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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73화 (173/200)

173화 균열 (3)

“전부 대기! 언, 언제 놈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던전 입구, 이곳을 지키던 방어 병력들은 물론 긴급하게 모여든 인원들이 무장의 방향을 던전으로 향하고 긴장한 상태로 대기하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 폭풍전야. 저 안으로 괴물 하나가 들어간 이후 적막만이 감돌고 있지만, 그 누구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약 3시간입니다.”

“으음, 역시 놈의 본거지는 던전이었나?”

다급한 연락을 받고 지원을 온 현지 군대의 지휘관은 방어하던 이들의 보고를 받고 침음했다. 적나라하게 카메라에 찍힌 검은 형체의 괴물. 그 정체와 목적에 대해 말이 많던 그 괴물이 여기 등장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 괴물이 또 다른 침략종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각성자다로 나뉘어 말다툼을 벌였지만 도통 그 목적을 알 수 없는 행동들 덕에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추측을 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이곳에 출몰해 대놓고 던전 안으로 쑥 들어갔으니 그들은 동맹국 사이에서 코드 x라 부르고 있는 이 괴물이 역시 던전에서 튀어나온 괴물이라 여겼다.

“어, 저길 보십시오!”

그때 군인들이 던전의 이변을 눈치 챘다. 괴물이 들어간 이후 별다른 반응이 없던 던전이 갑작스럽게 반응하기 시작했으니까.

“설마…….”

그들은 당황하여 무기를 들고 싸울 준비를 했다.

단순히 출입하느라 변화가 생긴 건 아니었다.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일렁이던 균열이 점차 사라지더니 그 일렁임이 사라진 것이다.

이것은 단 하나를 의미한다. 내부의 코어가 파괴되어 던전이 공략되었다고. 그렇기에 모두의 사고가 정지했다. 대체 멀쩡히 있던 던전을 누가 공략한단 말인가.

“나왔다! 위에!”

그때 긴장한 얼굴로 던전을 바라보던, 탐지계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쏴라!”

군대는 그 즉시 화력을 집중해 던전 입구에 미친 듯이 화력을 퍼부었다. 보이지 않는 적을 일단 타격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쓸데없는 짓으로 자원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비효율적이게도.]

“그들 입장에서는 최선이겠지.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휴가가 얼마 안 남았네.”

그러나 불그스름한 방어막을 몸에 두른 그 형체는 단숨에 포격을 뚫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타격은 거의 입지 않았다. 애초에 지금 이 세상에서 이름을 날리는 어지간한 각성자의 공격이 아니라면 그 방어막에 흠집을 내기도 힘들 테니.

“분석 결과는 어때. 효과가 있나?”

[현재 77% 분석 완료. 가능성은 89% 이상으로 보입니다.]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최대한 높이 오른 하늘을 빠르게 가로지르며, 그는 루시에게 본진으로 전송해 분해 및 분석을 진행하고 있는 데스위저드에 대해 물었다.

실제로 루시는 그 괴물의 시체를 분석하고,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기 직전이었다.

[양분을 이용한 강심의 생산,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품질과 효율은 물론 보완점이 필요합니다.]

“상위종을 양산할 수 있다는 뜻이지. 이건 꽤 대단한 건데.”

그들의 목적은 마계를 점령하고 연합을 붕괴시켜 대륙을 침식하는 과정에서 무너지게 된 일반 병력들과 고급 병력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찾는 것.

지금까지 몇 번이나 했던 것처럼 침략종의 데이터를 이용해 그 부족한 점을 채운다는 작전이 또 한 번 들어맞은 셈이었다.

“운이 좋은 건지 뭔지 모르겠네.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딱딱 나와 준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침략종과 아군은 분명 유사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으니, 서로의 문제와 장점을 공유합니다.]

그는 찾으면 나온다는 게 신기하다는 반응이었지만 루시의 반응은 묘했다. 침략종에 대해 나름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었지만 그 연구를 진행할 때마다 무언가 감지한 탓이다.

“비슷하다라. 하지만 네가 말했었잖아. 만류귀종, 만약 너와 그 근원이 비슷한 존재가 있다면 서로 진화하면서 결국 비슷한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고.”

[그렇습니다. 다만 그 닮음이 형태가 되어야 옳은 가정이지, 그 길마저 닮는다면 단순히 생각하기 힘듭니다.]

“그건 대체 무슨 소리지?”

[지금까지 수집한 침략종들의 데이터를 정렬하고 카테고리를 나누어 정리하게 될 경우, 그 형태와 방향성이 약 71%의 확률로 아군과 일치하게 됩니다.]

대륙을 가로질러 태평양 위로 진입한 시점. 루시는 의문을 갖는 그에게 자신이 분석한 결과를 이야기해 주었다.

방향과 길이란 곧 병사들이 타입과 기능, 형태.

루시가 효율을 고려하여 강한 육체 능력과 값싼 생산비를 균형 잡아 생산하는 일반종, 특수한 힘을 다루는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강심이라는 자원을 투자해 만드는 상위종, 거대한 체급으로 전략을 수행하는 초거대종 등등.

그것들 모두 루시가 지금까지의 경험과 전투를 바탕으로 자신이 직접 발달시키고 진화시켜 온 것들이었다.

심지어 그 비중에는 창현의 공로도 컸다. 그가 던져 주는 힌트를 바탕으로 병력을 설계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니까, 단순히 돌격병의 역할을 하는 병사의 형태나 생김새는 닮아도 된다. 하지만 그 돌격병이라는 역할 자체가 닮아서는 안 된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그는 차분히 생각한 끝에 루시의 대답을 이해했다. 그리고 눈을 찌푸렸다.

과연 루시의 말대로 해석한다면 어딘가 의심스런 구석이 있는 건 분명했다. 다른 건 다 떠나서 자신이 조언한 내용대로 루시가 설계한 것은 자연의 법칙을 벗어난 일종의 변종이었다. 그런데 그것조차 상대가 똑같이 가지고 있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지금 당장 뭔가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71%라는 확률이 높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리 높은 건 아니잖아.”

[맞습니다. 아직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사실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었다. 아직까지는.

다만 그 가능성이 조금 많이 신경 쓰이는 것이기는 했다.

‘만약 100%라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역시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만약 침략종이 루시의 마왕군과 그 본질이 100% 같다면 대체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

그들과 함께 등장한 시스템, 성좌들은?

* * *

“다른 생각이나 하자. 지금 생각해도 답 없는 주제 말고.”

[그렇다면 주제를 바꾸겠습니다. 이번에 분석한 데스위저드의 데이터, 지금 막 완벽히 분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루시는 그와의 통신에서 주제를 바꾸고 진행 중이던 상황에 대해 보고했다.

그 말대로, 둥지의 소화소에서 완전히 분해당한 적은 이제 그 모든 유전 데이터를 루시에게 토해 놓게 되었다.

[놈의 심장을 베이스로 하여 양분을 바탕으로 마력을 생산하는 강심을 만드는 기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루시는 둥지 한쪽에 나노들을 투입하여 단숨에 분열시켰다. 그 결과 형태를 갖춰 나가는 것은 거대한 하나의 기관.

광합성을 하는 거대한 버섯이나 지열을 이용해 양분을 생산하는 기관과 비슷한 그것은 데스위저드의 심장을 복제하여 극대화시킨 것이다. 양분을 이용해 결정으로 맺은 붉은 보석들을 툭툭 토해 내기 시작했다.

[저품질이긴 하지만, 강심을 활용한 병기 등을 만드는 데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루시는 그것을 평가했다. 만약 저품질인 이것을 이용해 병사를 만든다면 가장 약한 출력을 가진 외장형 강심 5개를 달고 있는 감마 타입보다 약할 것이다.

그러나 병기를 만드는 데는 충분한 출력을 낼 수 있었다.

광선포, 방어탑, 함선형 병사의 부포 등등.

개다가 대량으로 생산이 가능하니, 감당할 수 있다면 여러 개를 엮어 더 강한 출력을 내게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예상과는 달리 상위종은 양산할 수 없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하지?”

[충분합니다.]

루시는 상위종 양산은 효율 문제로 포기했지만, 마도 병기로 무장시키는 것은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마력 공격을 시도할 수 있는 병기로 무장한 수만, 수십만의 병력들.

지금 다 무너져 가는 대륙의 힘으로는 막아 낼 수 없다. 말 그대로 마음만 먹는다면 루시는 단번에 남은 생존자들을 전멸시키고 대륙 전체를 쓸어 담을 수 있다.

[그러나 공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한데 뭉쳐 저항할 수 있도록, 일단은 몰이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런데도 루시는 생존자들의 숨통을 끊지 않았다. 상당한 힘으로 자신을 압도한 이벨리아의 얼굴을 떠올린 루시는 병사들을 움직여 교단이 있는 대륙 서남부로 대피하고 있는 사람들을 몰이 사냥하듯 몰았다.

창현의 의견대로 루시는 그들을 자신을 위한 자극제로 쓸 생각이었다.

그들은 실낱같은 희망 하나만으로 저항할 것이고 루시는 그 저항을 먹고 데이터를 쌓아 나간다. 신종 병기가 있다면 그들에게 시험하고, 새로운 타입의 병사를 만들면 그들에게 파견해 실험할 것이다.

‘거참.’

창현은 그 모습을 보고 괜히 탄식했다. 루시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 당연히 마계와 함께 저 대륙마저 전부 먹어치우고자 했다.

그곳에 누가 살고 있든 루시에게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루시에게 인정 따위는 없었고 성장을 위해 먹이를 먹는 건 포식자의 당연한 권리였기 때문이다.

그런 루시의 선택을 설득하여 지금의 형태나마 만든 것이 그였다. 설령 루시와 적대하는 적이라지만 내심 마음 한구석에 남은 양심이 저곳 사람들을 완전히 몰살당하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 * *

“미치겠네. 왔다 갔다로만 휴가를 다 날렸잖아.”

늦은 밤. 그는 사뿐히 빌라 옥상에 내려앉았다. 곧 전신을 덮은 나노·오메가가 옷의 형태로 돌아오고 그는 자신의 집에 돌아왔다.

“혹시 미국 갔었어?”

“그래. 거기 볼일이 있어서. 역시 소식이 퍼졌나?”

그가 이지연의 전화를 받은 것이 그때였다. 이지연은 다소 놀란 목소리로 그의 행방을 물었다.

“코드x가 캐나다에 출몰해 던전 하나를 공략했다고 해서…… 그거 너잖아.”

“좋은 일 해 줬는데도 미친 듯이 공격하더군.”

“협회장님한테 들었어. 그쪽에서 긴급히 동맹국들에 연락을 돌린 모양이야. 그냥 듣고 놀라서.”

그는 그저 잘 먹고 갑니다 마인드로 집에 돌아왔을 뿐이지만 현지는 뒤집어진 지 오래였다. 특히 초창기부터 그를 추적해 왔던 이들은 더욱더.

“단신으로…… 중대형 던전 하나를 공략할 수 있을 정도야?”

“온전한 내 힘이 아니야. 남발할 수 없는 그런. 무슨 말인지 알지?”

이지연은 살짝 긴장한 듯 물었지만 그는 피식 웃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루시와 그 휘하 군단을 소환해 싸우는 형식은 시간 제한도 있었고 마구잡이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휴가 기간 동안 거기 갔다 왔으면 거의 못 쉬었겠네.”

“그렇지. 애초에 거기 갔다 오려고 휴가 쓴 건데.”

“어떡해? 우리 내일부터 다시 일해야 하는데.”

“응?”

그러자 이지연이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뜻밖의 소리에 창현은 당황해서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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