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끝없는 진화 (10)
“어, 그러니까 정말 아무 기억도 안 나신다는 것이죠? 지난 며칠 동안 어디에서 있었는지.”
“며칠이나 지났는지도 몰랐는걸요.”
“이, 일단 알겠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담당을 맡은 의사는 당황한 얼굴로 일단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사자가 기억이 안 난다는데 어쩌겠는가. 머리를 열어서 기억을 볼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덕분에 이지연은 사건 이후 실종 된지 24일 만에, 다시 한국으로 복귀했다.
당연히 사회적으로 큰 술렁임이 있었다. 다만 기쁨의 술렁임이었다. 사람들 모두가 적과의 사투를 벌이다 실종되었던 영웅의 복귀를 축하하고 기뻐했기 때문이다.
“그래. 기억이 다 무슨 소용이냐. 네가 이렇게 멀쩡히 돌아온 게 중요한 거지.”
“정말 별 일 없었죠? 제가 의사한테 다른 사람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은데요.”
“훨씬 오랜 시간 동안 사라졌던 김서윤 씨. 그 사람도 너처럼 기억을 잃은 상태로 돌아왔다. 내막은 몰라.”
모든 치료와 조사를 기억이 안 난다로 일축하고 빠르게 퇴원한 이지연은 협회장 백승철을 만났다. 그녀는 백승철에게도 태연히 거짓을 말하며 자연스럽게 김서윤에 대해서도 물었다.
복귀한 것은 이지연뿐만이 아니다. 훨씬 오래 전에 마왕군에 합류했던 김서윤도 이번 기회로 이지연과 함께 지구로 복귀했다.
물론 이지연은 이미 김서윤이 자신처럼 지구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같이 지냈으니 모를 리가 없다. 아니, 애초에 기억을 잃었다는 두 여자의 말은 거짓이었다.
둘 모두, 지난 기억을 생생히 전부 가지고 있었으니까.
“당분간 푹 쉬어. 방송국부터 시작해 귀찮게 구는 사람들 많겠지만 쉬어야 한다고 말하면 어지간하면 들어먹을 거다. 몸 돌보는 게 우선이지.”
그런 사실을 모르는 백승철은 그녀의 몸을 걱정하며 쉬라고 말했다. 다만 이것은 그가 지금의 이지연에 대해 몰라서 하는 말이다.
지금의 이지연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으니까.
창현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그녀를, 루시는 기꺼이 되살려 주었다. 그녀의 유전 데이터를 완벽히 분석한 이후 나노를 투입해 그녀의 파손된 세포를 완전히 복구한 것은 물론, 신체적으로 결손되어 있던 부족한 부분들까지 완벽에 가까운 몸으로 바꾸어 준 것이다.
하지만 현대 의학으로는 당연히 만능 세포 나노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었으니 그녀는 평범한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다.
“복귀는 나중에 해도 되겠지만 회사에는 가 볼래요.”
“으음, 그 사람 때문이구나.”
함께 차에 오른 그녀의 말에 백승철이 침음했다. 실종 기간 동안 루시의 진정한 힘을 목격하고, 그 힘이 침략종을 막는 데 쓰일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지연은 이제 더 이상 전처럼 적들과 싸우는 것에 집착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회사에는 가 보겠다는 그녀의 말은 곧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 백승철은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도 마음고생 많이 했겠지. 네가 퇴원한다는 사실은 극비였다가 이제야 퍼지기 시작했을 테니 가서 놀래 주지 그래.”
곧 회사 건물에 도착한 차량에서 백승철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내려 주었다. 그는 이지연에게 놀라게 해 주라는 말을 썼지만 사실 별 의미는 없는 말이었다.
이미 창현은 이지연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 * *
‘정말 달라진 건 거의 없구나. 하긴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이지연은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 과정에서 설마하니 오늘 퇴원해 회사로 찾아 올 줄 몰랐던 그녀의 얼굴을 보는 모든 이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굳었다.
그런 이들에게 인사를 한 그녀는 이전에 자신이 쓰던 사무실로 향했다. 그곳은 여전히 쓰는 이들이 있었다.
“어? 두 사람은 어디 갔어?”
“잠시 자판기로 갔으니 먼저 들어와서 기다리시죠. 이지연 씨.”
다만 사무실에는 그녀가 기대하던 사람들 대신 한 명의 여성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녀를 보고 마치 올 줄 알았다는 듯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딱딱하게 구는 그 여성은 짙은 흑발을 찰랑이며 순간 붉은 빛이 도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럼 기다려야지. 그나저나 정말 신입 사원 같은걸? 거기서 봤던 모습이랑은 전혀 달라. 진짜 사람 같고 귀엽고 예뻐.”
이지연은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크게 뜬 눈으로 그 여성을 훑었다. 여느 신입 사원처럼 단정한 정장을 입은 그 여성은 루시라는 이름이 적힌 사원증까지 목에 제대로 걸고 있어,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여비서처럼 보였다.
“그런 요란한 반응은 하지 마시길. 안 그래도 인간 수컷들의 시선이 짜증나서 화가 나니까.”
정작 루시는 완벽한 인간의 육체로 만든 자신의 외모를 보고 감탄하는 이지연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탄식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역할에 충실하십시오. 이곳에서 나는 이제 막 입사한 신입 사원일 뿐이니까. 김서윤과 달리 당신을 통제하지 않는 것은 그저 예우를 하는 것뿐입니다.”
“기껏 이런 편한 모습이 되었는데 무서운 소리는 하지 마~”
“윽.”
루시는 결국 특수종의 일종으로 자신의 휘하에 모든 신체가 들어 온 이지연에게는 다른 특수종들과 달리 전혀 터치를 하지 않았다.
필요나 실험을 위해서 특수종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으니까. 그걸 알고 있는 이지연은 루시를 꽤 편하게 대했다.
지금도 딱 선을 그으려는 루시를 와락 끌어안으면서 얼굴을 비비적거릴 정도로. 정작 루시는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녀를 떼어 내진 못했다.
“드디어 풀어 준 거야? 너무하네, 정부도. 도착한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그때. 문을 넘어 두 사람이 사무실로 복귀했다.
두 사람의 정체는 창현과 오진혁. 창현은 이미 이지연의 복귀를 알고 있었지만, 오진혁은 그녀의 소식을 모르고 있었기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 * *
“뭔가 엄청 큰일을 끝낸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달라지는 일은 크게 없네. 그녀는 남들 시선 때문이라도 조금 쉰 이후에 자연스럽게 팀에 합류할 거고, 우리는 헌터 팀으로 움직이게 될 거야.”
“알고 있습니다.”
“이곳 일이야 사실, 별거 아니지. 그쪽은 어때?”
회사 옥상. 이곳에 나는 루시와 단 둘이 올랐다.
루시와 단 둘이라는 것이 과거처럼 휴대폰 하나 딱 들고 왔다는 소리는 아니다. 물론 휴대폰을 통해 루시와 소통하는 건 여전히 가능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몸을 기껏 여기로 가져왔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내 옆에 서서 대답하는 루시의 모습은 남들이 보기엔 사수의 말에 따박따박 대답하는 신입의 모습 그대로였다.
“본거지 좌표 추적은 그다지 성과가 없지만, 우선적으로 병력을 투입한 던전 공략은 성과를 보고 있습니다. 현재 아군은 지구상에 파악된 던전 45%에 관여 중입니다.”
“사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한 것 같기도 해. 시스템은 기다렸다는 듯 난이도를 올리고 있지만.”
나는 루시의 답에 피식 웃었다. 차원문을 만들어, 태평양 심해로 대량의 병사를 워프시킨 루시는 그곳에 거점 둥지를 만들고 지구 전역에 병력을 파견시키고 있다.
당연히 자기 멋대로인 작전이었고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그뿐이다. 루시는 애초부터 관심 없는 그들은 싹 무시하고 그저 눈에 보이는 침략종은 족족 싸워 죽이는 중이었다.
“애초에 지구에 전력을 투사할 수도 없잖아.”
“그렇습니다. 루브란 방위군이 이미 집결을 완료. 워프 엔진 15척으로 구성된 대선단이 라비즈다 침공을 계획 중입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와 함께 싸우는 침략종이 아닐지도 몰랐다.
루시가 차원문 기술 개발을 위해 무리한 대가로 적대 관계로 돌아선 우주 세력 루브란과 거대기업 카르투스가 루시가 점령한 행성을 공격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준비한 것이다.
힘을 끌어 쓰는 바람에 갈등이 생긴 그들과의 싸움 역시 피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그렇게 먼 우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그저 루시를 응원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지구에서 일부 사람들에게는 수호신으로 취급되는 마왕군이 다른 세상에서는 다른 인류를 공격하여 생존 경쟁을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 그 자체다. 애초에, 루시에게 중요한 건 현실 그 자체지 그딴 것들이 아니지만.
“지구에 너무 많은 힘을 들이지는 마. 중요한 건 네 본진이니까.”
“현재 지구에 사용하고 있는 연산력은 2%가 채 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계획은 있고?”
“최선의 방어는 곧 공격. 적들의 대선단이 아군을 침공하기 전 아군 역시 그동안 축적한 대규모 병력으로 취약한 그들의 방어선을 공격하여 행성을 하나 점령할 계획입니다.”
루시는 내게 휴대폰을 보라 말했다. 그 말대로 휴대폰 속에서는, 지금 루시가 무슨 작전을 벌이는지 적나라한 영상으로 보이고 있었다.
“선제 공격이라.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좀 소름 돋겠는데.”
상대의 체급이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강한 가운데 루시가 선택한 방법은, 그들이 그 거대한 체급 덕분에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파고들어 먼저 공격을 시도하는 것이다.
어차피 루시는 그들과 비슷한 차원문 기술을 완성시켰다. 공간의 제약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
아마 그들은 깜짝 놀라는 걸 넘어 기겁할 것이다. 루시 본인도, 자신이 가진 기술 중 가장 위대한 기술이라 말한 것이 바로 차원문 기술이니까.
설마하니 대병력을 보내 싹 태워 버리려 했던 외계 괴물의 대규모 병력들이 워프해서 자신들을 역으로 공격해 올 것이라고는 절대 모를 것이다.
“선을 완전히 넘어 버리는 행위기도 한데, 정말 자신 있지?”
“현재까지의 계산식으로는 적을 완전히 굴복시키지는 못해도 전쟁의 반복을 통해 적들의 세력은 계속해서 약화시키고 아군은 계속해서 점령지를 늘려 나갈 수 있을 거란 예측이 나옵니다. 계속되는 싸움, 강대한 대적자, 조금씩 늘어나는 이득까지 제게는 최적의 상황입니다.”
루시의 마왕군이 가진 가장 강력한 강점은 싸우는 와중에도 성장하고 회복하고 늘어난다는 것. 이것이 그동안 싸워 온 수많은 적들과는 다른 점이었다.
루시에게 전쟁은 호흡과도 같은 것. 남들이 숨을 참으며 전력을 다해 주먹을 휘두를 때 루시는 숨 쉴 거 다 쉬고 체력까지 회복하며 상대와 난타전을 벌이는 것이다.
아마 상대에게 마왕군은 외우주에서 온 끔찍한 재앙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생태계의 정점이던 자신들을 위협해 오는 경쟁자와 계속해서 싸워야만 할 것이고, 그들도 그 와중에 진화할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해 온 싸움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는다. 이곳에서도 그곳에서도 지속된다.
그러니 결국 먼저 성장하고 진화하는 쪽이 살아남는 최종 승자가 될 것이다.
“이제 가자. 넌 모르겠지만 계속 이렇게 단 둘이 붙어 다니면 남들이 보면 오해할 만한 그림이라.”
“……전 그런 오해는 상관없습니다.”
슬슬 옥상으로 올라오는 흡연자들의 눈치를 본 내가 사무실로 돌아가자고 루시의 팔을 잡아끄니 루시가 대뜸 내 팔을 끌어안았다.
역시 인간의 몸을 가지고 여기 오겠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했나.
* * *
<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는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봐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아쉬운 점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번 기회를 좋은 경험 삼아 최대한 빨리 더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