들이 나름 훌륭하게 마왕군과 싸우는 모습을, 그리고 저 멀리서 날아오는 마도 포격에 아군이 당하는 모습을 보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일종의 턴제 게임이기도 했다. 루시가 빠르게 답을 내놓고 턴을 넘겼으니 이번엔 이포스가 패를 까고 턴을 넘겨야 했다.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자신은 계속해서 손해를 보고 턴을 넘기지 못하면 패배였다.

“뭘 그리 고민하나. 마법사들이나 지원해 주게. 이번엔 우리가 나설 테니. 준비는 끝났다.”

“그렇게 해 보던지.”

그때 그런 이포스를 도운 것이 자신과 같은 언데드 마계 영주인 페넥스. 페넥스는 이포스가 시간을 버는 사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내장도 없고 여러모로 이상하지만, 몸 자체는 굉장히 튼튼해서 만드는 재미가 있었지. 가라!”

페넥스는 그동안 준비해 온 자신의 병력을 출격시켰다. 해골병에 비하면 숫자는 적지만 훨씬 강력한 그들은 다름 아닌 시체를 이어 붙여서 만든 시체골렘들.

게다가 그 시체골렘의 재료들은 모두 미처 회수하지 못한 마왕군의 시체를 엮어서 만든 것이었다.

[과연, 아군이 가진 강력한 방어력과 항마력이 그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루시는 그 시체골렘의 모든 능력이 마왕군의 것임을 확인했다.

단단한 갑각과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등등. 갈고 닦은 장점들이 이제 적이 되어 돌아 온 것이다.

게다가 해골 마법사들이 그 옆에 붙어 포격을 방어해 주니 마도 병기를 사용한 포격으로도 쉽게 잡을 수 없었다.

마치 실시간으로 자신들의 몸을 변형시키던 라비즈다의 감염체들 같은 그 모습에, 마왕군이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힘을 보여 줄 때다. 언제까지 숨어서 방어만 할 것인가!”

그렇게 언데드들이 한쪽 전장에서 활로를 뚫어 주자 요새와 장벽에 박혀 방어만 하던 마계 연합의 병력들이 서서히 앞으로 전진해 오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나름 빠르게 턴을 넘겨 준 것이다.

[그들의 대응 속도가 생각 이상으로 빨라서 계획을 조금씩 앞당겨야겠습니다.]

물론 루시는 이미 패를 여러 개 준비하고 있는 상태.

그들이 예상 이상의 속도를 보여 주면 자신은 미리 준비한 패를 연달아 던지면 그만이었다.

[이제부터 전장에 감마 타입을 투입합니다.]

그중 하나가 강심을 장착한 상위종, 감마 타입을 전장에 투입하는 것이었다.

현재 마계 연합이 마왕군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교환비를 보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마력을 이용한 우월한 전투력 덕분.

아주 이전부터, 루시가 마계 내부에서 일개 고블린들과 투닥거리던 시절부터 극복하기 위해 계속해서 발달시켜 온 것이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 고의로 봉인해 두던 그 힘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이놈들이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도끼가 반으로 부러지고, 마력이 타오르는 검 하나가 번득였다.

마력이 서린 도끼를 휘두르며 마왕군 일반종들을 상대로 거칠게 싸우던 오크 전사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4개의 검을 휘두르던 오크·감마는 그 모습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일반종을 상대로는 미쳐 날뛰던 이들도, 자신들보다 훨씬 강한 출력과 뛰어난 전투 기술을 보유한 상위종이 난입하자 일제히 밀려났다.

“모두 후퇴해라! 놈들의 함정이었다!”

마계 연합의 병사들은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내고 전장에 난입한 감마 타입들의 등장에 기겁하며 기껏 나와서 반격하던 것이 무색하게 다시 방어선 안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 * *

“놈들이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지금까지와 다를 것 없는 소모전만 계속될 겁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니다. 루시가 전력을 다하지 않고 힘을 조절하며 그들을 약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그들은 분노하면서도 섣부르게 나설 수 없었다.

“마력을 다루는 전투 기술을 익힌 상위종들이 전장에 난입한 이후로 아군의 손실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방법이, 새로운 방법이 필요합니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름 자신이 있었던 바알 역시 슬슬 고뇌에 빠졌다. 효과적인 반격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효과를 거두며 승기를 잡나 싶었지만, 적들은 마치 그런 것을 기다렸다는 듯 더 강한 힘과 더 많은 숫자로 그것을 짓밟고 다시 아군의 숨통을 조이는 중이었다.

‘태산과 싸우는 것 같군. 처음부터 모든 것이 연기였나? 더 일찍 공격했어야 했나? 고작 북부 지역을 차지한 놈들이 이렇게 많은 병사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

그의 생각은 마왕군이 가진 힘의 출처까지 번져나갔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루시의 마왕군이 어떤 세상에 얼마나 큰 둥지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그는, 아무리 시체를 회수해 양분을 재활용 한다 해도 끝을 모르고 쏟아져 나오는 마왕군의 숫자에 질려 버렸다.

“이대로 전쟁이 지속되면 우리가 먼저 말라 죽어 버릴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바알은 결단을 내렸다. 나름 빠르게 내린 결단이었다. 이대로 전쟁을 계속하면 루시가 준비한 여러 가지 패들에 그대로 압사당할 테니까.

“놈들의 둥지를 공격하지 않는 이상 백날 천날 놈들을 죽여 봐야 우리는 승리할 수 없다.”

“하지만 마왕님, 놈들을 뚫을 수가 없는데 대체 어떻게 둥지를 공격한단 말입니까.”

“한 점에 힘을 모으면 가능하다. 우리가 과거 전대 마왕을 어떻게 잡았는지 생각해 보면.”

바알의 눈이 번득였다.

반면 다른 마계 영주들은 전대 마왕을 언급하는 그의 말에 말을 잃고 움찔거렸다.

그들이 전대 마왕을 잡은 방법이 바로 방금 그가 언급한 내용이었으니까. 한곳에 힘을 집중해 마왕군이 만든 방어선을 뚫고 단숨에 마왕군의 우두머리인 마왕을 저격해 쓰러트렸다.

“뒤가 없는 방법입니다. 만약 그렇게 했다가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고립당해 죽을 겁니다!”

“과거엔 혈기 넘치던 이들이 이제는 죽을 걱정부터 먼저 하는구나. 이제 잃을 것이 너무 많아져서 그런가?”

당연히 마계 영주들은 거부감을 표출했다. 그러나 바알은 그런 그들을 비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가진 탐욕은 이해하지만 마계가 멸망하면 그 탐욕도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따져도 놈들이 숨기고 있는 패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거대한 초거대종도, 수많은 병사들을 태우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 비행종도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처음엔 혹시 그것들을 포기하고 일반종들을 대량으로 양산한 것인가 착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대신 우리가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그런 것들을 하나씩 꺼내며 서서히 우리를 말려 죽이고 이 땅을 차지하려는 것이겠지. 그대로 당해 줘야겠나.”

“그, 그것은…….”

바알이 단순히 힘으로 밀어붙인 것도 아니었다. 막상 그가 이야기한 방법을 제외하고서도 다른 뾰족한 수가 없던 마계 영주들은 결국 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유사시 일부만이라도 빠져나올 수는 마련하겠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물론 바알이 정말로 모두의 목숨을 건 돌격을 구상한 건 아니었다. 훗날을 위해 전력을 온존할 생각도 함께였다. 단지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정체를 반드시 알아야겠다.’

애초에 그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제대로 된 정보 없이 소문만 무성한 저 괴물 집단에 대해 알아내는 것.

대체 진정한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이 거대한 군단을 부리는지 등등.

‘내가 배울 수 있다면.’

그의 눈이 탐욕으로 번득였다. 그가 가진 루시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적의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루시의 군단이 가진 힘에 빠져든 그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그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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