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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80화 (180/200)

180화 균열 (10)

“저게 감염체들이라고? 저게?”

장갑차에 탑승해 빠르게 지상을 가로지르는 이들은 무장한 다크엘프들. 화기는 물론, 자신들이 연마한 마나를 뿜어낼 수 있는 검이나 창 등 전통적인 무기들도 챙겨 든 그들은 정면을 보고 경악했다.

루시가 출격시킨 함선종들이 하늘을 덮고, 지상에서는 오직 정면만 보고 달려오는 마왕군이 단단하고 육중한 몸을 가진 돌격병들을 앞세워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기겁한 이유는 단지 마왕군의 숫자나 험악한 생김새 때문이 아니었다. 순수한 광기와도 맞먹는 그 차가움에서 느껴지는 본능적인 공포심은 감정을 가진 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것이었으니까.

‘기분이 묘하군.’

그 병력과 함께 돌진하는 이들 중에는 라온도 있었다.

그의 눈에 다크엘프 병력들이 보였다. 인간들과 협력하여 무장한 엘프들의 원수들이. 그들은 라온의 조상인 엘프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감염체들과의 경쟁에서는 패했다.

이후 외부에서 찾아온 인간들과 협력하여 다시금 생존경쟁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대상이 마왕군이었다.

‘과연 그들이 어디까지 버틸까.’

라온도 한때 마왕군과 경쟁했던 엘프 출신이다. 자신은 물론, 자신의 동족들까지 합심하여 마왕군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패배했다. 마왕군은 전쟁이나 전투를 넘어 말 그대로 생존 경쟁 그 자체에 특화된 기괴하고 기이한 생명체였으니까.

무슨 방법을 사용하든 마왕군은 그것에 적응하고 기어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이 사기적인 전술을 막으려면 강하고 압도적인 힘으로 단번에 제압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루시와 마왕군이 상대한 그 어떤 적도 그것을 해내지 못했다.

다크엘프들을 주축으로 하는 개척지의 방위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분명 루시가 상대해 온 여러 적들과 다른 유형을 가지고 있는 적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힘의 총량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대로 분쇄해 버리십시오.]

루시는 지상군을 맡은 라온에게 그대로 밀어 버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제 3자가 얼핏 보면 쉽게 와 닿지 않는 명령일 수도 있었다. 아무리 마왕군의 돌격병들이 코끼리나 코뿔소 수준으로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다지만, 개척지 방위군이 이끌고 온 차량과 전차는 말 그대로 쇳덩어리니까.

“마도 포격이다!”

“대, 대응해. 우리도 쏴!”

당연히 마왕군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돌격함과 동시에 양산하기 시작한 양산형 강심으로 만든 마도 병기를 든 마왕군이 포격을 시도하자, 먼저 화력을 쏟아 낼 자리를 잡기 위해 달려들던 방위군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직후, 전신에 갑주를 두른 라온은 강심을 최대한 작동시키며 상대의 화망에 쓰러지는 돌격병들의 시체를 짓밟고 그대로 그들의 품 안으로 뛰어들 듯 돌격해 들어갔다.

‘내가 할 일은, 이들이 제대로 포격하지 못하도록 헤집어 놓는 것.’

아직 루시에게는 전투기에 당황했던 것처럼, 방위군과의 충분한 전투 데이터가 쌓이지 않았지만 라온 같은 특수종들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루시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더욱이 이전부터 뛰어난 전사였던 라온은 적들의 진영 한가운데 파고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곧장 찾아내었다.

그것은 바로 한 번 한 번의 포격으로 일반종 수십을 날려 버리는 적들의 강력한 이동 포대를 제거하는 것.

“아, 안 돼! 저 괴물이 포대로 향한다!”

당연히 방위군은 라온의 움직임을 보고 기겁했다. 지금 포대의 화력 지원이 망가지면 그대로 적들이 밀고 들어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라온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근접한 모든 이들을 장비째로 토막 내는 괴물을 대체 누가 막아선단 말인가.

“이런 식으로 실전을 치르게 될 줄이야.”

“거봐라. 반드시 쓸 날이 온다고 했잖아.”

‘다크엘프 전사들인가.’

그러나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 파죽지세로 돌격하던 라온의 앞을, 푸른 마력이 흩날리는 검을 빼든 몇몇 이들이 막아선 것이다.

심지어 척 보니 그들의 나이는 굉장히 젊어 보였다. 말 그대로 젊은 혈기로 무장한 용맹한 전사들이다.

‘대단하군.’

라온은 그들의 패기를 높게 샀다. 동시에 자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들에겐 안 된 일이지만, 사실 라온은 이런 근접전이 훨씬 더 익숙했다.

“이, 이럴 수가. 정령!?”

단숨에 일대의 대지가 진동했다.

다크엘프들 중 어둠 정령과 연이 있는 이들은 단번에 그 원인을 알아차렸다. 다만 시간은 늦어 버렸다.

땅의 정령 티타니아가 라온의 마력을 에너지 삼아 부리는 지진이 일어나자 지면을 부수고 튀어나온 거대한 나무뿌리들이 사방을 덮쳐든 것이다.

* * *

[교전 승률 76% 이상. 역시 그들에게 근접전의 힘은 기대하기 힘든 듯합니다.]

라온의 전술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자신을 필두로 한 상위종들이 화망을 뚫고 진영을 헤집기 시작하자 포격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벌어진 틈을 본대가 파고들기 시작하니 방위군은 큰 손실을 내며 밀려났다.

파고들어 근접전을 유도하는 상위종들을 잡기엔 다크엘프 전사들의 실력이 그리 좋지 않았다. 너무 오랜 세월 인간들과 협력하다 보니 그쪽 부분으로 수련이 부족한 탓이다.

루시는 근접전 난이도는 차라리 마계가 몇 배는 어렵다고 판단할 정도였다.

“부, 부사령관님!”

“큭, 이렇게 된 이상 하늘에서라도 이겨야 한다.”

그리고 지상에서의 전황은 하늘에서의 전쟁에도 영향을 끼쳤다.

소모전을 하면 어느 쪽이 손해인지 이미 결과는 명백한 이때. 밀려 버리기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 한다는 상황에 몰리게 된 지휘관은 모자를 집어 던지고 역으로 공격 명령을 내렸다.

[부족한 공중 함대전에 대한 데이터를 쌓을 좋은 기회입니다.]

루시는 그들의 결정을 반겼다.

비록 상대의 제대로 된 전력은 1척에 불과하고 그 크기도 수송 목적인 알파의 호위용으로 양산한 아일랜드·베타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함대전을 한다는 생각에 들뜬 것이다.

아마 루시의 목적이 이루어진다면 거대한 함선들이 허공에서 벌이는 전투는 앞으로 전쟁의 주류가 된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루시는 반드시 데이터가 필요했다.

[그러니 더 많은, 더 자세한 데이터를.]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 루시는 우선 십여 마리가 넘어가는 아일랜드·베타 중 단 한 마리만을 선정해 앞으로 보냈다. 마치 1 대 1을 신청하는 듯이.

과거 생포한 침략종을 상대로 전투 데이터를 뽑아먹었듯이, 대놓고 실험하겠다는 의도였다.

“설마 이 괴물 놈들이 우리를 얕보는 것인가.”

그 의도를 방위군이 모를 리가 없다. 특히 방위군 지휘관은 반질거리는 정수리가 붉어질 정도로 분노하여 콧수염을 부들부들 떨었다.

“부숴 버려라. 이렇게 무시당해야 되겠나!”

당연히 그는 공격을 명령했다. 그들이 에테르라 부르는, 강력한 에너지가 이미 응축되어 폭사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이 가진 전함은 기껏해야 개조된 반쪽짜리.]

루시는 그 모습을 주의 깊게 살폈다.

사실 방위군이 가진 함선은 제대로 된 전함도 아니다.

그동안 수집한 증언 등을 바탕으로 판단하면 미래에 루시가 상대해야 할 진짜 전함들에 결코 못 미치는 그런 물건이다.

그러니 지금 저것을 상대로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을 보여 줘야 루시의 계획이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

“하! 그렇지!”

[……적의 주포 공격에 아군의 방어막 완파.]

하지만 쏘아진 광선포가 아일랜드·베타의 방어막을 단번에 부수고 두터운 가죽과 갑각에 타격을 입혔다.

강력한 열로 그 내부까지 영구적인 손상을 입은, 회복하지 않으면 운용이 불가능한 수준이 될 정도였다. 이 정도로 강력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한 루시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주포는 진짜배기 전함에서 떼어 온 물건이다. 출력만 맞으면 된다고.”

“노, 놈들이 다시 움직입니다. 이번에는 다수입니다!”

지휘관은 단숨에 완파된 아일랜드·베타의 모습에 히죽 웃었지만, 밑에 있던 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루시가 곧바로 다음 실험을 준비한 탓이다.

이번에는 두 기의 함선종들이 빠르게 마무리 짓고 있는 그들의 양 옆으로 다가와 그들을 향해 쩍 갈라진 육벽 사이로 튀어나온 생체 포신을 겨누었다.

[공격력은 예상 이상. 그렇다면 방어력은.]

“제길, 방어막 최대로!”

루시의 두 번째 실험은 바로 자신의 공격이 적 함선을 향해 얼마나 강한 공격을 취할 수 있는가.

뿜어지는 포격에 이를 악문 그는 어서 함선의 방어막을 더 올리라고 부하들을 닦달했다.

[적들의 방어력 역시 예상치 이상이지만 아군 병사를 일격살 한 공격력만큼은 아닙니다.]

“잘 이해가 안 가네. 네 아바타를 비롯해, 작은 몸집을 가지고 훨씬 적은 출력으로 힘을 뿜어내는 이들이 더 위력적인 기분이야.”

루시의 실험은 당연히 그에게도 전해졌고, 창현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그 전쟁을 지켜보았다.

그는 루시가 치루는 전쟁과 실험을 보고 의문을 하나 제기했다. 함선종 등이 마력을 응축해서 뿜어내는 광선포가 그 출력 대비 위력이 약해 보여서 였다.

[위력이 약하다기보다는 관통력이 약합니다. 그 이유는 섬세한 조절이 불가능하기 때문으로, 적들의 저항력을 일부나마 뚫어 내는 관통력 자체는 데이터가 충분한 소형기들이 더 쉽습니다.]

루시는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강한 출력을 대가로 한 점에 가하는 위력은 줄었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광선의 형태로 쏘는 것을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는 건 어때. 적어도 적들의 방어를 뚫어 내는 데 이용할 것 정도는.”

그는 무의식적으로 라온이 그랬던 것처럼 루시는 보지 못한 것을 봐 보려 시도했다. 문제를 뒤틀 수 있는 변수를.

이건 일종의 버릇이기도 했다. 그동안 루시와 함께하면서 루시가 덜 성장했을 때, 대신 생각하고 해답을 준 것이 몸에 습관으로 남은 것이었다.

“전술 자체를 바꿔 보는 거지. 넌 저들과 근본이 달라, 루시. 그들의 방식을 배우고 모방하는 건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에 매몰된다면 네 강점 중 하나를 날려 먹는 거야.”

[제 강점이라면.]

“원본을 개조하고 뜯어고쳐 너만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는 이번에도 루시에게 힌트를 주었다. 그저 두루뭉술한 가능성일 뿐이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상대의 방법을 따라하지만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라는 그의 조언을 오히려 소형기의 출력 효율이 더 좋다는 사실과 결합시킨 루시는 빠르게 그것을 계산했다.

[새로운 가능성을 도출했습니다. 남은 것은 그것을 검증하는 겁니다.]

“해 봐.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니잖아. 넌 할 수 있어.”

피식 웃은 그의 말이 곧 트리거였다.

루시는 이렇게 습득하게 된 변수로, 몇 번의 실험을 거치고 마왕군을 격추하면서 기고만장해진 방위군을 흔들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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