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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63화 (163/200)

163화 정리 (3)

“다, 당신! 이게 무슨 짓이오, 갑자기!?”

마계에서 마지막 저항 세력이 속절없이 밀려 버리고 이후 전열을 정비한 마왕군이 대륙을 침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때.

교단과 연합의 싸움이 여전히 여기저기에서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을 때.

연합의 중추라고 부를 수 있는 제국의 황궁에서, 가장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어야 할 황제는 자신의 앞에 등장한 낯선 위협에 기겁했다.

“고마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네놈들도 우리처럼 아무것도 못 하고 벌레처럼 밀려 버릴 것을 구원하러 와 주었으니까.”

그런 모습을 본 바알이 입꼬리를 비틀더니 미친놈처럼 히죽였다. 만신창이인 몸으로 이 늦은 밤에 갑자기 찾아와 저러는 것을 보고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 황제는 주춤거렸다.

각종 보호 주문이 덕지덕지 발린 장신구들을 차고 있었지만, 정신적인 공포까지 막아주진 못했다.

“끔찍한 지옥의 군단이 마계 전체를 점령하고 있다. 그 탐욕의 화신들이 마계로 만족할까? 전혀 아니다. 놈들은 오직 전쟁만을 위해 살아가는 전투 종족. 비대하게 키운 군단을 썩힐 리가 없으니 곧 이곳으로 몰려 올 것이다.”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마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마계 연합은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아간다더니.”

꽤 짧은 시간에 벌어진 마계의 일을 모르고 있는 황제는 헛다리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바알이 마왕이 되었다는 것도, 마왕이 되어 루시에게 시비를 걸었다는 것도,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한순간에 털려 버렸다는 것도 알지 못했으니까.

“굳이 지금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곧 알게 될 테니까.”

그런 모습을 본 바알은 더 크게 웃었다. 황제는 경비를 부를 수도 없었다. 바알이 시전한 꽤 수준 높은 공간 분리 마법이 이미 작동하여 이곳의 소리를 완전히 차단했기 때문이다.

“오, 오지 마라! 지금 이게 무슨 짓인지 알고 있는가? 마계는 우리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다!”

“마계는 이미 망했다, 멍청아!”

“큭, 아아아악!”

한 걸음 앞으로 나선 바알이 힘을 행사하여 황제의 몸을 사로잡았다. 이런 유사시를 대비해 늘 착용하는 황제의 장신구들에서 발산하는 강력한 보호 주문들이 그를 지키기 위해 작동했지만, 바알은 그것을 힘으로 찍어 눌렀다.

“나도 내가 이런 미친 짓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 내가! 마왕이 된 이 내가 말이다!”

“그, 그것으로 뭘 하려고……!”

황제를 사로잡은 바알은 마정을 꺼내었다. 마왕의 증표이자 마계의 마족을 지배하는 강력한 권능을 가진 기적의 보옥.

하지만 지금 그 증표는 봉인 상태다. 바알이 스스로 마왕의 힘을 발산하지 못하게 봉인한 것이다.

처음 이 계획을 구상한 순간부터 필요한 조건 중 하나였다.

“인간 제국의 황실에는 특별한 피가 흐른다지. 그렇기에 그 오랜 세월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그 힘이 마왕의 권능과 만난다면 놈들과 맞설 만한 군단을 부리는 게 가능해질 것이다.”

“그, 그만둬! 끄아아악!!”

바알은 그 마정을 사로잡은 황제의 몸에 강제로 박아 넣었다.

꽤 상징적인 선택이었다. 마왕이 되고자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았던 바알이, 스스로 마왕의 권능을 포기하고 이종족인 인간 따위에게 마계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권능을 넘겨 버린 것이니까.

물론 아무런 조치 없이 이런 짓을 하는 건 아니었다.

“내 눈을 봐라.”

황제에게 마정을 박아 넣는 순간 드러난 빈틈에 자신의 마안을 개안하여 세뇌를 때려 박았다.

이렇게 탄생하는 마왕도 황제도 아닌 기괴한 혼종은, 마왕군에 맞설 새로운 군단의 수장이 됨과 동시에 바알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이다.

“그아, 아아아!!”

이마에 박힌 마정을 중심으로 피부가 탁하게 물들어 가는 황제의 몸이 뒤틀리며 괴이한 변형을 일으켰다.

키는 더 커지고 몸은 가느다랗게 변했다. 등을 뚫고 날개가 튀어나오며 눈은 검게 물들었다. 이마를 뚫고 튀어나온 한 쌍의 검은 뿔이 자라나며 괴물의 울음소리를 사방으로 퍼트렸다.

“폐, 폐하! 무슨 일이옵…… 아아악!”

게다가 이 변이가 황제 하나만으로 끝난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포기한 바알의 목적은 마왕군에 대항할 새로운 군단을 만드는 것이니까.

첫 번째 타깃은 황제의 비명 소리에 뛰어들어 온 호위 기사가 되었다.

황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탁한 증기에 접촉하는 순간.

호위 기사 역시 비명을 지르며 똑같은 변형을 일으켰으니까.

“하! 하하하!”

마정을 인간 황제의 몸에 박아 넣는다는, 그 어떤 마족도 하지 못할 미친 짓을 성공시킨 바알은 그 광경에 광소를 터트렸다.

“피해라! 절대 닿지 마!”

“재앙이다!”

황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는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뭔지도 모르고 접촉하는 이는 그 자리에서 끔찍한 괴물로 변이해 버린다.

“흐아아악!”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미쳐 날뛰는 괴물들은 사람들을 방해했고, 그사이 날아든 증기들은 그대로 희생자들을 변형시켰으니까.

찬란하고 번영하던 제국의 수도가 괴물 소굴이 되어 버리는 데는 채 몇 시간 걸리지도 않았다.

“역시 마력을 수련한 이들은 쉽게 변하진 않는가.”

바알은 그 와중에 마법을 이용해 불러낸 강풍으로 증기를 날려 버리고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마법사를 보며 피식 웃었다.

대전쟁의 영웅 중 한 명인 대마법사 바르크. 내면에 막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증기에 닿았다고 곧바로 변이하지는 않았다.

“그를 공격해 충직한 하수인으로 만들어라.”

바알은 황제를 조종해 변이체들로 바르크를 공격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그 즉시 사방에서 달려드는 괴물들이 바르크를 포위하고 공격을 시도했고, 타오르는 화염 폭풍을 불러 수십에 달하는 변이체들을 태워 죽인 바르크도 끝내 기사 출신 변이체의 검에 심장을 관통당했다.

영웅급 인물에게도 변이체들의 힘이 통한 것이다.

‘대륙의 모든 인간들을 변이시키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미쳐 날뛰는 대성녀를 변이시킨다면!?’

바르크가 변이하며 머리 세 개 달리 마법사 변이체가 되어 버리자 바알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실낱같은 가능성 하나만 보고 돌진하여 성사시킨 미친 짓이지만, 막상 해놓고 보니 정말로 가능할 것 같았다.

마왕군에 밀리지 않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거세한 괴물 군단.

떠오르는 여명과 함께 변이의 증기는 그 어떤 전염병보다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 갔다.

* * *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재앙이 대륙을 덮쳤다. 두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모두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제국은 한순간에 붕괴했다. 구심점인 황실이 멸망한 순간부터 애초에 저항할 수 없었다.

“서, 성녀님. 끔찍한 재앙입니다. 변이한 괴물들이 닿는 즉시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 증기를 몰고 옵니다!”

“신도들을 뒤로 물리세요. 아무런 은혜를 입지 않은 일반인들은 저항력이 없습니다.”

대성녀 이벨리아 역시 붕괴한 연합군의 사정을 알았다. 그러나 적들이 알아서 자멸했는데도 기회 삼아 공격하는 건 불가능했다.

재앙은 그들에게도 치명적이었으니까.

‘신성력도 저항력만 가질 뿐이다.’

증기 자체에 저항하는 건 가능했다. 하지만 변이체들이 직접 체내에 증기를 투입해서 변이시키는 건 저항이 불가능했다.

유리병 안에 채취해 온 증기를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게 지금 난리인 그 증기인가? 원인은 모른다고?”

그때 리암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의 눈을 보아하니 증기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 정도 수준이라면 저항하는 게 가능할 겁니다.”

이벨리아는 별생각 없이 증기를 내어 주었다. 어차피 리암 역시 저항하는 게 가능했으니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그러나 리암은 조금 달랐다. 증기에 손을 넣고 휘적휘적 하는데도 그녀와는 달리 저항감을 느끼기는커녕 그냥 수증기를 만지듯 자연스러웠다.

“설마, 당신은 다른 세상의 사람이라 가능한 것인지.”

이벨리아의 눈이 반짝였다. 리암은 증기에 저항하기는커녕 아예 영향을 받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그 원인을 그의 출신으로 짐작했다.

“리암, 당신을 비롯한 하늘의 기사들이 활약해 주어야겠습니다.”

“뭘 원하지?”

“자세히 살펴보면 변이체들은 단순히 미쳐 날뛰는 괴물들이 아닙니다. 주요 거점을 점령하거나 길목을 막는 등 마치 명령을 하달받아 그것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죠. 즉, 놈들을 조종하는 지휘 개체가 있다는 소리입니다.”

이벨리아는 웃으며 자신이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그에게 임무를 부탁했다. 나름 정확한 분석이었다.

“그 목적을 보아하니 제국을 넘어 우선적으로 연합을 먹어치울 생각인 것 같습니다. 최전선의 요새로 가서 그곳을 지켜 주십시오. 보나 마나 연합에서 이탈한 수많은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우리에게 합류할 것이니, 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지켜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대충 알겠군. 그런데 자신 있나? 어부지리를 노리려면 저 끔찍한 괴물들과 싸워 이길 자신이 있다는 건데.”

“그러니 그걸 위해서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 그 자체가 놈들의 전력이니까.”

어차피 벌어진 일이라면 기회로 삼아 버리는 것이 현명하고 효율적인 일.

판단을 마친 이벨리아는 엄청난 속도로 증식하고 있는 저 변이체들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전쟁이고 나발이고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탈출해야 하니까.

“피난민들이 몰려듭니다. 저희도 결정해야 합니다, 이제!”

그리고 이런 생각은 이벨리아만 하는 게 아니었다.

* * *

“정말 저 증기에 저항할 방법이 없단 말인가!?”

“일반인들까지 돌보려면 힘이 너무 많이 듭니다.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황급히 대피해 온 크리스의 고향이자 엘프들의 사자인 나안이 있는 이곳 역시 아비규환에 빠졌다. 남부에서는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있었고 그들은 그 무수한 피난민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으니까.

[마정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도주한 바알, 그가 최후의 방법으로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소식은 루시에게도 들어갔다.

대륙을 공격하려던 루시는 한발 먼저 대륙으로 가 이런 짓을 벌인 바알의 행동에 심기가 불편해졌다.

“어, 어쩌지요? 괴물들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검은 증기는 인간들을 끔찍하게 변이시키고 이성과 감정이 없는 괴물로 만듭니다.”

[인간에게만 효력이 있는 일종의 주술이라면 별로 걱정하진 않습니다.]

당연히 루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세포로 구성된 모든 것을 감염시키고 복제하는 미친 감염체 집단과도 싸워 본 루시에게, 지금 날뛰는 변이체들은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으니까.

[계획을 더 서두르면 그만입니다.]

루시는 계획을 앞당겨 그대로 병력을 파견했다.

동시에 마계의 군단을 한 번에 부수고 바알을 도망치게 만든 진정한 군단이 대산맥을 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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