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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78화 (178/200)

178화 균열 (8)

전혀 다른 곳에서 완전히 다른 적과 펼쳐지는 새로운 전쟁. 하지만 분명 그 전쟁을 수행하는 루시는 직전까지도, 아니, 지금도 다른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단순히 지켜보는 나조차도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런데도 루시에게 망설임이나 거부감 따위는 없다. 애초에 이 행위들은 루시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니까.

쉬지 않고 경쟁하고, 언제나 잡아먹는다. 그것을 멈추는 순간 도태되어 사라진다. 루시는 그것이 자신이 속한 자연의 당연한 법칙임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뿐이다.

나는 그것을 막는 게 불가능했다. 아무리 카르투스 사의 직원들이 나와 같은 인간종이라 한들 말 그대로 사는 우주가 다른 이들과 루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하면, 여기까지 온 이상 나는 루시를 고를 수밖에 없다.

“방어가 약할……거라고 했지. 정말 그래 보이긴 하는데.”

루시는 자신이 기존에 공격했던 도시가 방어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자 그냥 목표를 바꿔 버렸다. 그들이 방어선이라 부르는 경계선에 걸쳐 있는 도시는 한 두 개가 아니었고, 루시는 이미 이런 식으로 요새를 공격하는 전쟁에는 통달한 상태였다.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마력과 같은 유형의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그들이 가진 에테르 병기와 마력을 다룰 수 있는 다크엘프들. 그러나 그것들이 공백인 지금 그들은 아군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적들은 현지인인 다크엘프들과 외부에서 그들을 찾아 온 우주세력인 카르투스 사의 연합체.

그들은 그 기술력답게 나와 이지연을 통해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지구의 마도 병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에너지 병기를 가지고 있었고, 루시 역시 그것을 가장 경계했다.

다만 그 병기 일부를 다른 곳에 지원 보낸 상태니 지금은 루시의 공격에 제대로 된 방어조차 못하고 있는 상태다.

[다른 곳에서 예상치 못한 지원이 오기 전에 저 방어막만 뚫어 낸다면 아군의 승리입니다.]

루시는 포격으로 두들기고 있는 도시를 내게 보여 주었다.

도시를 둘러친 저 푸르스름한 에너지 방어막이 그들의 마지막 희망, 과연 마지막 희망답게 방어막은 루시의 맹공에도 나름 버티며 뚫리지 않고 있었다.

“분명 지금까지 상대해 온 마계 영주들이나, 교단 등 대륙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적들이야. 어떻게 할 거지?”

[다른 종류의 적이지만 지금까지 쌓아 온 데이터와의 교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보호대상 전체를 감싸는 방어막은 아군이 먼저 운용한 경험이 있는 바, 과거 마계 영주들이 아군의 그 방어막을 뚫기 위해 한 점 집중을 시도한 데이터를 근거로 반격하겠습니다.]

여기서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근본을 두고 있는 루시의 강점이 또 한 번 발휘된다.

용량에 한계가 있어 결국 과거의 일은 점점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기록 자체에도 한계가 있는 이들과는 달리 루시는 일종의 저장소인 자신의 뇌를 계속해서 증식시켜 가며 그 정보들을 말 그대로 ‘데이터’로 활용하는 것이다.

덕분에 지금까지 쌓아 온 그 무수한 경험들이 곧 온전한 전력이 될 수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어디선가 한 번 겪었던 그 파훼법을 단숨에 찾아내고 즉시 실행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에너지 집속.]

루시가 자신의 아바타는 물론 그 덩치에 맞는 출력을 뿜어내는 함선형 병사들에게 힘을 하나로 집중할 것을 지시했다. 그렇게 뿜어진 광선포들은 방어막의 한 점에 틀어박혔고, 전체가 일렁이기 시작한 방어막은 마침내 금이 가며 균열을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너무 작지 않아? 기껏해야 10m 수준인데.”

[두 번째 가설로 넘어가 근접 백병전으로 선회합니다.]

또한 루시는 한 번의 전투를 치룰 때마다 무수한 가능성을 상정하고 가설을 세운다. 자신의 계획이 막힌다면, 그 즉시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는 데 채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아군 병사들이 내부로 진격합니다. 적들의 저항이 거세지만, 계산결과 손실률은 5% 미만입니다.]

마침내 루시가 적들의 방어막을 뚫어 버렸다. 기존의 계획은 함선형 병사들의 포격으로 지상을 쓸어버리겠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혔다고 밀릴 건 없다.

애초에 루시가 더 잘하고, 더 많이 해 봤고, 더 선호하는 전쟁은 원거리 포격을 주고받는 것이 아닌 근접해서 백병전을 벌이는 것.

그동안 마계 영주 등을 상대하며 자연스럽게 익힌 것이지만, 이것은 지금의 적들과는 완전히 상극이었다.

‘끔찍한데. 확실히.’

도시 내부로 쏟아져 들어오는 이형의 괴물들. 심지어 그 괴물들에게는 조금의 자비도 망설임도 없다. 오직 사람을 죽이기 위한 전투병기들이다.

타입과 역할마다 다양한 모습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검은 갑주를 걸치고 있는, 루시의 개조를 거쳐 살육을 위한 무시무시한 외형을 가지고 있는 마왕군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도로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은 화면 너머로만 보고 있는 나도 움찔할 정도다.

그동안 이지연을 따라다니며 꽤 많은 침략종들과 그 전투 장면을 봤는데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적들의 방어선을 돌파합니다.]

그 최선두에 루시가 있었다. 얼굴까지 가리는 투구를 쓴 루시는, 한 손에 든 쌍날 검을 휘둘러 참격을 뿜어내며 병력을 이끌고 앞으로 돌진했다.

적들이 당황한 모습이 내 눈에도 보였다. 루시의 참격은 그들이 마련한 방어 초소를 단번에 날려버렸고, 정작 그들이 퍼붓는 총탄은 루시의 방어막을 뚫지 못했으니까.

[작전 진행률 45%.]

전장을 누비기 시작한 루시는 거침없이, 자비도 없이 그들을 베어 넘겼다. 다른 마왕군 역시 마찬가지다. 한 번 화망이 뚫리자 이어지는 것은 일방적인 학살뿐.

‘일종의 선전포고이니 당연한가.’

루시의 강한 확신답게 사실 이미 예정된 결과이긴 했다.

카르투스는 일개 회사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 라비즈다는 그 회사가 개척한 하나의 개척지일 뿐이다. 그런 와중에 그나마 있던 병력이나 장비도 다른 도시에 전달했으니 공격 받으면 밀릴 수밖에.

애초에 루시도 이번 승리에 무언가 대단한 의미를 두진 않았다. 애초에 당연히 거두어야 할 일종의 과정이라 생각할 것이다.

루시가 상정한 진정한 적은, 이 도시를 관장하는 카르투스 사 그 뒤에 있는 거대한 세력. 오늘의 전쟁은 그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선전포고이자 경고였다.

[작전 진행률 65%. 이미 그들의 방어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루시와 마왕군은 어느새 도시를 거의 다 점령해 갔다. 무너진 건물과 부서진 도로의 잔해에 남은 것은 참혹한 시체들.

그런 와중에 끝까지 루시를 가로막는 이들도 분명 있었다.

* * *

“그만둬라, 괴물!”

[강화 슈트를 입었지만 현지인인 다크엘프로 보입니다.]

루시는 자신을 가로막은 상대를 보고 흥미를 가졌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자신에게 도전해 온 도전자였으니까.

‘이것밖에 없다. 이것밖에 없으니까 할 수밖에.’

문답무용이라는 듯, 그는 이를 악물고 루시에게 덤벼들었다. 루시는 그 의지를 확인한 순간 다른 병사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고 자신이 직접 그를 상대했다.

불을 뿜어내는 각종 화기는 물론, 거대한 에테르 병기과 마왕군의 강심 병기로 쏘아 대는 광선포가 사방에서 펑펑 터져 나가는 마당에 한 자루의 창을 들고 덤벼든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루시에게 일격을 찔러 넣었다.

“무기를 다룰 줄 아나. 그럼 이건 어떻지?!”

루시가 롱기누스를 휘둘러 그것을 쳐 내니 그는 곧 현란한 창술로 다시 급소를 노린 공격을 시도했다. 마력이 가득 담긴 그 창은 분명 강력하다.

화력 자체는 화기에 비해 밀리지만 적어도 마력이라는 특수한 힘을 다루는 입장에서는 그의 창이 훨씬 치명적이다.

오랜 세월 이어지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다크엘프 특유의 무술.

“크윽?!”

문제는 그가 상대하는 적이 다양한 방식의 마도 전투에 익숙하다 못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괴물이라는 것. 심지어 그 데이터가 되어 준 이들은 한 세상에서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단숨에 파훼당하고 오히려 역공 당하니, 그 빈틈없는 실력에 경악한 그는 단숨에 몰아친 루시의 공격에 밀려나 비틀거렸다.

“죽어라. 괴물.”

본능적으로 자신의 패배를 직감한 그는 나름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어설픈 기교로 상대할 수 없으니 온 힘을 다한 일격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

이것이 실패하면 그는 죽는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감수했다. 자신의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루시를 막고자했다.

[변수 차단 완료.]

하지만 손에 든 쌍날 검을 휘두른 루시는 그가 내지른 그 최후의 일격은 물론 창과 그 몸까지 너무나 간단하게 반으로 갈라 버렸다.

모든 것을 걸어도 넘을 수 없는 격차. 누군가에겐 그 일격이 전부였겠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저 발버둥이었을 뿐.

그것을 보여준 루시는 반으로 갈라져 피를 뿌리는 시체를 짓밟고 다시 앞으로 전진했다.

[더 이상 유의미한 저항은 없어 보입니다.]

도시는 이미 무너졌다. 그나마 버티던 방어막까지 붕괴되고, 내부에 침투한 마왕군은 이미 주요 시설로 내달려 그곳을 하나하나 점령해 나갔다.

“어서 피해, 빨리!”

“비, 비키게! 내가 먼저 가야…….”

소장 브란트가 있는 관리 본부. 하늘을 날아 직접 이곳을 찾은 루시는 도망치기 위해 서둘러 헬기에 탑승하려는 이들을 발견했다. 브란트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진행률 100%. 도시는 완전히 함락되었습니다.]

루시는 롱기누스의 출력을 끌어올려 에너지를 폭사해, 그들을 옥상 째로 증발시켜 버렸다.

이제 더 이상 이 도시에 남은 것은 없다. 살아남은 사람은 가까스로 도망친 사람들뿐이었고, 저항하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패하여 죽었다.

* * *

“사령관님, 브란트가 파견되어 있던 도시가 놈들에게…….”

“빌어먹을 괴물 놈들이 감히!”

당연히 이 성대한 선전 포고는 그들의 수뇌부에 즉시 보고될 수밖에 없었다.

“그 드넓은 지역을 전부 차지한 놈들의 본거지를 날려 버리는 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함대 코스프레를 하며 그곳을 빠져나와 깝죽거리는 놈들의 병력은 궤멸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감염체들을 상대하는 규범이 그것 아니던가.”

“그렇습니다.”

개척지의 사령관은 변경의 광산 도시 하나가 감염체의 변종으로 추정되는 괴물들에게 당했다는 소리에 열을 내었다.

첫 번째 습격은 충돌이었을 뿐이라지만, 도시 하나가 완전히 작살난 두 번째는 완전히 달랐으니까.

“하지만 사령관님. 놈들의 전력이 정말로 함대급이라면 지금 저희가 가진 장비로는…….”

“덩치만 큰 괴물들이지, 아무렴 정말 함대급이겠나. 지금 당장 방위군을 출격시키게.”

이미 크게 분노한 사령관은 개척지 전부에서 가용 가능한 병력을 긁어모았다. 심지어 작업용으로 쓰이던 장비들까지 징발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긁어모은 병력을 곧바로 루시의 마왕군이 있는 도시에 파병했다. 급하게 대응하긴 했지만 분명, 밀리는 전력은 아니란 확신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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