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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67화 (167/200)

167화 정리 (7)

뭐라도 될 줄 알았다. 솔직히 가능할거라 확신했다. 어째서인지, 하늘을 뒤덮었던 거대한 괴수들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바알의 예상은 쉽게 들어맞지 않았다.

[역시 변이체들의 신체 구조는 그리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소체의 강함에 따라 그 강함이 달라지긴 하지만 그것은 개인이 가진 마력의 영향일 뿐, 생체적인 유전 데이터는 하급입니다.]

루시는 이미 변이체들에 대한 분석도 진행했었다. 다만 이미 무수한 생물체들을 먹어치우고 분석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던 루시에게, 어지간한 데이터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도움을 주지 못할 뿐.

따로 병사들을 개조하거나 개량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별 볼 일 없다고 한번 판단한 이상, 그저 힘으로 찍어 누를 뿐이다.

“이, 이럴 수가!”

기겁한 바알이 눈을 부릅떴다.

충돌 직후 마왕군이 바알의 변이체 군단을 상대로 힘싸움에서 우위를 가져간 것이다.

마계 연합 병사들이 몰려드는 마왕군에 전의가 꺾여 밀려났었듯 밀려나는 모습에 바알은 자신의 병력이 밀리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어째서.’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기도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마왕군의 힘은, 급하게 덩치를 불려서 어설프게 조합한 힘으로는 이겨 낼 수 없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니.

루시가 지금까지 성장시킨 마왕군의 힘은 그 정도로 강대했다. 그 힘을 끝까지 보지 못한 바알이 대전쟁을 주도했던 전대 마왕의 마왕군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단지 가슴으로는 그 사실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그는 대전쟁을 통해 마왕이라는 절대자를 배신하고 마침내 쓰러트렸다. 이후 치밀한 설계와 계산을 통해 다른 마계 영주들을 설득하고 협박하여 자신이 마왕의 자리에 올랐다.

태생이 귀족에 속하는 상급 마족이었지만, 마왕이란 자리는 말 그대로 격이 다른 자리. 그렇기에 전대 마왕을 죽인 그 순간부터 그는 욕망에 빠졌다.

‘내가, 내가……!’

마왕이 되고 싶었다. 마계 영주라는 자리에 올랐지만, 무려 72명이나 되는 이들과 권력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공을 들여 끝내 마왕의 위를 회복하고 그 자리에 올랐는데 루시가 등장한 것이다.

마왕다운 강인함과 무자비함을 모두 가진 진정한 마왕이.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루시가 전대 마왕의 복수를 천명하니, 확실히 밀릴 수밖에 없었다.

“바알, 당신의 무쓸모한 저항은 이것이 전부입니까?”

“네년! 감히!”

그런 그의 감정을 읽기라도 한 듯 루시가 나타났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아래의 허공에서 마주친 그들은 샛노란 눈과 붉은 눈을 번득이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패했습니다. 현재 아군이 사용한 양분은 고작 11%, 제 계산 결과 100%를 사용해 일반종을 양산하면 이 대륙 전체를 뒤덮을 수 있습니다.”

“그게 어쨌단 말이냐. 전쟁은 숫자 놀음이 아니다!”

바알은 본능적으로 마지막을 직감했다. 루시 역시 마찬가지다.

더 이상 바알이 만들 수 있는 변수가 없음을 예상하고, 병력의 생산과 움직임을 조작했다.

“마왕을 끌어내린 주제에 자신이 마왕이 되길 원했던 어리석은 마족. 당신의 그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인 행동 덕분에 마계 연합은 멸망하고 아군은 더욱 커졌습니다.”

“닥쳐라! 쳐라!”

루시의 발언에 정곡을 찔린 바알은, 고함과 함께 대기시키던 자신의 병사들을 출격시켰다.

이들은 평범한 변이체가 아니었다.

성장의 권능을 가진 영궁급 인물들부터, 차세대 영웅으로 이름을 날리던 강자들을 변이시켜 만든 엘리트 부대.

루시의 아바타 같은 강적을 막기 위해 만들어 대기시켜 둔 이들이다.

“당신은 학습 능력이 없습니까?”

“큭, 이 년이…….”

마력이 잔뜩 들어있는 강력한 일격들이 단숨에 루시의 몸을 덮쳐들어, 그 몸을 조각 내고 짓이겼다.

애초에 바알 앞에 나타난 루시는 얼굴만 루시의 얼굴일 뿐, 그 스펙은 최하급의 강심 하나 겨우 달린 일개 병사의 몸이었다.

그렇기에 루시는 몸이 산산조각 나고 머리만 남아 허공에 둥둥 떠서도 입을 움직여 바알을 도발했다.

“대체 네년은 정체가 뭐냐. 마왕 이전에, 대체 종족이 뭐냔 말이다!”

바알 본인도 루시를 잡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시간을 돌린다면 정체불명의 마수들이 북부 영지를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그것을 이용하니 마니 하는 헛소리는 때려치우고 전 병력을 동원해서 잡았을 것이다.

“스타더스트의 인공지능 박스디에서 근원한 중앙 통제 프로그램이자 마왕 루시. 그게 내가 스스로 정의한 나의 진정한 정체입니다. 어차피 당신은 들어도 모르겠지만.”

“무, 뭐?”

루시의 머리는 그를 비웃고는 마나가 넘실거리는 변이체의 검에 그대로 베여 반으로 갈라졌다.

뇌수를 뿌리며 떨어져 내리는 그 머리를 보는 바알의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그래.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이제 진짜 끝인지 아닌지 가려야 하거늘.’

다만 그 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차피 이것은 제국의 심장인 황궁을 향해 몰려오는 마왕군을 상대로 펼치는 마지막 저항이었다.

스스로도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있는 바알의 마음 속에는, 그저 마왕군이 오랜 숙원으로 두던 대륙 정복을 자신의 눈으로 보지 못함에 대한 허탈한 마음만이 남아있었다.

루시의 마왕군은 분명 이 세상 전체를 먹어치우려 들 테지만, 자신은 그 전에 죽을 테니까.

* * *

“또 이상한 수를 써서 도망치지 않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정말로, 끝을 보려는 거네.”

마음이 마냥 평온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을 저항하는 바알의 몸부림에서 그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인가.

루시는 감정을 이용할 줄 알게 된 이후에도 자기 자신의 감정을 신경 썼지 타인의 감정에는 별로 흥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화면에 보이던 바알의 모습, 목소리 등 그 모든 것에서 그의 감정이 느껴졌다.

처절한 저항과 발버둥. 생존을 위한 생물체의 당연한 의무였다.

“아무튼, 오늘 끝을 볼 수 있다면 다행인 거겠지.”

루시는 자신이 승기를 잡은 이상 그 광경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자신의 군단이 한때 많은 인간들이 살아가던 도시를 휩쓸고, 그 주민이었던 변이체들을 도륙하는 모습을.

당장 보는 화면에 끔찍하게 비틀린 몸을 가진 괴물 다수가 켄타우로스와 트롤을 베이스로 만들어 거대한 일반종 하나에 달라붙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보였다.

일반종은 억센 근육이 잔뜩 달린 팔로 거대한 무기를 휘둘러 그들을 제압하고, 그들은 필사적으로 달라붙어 갑각의 틈을 노려 공격을 시도했다.

굉장히 흉폭하긴 하지만 마력을 가지지 못한 이상 체급을 뛰어넘는 힘을 낼 수는 없다.

덩치 큰 일반종 병사 하나를 제압하기 위해 많은 수의 변이체들이 소모되었다.

“타락 세계수가 조종하던 감염체들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화면이 전환되자 이번에는 검을 들고 휘두르는 변이체의 모습이 보였다. 기사든, 용병이든 한때 마력과 함께 검술을 수련한 그 변이체는, 능숙하게 검을 움직여 체급을 무기로 삼은 일반종 병사도 단칼에 베어 버렸다.

다만, 그게 전부다. 두뇌를 가진 상위종들과 함께 전장의 모든 것을 조율하는 루시는 그런 특별한 적들을 발견할 때마다 상대할 수 있는 상위종 병력을 파견해서 가로막았으니까.

실제로 검을 들고 날뛰던 변이체는 빠르게 다가온 오크·감마의 참격에 단번에 몸이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현재 승률 67%.]

그런 광경이 지금 도시 전체에서, 도시 너머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루시는 시시각각 변하는 승률을 계산해서 내게 알려 주었다. 다만 그 승률의 변동은 올라가기만 하지 내려가는 경우는 없었다.

“바알의 저항이 거센데?”

[마계 영주들이 제대로 뭉치지 못하고 각개 격파당했던 것을 경계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이미 그들이 가진 출력도 아군의 전력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에.]

바알은 유별나게 강한 몇몇 변이체들과 함께 계속해서 저항했다. 과연 괜히 영웅이라 불린 이들이 아닌지, 그들이 휘두르는 무기에서 뿜어지는 힘은 어중간한 상위종은 단번에 갈라 버릴 정도다.

“음…….”

그들이 시전한 마법에 다수의 병력이 한 번에 갈려 버리는 것을 본 루시가 동원한 것은, 멀고 높은 하늘에 대기시키고 있던 함선형 병사들.

그 거대한 괴수들이 일제히 구름을 뚫고 지상으로 향하니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침음했다.

이곳은 마계가 아니라 보는 눈이 분명 있을 텐데, 루시는 그걸 감수하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섬멸합니다.]

그리고 감수한 값은 확실했다.

이미 루시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은 개인 단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아무리 개인이 자신의 무력을 갈고 닦아도 그 체급에 담긴 한계는 분명 있는 법.

영웅이고 나발이고 몇천 배 이상 거대한 몸에서 뿜어내는 출력은 그 누구도 받아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은가? 엄청 강한 것 같기는 한데, 아직 많이 남은 것 같은데.”

물론 이 한 번의 포격이 종결급 위력인 건 아니다. 애초에 대량 살상을 위해 따로 개발한 것도 아니니까. 당장 바알 역시 그 포격 속에서 살아서 도망쳤다.

그 포격에 무수한 적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무너진 도시에 깔려 죽었을 때. 기어코 몸을 빼내는 데 성공한 바알은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자신도 병사들을 파견했다.

“마왕! 내가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할 것 같은가! 이 거대한 병사들이 네 마지막 수라는 건 알고 있다!”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온 바알은, 함선형 병사들이 미처 다시 포격하기 전에 그 위에 안착했다.

그 행동에 익숙함이 느껴졌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적을 제거하기 위해 이지연을 포함한 각성자들이 직접 몸을 던져 실행했던 전략. 그것을 바알이 시도한 것이다.

“아무리 덩치가 크다 해도 이것은 대응하지 못하겠지!”

소수 병력을 파견하여 그 내부를 공략한다는 방법을 시도한 바알은 히죽였다.

그러나 나조차도 알고 있다. 이미 루시는 이 구도를 간접적이나마 경험했다는 것을.

[지구의 각성자들은 자신들이 초인이라는 사실을 이용, 직접 상륙하는 식으로 초거대 침략종을 공략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주위를 호위하는 이들의 막대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임무를 성공시키고 무사히 철수하기 위해서라도 그 한 줄기의 후퇴로를 지켜야 했기에.]

루시는 학습하는 것을 본능으로 삼은 존재다.

한 번 보고 들은 것은 저장하여 절대 잊지 않는다. 그래서 그 데이터를 이용하여 근처에 있던 다른 함선형 병사들은 물론 비행종을 동원했다.

각성자들이 취했던 행동을 참고해 미리 퇴로를 차단하고 사방에서 적들에게 공격을 시도한 것이다.

“큭…….”

비록 바알은 각성자들과 달리 비행이 자유로운 존재지만, 공격을 취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위치를 고정시키고 노출한 것은 사실.

루시는 제대로 만든 자신의 아바타를 이용해 결전 병기 롱기누스를 들었다.

바알의 목숨을 자신이 이 몸과 얼굴로 직접 끊겠다는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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