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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83화 (183/200)

183화 숙적 (3)

“방위군은 무너졌다. 이번에 동원한 것이 그들의 전력이니, 이제 더 이상 저항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겠지?”

“그렇습니다. 물론 후퇴한 병력이나, 각 도시에 남은 방어 시설들은 있겠지만 그것들이 전부입니다. 우주에서 새로운 병력이 오지 않는 이상.”

방위군과의 정면 승부에서 승리한 루시는 굳이 피해를 수습할 필요도 없었다. 둥지에서 생산한 무수한 병력을 사방으로 파견하여 대륙 전체를 전쟁으로 끌고 들어오면 되니까.

루시가 의도한 대로, 만약 그들이 제대로 된 지원 병력을 보내지 않는 이상 이 세상은 머지않아 마왕군의 손에 모두 떨어질 것이다.

“일이 꽤 잘 풀렸네?”

그는 루시의 보고를 받고 피식 웃었다.

중간 과정이 어쨌든 루시는 이번에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게 되었으니까. 이대로 간다면 그 계획대로 루시는 자신이 염원하던, 진정한 강적들과 다시 한번 총력전을 벌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위기에 처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루시는 그 위기를 자신의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

그리고 진화하여 한 단계 도약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남았습니다.”

“음? 어디가? 전쟁에서는 깔끔하게 승리했잖아.”

“이곳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루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서는 화면을 돌려 주었다. 루시가 돌려 준 화면에 보이는 것은 직전까지 비추던 라비즈다가 아니었다.

이미 마왕군이 대다수 장악하고 둥지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다른 곳.

루시가 굳이 무리하지 않고 고의로 몰살하지 않았던 생존자들이 방법을 찾아 계속 싸워 주길 원한 그 바람대로, 필사의 저항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제 계산대로라면 아직 그들은 변이체들과의 싸움이나, 내부의 혼란을 잠재울 힘도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제 계산을 벗어난 행동을 취했으니 분명 무언가 변수가 발생한 것입니다]

지금 마왕군의 둥지 하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들을 보며 화면 속에서 울리는 루시의 목소리에는 흥미가 가득했다.

자신의 계산대로라면 저들의 저런 행동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으니까. 말 그대로 자살 행동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런 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 루시는 그것을 알아보고자 했다.

“어떻게 할 건데?”

[주변 병력 체계를 변경하여 집중 타격할 수 있지만, 일단은 수비 병력만으로 대항해 보겠습니다.]

그들이 대체 무엇을 가져왔는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루시는 병력들 출격시켰다.

* * *

“저기 보입니다. 저것이 마왕군의 진지입니다.”

“저게 어딜 봐서 진지라는 거지. 그냥, 그냥 괴물 둥지잖아.”

생존자들과 마왕군 사이에 낀, 득실거리는 변이체들을 뚫고 여기까지 도달한 그들은 소수의 특공대. 그중에는 리암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목에 걸고 있던 쌍안경으로, 저 멀리 펼쳐진 검은 물결을 보고 탄식했다.

한때 인간의 도시였던 곳은 모두 파괴되었고,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전부가 점액과 검은 버섯 등으로 뒤덮여 버린 지 오래였다.

“말 좀 해 봐. 마왕군과는 먼 옛날부터 싸워 왔다며.”

“그, 그것이.”

리암은 헛웃음을 흘리며 함께 온 성기사단장에게 눈길을 돌렸다.

정작 성기사단장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그가 아는 상식 속의 그 어떤 마족도 지금의 마왕군과는 관계가 없었으니까. 사실 마왕군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마계의 마족들과 마수들을 베이스로 삼은 병력들이지만, 이미 수많은 개조와 개량을 거친 그들은 원전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침략종의 둥지와 엇비슷하군.’

오히려 리암이 더 익숙했다. 대형 이상의 던전에서 몇 번이나 봤었던, 침략종들의 둥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생물체들로 가득 차 있던 그 둥지가 차라리 마왕군의 둥지와 비슷해 보였다.

물론 현재 마왕군의 둥지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검은 버섯 등이 침략종의 둥지에서 그 표본을 얻어 복제한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 괴물이 어떤 놈들이든 어차피 중요한 건 아닙니다. 우리는 저놈들을 죽이러 온 것이니까.”

헛기침을 한 성기사단장이 검을 뽑아 들었다. 리암과 함께 온 소수의 특공대 모두가, 함께 무기를 들어 올렸다.

그 말대로 그들은 이곳에 싸우기 위해 왔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마왕군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전공을 올려 마왕군이 절대 대항하지 못할 공포의 적이 아님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성녀님이 도와주실 겁니다. 그분의 도움이 내려오면, 그 이후 돌진하면 됩니다.”

단장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거나, 몇몇 마왕군 비행종들이 가로지르고 있는 높은 잿빛 하늘에 지금 이벨리아가 홀로 떠 있었다.

‘눈치챘나.’

곧 하늘에서 황금빛이 번쩍이니, 마왕군 비행종들이 날개를 펼치고 그곳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 * *

“…….”

먹구름이 가득한 높은 하늘, 날개를 펼친 이벨리아가 홀로 그곳에 떠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달려드는 마왕군 비행종들.

그녀는 자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찬란하게 터져 나오는 강렬한 황금빛이, 그대로 거대한 칼날이 되어 날아가 단숨에 비행종들의 몸을 찢고 베어 버렸다.

수십의 적을 단번에 죽이는 강력한 힘.

그러나 그녀는 거기서 힘을 더 끌어올렸다. 애초에 혼자서 이곳에 올라온 이유는 이것을 위해서였으니까.

‘더 오지 않는 건가. 대체 어째서지? 그만큼 얕보는 것인가.’

마왕군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이 일대에만 수십만 이상의 병력이 있는 걸 알고 있는데 마왕군은 오직 약간의 수비 병력만 동원해 그들을 막아 보려 할 뿐이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벨리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성유물·광휘].

그녀는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게임 시스템을 통해 마리사가 자신의 캐릭터인 이벨리아에게 투자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치나 스킬이 전부가 아니었다.

강력한 힘을 내재하고 있는 아이템 역시 그중 하나.

연합군과 싸울 때 이 힘을 개방할 때만을 노리고 있었다. 단지 그때가 오기 전 마왕군이 모든 것을 쓸어버린 것이 문제일 뿐.

그러니 이제는 그 힘을 마왕군을 향해 쓰려는 생각이었다.

“우리를 무시하지 마.”

피식 웃은 그녀가 손에 든 검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힘에 공명하여 거대한 섬광을 만들어 내는 그것은, 하늘 전체를 도화지 삼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시작되었군. 모두 준비!”

그것을 신호로 지상에서 대기하던 이들도 뛰어들 준비를 했다. 잔뜩 긴장한 얼굴들이, 그녀가 시전하는 저 기술이 이 일대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것임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보였다.

[거대한 에너지가…….]

루시 역시 그것을 보고 살짝 당황했다. 성유물의 존재를 몰랐던 루시가 보기에 이벨리아는 지금 한계를 뛰어넘은 힘을 폭사하고 있었으니까.

마치 루시가 부족한 화력을 결전 병기들로 채워 넣은 것과 같은 원리였다.

“큭.”

곧 지상에 있던 마왕군을 향해, 하늘에서 거대한 섬광이 폭격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져 있던 리암이 그 충격파에 휘청일 정도.

[방어막 최대 출력.]

루시는 이벨리아를 향해 포격을 시도하는 한편 구축해 둔 방어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이것은 루시답게 자신의 적들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도시 전역을 둘러쳤던 거대한 에너지 시스템을 그대로 모방한 것.

그것에 비하면 크기가 좀 작긴 하지만, 루시 본인도 한 점에 화력을 집중하고 나서야 이것을 뚫을 수 있었다.

[방어막이 해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벨리아가 뿜어내는 신성력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힘으로 방어막을 밀어 뚫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섞여들어 중화시켜 버린 것.

덕분에 루시가 펼친 에너지 방어막은 녹아내리듯 구멍이 뚫려가기 시작하고 결국 이벨리아의 포격에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보십시오. 성녀님의 공격에 놈들이 당하고 있습니다.”

그 틈을 노려 대기하던 이들이 내부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루시가 보기에 그들은 자살 돌격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압도적인 화력을 가지고 모조리 쓸어버리지 않는 이상 자신의 둥지는 없어지지 않으니까.

그런데 지금 달려드는 이들은 고작해야 몇 명의 인간에 불과하다. 이벨리아 같이 규격 외의 화력을 가진 것도 아닌.

즉, 그들은 고작 둥지 하나를 없애기 위해 이렇게 목숨을 걸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들의 목적 자체는 자신에게 크든 작든 타격을 입히는 것이라는 걸 모르고 있던 루시는, 일단 타격을 입은 대로 그들에 맞서 싸우도록 지시했다.

* * *

“성녀님은 당분간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뿐입니다!”

“나도 알아. 충분해.”

이벨리아가 기적에 가까운 틈을 만들어 준 그 때에 리암이 선두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검을 빼 들고 움켜쥐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그의 몸에 강력한 힘을 뿌리는 중이었다.

그의 목적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스스로 강해지는 것.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힘을 준 여신은 그에게 임무를 주었다.

적들을 베어 죽이라는 임무였다.

‘쉽지.’

무언가를 죽이는 것은 그에겐 가장 쉬운 일이었다. 하물며 그것이 살아있는 생물인지도 의심스러운 괴물들이라면.

“여기 대장 놈은 없나?”

리암은 덤벼드는 마왕군을 단숨에 베어 넘기며 둥지 내부로 침투했다. 그들에 비하면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마왕군의 포격은 둥지 내부에서는 쏠 수 없으니, 결국 전투는 근접 백병전으로 흘러갔다.

마치 마왕군이 카르투스의 방위군을 상대로 시도했던 것과 같은 전술을 그대로 시전한 것이다.

[적을 제거하기 위한 상위종 출격.]

루시는 자신이 써먹었던 이 전술의 파훼법을 알고 있었다. 바로 더 강력한 개체를 이용해 근접전에서 승리하는 것.

“역시.”

리암은 자신의 눈앞에 등장한 적을 보고 피식 웃었다.

몸 곳곳에 박힌 강심을 빛내고 있는 특별한 개체. 상위종 트롤·델타가 마력이 타오르는 거대한 철퇴를 휘두르며 육중한 중갑을 걸친 몸으로 그에게 덤벼들었다.

‘전이었다면 모를까.’

리암은 검을 들고 단숨에 적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검을 쳐올려, 참격을 뿜어 단칼에 적의 방어를 뚫고 그 몸을 베어 내는 데 성공했다.

개조와 개량을 멈추지 않는 루시의 병사들 역시 계속해서 그 효율과 내구력 등을 상승시키고 있지만, 이번만큼은 더 큰 도움을 받은 리암의 성장이 그것을 따라잡은 것이다.

“리암 님이 적을 죽였다!”

“어서 폭탄을 설치해라. 시간이 없다!”

그것이 곧 틈이 되었다.

그들은 몰려드는 마왕군 수비 병력을 상대하면서도 내부에 가져온 폭탄들을 서둘러 심어 두기 시작했다.

그들도 자기들이 하나하나 힘을 써서 이 거대한 둥지를 날려 버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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