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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81화 (181/200)

181화 숙적 (1)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겠는데.’

지금껏 상대해 왔던 적들과는 확연히 다른 상대방의 특성 탓에 조금 삐걱거리긴 하지만, 루시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적응하고 있었다.

그래도 루시와 함께 고민하다 보니 예전 생각도 난다. 그때도 내가 말해 준 방법들이 루시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으니까.

[실험은 순조롭습니다.]

루시는 내 조언에 따라 행동했다. 나름 충분한 전투 데이터를 얻었다 생각한 순간 내 말대로 새로운 전술을 시험해 본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출력의 소형 개체를 이용한 게릴라. 분명 상식을 부수는 행동일 것이다.

[감마 타입 정도의 출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루시는 함선종의 엄호 사격과 함께 가장 먼저 출격시킨 하피·감마를 이용해 적들의 방어막을 뚫고 그들을 교란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아무리 효율적인 관통력을 길렀다 해도, 거대한 덩치를 가진 함선종의 고출력 광선포로도 뚫리지 않는 적들의 방어막을 감마 타입이 뚫는 것은 불가능했다.

[델타 타입 투입.]

물론 루시에겐 다른 방법도 있으니, 곧 외부에만 강심을 달고 있는 감마 타입보다 더 강한 출력을 가진 상위종을 출격시켰다.

감마 타입보다 더 많은 강심과 효율 좋은 강심을 가지고 있는 하피·델타는 갈고 닦은 자신의 마력을 끌어올려 스스로를 하나의 창으로 만들었다.

[뚫고 내부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하피·델타는 순간적으로 적의 방어막을 부수고 내부에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당연히 그들은 빠르게 방어막을 복구했지만 이미 늦었다.

내부에 침투한 하피·델타는 적들의 대응 사격을 피하거나 무시하며 체급을 뛰어넘는 강력한 출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함선에 직접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눈에 날카로운 발톱이 돋은 발에서 뿜어진 참격에 부서지고 폭발을 일으키는 적선의 모습이 보였다.

“어때. 효율적인가?”

[상대가 제대로 된 전함이 아님을 고려, 상위종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자원과 함선종 포격에 쓰이는 자원 등을 비교해 봤을 때 이 전술을 주력으로 사용할 만큼 효율적이지도, 배제할 만큼 비효율적이지도 않습니다.]

루시는 이 방법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수단임을 인정했다.

이렇게 실험할 것도 다 실험했겠다, 이제 남은 것은 마무리를 짓는 것뿐. 전 병력을 출격시킨 루시는 여전히 발목을 붙잡히고 있는 적선을 향해 함선종들을 다수 투입했다.

“아예 내부까지 뚫고 들어가 봐.”

나는 루시에게 하피·델타를 움직여 아예 함선 내부에 침투하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잘 만들어진 기계 장치는 강인하지만, 그것을 조종하는 이들은 결국 연약한 인간.

그들이 약점임은 명확하니까. 그건 같은 인간인 내가 잘 안다.

[침투 성공. 확실히 그들의 움직임이 더 느려졌습니다. 하나로 이어진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연결이 끊겼습니다.]

그 작전은 그대로 먹혀들어 안 그래도 삐걱거리던 적들의 움직임이 더 둔해졌다.

훨씬 더 많은 루시의 병력에 단신으로 덤벼든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나 허를 찔린 것일까. 카르투스 개척지의 방위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무너져 내렸다.

습득한 정보에 의하면 아마 있는 병력 없는 병력 박박 긁어서 모아온 이들일 테지만 아직 진정한 생산력과 물량을 뿜어내지도 않은 루시의 선봉대에 무너진 것이다.

포격으로 사실상 대부분의 화력을 담당했어야 하는 지상군은 이미 라온을 필두로 한 마왕군의 공격에 밀려 버렸고, 그들이 자랑하던 함선도 끝내 사방에서 쏟아지는 포격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니 나는 이번 전투 역시 루시의 승리를 확신했다.

‘어차피 이것도 계획의 일부지만.’

당연히 루시의 목적은 고작 이런 방위군 수준이 아니었다. 방위군을 궤멸시키고 개척지에 심대한 타격을 주면 필연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들’이 바로 진짜 목적이었다.

그들을 상대로 승리하고, 그들을 모방하여 성장해 우주로 진출한다. 그리고 그곳에 넘쳐 나는 가능성들을 포식하여 자신을 더욱 더 진화시킨다.

아직까진 가정일 뿐이지만 그때가 오면 루시조차 여유를 부리진 못한다.

그것이 루시가 바라는 이번 전쟁의 결과였다.

추락하는 적의 함선과, 그것을 밑에서 지켜보는 루시. 그리고 사방에서 몰려가는 무수한 마왕군들. 나는 한 폭의 그림 같은 그것을 보고 작게 탄식했다.

어찌 보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마왕 아닌가. 천상천하 유아독존, 루시가 추구하는 파괴적인 혼돈은 고작해야 일개 행성 따위에 머물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이 우주 전체로 뻗어 나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일 다 봤어?”

“어느 정도.”

그때 이지연이 내게 다가왔다. 루시를 지켜보느라 중간에 갑자기 일이 있다고 사라진 나를 찾으러 온 것이다.

* * *

“이렇게 보니까…… 고작 1년 만에 엄청나게 늘었어. 각성자들.”

이지연이 주변을 둘러보며 감회가 새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분명, 마치 하나의 대학교 같은 이곳은 한창 학기가 시작할 때처럼 무수한 사람들로 바글거리고 있었다.

실제로 규모가 대형 대학 못지않다. 실제로 그 숫자가 계속 늘어나기도 하고, 전국에서 의무적으로 모여든 사람들이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 모두 각성자들, 새롭게 시행되는 법령에 의해 모든 각성자들은 의무적으로 이곳에서 전투 교육을 받으며 그 기간 동안 동원되는 전력으로 활용된다.

“일은 편해?”

“싸우는 것에 비하면 훨씬. 하지만 몸이 근질거리는 건 어쩔 수 없어.”

이지연이 피식 웃었다. 그녀가 협회장으로부터 지시받은 내용은 그간의 경험을 이용해 이곳에서 각성자들의 실전 교육을 맡아 달라는 것.

하지만 그녀는 착실히 그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어딘가 허전하다고 말했다. 각성한 초기부터 지금까지 쭉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에서 구르던 사람이라 그런가, 오히려 평화로운 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게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라 그런 것일지도.’

물론 이지연이 가진 영웅적인 성향도 알고 있었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여파인 것인지 사람들을 지키는 것에 집착하는 그녀는, 싸울 수 있는 이상 계속해서 현장에 눈길을 주었다.

“굳이 먼저 나설 필요는 없어. 큰일 터지면 협회장님도 너부터 부를 테니까.”

“그런 방식이라면 차라리 내가 현장에 가지 않는 게 좋겠네. 내가 불려 가면 큰일이 터진다는 거니까.”

당연히 그녀가 계속해서 이렇게 후방에만 있을 리 없다. 나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능력을 올려 가며 이제 슬슬 그녀에 대한 의존도가 약해진 나는 떨어진 의존도 이상으로 상승한 걱정으로 그녀가 현장에 나서지 않길 원했지만, 막상 진짜 위기 상황이 닥쳐오면 그녀를 싸고도는 협회장도 그녀를 부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건 근본적인 문제였다. 이지연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기도 했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대적자, 숙적의 존재가 명확한 지금 그 누구도 그것에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니까.

게이트와 던전을 통해 침략을 시도하는, 사람들끼리의 분쟁은 귀여운 수준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성 없고 자비 없는 괴물들이 건재한 이상 과거와 같은 평화를 누릴 수는 없었다.

‘루시가 있다면 모르지.’

결국 이 문제를 진심으로 타파하고 싶다면 그 유일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루시가 성장하는 것이라 확신했다.

자신의 사명을 이루고 마계를 평정하며, 대륙까지 정복하고 진정한 마왕이 되어 이제는 감히 그 규모를 예측하기도 힘든 우주 세력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루시가 지금보다도 더욱 성장하여 우리를 도와준다면.

그때가 가서야 우리가 해방될 수 있을지도.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가 최근에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는 말을 안 했네. 그, ‘이세계’ 이야기.”

이지연이 뜬금없이 그 말을 꺼낸 게 그때였다.

이세계라는 말에 순간 흠칫했다. 그녀가 말하는 그 이세계라는 곳이 어딘지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 그게 무슨 소리지? 설마 너보고 오래?”

“그건 아니야. 그곳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 봐.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말했고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한 명 갔어. 너도 알지? 서지원.”

루시가 내 의견에 따라 고의로 멸망시키지 않고 대륙 구석에 몰아넣은 생존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들과 마왕군 사이에 낀 변이체들과 사투를 벌이며 버티고 있다고 했다.

핵무기를 포함해 지금까지 투자한 값을 돌려받아야 하고 그곳과의 협력으로 얻는 게 많았던 이들은 그곳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원을 투자했다.

이지연이 말해 주기를, 그곳에 가서 배워 오는 게 분명 있다고 하니 고위 각성자들은 뭔가 끌리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 * *

[페이즈 2: 대륙 정벌(15%)].

“…….”

창현이 휴대폰으로 루시의 선전을 바라보는 그때. 그와는 대륙도 다른 이곳에서도 누군가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휴대폰에 떠올라 있는 목표의 달성률이 처참하다. 한때 50, 60%를 바라보기도 했던 달성률은 어느새 15%로 쪼그라든 상황.

그녀 본인도 직감하고 있었다. 이렇게 쪼그라든 진행률이 100%를 찍고 임무에 성공할 가능성은 이제 없다는 것을.

평범한 모바일 게임으로 처음 접했고 이제는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걸린 중대한 일이 된 이 게임에서 그녀는 끝내 패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게임과는 달리 포기할 수는 없는 게임이었다. 자신이 포기하는 순간 말 그대로 모두가 죽으니까.

마리사는 자신을 여신이라 믿고 따르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이 게임을 들고 있어야 했다.

“정말 반등할 방법이 없습니까? 뭔가 특별한 기능이라던가, 더 열리지 않았습니까?”

국장 넬슨은 그녀에게 방법이 없냐고 물었었다. 그녀가 가진 권능은 분명 저쪽 세상에서는 기적에 가까웠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게임도 공짜로 보상을 주는 경우는 없다. 반드시 무언가 업적을 이루어야지만 주는 것이 보상이다.

‘어디서 꼬여 버린 걸까.’

그녀에게도 직감이라는 게 있다. 갑작스럽게 급변한 대륙의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지금까지 계속 그곳을 지켜본 그녀도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분명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범주 내에서 돌아가던 게임이 뒤틀린 것은 마계에서 생긴 이변이 돌풍이 된 이후.

마계에서 탈출한 바알이 반쯤 미친 상태로 대륙의 균형을 붕괴시키더니 대체 어디서 이런 힘을 모아 온 것인지 모를 괴물들이 그녀가 점령해야 했던 세상을 역으로 점령해 버렸다.

그 파죽지세의 기세에는 지금의 그녀와 교단 세력이 잃어버린 파괴력이 있었다. 한때 마왕에 맞서며 전 대륙을 하나로 묶은 그녀가 가지던 파괴력이었다.

결코, 게임의 ‘적’따위에겐 있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어?”

[특별 보상 지급: 비정상적인 난이도 감지].

그러던 그녀의 눈에 화면 속에 떠오른 문구가 보였다. 지금까지 그토록 기다리던 문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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