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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59화 (159/200)

159화 시작일 뿐 (9)

이벨리아가 자신이 신으로 모시는 존재에게서 받아 뿌린 성장의 권능은 말 그대로 권능.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이다.

하급 마족조차 성장을 반복하다 보면 마왕군의 간부와 대적할 수 있게 되는 기적.

‘플레이어’는 그들에게 딱히 투자해 주지 않았지만, 어차피 계속되는 전쟁은 그들의 경험치가 되어 그 레벨을 쭉쭉 올려 나갔다.

물론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성장 폭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어쨌든 마계 영주들을 비롯한 일부 마족들은 레벨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자신들의 힘을 최대한 증폭시켰다.

“옛날 생각나는군. 마왕군과 대적했을 때가!”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혼자서 한 개 군단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경지에 오른 영웅급 전력이 한데 뭉치니 말 그대로 막을 수 없는 재앙이 되었다.

루시의 마왕군이 무수한 숫자를 앞세워 덮쳐들었지만 그들은 비슷한 규모의 병력이나 압도적인 화력 없이, 그저 자신들의 힘만으로 그것을 분쇄하는 중이었다.

[과거 마계 북부 지역을 점령할 당시, 그들이 편린이나마 보여 주었던 그 시너지가 지금 제대로 터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루시는 하늘을 가르는 참격과 그것을 보조하며 몰아치는 거대한 돌풍 등을 보며 그들의 힘을 계속해서 상향 조정했다.

괜히 그들이 뭉쳐서 마왕을 잡았다고 기세가 등등한 게 아니었다. 그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시너지는 서로의 힘을 증폭시키고, 한계를 넘게 해 준다.

루시가 북부를 점령할 당시에는 고작 몇 명이 보여 주던 그 힘이 지금은 수십 명으로 늘어나 더 강해진 모습이었다.

“그럼 이제 어쩌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병력을 투입한다거나?”

[대기하던 특수종들을 투입하겠습니다.]

루시도 폭발하는 상대의 힘에 맞춰서 계속해서 전력을 올려 나갔다.

초거대종을 비롯한 병기들을 투입하고 자신의 아바타는 물론 유리아, 김서윤 같은 이들까지 모조리 동원해서 그들을 막으려 한 것이다.

“이럴 수가. 놈들이 더 온다!”

날개를 퍼덕이며 비행종들과 싸우고 있던 가고일, 마계 영주 라움이 가장 먼저 그들을 발견했다.

저 멀리서 전장으로 달려오는 또 하나의 군세.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짐승인 초거대종 위에 올라타 있는 루시가 손에 들고 있는 롱기누스를 움켜쥐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나고 마계 영주들은 과거 대전쟁 시절보다 더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아마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더 강해질 겁니다, 마왕님.”

“별로 의미 있다 생각하진 않지만, 이번에 잡을 겁니다.”

루시의 곁에 있던 유리아는 마계 영주들의 힘을 경계했다.

한때 그들과 아군으로 뛰었던 입장에서 그들이 가진 성장의 권능은 그만큼 위협적인 것. 지금 호각으로 싸울 수 있다 하더라도 이 싸움 자체를 경험치로 삼은 그들은 차후의 전투에서 더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 올 것이니까.

하지만 루시는 그들 개인의 강함에는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마계 영주들이 자신의 병사들을 학살하고 경험치 삼아 레벨을 올린다 해도 결국 그들은 일개 개인.

그들이 성장하는 사이 이미 그들의 기반은 전부 공략당하고 있다. 가장 강한 것은 결국 살아남는 것.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살아남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루시는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목적은 그들 중 최대한 많은 숫자를 죽이는 것이지만 실패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이번 전투 자체에서 그들을 꺾어 버리기만 한다면. 제 2타, 진격.”

애초에 목적부터가 마계 영주들과는 다른 루시는 군단을 진격시켰다.

지금 대지를 진동시키며 전방으로 돌진하는 초거대종들을 비롯, 함께 날아가는 상위종들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모두 지난 세월동안 착실하게 성장하고 진화해 온 결과물들이었다.

다양한 세상에서 기존의 강자들이 잠시 방심하고 시선을 떼고 있을 때 야금야금 이득을 챙겨오고 그것을 조합하여 만든 자신만의 강함.

충돌 직전 루시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수집하고 저장한 그 막대한 데이터들을 되돌아보았다.

지금 손에 넣은 이 힘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괴물 놈들!”

루시를 향해, 아니, 루시가 타고 있던 초거대종을 향해 거대한 얼음 폭풍이 몰아닥치더니 엄청난 힘으로 그 저항력을 억누르고 거대한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실시간으로 얼어가는 초거대종의 머리 위에서 살짝 점프한 루시는 그대로 허공 위에 떠올랐다.

자신을 향해 달려 온 다수의 마계 영주들. 그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루시를 습격해 포위했다. 유리아나 김서윤은 루시를 도울 수 없었다. 그들에게도 마계 영주 일부가 달라붙어 가로막은 탓이다.

“소문은 이미 이전부터 들었다.”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이마에 돋은 한 쌍의 뿔을 흔들거리는, 옅은 보라색 피부의 마족.

이제는 정점이 되어 이 세상의 지배자가 된 마왕 바알.

“승승장구도 여기까지다.”

그는 자신을 보는 루시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당연히 그는 루시가 이 거대한 집단의 수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마치 자신처럼.

실제로 루시는 그런 착각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들이 보는 루시의 몸은 그저 단말 중 하나일 뿐이지만 루시는 그 비밀을 끝까지 지켜 왔다.

중요한 순간에, 그것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말이 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체 너희들의 목적이, 아니 정체가 뭐냐.”

밑에서는 지금 수많은 이들이 서로 엮여 짓밟히고 타죽고 찢겨 나가고 있었지만, 바알은 애써 무시하고 루시의 정체를 물었다.

그로서는 자신이 마왕이 되었는데도 그 지배력이 통하지 않는 루시의 정체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나타난 곳이 마계라고 알고 있다. 마족이 아니라면, 마수인가?”

“너무나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루시는 자신을 포위하고 긴장을 끌어올린 그들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어지간하면 잘 움직이지 않는 루시의 감정도, 지금 이 순간에는 꿈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마계 영주들은 결국 자신의 원수였고 그 원수들이 아직도 자신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그 모습이 웃기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제가 왜 당신의 명령을 받지 않는지, 정말 가능성이 그것뿐이라 생각하시는지.”

“그게 무슨…….”

“마왕님, 헛소리입니다. 들어 줄 가치가 없습니다! 놈들은 이 땅을 갉아먹는 해악입니다!”

바알은 루시의 대답에 움찔했지만 그 사이 다른 이들이 분노하여 소리쳤다.

“싸움을 멈출 생각은 없나? 먹이를 찾는 것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저 대륙 너머가 더 맛있을 것이라 확신하는데.”

바알은 마지막 물음을 건넸다. 자신을 이용해 보려는 그의 속셈을 눈치 챈 루시가 이제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저 대륙으로도 향할 것입니다. 다만 그 전에 이 마계를 전부 먹어치울 것이고, 그 이후 앞장서는 것은 당신들의 피와 살에서 추출한 양분으로 생산한 나의 병사들일 겁니다. 이 배신자들.”

“큭, 그렇다면 여기서 끝장을 보는 수밖에 없겠군.”

서로 동시에 힘을 끌어올렸다. 바알을 비롯한 마계 영주들이 무기를 겨눔과 동시에, 루시 역시 자신의 손에 든 결전 병기 롱기누스의 출력을 폭발시켰다.

성장의 권능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강해져 있는 상태인 적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루시가 고안하고 개발한 것이 바로 이 특수한 무기.

“……!”

곧 대폭발이 일어나고 거대한 충격파가 그들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 * *

“유리아가 걱정됩니까?”

“아니라고 말 못하겠군요.”

어딘가에서는 두 세력이 자신들의 운명을 걸고 격렬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때. 나름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대륙 북부의 한 도시에서는 크리스가 자신에게 다가 온 나안을 보고 피식 웃었다.

나안은 유리아를 따라 전장에 합류하지 않았다. 라비즈다에 남은 라온처럼 루시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남겨 둔 것이다.

“마계에서 살아 돌아오는 과정에 뭔가 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대체 뭐가 뭔지 말을 해 주질 않으니.”

탄식한 라온이 고개를 떨궜다. 유리아가 살아 돌아온 것은 말 그대로 기적.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유리아를 도와준 것은 사실이고 그 누군가에게 유리아가 복종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굉장히 불편한 진실이었지만 크리스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자기 누이의 목숨이 걸려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분명 별 것 아닐 겁니다. 금방 다시 돌아오겠죠.”

“그런가요?”

나안은 그런 그를 보고 살짝 웃었다. 크리스는 그것이 단순한 위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안은 지금 유리아가 어디서 뭘 하는지 알고 있었다.

다만 그렇기에 조금 묘한 얼굴이었다.

유리아를 살려 준 대가로 군단장으로 부리고 있는 루시가 왜 굳이 크리스는 내버려 두는지, 과연 유리아와 크리스를 평범한 남매로 둘 것인지 등등.

본인도 마왕군의 일원이 되었으니 그 흥미는 더 깊어졌다.

“마계도 이탈했고 더 이상 연합군에게 교단을 찍어 누를 힘은 없습니다. 아마 전쟁은 이대로 마무리되겠죠.”

그런 사정까지는 모르고 있는 크리스는 그저 자기가 아는 것만 걱정할 뿐이었다.

예를 들면 또다시 소강상태가 되어 버린 대륙의 전황이라던가.

교단이 핵무기를 공수해 오며 어떻게든 전쟁을 이어 나가고 끝내길 원했지만, 엘프들의 개입에 그것마저 무산되었다.

이제 그 누구도 앞날을 예상하지 못했다. 서로 비밀 병기를 더 꺼내놓지 않는 이상 이대로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생각이었다.

‘평범한 평화.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멀게 느껴지지.’

평소라면 나안과 더 오래 있고 싶어 했겠지만, 유리아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했던 크리스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이벨리아가 일으킨 전쟁은 이제 고작 1년을 바라보지만, 너무나 격해서 그 전이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모두가 지쳤다. 이제 그만.’

크리스는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전쟁은 삶의 터전과 사람을 제물로 불태우며 이어지는 것.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이 더 이상의 전쟁은 바라지 않았다.

“설마.”

그러나 그런 그의 눈에, 다급히 말을 몰며 어둑한 대로를 내달리는 전령의 모습이 보였다.

어지간한 내용은 통신구로 전할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전령을 보낸다는 것은 하나를 의미한다. 워낙 다급하고 격한 일이라 최대한 다양한 방법으로 사방에 소식을 뿌리려는 것.

“교단이 공세를 시작했다. 방향은 중부 전선……. 아무래도 그들은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기사단장이 풀어 주는 그 내용은 역시 끔찍했다. 평화는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우리도 지원을 나가야 한다. 마계의 병력들이 빠지면서 공백이 생긴 자리를 채워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패배한다.”

게다가 이전까지의 전투와는 그 흐름도 달랐다. 전리품을 노리고 참전했던 마족들이 마계 내부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빠져 버린 지금을 노리고 온 교단을 막기 위해, 연합은 하나로 뭉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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