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69화 (169/200)

169화 정리 (9)

“특이 사항은, 뭐 없지?”

“예, 협회장님.”

“다행이군.”

어차피 무슨 일 있으면 본인에게 연락이 오지만, 협회장 백승철은 출근하자마자 습관적으로 물어보았다. 그리고 대답을 듣고 안심했다.

세상이 변한 이후 워낙 갑작스럽게 세상 어딘가에서 일이 터지다 보니, 그런 것을 확인하는 게 버릇이 든 것이다.

한국에서 각성자들을 대변하는 협회의 협회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 덕분에 무슨 일만 터지면 불려 다니기 일쑤. 그런 이변이 없다면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언제 한 번은 함선체가 게이트를 통해 등장할 텐데.’

그의 마음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드는 요소는 하나 더 있었다.

다름 아닌 최근 들어 던전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초거대 침략종, 함선체.

단순히 하늘을 떠다니는 초거대 부유체에서 한 단계 진화한 침략종인 함선체는, 거대한 몸과 화력, 기동력을 동시에 가진 까다로운 적이다.

두꺼운 생체 장갑과 마력 방어막 덕에, 현재까지 제대로 된 상대법은 각성자들을 내부에 투입시켜 내부를 타격하는 것뿐.

덕분에 매번 희생자가 나오고, 각성자 전력을 보존하고 싶어 하는 각국 덕에 던전에 등장하는 함선체들은 방치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 갔다.

하지만 방치할 수 있는 건 그것들이 결국 던전 안에 얌전히 있을 때뿐이었다.

게이트와 던전의 상관관계는 이미 밝혀진 지 오래. 게이트 빈도를 줄이기 위해 던전을 공략하려면 결국 함선체를 잡아야 하고, 애초에 함선체가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면 싸우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협회장님, 이건 각성자 아카데미와 관련한 서류입니다.”

“으음…….”

결국 이 시대의 모든 문제는 각국이 보유한 각성자들의 숫자 혹은 질에 달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의 앞에 마침 그것과 관련된 서류가 하나 올라왔다.

다름 아닌 각성자를 교육시키는 교육 기관에 관한 서류. 초인인 각성자들을 방치하는 것은 그들에게나 나라에나 손해이기에, 그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의무적으로 징집하여 교육시켜 혼란을 방지하고 각성자 전력을 확충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그곳들이 돌아가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모두가 시선을 집중했고, 협회장인 그도 신경 쓰는 게 당연했다.

‘지연이, 그 애를 차라리 교관으로 써먹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카데미와 관련된 서류를 팔락거리던 그는 이지연을 떠올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장에선 모두를 수호하는 영웅으로 이름을 날리는 그녀지만, 사실 이지연은 굉장한 중요 인물이었다.

백승철은 그런 그녀가 위험하게 현장에 다니는 것보다는 후방에 있기를 원했지만, 사람들을 위해 싸우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지연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잘 달래면 넘어가지 않을까? 그래도 한창 젊은 애인데.’

그는 이지연을 설득해 위험한 현장에서 물러날 수 있게 만들 방법을 고심했다. 그리고 그 고심 끝에 나온 방법들 중 하나가 아카데미를 이용한 후진 양성이라는 핑계를 대는 것.

나머지 하나가 바로 이지연의 옆에 항상 붙어 있는 ‘그’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이지연이 그리 유명하지 않은 각성자일 때부터 단독으로 함께 활동하는 그녀의 전담 담당자이자 매니저.

은근슬쩍 물어봐도 이지연은 늘 부정했지만, 사실 백승철을 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고 반쯤은 확정 지었다.

‘일단 팀장으로 승진시키고 안쪽 업무로 돌리면 지연이 그 애도 애인 따라서 가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기에 백승철은 그를 잘 이용한다면 이지연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협회장님?”

“무슨 일이지?”

한창 고민에 빠져 있던 그에게 연락이 도착한 것이 그때였다.

살짝 마음을 놓고 업무를 보고 있던 그는 대수롭지 않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잘못들은 건가?”

“정, 정말입니다. 정말로 대통령실에서 연락이 왔으니 어서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통령실이 갑자기 왜. 아니, 그보다 다른 사람들까지 데리고 오라고?”

백승철은 비서의 말에 황당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자신에게 직통으로 오는 은밀한 연락도 아니고 나름 비서실을 거친 정식 연락이지만, 그럼에도 보안을 요구하는 대통령의 부름.

대체 무엇 때문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이지연을 비롯한 몇몇 각성자들도 함께 보고 싶다고 말을 전해 왔다.

엄청나게 급하고 큰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어쩌죠?”

“그걸 말이라고 하나, 자네. 당연히 협력해야지. 지금 당장 연락 돌려.”

갑작스럽고 당황스럽지만 거부할 권리는 없었다. 어쨌든 각성자 협회는 정부에 착실히 협력하니까.

그의 명령대로 비서는 곧장 각성자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동시에 백승철은 외출 준비를 했다.

급한 연락을 받은 각성자들이 모두 협회로 모여드는 데는 몇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중에는 원래 쉬는 날이었던 이지연과 함께 온 창현도 있었다.

“나도 이유는 모릅니다. 대통령께서 다들 모이면 설명하신다고 하니, 일단 가 보는 수밖에.”

“어디 큰일이 터진 건 아니죠?”

“지금 당장은 맞아. 그러니 너무 걱정들은 말고.”

그는 이후 각성자들과 함께 움직였다. 장소는 대통령이 있는 회의장. 엄청난 보안을 요구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공개적인 곳도 아니었다.

[기껏 데려왔더니 자기만 홀랑 가 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지. 난 일반인이니까.”

이지연이 가 버리고 혼자 남겨진 창현은, 떠나가는 차량 뒷모습을 지켜보며 쓰게 웃었다.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는 이상 당연한 일이었다.

‘그보다 대체 무슨 일일까.’

별로 신경 쓰지 않은 그는, 대체 왜 갑자기 한국에서 손에 꼽는 각성자들을 소집해 데려갔는지, 그것이 더 궁금했다.

* * *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다른 세상이라니요?”

“나도 미 대사에게 들은 대로 말하는 것뿐입니다. 정말입니다.”

대통령은 억울하단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항변했다.

그럴 만했다. 나름 진심을 다해 말했지만 돌아오는 건 ‘이건 뭐’스러운 시선들뿐이었으니까.

“미국은 꽤 이전부터 그들과 교류해 왔다고 했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괴물들과의 싸움에 허덕이고 있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과. 그들이 꺼내 놓던 신비한 기술과 물건들은 모두 그곳에서 온 것들이었습니다.”

“그, 그게 사실이라면, 대체 왜 지금 그 사실을 저희에게 알려 준단 말입니까?”

그나마 가장 빠르게 이해한 것은 별별 소리를 다 들어 본 백승철이었다.

모두가 말을 잃고 이 상황을 이해하려 애쓸 때 그는 대통령이 빈말을 하는 건 아니라 확신하고 그 이유를 물었다.

“내가 듣기론 그곳이 지금 상당히 위험하다더군. 지금처럼 미국에서 몇몇 각성자들을 파견해 돕는 건 한계가 있다고, 먼저 동맹국들에 연락을 시도했다 했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이 들은 내용을 전부 말해 주었다. 이곳과는 다른 세상에 있는, 교단에 대한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물론 우리도 그렇게 많이 여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나름 시도해 볼 만한 투자라고 말하더군요. 그곳에서의 투쟁과 교류로 파견한 각성자들은 큰 성취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결국 어딘지도 모를 세상에 우리를 용병으로 보내겠다는 소리 아닙니까?”

“반박할 수 없지만, 알아주길 원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건 침략종과 맞서는 것만큼 모두를 위한 숭고한 일이란 것을.”

대통령은 미국 측에서 전달받은 한 가지 자료를 보여 주었다.

액션 캠을 통해 적나라하게 촬영한 영상이다.

숨을 죽이고 그것을 본 이들은 충격을 받아 눈이 커졌다.

영상에 나오는 것은 끔찍한 괴물들. 오크, 트롤, 가고일 등등의 마족들과 괴이한 변이를 일으켜 폭주하는 변이체들의 모습이었다.

“저 괴물들이 창궐하여 그곳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저 괴물들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더군요.”

말을 잃은 일행들을 흘끔거린 대통령은 비서실장에게 눈짓하여 다른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도 괴물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다.

그러나 이 영상에 담긴 괴물들은 직전에 담긴 영상과 조금 달랐다.

폭주, 혼돈, 광기 그 자체였던 직전의 괴물들과는 달리 차갑고, 기계적이고, 무겁다. 이지연은 검은 갑각을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저거, 설마 침략종 함선체 아닙니까?”

침묵 속에서 누군가가 사람들이 머리에만 가지고 있던 생각을 말로 꺼냈다.

화면에 보이는, 하늘에 떠서 지상을 포격하는 거대한 생물체 하나. 검은 몸체를 가지고 거대한 촉수 몇 개를 꿈틀거리며 하늘을 유영하는 그 모습은 최근 가장 골칫덩이로 부상한 괴물의 모습과 굉장히 흡사했다.

“저 괴물들의 정체는 그 누구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저 놈들의 등장으로 인해 그쪽 세상이 망하기 직전이라는 것 외에는 말입니다. 하지만 방금 말이 나온 것처럼 저 괴물들은 침략종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어쩌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영상은 일단 그게 끝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남긴 충격은 여전한 덕에 대통령은 자신도 머리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숨기고 있다가 이제 와서 정체를 밝힌 의도야 뻔합니다. 하지만 외교적으로, 마냥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세상이 위기에 빠져도 이해관계라는 것이 단번에 사라지고, 모든 이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교단에 맞서던 연합이나 마계 연합이 빠르게 하나로 뭉치지 못했던 것처럼. 이것은 당연한 결과기도 했고, 지구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종의 본능이나 마찬가지니 그 본능을 억누르기 위한 방법이 따로 필요했다. 예를 들면 큰 위기에 빠진다던가.

“모든 각성자 전력을 투입할 수도 없으니, 동맹국들에게도 확장해서 지원을 받겠다는 겁니다. 물론 그만큼 대가도 있죠.”

“이미 정해진 일입니까?”

“아니, 난 내 마음대로 국민들을 사지에 몰아넣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설명을 위해 여기 부른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선택권을 여기 불려온 각성자들 본인들에게 넘겼다.

결국은 어딘지도 모를 사지로 가서 싸우란 소리였으니,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당연히 대다수의 각성자들이 지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지로 가서 싸우는 것에 거부감을 표했다. 다만, 그곳에 가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말에 혹한 이들도 보였다.

‘어쩌지?’

이지연은 눈을 굴렸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백승철이 표정을 이용해 절대 안 된다는 뜻을 전하지 않았다면 고민 없이 선택했을지도 몰랐다.

“역시 힘들겠지? 그곳에 가면 우리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배울 수 있다지만.”

“……미국에서 그런 연락이 왔다고?”

결국 판단을 미룬 이지연은 그날 오후, 창현에게 전화해서 보안이고 뭐고 무시하고 이 일을 털어놓았다.

익숙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에, 전화를 받은 그의 미간이 꿈틀거리는 것은 정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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