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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92화 (192/200)

192화 끝없는 진화 (2)

이것은 더 이상 우주 함대와 마왕군의 싸움이 아니다. 초거대 하이브마인드 루시와, 루브란 군용 인공지능 세나의 싸움이다.

[대화를 나눠 보고 싶어졌습니다.]

루시는 세나를 인정하고 그 정체에 궁금증을 가졌다. 인공지능일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직접 대화를 나눠 보고 대체 어떤 존재인지 알아보려는 마음이 커진 것이다.

적어도 과거의 자신과 같은, 되다 만 인공지능은 절대 아닐 테니.

“가능한가? 적들은 계속해서 움직임이 좋아지는, 강철로 된 병사들을 움직여 아군을 막아 내고 있다. 배의 화력은 애초부터 저들이 우위. 이대로 시간이 끌려 내부 침투한 병력들이 제 역할을 해 주지 못하면 우리가 열세다.”

“그동안 쌓은 데이터는 헛으로 쌓은 게 아닙니다.”

“설마?”

루시의 말에 피식거리던 라온은, 자신의 뒤에서 나타난 루시를 보고 탄식했다.

“균형이 맞아간다면 다시 한 번 균형추를 부수면 그만입니다.”

루시는 자신의 아바타는 물론 라온까지 두 종류의 특수종을 동원할 계획이었다.

현재 적들은 마왕군 상위종도 가까스로 막아 내는 중. 아무리 세나가 마왕군의 움직임에 적응하고 그것을 카피한다 해도 한계는 있는 법.

근본적인 출력에서 밀린다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루시는 이미 수많은 적들과 전투를 치루며 새긴 지 오래였다.

“목표인 워프엔진을 보유한 적의 기함은 진형의 가운데에 자리한 가장 큰 함선. 우리는 적들의 방어막을 뚫고 기함으로 침입하여 저 함선 자체를 얻어 내야 합니다.”

“좋다. 땅에서 싸우는 게 아니란 점은 좀 걸리지만 한번 해 보지.”

루시의 지시에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니 동시에 마왕군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특수종인 루시와 라온을 필두로 적의 방어를 뚫어 버리는 것. 그 방어란 당연히 세나가 펼치고 있는 필사의 저항이었다.

“역시 관측한 것인지.”

그렇게 루시가 일부 병력과 함께 수많은 파편과 시체가 떠다니는 우주 공간을 가로지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집중적인 견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급이 다른 강심의 힘을 감지한 세나가 함포를 이용해 요격을 시도한 것이다.

[롱기누스·출력 전개.]

루시는 그 타이밍에, 그들에게는 아직 아무런 데이터도 없는 자신의 병기를 꺼내 들었다. 거대한 에너지를 응축해서 만든 마왕군의 결전 병기.

그 쌍날 검에서 뿜어지는 출력은 소형기는 절대 낼 수 없는, 물리 법칙을 무시한 것이니 당연히 처음 당해보는 이들은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시간은 주지 않을 것입니다.]

첫 번째 함선에 도달한 루시는 함포 사격을 상쇄한 롱기누스를 들어, 다시 한번 마력을 담아 휘둘렀다.

자기 몸에 비하면 운동장만 한 크기를 가진 함선의 방어막을 종잇장처럼 찢어 버리고 그 외벽마저 파괴하는 강력한 참격. 어떻게든 저항해 보려던 이들은 그 일격에 그대로 휘말려, 차가운 우주 공간으로 토막 난 몸을 흩뿌렸다.

* * *

“또다시 예상을 벗어나는 존재가 등장했습니다. 에테르를 지니고 그것을 활용한 극한의 전투법을 사용하는, 상위종과는 급이 다른 존재입니다.”

“설마 놈이 놈들의 우두머리인가!”

“아직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세나를 비롯한 카르투스 함대 인원들도 루시와 라온의 존재를 확인했다. 단신으로 함선을 부숴 버릴 수 있는 화력을 가진 미친 존재.

겉모습은 마치 가면과 갑주를 입은 가녀린 여인 같지만, 아무도 그 외모에는 신경을 집중하지 못했다.

특히 루시가 든 롱기누스는 지역 단위 생명체를 전멸시킨 대가로 탄생한, 당연한 법칙을 거스르는 있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움직임을 카피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저렇게 작고 날랜 존재가 저런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면, 막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15분 이내에, 저 괴물은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이곳까지 도달할 것입니다.”

“무슨 방법 없나? 뭐든!”

에드문트는 결국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세나에게 답을 구했다. 그만큼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적이 함포를 상쇄할 수 있다면 차라리 적이 거치게 되는 함선 동력원을 자폭시키면 됩니다. 그러면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그게 무슨.”

당연히 세나는 답을 내어놓았다. 세나는 찰나의 순간 무수한 가능성을 계산할 능력이 있으니까. 아마 세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방법을 내어놓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나온 가장 좋은 답이, 말 그대로 미친 작전이라서 문제였다.

“적이 기함의 제 1 호위함인 로튼함까지 다다르면 더 이상 답이 없습니다, 사령관님. 제가 모든 시스템을 쥐고 있으니, 함선을 자폭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용병들이라지만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사령관님, 저는 오직 아군의 승리를 위해 가장 효율 높은 방법만을 추천드립니다.”

끝내 패닉에 빠진 에드문트의 눈이 흔들려도 그 눈을 보는 세나의 말은 흔들리지 않았다.

법령에 따라 인간의 감정을 학습하지 못하게 만든 AI에게 인간의 상식을 들이미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달은 그는 이를 악물었다.

세나에게는 결국 사람의 목숨 또한 하나의 데이터이고 숫자일 뿐이었다.

“해라. 방법은 그것뿐이다.”

“자폭 작전 실행. 함선 내 동력원 강제 폭주.”

결국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이미 권한들을 틀어쥔 세나가 다 할 수 있으니까.

“거기까지다, 괴물!”

그 일에 지금 함선 내부에서 치열히 싸우고 있는 이들의 의사는 고려되지 않았다. 대를 위한 희생, 거악을 잡기 위한 제물. 그뿐이었다.

* * *

“가디언 등장.”

세나가 망설임 없이 작전을 실행하는 사이. 루시는 방어선을 돌파하며, 한 단계씩 목표에 다가서고 있었다.

그러던 루시를 가로막은 존재가 나타났다. 세나가 조종하는 기계들도 아니고, 화기를 들고 저항하는 승무원들도 아니었다.

화기나 슈트는 물론 자신의 마력을 가지고 그것을 이용해 싸우는 이들. 그들이 가디언이라 부르는 존재였다.

‘혹시!’

‘단장!’

루시의 파괴적인 무력에 두려움을 품었던 이들은 그의 등장에 희망을 품었다. 혹시라도 저 초인이 압도적인 ‘악마’를 상대로 자신들을 구원할 영웅이 되어줄지도 모르니까.

[고작 이런 힘으로.]

그러나 그들의 그런 희망은 단 일격에 박살났다. 롱기누스를 휘두른 루시의 참격에, 힘을 끌어 올려 보던 그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몸이 반 토막으로 갈라진 것이다.

자신의 수련만으로 땅과 하늘을 울리는 영웅들과의 싸움도 숱하게 치러 본 루시의 입장에서, 용병단에 속한 가디언들의 수준은 마계 영주는커녕 변변찮은 적 하나 베어 죽인 수준에 불과했다.

[이게 전부? 이게 모든 가능성을 계산한 결과?]

루시는 인간들은 물론 세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취하는 모든 저항은 자신의 발목조차 붙잡지 못하고 있으니 더 과격하고 거친 방법이 필요하다.

만약 그것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루시는 굳이 세나를 만날 필요조차 없다고 판단했다. 수준이 너무 낮으니까.

[아. 역시나.]

하지만 세나는 기어코 루시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었다. 뜨겁게 끓어오르는 거대한 에너지. 함선의 중심부에 있는 동력원이 폭주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려는 징조였다.

“어, 어째서!”

“어서 탈출해라! 함선이 폭발한다!”

당연히 함선에 탑승해 있던 이들은 하나 같이 기겁하여 혼비백산 흩어졌다.

[아바타 생존 가능성 45%.]

문제는 루시도 탈출 가능하니 시간을 줄 리가 없다는 것. 내부에 남아 있던 이들을 과감하게 희생시키기로 결정한 세나는 탈출정으로 탈출할 틈조차 주지 않고 마침내 함선 하나를 그대로 터트렸다.

“괜찮은 거지? 고작 아바타 하나 잡겠다고 자폭하다니.”

[이것은 그들의 최선입니다. 아바타 하나라지만 이런 가능성을 찾아 결단을 내렸다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모습을 화면 너머로 지켜보던 창현은 폭발에 제대로 휘말린 루시의 아바타를 보고 걱정했지만, 거대한 화염 속에서 최대한 힘을 모아 방어막을 펼친 루시는 끝내 방어막이 부서지고 신체 일부가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웃었다.

[대화해 볼 이유가 더 늘었습니다.]

세나는 루시의 시험을 통과한 셈이다. 아바타는 얼마 활동하지 못할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지만, 루시는 끝끝내 살아남아 그 눈으로 이제 거의 가까워진 기함을 노려보았다.

이 강인한 집착의 대상이 되어 버린 세나 역시 카메라들은 물론 홀로그램의 눈으로도, 저 멀리 떨어진 함선의 잔해 사이에서 이곳을 보는 루시를 알아차렸다.

“사령관님, 다음 계획을 실행해야 합니다. 아직 적들은 강성합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두 존재의 물고 물리는 치열하고 처절한 수 싸움은 계속된다.

“뭘 하려고. 놈은 살았지만, 그래도 보아 하니 죽어 가고 있다. 큰 희생을 대가로 성과를 낸 거야.”

“놈인지 년인지 모를 저 존재가 진정한 지휘개 체였다면 군단의 움직임도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군단의 통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저 괴물은 결과적으로 다른 괴물들 같은 일개 단말에 불과합니다.”

“하……. 여러모로 충격을 많이 받는군.”

세나는 강하기 짝이 없던 루시의 아바타가, 군단 전체로 보면 별거 없을 일개 아바타임을 꿰뚫어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곧장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제시했고 에드문트는 이제 무슨 말이든 따라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슨 방법을 쓰려고.”

“적들은 보여 주는 기괴한 모습과는 달리, 유기물로 이루어진 생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유한 나노머신들을 복제하여, 체내에 침투시켜 생명 활동을 교란시키겠습니다.”

화력전, 물량전, 근접전 전부 다 시도해 본 세나가 꺼내 든 카드는 이번에는 미시 세계에서 벌어지는 세포 단위 전쟁이다.

에드문트가 듣고 경탄할 아이디어였다. 나노머신을 살상 용도로 사용하는 행위는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해 설령 적을 상대로도 엄격히 금지되어있으니까. 이는 마왕군이 세나의 데이터에 등록되지 않은 신종이기 때문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연산력의 한계로 함대 운용이 힘들어집니다. 정말 최후의 방법입니다, 사령관님.”

“이제 와서 왜 망설여. 해. 해 버려. 대가가 큰 만큼 그만큼 효과가 좋겠지. 아무리 미친 괴물들이라지만, 이걸 어떻게 막을 테지?”

충격적인 발상의 방법이었지만 그는 격하게 동조하며 세나에게 작전을 지시했다.

루시가 이미 타락 세계수의 감염체들과 싸우며 세포 단위 전쟁에 대한 숱한 데이터를 쌓아 놨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확신이었다.

* * *

[개체들의 체내에 움직이는 이물질이 대량 침입.]

당연하다는 듯 루시는 세나가 작전을 실행한 즉시 그것을 감지하고 씩 웃었다.

전쟁을 지속할수록 자신이 그동안 쌓아 온 경험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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