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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89화 (189/200)

189화 숙적 (9)

“사령관님, 폭격은 더 이상 효과가 없습니다. 가져 온 핵폭탄을 사용한다면 일부 지역에 타격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네 생각은 어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뭐지?”

“저들은 생물체 군집입니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찍어 누르는 게 불가능하다면 분석과 연구를 실시하여 생물적, 화학적 약점을 찾아 그것을 공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모두가 마왕군이 보여 주는 즉각적인 방어 능력에 말을 잃어버린 그때.

홀로 생각과 보고를 계속해서 이어 가던 세나는 멍하니 질문한 에드문트에게 답을 해 주었다. 세나의 판단으로 현재 그들이 마왕군의 둥지에 유의미한 타격을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네트워크를 통한 경험의 공유로 상당한 데이터를 보유한 군용 AI 역시 지금 당장 뾰족한 방법은 찾아내지 못했고 조금 더 정보를 모아서 마왕군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생화학 공격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만을 조언할 뿐이었다.

“고도를 내려서 주포로 공격하는 것은? 분명 놈들에게 지휘 개체가 있다고 했지. 그놈을 공격한다면 효과를 보지 않을까?”

“하지만 사령관님, 그렇게 되면 아직 정보가 없는 적들에게 공격의 여지를 주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에드문트 입장에서는 기껏 지원을 받아놓고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성과를 만들어 내야 했으니까.

반면 세나는 그의 말을 듣고 위험하다며 경고했다. 실제로 루시가 아직 적극적인 저항을 펼치지 않고 대기하고 있는 것은, 그들을 가장 효율적인 타격이 가능한 높이까지 끌어들이기 위함.

그것을 근거로 세나는 마왕군이 지금 그들이 떠 있는 이 높은 곳까지는 오지 못한다고 판단한 상태다.

당연히 AI인 세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계산했고, 그것이 바로 리스크는 없이 일방적인 이득만을 취할 수 있는 고고도 폭격이었다.

“그래봤자 함대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사령관님, 내려가서 포격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어차피 이 정도 위험은 다 감수하기 위해 온 것 아닙니까.”

“클로제 함장, 자신 있나?”

그런 와중에 답답하니 그냥 가서 싸우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생겼다.

에드문트는 화면 속에서 답답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 함장의 얼굴을 보고 피식 웃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지만 상부에 보고해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폭격이 통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적들은 에테르 에너지를 전략적으로 다루는 이레귤러입니다. 정보가 부족하여…….”

“너는 좀 빠져라, AI. 세상일은 계산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그는 세나의 반박을 찍어 눌렀다. 어쩌면 이것이 그들과 마왕군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서로 효율적인 계산과 분석을 내리는 두뇌가 있지만, 그 계산의 결정권자는 서로 달랐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게다가 그들은 결국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었다. 자신들에게 지원해 주는 이들에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주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결과를 내야만 하는 처지였다.

“자신 있다니 어디 직접 나서 보게, 클로제.”

에드문트는 함대를 나누었다. 고도를 내려 지상을 직접 포격할 이들과, 그들을 호위할 이들로.

당연하게도 멍청하게 모든 병력을 함께 움직이는 짓은 하지 않았다.

* * *

[역시 적들이 고도를 내리고 있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에테르 광선 포격을 위해 사정 거리를 맞추는 작업입니다]

“광선포가 폭탄 투하보다 사거리가 짧다니.”

[생긴 형태가 광선포와 비슷할 뿐, 실제로 빛을 응집하여 쏘는 것은 아니기에 에테르나 마력을 이용한 사격은 효율적인 사거리가 따로 존재합니다.]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루시의 눈에도 적들의 일부 함대가 지상과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적들에게는 일개 변방 개척지의 괴물들을 토벌하는 일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루시 본인에게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굉장히 중요하고 기대하던 전쟁.

미궁에서 나와 처음으로 마족과의 전쟁을 시도했을 때처럼, 마계를 벗어나 처음으로 대륙에 모습을 드러내고, 처음으로 다른 세상으로 진출해 라비즈다의 감염체들과 싸웠을 때처럼.

이 전쟁을 통해 루시는 자신이 진화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 벌이는, 지금까지 벌여 온 모든 일이 다 이 순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일이었다.

창현이 지켜보는 가운데 루시는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미리 준비하고 있던 것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상대가 가장 위력적인 공격을 가하기 위해 고도를 내리듯, 루시 역시 자신의 사거리 안에 그들을 넣어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함선을 상대로 해 본 전투 데이터는 있지만, 제대로 된 전함과 함대전을 치러 보는 것은 처음. 막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목표 지점까지 약 1km.]

“저런 기술이 있다면 우리도 좀 수월하게 싸울 수 있을 텐데.”

다가오는 함선들을 바라보던 그가 괜히 피식 웃었다. 사투를 벌이고 있는 지구가 저런 함선 등을 운용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었다면 훨씬 사정이 좋았을 테니까.

‘그래도 다른 도움이 있다면.’

물론 실없는 상상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일이 잘 풀리기만 한다면 저 우주 함대보다 더 강력한 이들을 데려올 수 있을 테니까.

[적들이 목표 지점에 도달. 포문을 열고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습니다.]

“마음껏 싸워 봐. 우리가 그동안 준비해 온 모든 결과물을 시험하는 데 저 정도면 충분한 상대로 보이네.”

그러는 사이 이미 카르투스의 함대는 조금 더 낮은 하늘로 내려와 본격적인 공격 준비를 시작했다.

동시에 창현은 루시에게 마음껏 싸워 보라 말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다른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에게는 루시의 승리가 곧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가 되었고, 루시 역시 자신의 승리가 곧 자신의 존재 의의와 직결되었으니.

[대기 병력 가동.]

루시는 그 포격을 맞아 줌과 동시에 그들을 잡아먹기 위해 그동안 모습을 숨기고 있던 전 병력을 움직였다.

루시는 이런 본격적인 함대전이 처음. 그것은 즉, 효율적인 계산에 필요한 데이터가 부족하여 최대한 넉넉하게 기준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아니, 이런 미친…….”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자신들의 포격으로 대폭발이 일어나며 화염 폭풍에 휩싸이는 마왕군의 둥지를 만족스럽게 지켜보던 함장 클로제는, 거대한 에너지 반응과 함께 제대로 활동을 시작한 그것을 보고 경악했다.

“저, 정면에 적! 우측에도, 좌측에도……!”

“너무 많습니다, 함장님!”

“노, 놈들이 지상에서 에테르 포격을 시작했습니다. 함선 방어막 소실 중.”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다급한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기겁한 클로제는 허겁지겁 달려가 외부를 살폈다.

‘말도 안 돼.’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서서히 져가는 황혼의 태양빛 아래, 별다른 움직임 없던 기괴하기 짝이 없던 둥지들에서 무수한 괴물들이 땅을 뚫고 나오더니 일제히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추진체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뿜으며 단숨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것들은, 거대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살아있는 생물이 이렇게 거대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몸이었다.

그러나 울룩불룩 부풀어서는 꿈틀거리는 피부와 스멀거리는 거대한 촉수들은 그것들이 명백히,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임을 알려 주는 증거였다.

“포위당했습니다, 함장님!”

빼곡하게 하늘을 채운 마왕군 함선체들은 클로제의 함선을 포함, 포격을 위해 고도를 내렸던 함선들을 단숨에 포위해 버렸다.

어디를 봐도 끔찍하게 꿈틀거리는 검은 괴물들뿐이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압도당해 버린 이들의 사고가 순간 정지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은 찰나에도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루시 같은 존재를 상대할 때는 치명적이다.

“으, 으아악!!”

사방에서 뿜어지는 포격. 신나게 지상을 포격할 때와는 달리, 그들은 자신들이 포격을 당하자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

함선들의 방어막은 빠른 속도로 소모되어 깨져 나갔고, 마왕군 함선체들은 별다른 방해조차 없이 자유롭게 그들을 공격했다.

“반격해. 반격하고 길을 뚫어라. 놈들의 화력이 그리 강하지는 않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클로제가 반격 명령을 내렸다. 과연 체내에 가진 동력으로 비행과 생명 활동, 포격까지 모두 수행해야 하는 함선체들의 순수 화력은 전함에 비하면 그리 강하지는 않았다.

[적들의 방어막이 유의미한 수준까지 깎였습니다. 돌격함선체, 돌격.]

루시도 당연히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것은 마왕군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한 것. 아무리 극복하려 애써도 순수한 전함을 신체의 스펙으로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방법 자체를 바꾸었다. 루시가 포로들을 통해 습득한 함대전에 대한 전술은 기본이 서로의 화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

하지만 화력도 지구력도 밀리는 마왕군이 굳이 그들과 화력전을 해 줄 이유가 없다. 그 대신 마왕군이 자신 있는 것은 결국 근접전.

함선체 역시 마왕군의 일부이고 병사다. 루시가 가진 모든 근접전 데이터를 적용 가능하다는 소리기도 했다.

“놈들이 달려듭니다!”

“설마 몸으로 부딪히려고, 이 미친.”

전면부에 유독 방어력을 투자한 마왕군 함선체들이 일제히 전함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 주둥이를 들이박아 마침내 그들의 방어막을 부수고, 기겁한 그들의 함선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촉수를 뻗어 단단히 몸을 고정하기까지.

“크, 이게 대체…… 어?”

외벽을 부수고 함선체의 주둥이가 틀어박힌 내부. 바닥을 구른 승무원들은 콜록거리며 자신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경악했다.

[내부 침투 시작.]

“아아악!”

전함 외부를 뚫어 버린 함선체의 몸이 쩍 갈라지더니, 그 내부에 품고 있던 마왕군 일부를 함선 내부에 풀어 넣은 것이다.

승무원들이 다급히 무기를 들고 사격을 가해 봤지만 내부에 침투한 마왕군들이 어떤 이들이던가.

마족, 마수를 베이스로 만들어져 루시가 쌓아 온 무수한 데이터로 개조와 개량을 거쳐 온 이 합성 괴물들은 마력을 이용해 별별 방법으로 다 싸우던 초인들과의 전투에 이골이 난 이들이다.

아무리 강한 위력을 가진 총탄이라 해도 결국 총탄일 뿐.

함선의 승무원들은 단숨에 파고드는 마왕군의 칼날과 이빨에 전혀 저항하지 못하고 쓰러져갔다.

* * *

“내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적들이 침투하여 내부 승무원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 세나, 모든 강화슈트와 무인기들을 출격시킬 테니 네가 무인기들을 움직여라.”

당연히 이 참혹한 참극은 위에서 그들을 엄호하려 애쓰는 본대도 목격하게 되었다.

이를 악문 에드문트는 아군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나머지 함선들도 밑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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