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유적, 타락한 자들의 회랑 (1)
두근! 두근! 두근!
점멸하는 상태창을 보며, 진혁의 심장이 빠르게 고동쳤다.
특전이라 적힌 한 줄의 문장.
그래.
계속해서 궁금했었다.
최초로 탑의 정상을 봤었지만, 정작 그에 따른 보상은 없었다는 사실이.
여태껏 시스템이 침묵했던 이유.
그 모든 게.
‘리부트 업데이트와 함께 주려는 생각에서였나.’
진혁이 다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이건 됐고. 그래서 일당은 얼마나 주는 거요?”
“난 현금보단 코인으로 줘.”
“뭐야. 박 씨. 코인은 받아서 뭐 하려고? 탑이라도 오르게?”
“우리 같은 짐꾼들은 현금 받는 게 남는 거여. 밖에선 쓰지도 못할 코인 썩힐 바엔 빳빳한 현금이 낫지.”
다들 일당에 관한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다.
그렇다면 이건…….
오직 나한테만 주어진 보상이 맞다는 뜻이겠지.
“확인하겠어.”
진혁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자.
[첫 번째 특전이 열립니다.]
[패시브 ‘독식(獨食)’이 활성화됩니다.]
[독식(獨食)]
내용: 최종 보상을 나누지 않고 혼자서만 취할 경우, 얻을 수 있는 보상 중 가장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행운 스탯이 영구적으로 +10만큼 증가합니다.]
[적응형 능력치가 +10만큼 상승합니다.]
[냉혹한 심장이 발동됩니다.]
[냉혹한 심장: 긴박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단, 인간적인 마음이 옅어질 수 있습니다.]
‘이럴 수가!’
진혁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독식을 하면 보상 중 가장 좋은 걸 주겠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튀어 나왔다.
미쳤네.
이건 진심으로 미쳤다.
그야 그럴 수밖에.
시련의 탑에는 선택형 보상들이 자주 등장한다.
말이 좋아 선택이지 가챠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
심지어 수천 개 중에 단 한 개만 대박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 확률을 죄다 무시해 버린다는 말 아닌가?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고.
혼자서 다 먹어치운다는 조건만 지킨다면!
‘하하.’
지금까지 수많은 경험을 쌓아 온 덕에 어지간해선 놀라지 않는 성격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삼키기가 힘들었다.
오죽하면 어금니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있을까?
‘행운 스탯…… 설마, 이것까지 줄 줄이야.’
간극만큼은 아니지만,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시련의 탑에선, 행운이란 엄청난 효율을 자랑했다.
막말로 개연성조차 씹어 먹으며, 불가능한 상황을 뒤집는 것도 모두 이 행운 스탯에 달려 있었으니까.
‘적응형 능력치는 처음 보는 건데…….’
무언가에 적응한다는 뜻으로 추측만 가능할 뿐.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능력이었다.
일단 마지막 건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2개의 특전이 사기에 가까웠다.
게다가 첫 번째 특전이라는 말은 최소한 두 번째도 있다는 뜻.
‘더 이상 상태창이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일단은 여기서 끝이라는 거겠군.’
다시 한번 보상을 꼼꼼히 확인한 진혁이 상태창을 닫았다.
때마침 일당에 관한 이야기도 끝났다.
“하루에 300이면 나쁘진 않구만.”
“나쁘지 않긴. 목숨을 걸고 하는 건데. 우리 목숨 값이 300이란 뜻이여.”
“젠장.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썼다고. 게다가 여기 오 대리 말 들어 보니, 이번엔 빵빵한 길드에서 참여한다던데?”
짐꾼들의 시선이 오승환에게 향했다.
“예. 이번 레이드는 연합전으로. 10위권 대형 길드와 중견급 길드 둘이 참여하거든요.”
대형 길드.
그것도 10위권이면 엄청나게 높은 순위다.
전 세계 길드의 수는 1만 개가 훌쩍 넘었으니까.
“게다가 솔로 랭커들도 다수가 참여하니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거예요.”
“그려?”
“푸하하. 우린 뒤에서 안전하게 숨어 있다가 짐이나 날라 주면 되겠네.”
“삼주 정도는 걸릴 테니 경비 빼더라도 두당 5000씩은 떨어지겠군.”
오승환의 말에 다들 환호성을 터뜨렸다.
“자자. 대충 끝났으면 여기서 끝내자고.”
“박 씨랑 김 씨랑 해서 소주나 한잔 어때? 삼겹살에다가. 응?”
“크으. 소주 좋지. 안 그래도 술 생각났는데.”
“저기 내가 아는 가게 있으니까 나만 따라와. 삼겹에 껍데기도 아주 죽이게 하는 데 있어.”
어느새 분위기가 술자리로 바뀌었다.
“거기 형씨는 안 올 거요? 내일 힘들게 일하려면 소주 한잔 똑딱! 해야지?”
“전 괜찮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장 푹 쉬면서 컨디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려도 부족한 판국에 술이라니.
다들 몰라도 너무 모른다.
1층 유적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겨우 10위권대 길드 따위가 간다고 공략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난센스지.’
이미 공격대의 미래는 정해져 있었다.
전멸 혹은 전멸에 가까운 치명타.
둘 중 하나이리라.
그리고.
진혁의 목표는 그 정해진 결말 속에서 고인물만이 할 수 있는 틈을 찾는 것이다.
***
콰아아앙!
거대한 책상이 박살나며, 나무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후우. 후우!”
분을 삭이지 못한 듯. 남자의 어깨가 거칠게 들썩였다.
“이게…… 이게 무슨 개망신이란 말이야!”
검은 까마귀 길드의 마스터.
신건수.
그는 조금 전 들어온 소식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그야 그럴 수밖에.
일생에 있어 단 한 번뿐인 기회.
새로 바뀐 세상에서 위로 갈 수 있는 사다리를 걷어 차 버린 것이다.
그것도 가장 믿고 있던 놈의 실수로 인해서.
“싸울아비 길드를 끌어들이려고 투자한 코인과 아이템이…… 대체 얼마인 줄이나 알아?”
“죄송합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박하진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 죄송하다고? 죄송한 줄 아는 놈이 그딴 삽질을 해?”
신건수가 골프채를 집었다.
그리고 사정없이 박하진을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퍼억!
퍼어억!
“커억! 끄어어억!”
“니 여동생한테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고려인삼 중 가장 정제가 잘된 걸 먹였어.”
거의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행운.
유일하게 50%가 넘는 정제율을 보인 고려인삼을 박하나에게 복용시켰다.
“넌 그냥 따라가서 박하나가 A랭크 받을 때 나팔이나 불어 주면 됐고.”
폭력에 감정이 실렸다.
퍽! 콰득!
등과 어깨 머리.
손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무자비할 정도의 구타가 이어졌다.
“근데, 그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해? 응? 그게 그렇게 어려웠냐고?”
부우우웅!
콰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골프채가 박하진의 머리를 강타했다.
붉은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끄으으으…….”
결국 박하진의 몸이 무너졌다.
그제야 신건수가 타격을 멈추고 골프채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그 방해했다는 놈. 누구야? 뭐 하는 놈인지 읊어.”
“그, 그게 강진혁이라는 놈……입니다.”
강진혁?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랭크는?”
“…….”
박하진이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대답하지 못했다.
“안 들려? 랭크가 뭐냐니까?”
신건수가 다시 골프채를 붙잡으려고 하자 비로소 기어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F입니다.”
“F. F라고?”
순간, 신건수는 머리에 망치라도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하하, 이거 어이가 없네. 그러니까. F판정 받은 초짜한테 처발렸다 이거잖아?”
……대가리야.
이쯤 되면 화를 내고 싶어도 맥이 풀린다.
“됐고. 그 자식 조만간 2차 테스트 치를 거 아니야? 애들 데리고 가서 깔끔하게 처리하고 와. 어차피 던전 안이라면 증거도 안 남는다.”
추살령(追殺令).
신건수가 길드 차원에서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알겠습니다.”
박하진이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전에는 방심했기에 당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신건수의 허락이 떨어진 이상 B급 플레이어로 구성된 집단이 움직일 테니까.
‘내가 당했던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최대한 길게 가지고 놀다가 죽여 주마.’
박하진의 머릿속은 온통 울고 불며 생명을 구걸하는 진혁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
다음 날 새벽 4시 30분.
진혁은 약속 장소인 시련의 탑으로 향했다.
“왔구먼. 강 씨 맞지?”
“여기여! 이쪽으로 와.”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이었지만, 짐꾼들과 채굴꾼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오롯이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줘야 했기에, 그만큼 비전투 계열의 사람들은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다.
오승환 대리는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 사람은 중개해 주는 매니저였으니까.’
대신 어제 만난 짐꾼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약 10분 정도 흐르자 누군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큼! 크흠! 식량을 맡고 있는 김경열 반장이요. 편하게 김반장이라고 불러 주면 됩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가 할 일은 공격대 300명이 일주일 먹을 식량과 그 외 물자를 나르는 겁니다. 무게로 치면 한 사람당 70~80kg 될 거요. 쉽진 않겠지만, 일정이 빡빡하니까 다들 힘내자고. 이럴 때 아니면 어딜 가서 일당을 300씩이나 받겠어?”
김 반장이 일당을 들먹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빌어먹을. 더럽게 무겁겠네.”
“허리 다 나가겠어. 저걸 종일 날라야 된다는 거 아냐?”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무게는 줄어들 테니 뭐…….”
“잡소리 말고. 트럭 앞에 가서 차례대로 물건이나 받아. 점심때까진 도착해야 한다잖아.”
여러 목소리가 오갔다.
툴툴댔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했으니까.
곧이어 짐꾼들이 트럭에서 묵직해 보이는 배낭을 배급받았다.
“씨…… 씨부레.”
“크읍!”
세상의 모든 걸 짊어진 듯 얼굴을 구기는 사람들.
“자, 받아. F급이라고 예외 없으니까 엄살 피우지 말고.”
김 반장이 진혁에게 배낭을 건넸다.
하지만.
‘음?’
배낭을 짊어진 진혁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가볍다.
지나칠 정도로.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이게 말이 되나?
미궁에서부터 지금까지 레벨은 똑같았다.
맹그로브의 목단 이후. 근력 스탯을 추가적으로 올린 적이 없으니 당연히 70kg이 넘는 배낭이 가볍게 느껴질 리 없을 터.
설마.
진혁의 머리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진혁이 곧바로 개인 상태창을 활성화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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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강진혁
성별: 남
나이: 27세
레벨: 1
힘 8 민첩 8 체력 8 마력 11 간극 100 행운 10 적응형 10
보유한 스탯 포인트: 0
보유한 코인: 12740
직업: 없음.
고유 능력: 융합(融合)
스킬: Lv2 ‘불의 원소’, Lv2 ‘진실의 눈’, Lv1 ‘교감’, Lv2 ‘염혼의 낙인’, Lv1 ‘독식’, Lv1 ‘얕은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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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하나.
바뀐 게 있다.
2차 업데이트가 되었다는 말과 함께 주어진 3가지 특전.
그리고 그 중에서 용도를 알 수 없었던 마지막 스탯.
[적응형 능력치 +10]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짐꾼으로 활동하니 거기에 적응해 무게가 가볍게 느껴진다.’
그렇게 가정한다면 앞뒤가 맞았다.
게다가 전투를 할 때도 혹은, 다른 상황에서도 지금과 같은 효과를 받을 수 있다면…….
간극이나 행운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스탯이다.
그때였다.
잠깐.
잠깐만.
‘이거, 탑의 정상을 본 사람한테만 주어지는 스탯이잖아?’
극악의 확률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 다른 스탯들은 누군가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적응형 능력치는 예외다.
‘아예…… 입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단 한 명.
나를 제외하고서는.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아무래도 일생일대의 기연을 얻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