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탑의 정상
망겜.
흔히 재미가 없거나 캐릭터 간에 밸런스가 무너졌거나.
아니면 운영이 개판인 게임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 또 다른 경우가 있다.
바로 터무니없는 난이도를 가진 경우.
가상현실 게임 [시련의 탑]은 바로 거기에 해당했다.
출시 후 1년 동안, 제작자를 농락하는 게 취미인 한국의 고인물들이 이 게임을 정복하기 위해 달라붙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포기한 채 1년, 365일 계속.
하지만, 3년이 지났을 무렵. 사람들은 깨달았다.
이 게임은 클리어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과장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예를 들어 볼까?
10층을 지키는 게이트 가디언이 무적이다.
무적.
100명이서 스킬을 난사하고 온갖 무기로 두드려 패도 소용없단 뜻이다.
아니, 인간적으로 최소한 1이라도 달게 해 줘야 할 것 아닌가?
게다가 7층은 1시간 만에 얼어 죽는 영하 60도의 극지방이었고.
8층은 10,000km가 훌쩍 넘는 미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재미를 위한 게 아니라 고문용이었다.
혹은 한국의 고인물들을 엿 먹이려는 수작이거나.
때문에 게임은 망해 버렸다.
정확히는 ‘거의’ 망해 버렸다.
아직, 이 빌어먹을 헬 난이도에 도전하는 극소수의 고인물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중엔…….
대한민국의 청년. 강진혁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
[50층을 정복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시련의 탑을 최초로 클리어했습니다!]
“실……화냐 이거?”
시련의 탑 50층.
진혁은 온갖 감정이 담긴 한숨을 토해 냈다.
그저 재밌었다.
남들과는 다르게 참신한 방법으로 탑을 공략하고.
모든 것을 다 외워 버릴 정도로 반복하고 또 반복한 끝에 얻는 성취감이.
하지만, 결국 마지막 층까지 클리어해 버릴 줄이야.
17살, 처음 가상현실 게임을 접했을 때 시작해 성인이 된 27살까지.
무려, 11년이란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하. 방송이라도 킬 걸 그랬나.’
시청자 20~30따리 BJ이긴 하지만, 어쨌든 BJ는 BJ다.
그러나 진혁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방송을 켜봤자 아무도 안 봤겠지.
세 달 동안 똑같은 걸 반복하는 모습에 고정 시청자마저 떠나갔으니까.
이제는 ‘보스 공략’이니 ‘50층’이니 하는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어도 시련의 탑을 플레이한다고 하면 아무도 보질 않았다.
‘그래도 뷰튜브에 올리면 조회수는 꽤 나오지 않으려나?’
결과만 10분 내로 편집하면, 꽤 쏠쏠하게 나올 것 같았다.
그때였다.
띠링!
[지금까지 저희 게임을 이용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리부트 업데이트는 12시간 뒤에 이루어질 예정이오니 부디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관리자 전용 메시지였다.
11년 동안 소통도 안 하고 관리도 안 해서 아예 포기한 줄 알았는데.
‘의외네. 게다가 리부트 업데이트라니. 어디 사막에서 유전이라도 발견한 건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 게임에 수익성이라곤 아예 없을 텐데…….
‘……됐다. 뭔가, 생각이 있는 거겠지.’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리부트 업데이트고 뭐고 간에 더 이 게임을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게다가 직업으로 해 오던 방송 역시 오늘을 마지막으로 접을 생각이었다.
아무리 부양해야 할 식구가 없다지만 이제 나이도 27살인데.
언제까지 한 달에 50만 원씩 벌면서 살 순 없었기 때문이다.
‘관장님한테 운동도 당분간 쉬어야겠다고 해야겠어.’
한 때 격투기 프로를 노려야 한다는 말도 듣긴 했으나, 지금은 운동보다도 돈이 더 중요했다.
-jjy77: 진하! 진하! 진혁이 하이라는 뜻!
-수리부엉이: 오, 웬일? 오늘은 일찍 켰네?
방송을 켜자 고정 시청자 20명이 금방 들어왔다.
책상 위에 치킨과 피자, 크림새우와 양장피 그리고 맥주와 소주를 각 2병씩 준비해 뒀다.
-25년째다이어트중: 와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거 보소.
-먹방은쯔양: 역시, 형은 먹방이 딱이야. 겜방말고.
-진혁은굴러야제맛: BJ진혁 하면 뭐다?
-관짝송: 소 먹고 외양간도 먹는다!
-방구석트수: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먹는다!
-1인2닭: 자라 먹고 놀랐으니 솥뚜껑도 먹즈아!
그래도 소수의 시청자들 덕분에 지금까지 방송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함께 웃고 떠들며 소주와 각종 안주를 먹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다가왔다.
‘접는다는 건 내일 공지로 말해야겠네.’
지금 당장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말하는 건 내일이다.
하지만…….
진혁 본인조차 몰랐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세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