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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70화 (170/200)

170화 정리 (10)

솔직히 별로 의미 없기는 하다. 전력을 다해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으니까. 루시에게 그 자그마한 땅 조각 따위는 별다른 가치가 있지 않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어떤 저항을 펼치든 그건 결국 신선한 자극을 주는 자극제일 뿐이었다.

“조금 충격적이긴 하지만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여기 일도 바쁜데.”

나는 내게 소식을 알려 준 이지연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둘러대었다. 자극제라지만 그 자극을 위해 계속되는 전쟁이 반복될 뿐이다.

그녀가 루시와 싸우게 되는 것이니, 그것을 말리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득보다 손해가 더 커 보였다.

“그곳에서 얻은 도움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어. 조금 크게 본다면 그들을 도와 위기를 벗어나게 해 주고 우리도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문제는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이지연이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그녀가 아니더라도 지구의 각성자 중 일부가 추가로 파견될 것은 예정된 수순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녀에게 진실을 말해 줄 수 없었다. 더 이상 성장을 말릴 수 없는 루시가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지는 물론, 그들이 아무리 저항하고 전공을 세운다 해도 그건 루시의 전력이 아니란 것 역시.

“협회장님이 허락 안 하실걸. 널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그건 맞지. 지금은 해외 보내는 것도 싫어하는데, 아마 기회는 없을 거야.”

혹시 모를 그녀의 흥미를 차단하기 위해 협회장 백승철의 이름을 팔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인지 이지연도 그 이상으로 관심을 가지진 않았다.

그녀의 성격상 진심으로 가고자 했다면 정말로 갔을 테니까.

“다른 나라도 아니고 다른 세상…… 역시 좀 힘들지.”

“그것도 맞지만, 그냥 떨어지기 싫었어. 거기 가면 떨어져야 하니까.”

다만 그녀의 대답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 나는 피식 웃었다. 이번 경우에는 서로의 마음이 도움이 된 것인가?

그러나 나는 차마 그녀의 마음을 알고서도 그것에 다가갈 수 없었다. 내가 가진 비밀을 그녀가 안다면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사람들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은 사람에게, 수많은 생명을 잡아먹고 세상을 뒤덮어 멸망시키는 마왕이 믿고 따르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의 전력이 확충될 예정이라면 계산을 조금 수정해서 조금 더 진심으로 상대해야겠습니다.]

루시가 직후에 보고를 보내와서 그런지,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지구에서 추가로 지원을 보낸다면 자신도 밀리지 않고 상대하는 힘을 늘리겠다는 말이었다.

* * *

[현재 정리 단계입니다. 변이체들의 구심점인 바알은 죽었고, 핵심 숙주인 황제도 사살했습니다. 하지만 놈들은 이미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거의 대다수의 세력들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바알의 마지막 발악도 가뿐하게 제압한 루시는 더 이상 자신의 정체와 전력을 숨기지 않았다. 빠르게 대륙을 뒤덮어 가는 마왕군과 둥지.

바알이 변이체 군단을 만들기 위해 깽판을 쳐 놓은 덕분에 왕국이니 어쩌니 하던 기존의 세력들은 순식간에 약해져 견딜 수 없었고 루시는 그 빈틈을 노려 빠르게 영역을 늘려 갔다.

‘빨라.’

내 눈에 루시가 자랑스럽게 보여 주는 장엄한 광경이 보였다. 넓게 펼쳐진 대지 전체를 채우고 있는 검은 버섯들. 한때 푸르게 자라났던 산천초목을 모조리 밀어 버리고 등장한 저 버섯들은 태양빛을 양분으로 치환하는, 마왕군 에너지 보급 체계의 핵심이다.

거기다 드문드문 하늘 높이 솟아있는 검은 나무들. 타락 세계수에 기생하던 거대 애벌레의 유전 정보를 알아내어 분석한 저 거대한 촉수 나무는, 뿌리를 내려 땅에 있는 모든 양분을 흡수하고 죽은 땅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 양분은 당연히 마왕군에게 보급된다. 어차피 마왕군에게 다른 생물 따위 알 바 아니었으니까.

이 모든 과정이 전쟁을 시작함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아직 반항하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도 오래 버티지는 못합니다.]

변이체와 현지인들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루시는 대륙 전체에 퍼진 자신의 병사들을 움직여 안 그래도 변이체들의 폭주로 위기에 몰린 현지인들을 한쪽으로 몰아넣었다.

몰아넣은 방향은 대륙 서쪽 끝자락. 빠르게 세력을 늘리며 한때나마 이 세상을 양분했던 집단, 빛의 교단의 본진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자신들의 땅과 세력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고 분투하겠지만,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루시는 강해진다.

소규모의 싸움에서야 그들도 빠르고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지만 그 규모가 수백만, 수천만의 주민들이 포함된 대륙급 전쟁이 된다면 하나로 의견을 모으기 힘든 그들과 중앙 통제인 루시의 차이는 커지니까.

[그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면, 기존의 계획대로 전대륙 둥지화 작업을 시작합니다. 예상되는 양분 생산량은 라비즈다의 115%. 총 생산량은 두 배 이상 증가합니다.]

루시는 말 그대로 이 땅 전체를 자신의 둥지로 뒤덮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산한 병력으로 자신의 진정한 적과 싸울 것이다.

폭주하며 날뛰던 날것 그 자체인 변이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짜. 나는 그 광경을 화면 너머로 바라보며 작게 탄식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음? 그게 뭐지?”

[에너지 밸런스가 붕괴하고 있습니다. 수급처가 사라진 탓입니다]

그런데 루시가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며 내게 보고한 것이 그때였다.

“밸런스?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일반적인 양분은 지금 차고 넘치게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강심은 다릅니다. 양질의 강심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마력을 흡수할 대상이 필요하나 아군이 승리를 거두면 거둘수록 그 대상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

루시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루시의 마왕군이 다양한 형태와 역할을 가진 일반종 병사들을 생산하는데 드는 것은 양분.

그 양분은 지금처럼 둥지를 만들어 빛과 지열을 흡수하거나 생명체를 소화시켜 얻는 것들이다.

다만 그런 식으로는 상위종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강심을 만들 수 없다. 강심에는 순수한 마력이 들어가니까.

지금까지 루시가 그 마력을 얻어 온 방법은 다름 아닌 마력을 가진 대상에게서 흡수하고 추출하는 것이었다.

“그, 그러고 보니 마계의 마족들은 어차피 다들 마력을 일부나마 가지고 있었지.”

마계를 점령할 때는 별로 문제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의 주민들이었던 마족들이 일반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것은 그들이 그것을 쓸 줄 알든 모르든 마력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시는 마계의 마족들과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며 그들에게서 지속적으로 마력을 추출해 왔다. 그래서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마계와의 전쟁이 끝나고 거의 대다수의 마족들을 멸절시킨 루시에게는, 이제 마력을 얻을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물론 대륙에도 마력을 가지고 그것을 수련한 이들이 차고 넘치긴 하지만, 그것 역시 한정된 자원임은 틀림없습니다. 아군이 더 넓은 세상에서 더 강한 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이것 역시 보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이 잘 안 잡히는걸.”

나는 잠시 머리를 굴려 봤지만 한 번에 떠오르는 방법은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루시에게 도움을 준 방법은 루시가 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대상을 전송시켜 주는 것.

하지만 강심의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가진 침략종에 대한 기억은 아직 가지지 못했다.

“조금 찾아봐야겠어. 내가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

조금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지연과 함께 이쪽 일에 종사하기 시작하며 나름 공부도 하고 그만큼 듣는 것도 많았다.

그런데도 내가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니 따로 조사해 볼 필요는 있었다. 던전과 게이트의 규모가 더 커지고 발달하는 만큼 그 신종 침략종들의 종류도 계속해서 늘어나는 중이었다.

[이번에도 이지연과 함께 움직이실 겁니까?]

“솔직히 잘 모르겠네. 최근 들어 더 중요한 인물이 되어 버려서 어지간하면 외부로 안 갈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혼자서 움직일 수밖에.”

다만 지금처럼 이지연을 방패막이 삼아 움직이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내가 계속해서 방패막이로 사용한 결과 그녀는 이미 큰 인물이 되어 버렸고, 그만큼 일거수일투족이 중요해졌다.

일종의 업보인 셈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그녀는 자신의 역할을 다 해 준 셈. 이제 나도 그녀의 뒤에서 숨지 않고 움직일 생각이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루시와 마왕군을 이곳으로 불러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은 차고 넘치니까.

* * *

“피난민들이 계속해서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미 거의 대부분의 세력들이 항복 의사를 표하며 어떻게든 받아 달라 하는 중입니다.”

“설마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릴 줄은…….”

루시가 전쟁에서 여유롭게 승리하고 둥지를 늘려 나가며 자신의 약점을 보완 하고 있을 때.

그 상대가 되어 버린 이들은 차마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특히 교단의 고위직들은 자신들의 주적인 줄 알았던 연합이 이런 식으로 붕괴하고, 말조차 통하지 않는 적들이 거악으로 급부상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놈들은 말 그대로 괴물입니다. 말이나마 통하던 놈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놈들에게는 오직 살육과 번식뿐이며, 이미 대륙의 절반 이상이 놈들의 둥지에 덮여 가고 있습니다.”

화려한 사제복을 입은 사제 한 명이 침통하단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들에게 마왕군은 연합보다 더 상성이 안 좋은 적이었다. 연합군은 그 거대한 덩치와는 별개로 조금만 흔들어도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휘청거렸으며 여차하면 설득시켜 아군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마왕군은 다르다. 마왕군에게는 오직 싸움과 죽음뿐이며 그 거대한 군체가 한 몸처럼 움직인다.

배신과 회유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개념이며 자비 또한 없다. 아무리 신분과 지위가 높다 한들 마왕군에게는 똑같은 유기체일 뿐이었다.

“대성녀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그분과도 상의해야 합니다.”

“그분은 지금 바쁘시오. 흑철충은 물론 아직 토벌되지 않은 변이체들까지 날뛰니.”

일부가 이벨리아를 찾았으나 그녀는 지금 자리에 없었다. 그녀는 혼자서 전장을 뒤집을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 * *

“저기가 놈들의 둥지입니다, 대성녀님. 지금 거의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교단의 고위직들이 한창 회의를 하면서 이벨리아를 찾던 그 시각, 그녀는 소수 병력과 함께 은밀히 이동하는 중이었다.

“성녀님?”

“망설일 이유가 없다.”

찬란한 백색 날개를 펼친 이벨리아는 곧바로 나섰다. 사실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보려는 의도가 더 강했다.

과연 대전쟁 이후 또 다시 대륙을 덮친 새로운 재앙인 루시의 마왕군에게 지금까지 착실하게 키워 온 자신의 힘이 얼마나 통할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그녀와 같이 싸웠던 영웅들도 절대 혼자서는 그녀에게 덤비지 않았다.

‘이놈들.’

하지만 마왕군은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대응을 시작했다. 비행종들이 날아들고 손에 든 무기에선 광선포가 뿜어졌다.

‘거대한 무언가.’

그 행동에 일말의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다. 이벨리아는 본능적으로, 지금 자신이 상대하는 적들이 단순한 생물체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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