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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61화 (161/200)

161화 정리 (1)

끝이 보인다.

루시는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데이터에 따라 계속해서 요동치는 계산 값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미리 설계한 대로, 이번 전투에서 상대를 몰아치는 중이다. 자신의 첫 탄생부터 이어진 지긋지긋한 악연이 끝난다.

[그대로 밀어버릴 수 있도록.]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 대가로 기세를 잡았다. 이득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번 전투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렇기에 루시는 손해를 감수하고 발악하는 적들을 향해 자신의 병사들을 밀어 넣었다.

“마, 마왕님.”

“부상을 입으면 계획에 차질이 생깁니다.”

바닥에 떨어졌던 롱기누스를 회수한 루시는 비상용으로 만들어 두었던 새로운 아바타를 움직여 다른 마계 영주들과 싸우고 있던 유리아와 김서윤을 도왔다.

결전 병기의 도움이 없다면 아직은 마계 영주 여럿을 단신으로 상대할 출력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 현재 최대한 많은 강심을 달아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소형 개체를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았기에, 루시는 굳이 자신의 아바타를 여럿 만들어 운용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20명의 마계 영주를 베었습니다. 아직 반절 넘게 남았다는 뜻입니다.”

유리아와 함께 협공하여 마계 영주 하나를 죽여 버린 루시는 혼란에 빠진 그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자신들을 통제하는 마왕인 바알의 명령이 비어 버리자, 혼비백산하며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야 바로 도망쳐 버리고 싶지만 마왕이 살아있다면 그게 용납될 리 없으니까.

“저들은 고도화된 중앙 통제 시스템을 사용하기엔 그 역량이 부족합니다.”

루시는 바알을 비웃었다. 어찌 보면 마왕이 모든 마족을 지배하는 시스템은 현재 루시가 운용하는 하이브마인드 시스템과 같았으니까.

아무리 아바타를 죽여 봤자 병력의 통제권을 잃지 않는 루시에 비해, 바알은 중추 그 자체인 자신이 직접 나섰다가 병력의 통제를 잃어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마왕의 통제가……!”

“마왕이 죽었나?! 일단 도망쳐라! 이길 수 없다고!”

그런데 그 순간. 마계 영주들을 강제하던 힘이 사라졌다. 당연히 마계 영주들은 그 즉시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의 자기 목숨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군세의 균형도 완전히 무너져, 전장은 말 그대로 살육의 장으로 변해 버렸다.

“정말 바알이 죽은 겁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더 이상 다른 마왕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루시는 찰나의 순간 데이터를 뒤졌지만 바알의 최후를 목격한 데이터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포착된 것은 함선형 병사들이 퍼붓는 포격을 막기 위해 나서던 모습뿐.

“그 포격으로 죽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지금은 집중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에 떠 있던 루시는 아바타의 눈으로 자신이 만든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짙은 먼지로 흐릿한 하늘, 지금은 피로 그 몸을 물들이고 있는 탁하고 마른 흙이 널려 있는 황무지를.

이 거대한 면적의 전장에서 자신이 마계를 비롯한 수많은 세상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하나하나 조합하여 만든 수많은 병력들이 얽혀 적들을 밀어내고 있다.

하늘에도 대지에도 자신의 병사들이 가득하다. 거대한 함선형 병사들이 그 정점. 애초에 루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계를 보고 있지 않았다.

마계는 자신이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이렇게 쉽게 밀어 버리는 게 가능했으니까.

교단이 설치고 있는 대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곳도 마음만 먹는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쓸어버릴 수 있다.

‘더 넓은 곳. 더 큰 곳.’

대신 루시는 이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고 처음 접하는 강한 적과의 치열한 사투 끝에 끝내 그곳의 일부를 점령하며 접하게 된 새로운 기회. 일개 행성에서 벗어나 진정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비록 지금은 그들이 가진 힘이 자신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웅크렸지만, 루시에게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웅크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것이 이제 루시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마계를 청소하는 것은 어차피 정해진 일이었으니까.

오히려 중간중간 다른 곳들에 신경 쓰느라 너무 오래 걸렸다.

“유리아, 마계 영주들이나 그 잔당들이 흩어져서 도망치고 있습니다. 보나마나 자신들의 영역으로 도망쳐 항전하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절대 이 땅의 기득권을 놓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이제부터 병력을 나누어 그들을 하나하나 각개 격파합니다.”

적지 않은 군세를 한 번에 전멸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 루시도 굳이 비효율적인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도주하는 적들을 쫓지는 않았다.

대신 병력을 나누었다. 괜히 바알이 시간을 더 끌지 않고 하나로 힘을 모아 돌파하려 시도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왕군의 둥지에서 병사들은 계속 생산되고 있으니까. 심지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해 전선이 뒤로 밀린다면 이 땅들이 새롭게 둥지에 편입된다.

“와, 왕이시여. 놈들이 계속 몰려옵니다! 피해야 합니다!”

“이런 제길! 하지만, 하지만 내 영지를 버리고 어떻게 도망친단 말이냐!”

마계 영주들은 루시의 예상대로 자신들의 영지로 돌아갔지만 그게 전부였다. 나름 방어 준비를 해 보려 해도 연합군으로도 막아 내지 못한, 이미 모든 힘을 해방한 루시의 마왕군을 막아 내는 건 불가능했다.

“싸워, 싸워라! 안 돼!”

“도망쳐.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압도적인 상대의 힘에 오래 이어져 내려오던 지휘 체계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마계 영주들에게 마왕 같은 강제력은 없다.

그들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던 이유는 마계를 나눠 먹은 타 영주들과의 협정, 그리고 개인과 그 측근의 무력이 강력했기 때문.

그러나 마계 영주들이 만들어 온 질서는 새로운 마왕, 루시의 등장에 완전히 깨져 버렸다.

[승리 확률 78%, 이미 결판은 났습니다. 남은 건 얼마나 효율적으로 승리를 거두느냐일 뿐.]

병력들을 잘게 쪼개어 흩어져 버린 마계 영주들을 거의 동시에 타격하기 시작한 루시는, 그렇게 발생한 모든 전투에서 자신이 이길 것이라 확신했다. 애초에 전투조차 아니었다.

밀고 들어오는 마왕군의 기세에 마족들은 분열하여 제대로 뭉치지 못했고 그대로 쓸려 나갔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커헉.”

“…….”

김서윤은 자신이 겨눈 궁니르에서 뿜어진 힘이 결국 버티지 못한 적을 사살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주위에는 이미 덤벼들던 다른 마족들을 전부 쓰러트린 다양한 타입의 상위종들이 강심을 빛내며 든든히 그 곁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유리아도, 루시도, 다른 상위종들도 병력을 이끌고 흩어진 마계 영주들을 각개 격파했다.

한 번 금이 간 탑이 무너지는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마계는 이제 끝났습니다. 마왕은 접니다.”

루시는 마계가 무너졌음을 선포하고 자신이 마왕임을 증명했다. 물론 이 새로운 마왕은 자기 자신을 제외한 그 어떤 마족도 생존을 용납하지 않았다.

* * *

“벌써 50명 넘게 잡았다고?”

[예상된 속도입니다. 다만 아직 저항하는 이들도 남아 있습니다.]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상대가 먼저 뽑아 든 칼을 지지 않고 받아쳐 제대로 부러뜨린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루시는 이미 마계 전역으로 병력을 보내 마치 도화지를 물들이는 먹물처럼 자신의 둥지로 물들이고 있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다른 것을 보고 있을 때 루시는 그들을 보면서 성장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슬슬 루시를 신경 쓰기 시작했을 때, 루시는 이미 더 높은 곳을 보고 그곳에서 경쟁과 성장을 반복했다.

그들보다 더 강하고 많은 적들을 상대해 온 루시가 마계를 점령하는 건 결국 정해진 결과였다.

“총 65명을 잡았다고. 이제 남은 건 7인이네?”

[그들 중 6인이 한데 뭉쳐서 최후의 저항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물론 정리 가능합니다.]

루시가 직접 그 죽음을 확인한 마계 영주가 지금까지 65인. 72명에 달하던 마계의 지배자들은 정말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루시가 아직 여력이 없던 때를 놓치고,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때 먼저 움직이지 않고 갈라져 있던 대가를 이제야 몰아서 치른 셈이다.

[그들은 섬을 본거지로 삼고 있던 마계 영주 아가레스의 영지를 거점으로 저항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력을 집중한 아군이 그곳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루시는 내게 화면을 돌려 보여 주었다. 운무가 가득한 검은 바다 위를 병력을 가득 태운 함선형 병사들이 일제히 건너는 중이었다.

[마계의 바다에는 흉포한 마수들이 대량으로 산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 마수들이 방파제가 되길 원한 것 같습니다.]

“날아서 가면 그만인데?”

실제로 바다 속에서 거대한 생물체들의 실루엣이 보이기는 했다. 다만 루시가 굳이 양분으로도 쓰지 않는 그 괴물들이 하늘을 날아서 가는 아군을 방해할 능력은 당연히 없었다.

“7인 중 6인. 그럼 남은 1인은 뭐지?”

[마왕 바알입니다. 유일하게 제가 직접 확인하지 못한 바알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본진을 공격하기 위해 뒤로 돌린 병사들이 확인했을 때는 그의 일족 일부 역시 이미 도주한 것 같습니다.]

“마계가 아니면 어디로? 아니다, 애초에 정해져 있겠지.”

보나 마나 대륙으로 도주했을 것이다. 마계와 연결된 다른 세상은 그곳 하나뿐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패퇴한 주제에 거기 가서 뭘 할 수 있냐는 것.

이제는 더 이상 연합의 일원이라고 대우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가진 힘도 모두 말아먹고 도망쳤으니까.

정말 자기 목숨이나 지키려는 게 전부인가? 그 정도로 쫄보이면서 먼저 루시에게 시비를 걸어 명을 단축한 건가?

신경이 아예 안 쓰이는 건 아니지만, 루시는 일개 개인의 힘 따위는 결국 한계가 있다며 결코 믿지 않았기에 나에 비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제일 찜찜한 놈이 살아서 도망간 건 거슬리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마계를 마저 청소하는 일이다.

루시가 ‘고작’ 이런 땅 한 조각에 만족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더더욱.

‘좋은 건가?’

우주 세력의 개념을 접한 이후 루시가 더 거대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을 품게 된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순간 헷갈렸다.

그러나 금방 결론을 내렸다. 루시가 무엇을 원하든 내게만 의존하고 집착하던 때와 비교하면 훨씬 나은 것이라고.

약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부모 품을 떠나려는 자식을 보는 느낌이다. 루시가 착실하게 성장해 온 지표였다.

내게도 나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뻗어 나갈 곳은 넓고, 지금처럼 루시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내게도 더 많은 도움을 주니까.

잘 키웠다. 내심 이런 마음이 드는 걸 부정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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