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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77화 (177/200)

177화 균열 (7)

“변종들의 상태는 어떻지? 여전히 가만히 대기하고만 있나?”

“그렇습니다. 소름끼칠 정도로 움직임이 없습니다. 다만 그런 점이 역시 감염체들의 변종답기도 하고…….”

“상황이 애매하게 되었어. 미쳐 날뛰던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그는 보고를 받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의 이유는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는 오염지의 상황 때문.

그들이 처음 찾아와 개척하기 전까지 오랜 세월 이 땅을 지배하고 있던 타락 세계수와 감염체들은,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소탕이 불가능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위험한 괴물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도 안전지대를 확보하고 지키는 선에서 만족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변이 생겼다. 그동안 아무런 변화도 없던 감염체들 사이에서 변종이 출현한 것이다.

그들은 새롭게 나타나 기존의 감염체들을 몰살하고 그 자리를 대체한 신종 괴물들을 감염체의 변종이라고 판단했다.

엄밀히 다른 부분들도 많았지만 근본적인 부분이 같아 보여서 그렇게 확정한 것이다.

실제로 루시의 마왕군은 감염체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으며 그 덕분에 그 끔찍한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도 기존의 감염체들처럼 그냥 이대로 고정될 확률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조용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만 놈들은 더 위험한 존재들이다. 관리소장 루카스의 말에 따르면 놈들은 분명 평범한 감염체들과 달라.”

그는 계속해서 마왕군을 경계했다. 마왕군이 단순히 감염체들을 몰살하고 그 자리를 대체하기만 했다면 이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마왕군은 감염체들과 엄연히 다른 존재였다. 태양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더 거칠고, 더 과격하게 그들을 향해 공격을 시도하기도 했으니까.

‘차라리 광산 개발에 차질이 생겼다면 본사에서 조치를 취해 줬을지도 모르는 건데.’

루카스와 같은, 도시와 주요 광산을 관리하는 관리소장인 그는 내심 마왕군의 공격이 딱 도시 하나를 반파하는 수준에서 끝난 것을 아쉬워했다.

루시가 적절한 타이밍에 공세를 끊어 버린 탓에 대대적인 반격이 불가능해진 탓이다.

본사를 설득해 제대로 된 군대를 파견하게 만들려면 더 큰 피해가 있어야 하지만, 고작해야 현지인인 다크엘프들이나, 말단 직원 여럿이 죽은 정도로는 본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소, 소장님! 지금 위성 감시에 무언가 잡혔습니다!!!”

“무, 뭐!?”

하지만 마치 그런 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 드디어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움직임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은 아니라는 것.

부하 직원의 보고에 서둘러 달려간 그는 홀로그램 화면에 펼쳐지는 고해상도의 위성 영상을 보고 경악했다.

‘대체 언제부터. 설마 처음부터 이런 순간을 노리고 힘을 비축하고 있던 것인가!’

화면에 보이는 것은 마침내 활동을 시작한 마왕군의 모습. 하늘에서 자신들을 감시하는 위성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는 듯 땅속에서 숨겨 온 수많은 군세가 일제히 일어나더니 그들을 향해 곧장 몰려오기 시작했다.

“방향이 이쪽입니다. 지난번에 공격했던 곳은 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미친.”

게다가 마왕군은 나름 방어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던 최전방 루카스의 도시로는 가지 않았다. 루시는 여기 전력이 비어 있지 않느냐며, 무수한 함선형 병력들의 방향을 방심하고 있던 이쪽을 향해 돌렸다.

* * *

“외부 세력인 카르투스와 그들과 협력하는 다크엘프들은 감염체들을 적당히 몰아넣고, 자신들이 원하는 광산을 중심으로 도시와 방어선을 발달시켜 왔습니다.”

그들이 위성을 이용해 루시의 움직임을 알아차렸을 때, 루시는 이미 자신의 군대와 함께 이동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복잡하게 꼬부라진 방어선 자체의 방어력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군이 공격했던 최전방의 도시로 지원을 보내기까지 했으니 그 이상으로 전력이 약화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디까지 할 셈이지? 전처럼 반파하는 수준에서 다시 퇴각할 건가?”

“완전히 무너뜨리고 점령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라온의 물음에 루시는 대놓고 웃었다. 이미 물러나서 힘을 비축하는 단계는 지났다. 마계를 완전히 점령하고 사명을 이루었다. 거기서 대륙까지 지배하여 나누어졌던 힘을 하나로 모았으니 이제 남은 건 정말로 루시가 가진 욕망을 실현하는 것뿐.

그 욕망은 바로 더 큰 성장과 진화다. 그리고 그것의 목표로 삼을 이들이 이미 존재한다.

루시가 가장 잘하는 것은 자신이 맨 앞에 나서서 선도하는 것이 아닌, 특정 대상을 기준으로 잡고 추격하여 따라잡는 것.

그 조건만 맞는다면 루시는 그 무엇보다 빠르게 상대를 따라잡고 역으로 잡아먹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이들마저 따라잡는다면?”

“분명 더 강한 이들이 나타날 겁니다.”

문제는 그렇게 대상을 따라잡고 자신이 최선두가 되었을 경우지만, 루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자신이 따라잡아야 할 이들이 계속 나타남을 알고 있었으니까.

마계가 그랬고, 감염체들이 그랬으며, 그들을 전부 먹어치운 지금은 우주 세력인 카르투스가 남았다.

지금 그들을 이기고 먹어치운다 해도 그들의 뒤에 자신이 따라잡아야 할 더 강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아무 걱정 없이, 아무 문제 없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하긴, 아직 이긴 것도 아니지.”

자리에서 일어난 루시의 눈앞에, 다른 광경들이 펼쳐졌다. 서둘러 도시 전체를 둘러치는 방어막을 활성화하고 있는 적들의 모습이.

조금 더 자세히 보면 그곳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절박하고 다급하게 움직이는지도 다 보였다.

그러나 루시는 망설이지 않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루시에게 전쟁이란 당연한 행위에 불과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장 수월하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그런 수단.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생물종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들과 경쟁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니까. 루시에게 살인이니 학살이니 하는 개념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쟁이라는 리스크 있는 행동을 통해 루시는 패배하고 그들이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가능성도 분명 존재했고, 루시는 그 리스크를 감수하고 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어서 움직여. 빨리!”

“대피소로 대피해라! 괴물들이 몰려온다!”

다만 그렇게 차갑고 냉철하게 생각할 수 없는 이들에게 루시의 행동은 그저 사악하고 무자비한 침략이었다.

* * *

“방어벽 출력은? 놈들은 에테르 방어막도 파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추, 출력 자체에는 문제없습니다.”

도시의 책임자이자 광산 관리소장 브란트. 그는 마왕군의 병력들이 도착하기 전, 도시 전체를 감싼 푸르스름한 방어막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그들이 가진 가장 강한 방어 수단이 바로 도시의 경계선에 박힌 탑들에서 시작되는 저 에테르 방어막이었다.

마력과 동일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이 방어막은 같은 유형의 공격이 아니라면 강한 저항력을 가질 수 있었다.

‘분명 괴물 놈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 이건 마치.’

본부 건물 최상층에서 병력들이 집결하고 있는 방어벽 너머를 바라본 브란트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까지도 그는 마왕군을 감염체의 변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그런 생각에도, 지금 몰려온 마왕군은 이질적이고 두려웠다.

루시가 기동성을 중시한 이번 작전에 동원한 병력은 함선형 병사들과 그 내부에 타고 있는 이들이 전부.

몸길이 수백 미터에 달하는 함선형 병사들은 분명 살아있는 거대한 괴물들이지만 브란트의 눈에는 그 이름답게 자신들이 이용하는 우주 함선과 비슷한 모양처럼 보였다.

“놈들이 포격을 시작합니다. 강력한 에너지 반응!”

“큭, 대체 저놈들은.”

곧 마왕군의 함선들이 체내에 품은 거대한 강심을 폭주시키며 뿜어내는 강력한 광선포가 방어벽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방어막은 그 즉시 울렁거리며 금방이라도 깨질 듯 파직거렸고, 내부에 있던 이들은 그 모습에 비명을 지르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버틸 수 있나!”

“도, 도시 동력을 모두 집중시키면 아직은 버틸 수 있습니다.”

그래도 방어막은 일단 버텨 냈다. 그들이 만든 방어 시스템은 세력의 모두가 사용하는 보편적인 시스템이지만, 루시가 직접 만들어 발전시켜 온 방어 시스템보다 더 효율적이고 강한면이 있었다.

[한 점 집중.]

그 모습을 보고 심기가 거슬린 루시는 곧바로 전략을 바꿨다. 비효율적인 포격을 계속하느니, 그 힘을 한점에 집중해 방어막에 찰나의 틈이라도 만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함선형 병사들은 진입하는 게 불가능한데.”

“상관없습니다. 소형 병력들만으로도 그들을 제압하는 게 가능하니까.”

라온의 말에 루시는 고개를 저었다. 본래 계획은 전방위적인 포격을 통한 일방적인 교전이지만 그것이 막힌다 해도 다른 방법이 있었다.

그저 효율이 조금 떨어지는 것뿐이다. 계산식을 바탕으로 그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루시는, 즉시 방어막의 한 점에 모든 포격을 집중시켰다.

이 방법은 다름 아닌, 방어막을 두른 자신에게 한 점 공격으로 방어막을 부수던 마계 영주들의 방법을 그대로 학습한 결과물이었다.

“이것으로 방어막은 뚫립니다.”

루시는 롱기누스를 들고 자신이 직접 밖으로 나갔다.

마왕군의 포격으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그 부위에, 자신이 마지막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

‘저 괴물은!’

그런 루시의 모습은 내부에서 버티던 이들에게도 적나라하게 보였다.

붉게 빛나는 쌍날 검을 들고 이곳을 겨누는 루시의 모습을 본 브란트의 눈이 커졌다. 검은 갑주에도 드러나는 미려한 여성의 곡선. 얼굴을 가린 가면 안에서 빛나는 다수의 붉은 안광들. 그러면서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까지.

브란트는 루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데도 본능적으로 그녀가 특수한 존재라는 걸 알아차렸다.

“으, 으아아악!”

“방어막 일부 소실!”

동시에 루시가 들고 겨눈 롱기누스가 강력한 파동을 뿜어내었다. 그러자 단숨에 깨지고 박살 나는 방어막의 틈새.

루시는 망설임 없이 그 구멍 사이로 자신의 몸을 던졌다. 아일랜드·알파가 품에 품고 온 수많은 마왕군도 마찬가지였다.

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향한 마왕군의 제대로 된 선전 포고였다.

“막아라, 더 들어오지 못하게 해!”

방어막의 틈새로 몸을 밀어 넣는 마왕군을 막기 위해 카르투스 직원들과 다크엘프들은 함께 화력을 집중해 최대한 저항했다.

실제로 마왕군의 일반종 병사들은 그들의 화기를 견디지 못하고 낙엽처럼 쓰러져 갔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진 않았다.

[전군, 돌격.]

루시를 비롯한 상위종들이 강심을 이용한 방어막을 펼쳐 그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루시는 지상에 착지한 병력들에게 명령해 그 짧은 시간 처음부터 다시 수정한 전투 계획을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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