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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만렙 뉴비-21화 (22/653)

21화 유적, 타락한 자들의 회랑 (2)

유적까지 가는 동안, 진혁은 김 반장과 함께 가게 되었다.

진혁이 처음 짐꾼으로 레이드에 참여한 데다, 하필이면 그 레이드의 난이도가 극악의 생존율을 자랑하는 터라. 김 반장으로선 나름대로 용기를 북돋아 주려는 생각에서였다.

서툴러도 그 의도는 전해졌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무사히 돌아갔으면 하는 따뜻한 마음이.

“강 씨도 이곳에 돈 벌러 왔나?”

“예. 생활하려면 목돈이 많이 들어가서요.”

“하긴, 다들 똑같지. 나도 여우 같은 마누라랑 토끼 같은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여기 왔어.”

김반장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배경화면에 인상 좋은 중년 여성과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남매가 있었다.

단란해 보이는 가정이다.

단지.

‘보통 이런 거 보면 사망 플래그던데…….’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이런 걸 보여 주는 걸까.

진혁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시는 거군요.”

“그렇지. 만약 내가 죽어도 보상금이 두둑이 나올 테니. 별 여한은 없을 거여.”

자신은 죽어도 가족은 살리겠다……라.

전형적인, 바보 같고 우직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답답하긴 하지만.

싫어하진 않는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걱정 마세요. 적어도 여기 계신 분들은 무사히 살아서 집에 갈 수 있을 겁니다.”

“뭐? 푸하하하! 그려, 그려. 말이라도 고맙구만. 강 씨가 아주 강단이 넘치는 친구였어.”

김 반장은 만족한 듯 폭소를 터뜨렸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얼마나 걸었을까?

식량으로 가득 찬 배낭을 짊어지고 7시간 넘게 이동한 끝에, 짐꾼들은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드, 드디어…….”

“왔다. 여기야.”

“죽는 줄 알았네.”

쌓일 대로 쌓인 피로.

휴식도 없는 강행군으로 인해 모두의 체력은 바닥난 지 오래였다.

모두들 쓰러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들 고생 많았어. 공격대 오기 전까지 좀 쉬고들 있으라고.”

김 반장이 얼음 생수와 초코바를 건네며 고생한 짐꾼들을 독려했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군.’

진혁도 감회에 찬 표정으로 앞을 내다봤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산과 절벽이 펼쳐져 있는 곳.

저 앞에 보이는 게이트가 바로 시련의 탑에서도 손에 꼽히는 난이도를 자랑하는 유적, ‘타락한 자들의 회랑’이다.

저릿! 저릿!

아직 내부에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피부가 따끔거렸다.

과연…….

이런 느낌이었지.

묘한 흥분감과 기대심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우우우웅!

옆쪽에 있는 공터에서 마력 반응이 느껴졌다.

“이건?”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구름이 갈라지는 게 보였다.

바로 그 순간.

갈대가 좌우로 흔들리며.

콰콰콰콰콰콰!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쏟아졌다.

바로, 공간 이동 마법이 사용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어으, 머리야. 이건 몇 번을 해도 적응이 안 되네.”

“인원 파악은?”

“무사히 다 왔어. 50명 전부.”

“아무렴. 누가 사용한 마법인데, 실수가 있을까 봐?”

연기와 함께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배낭이가 곡괭이가 아닌, 무기와 갑주로 무장한.

이번 레이드의 핵심인 ‘발해’ 길드의 메인 공격대였다.

“저 남자가 공대장이야?”

“나이도 젊어 보이는데…….”

“어리다고 우습게 보지들 말아. 각성 테스트에서도 AA등급 받았고, 이전에 시련의 탑도 9층까지 올라가 본 고인물이여.”

모두의 시선이 공격대 가장 앞에 있는 남자에게 쏠렸다.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방패.

기하학 문양이 새겨진 갑옷이 눈에 띄었다.

최전방에서 모든 어그로를 담당하는 공격대의 핵심이자 기둥, 탱커다.

‘이 남자가 발해 길드의 공대장…….’

진혁이 재빨리 ‘진실의 눈’을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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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송천화

성별: 남

나이: 29세

레벨: 14

힘 30 민첩 18 체력 19 마력 5

보유한 스탯 포인트: 0

보유한 코인: 3,850

직업: 없음.

고유 능력: 아이템 경량화(輕量化)

스킬: Lv3 ‘아이언 실드’, Lv2 ‘밀집 대형’, Lv2 ‘끈질긴 생명력’, Lv1 ‘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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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능력이나 스킬들이 나쁘진 않지만…….

[복사 조건: 레이드 기간 안에, 송천화의 신의를 얻으십시오.]

복사 조건을 확인한 진혁은 곧 송천화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차라리 적대심을 얻는 게 쉽지.

신의라는 건 단기간에 어떻게 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특히, 하나뿐인 성유물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대상이라면 더욱더.

그건 그렇고…….

송천화를 보던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10위권 길드의 공대장이 겨우 이 정도 수준이었나?’

레벨에 비해 스탯과 스킬 레벨이 너무 낮다.

사선을 넘나드는 실전보다는 단순히 경험치만 올리는 데 급급했다는 뜻.

게다가 시련의 탑을 올랐던 것도 9층이 끝 아닌가?

‘나머지 공대원들의 수준은 송천화보다 훨씬 낮고.’

물론, 이 상황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현재 정상급 길드들은 모두 시련의 탑 3층에 있는 보스 공략에 매진하고 있는 상태.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래층에 투자할 인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 모든 걸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전력이 빈약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때.

“자자, 다들 그만 쳐다보고. 공격대분들도 왔으니 일어들 나자고. 우리도 할 일 해야지.”

김 반장이 손바닥을 마주쳤다.

마정석을 채굴하고 몬스터의 사체로부터 부산물을 캐는 채굴팀이야 나중에 들어가지만,

필요한 보급품을 운반하는 짐꾼들은 훨씬 더 이른 타이밍에 진입했다.

전투가 막 끝난 바로 직후에 말이다.

‘오히려 잘됐어.’

진혁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드 단위의 집단 레이드는 어떻게 하는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

공격대가 들어간 지 1시간 정도가 흐르자, 짐꾼들의 차례가 왔다.

[이름: 타락한 자들의 회랑]

종류: 유적

난이도: 측정불가

내용: 태초의 선혈이 봉인되어 있는 곳. 이 유적의 끝에는 가장 순수한 무기와 가장 지독한 죽음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화르륵!

선두에 있던 마법계열 플레이어가 큼직한 불꽃을 소환했다.

시야가 밝아지며 유적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다들 제 뒤 잘 따라오세요. 한 눈 팔다가 다른 쪽으로 새 버리면 구해 줄 수도 없습니다.”

“세상에나…….”

“……엄청나구먼.”

“이게 바로 그 유적인가.”

고대 마야 문명을 연상케 하는 외관.

돌과 이끼로 뒤덮인 외벽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저벅.

길을 따라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왔다. 이쪽입니다!”

“천화 형! 여기 짐꾼들 도착했어.”

이미 한차례 격렬한 전투가 있었는지 앞쪽은 온통 몬스터들의 사체로 가득했다.

구울 그리고 스켈레톤를 비롯한 언데드 계열.

수는 어림잡아도 100마리가 넘었다.

반면 플레이어들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아무리 고위급 언데드 몬스터가 없다곤 하나, 이 많은 놈들을 상대하면서 피해가 없다고?

유적에 들어오기 전에 봤던 발해 길드의 전력으론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뭐 혀?”

김 반장이 진혁의 어깨를 붙잡은 건 바로 그때였다.

“예?”

“멀뚱히 서서 뭐 하냐고. 빨리 물이랑 얼음이랑 해서 나눠드려.”

뭘 당연할 걸 묻느냐는 표정.

김 반장은 진혁 옆에 있던 서너 명을 불러 모았다.

“이쪽은 우리가 할 테니까, 저기. 외국인들 있는 데 보이지?”

손가락 끝이 향한 곳엔 이국적인 외모의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메인인 발해 길드 외에도 중견급이 붙었다고 하더니.

그 중에 하나인가.

눈동자를 굴리던 진혁이 멈칫했다.

‘어딘가 했더니…….’

과거 시련의 탑에서 봤던 문양이다.

‘시온’ 길드.

유럽에 거점을 둔 길드로 인원은 소수지만, 꽤 탄탄하다고 들었다.

“넷이서 저기 있는 분들한테 갔다 와.”

“알겠습니다.”

진혁이 큰 통에 물과 얼음을 담은 뒤, 시온 길드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

순서대로 물과 얼음을 건넸다.

짧은 감사 인사가 있을 뿐,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차례에 도착했다.

2m에 이르는 덩치들과 다르게 마지막 사람은 매우 왜소한 체형이었다.

160cm를 갓 넘는 정도랄까?

남자인 것 같지는 않고…….

여자인 건가?

철제 투구와 갑주로 전신을 감싼 터라 확신할 수 없었다.

“여기, 물 드세요.”

“아……!”

짧은 탄성과 함께.

철컹!

투구가 벗겨졌다.

머리 위로 말려 있던 금발이 바람을 타고 흘러나왔다.

“헉!?”

“세상에나……”

짐꾼들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사람이 맞을지 의심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새하얀 피부와 금발이 그녀가 입고 있는 갑주와 어울려 숨 막힐 듯한 광경을 자아냈다.

하지만, 모두가 이토록 놀란 건 단순히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본연의 실력과 쌓아 온 업적.

그리고 가문의 핏줄까지.

세 개의 기둥이 그녀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암스테르담의 성녀…….’

테레사 드 로렌시아.

모를 수가 없지.

현재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 중 하나를.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실제 귀족 칭호를 갖고 있는 로렌시아 가문의 막내딸이면서,

동시에 아웃 브레이크 때문에 쑥대밭이 될 뻔한 암스테르담을 구원한 영웅.

그것이 바로 그녀의 정체였다.

이제야 이해가 된다.

왜 발해 길드에서 단 한 명도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

‘이 여자라면 언데드를 상대로 최고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었으니까.’

신성력을 다루며, 공격과 방어는 물론 보조 힐링 스킬까지 겸비한 만능형 플레이어.

시련의 탑 2층을 돌파한 것도 모두 테레사 덕분이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걸리는 게 있었다.

‘3층 보스 공략 대신 여기를 선택했다고?’

아무리 유적에서 나오는 성유물이 귀하다고 해도……. 신성계열 성유물이 아닌 이상 다음 층으로 가는 것이 메리트가 훨씬 클 텐데?

무엇보다 시온 길드에서 저런 랭커를 섭외할 능력이 없었다.

……대체 무슨 수로 끌어들인 걸까.

잠시 고민하던 진혁이 이내 머리를 저었다.

지금 우선순위는 시온 길드의 자금력을 예상하는 것 따위가 아니다.

테레사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 능력을 복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게 중요한 거다.

‘이건 다시없을 기회야.’

곧바로 ‘진실의 눈’이 발동됐다.

하지만.

[레벨 차이로 인해 스킬의 발동이 취소됩니다.]

붉은색 상태창이 진혁의 눈앞을 가로막았다.

‘젠장. 레벨 차이라니.’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걸로 아는데, 벌써 20레벨을 넘었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행운 스탯과 적응형 스탯이 레벨 차이를 무력화시켰습니다.]

[대상의 상태창을 꿰뚫어봅니다.]

파츠츠…….

붉은 상태창이 무너지며, 테레사의 개인정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있었지.’

행운 스탯과 적응형 스탯을 얻자마자 도움이 됐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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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테레사 드 로렌시아

성별: 여

나이: 22세

레벨: 29

힘 42 민첩 31 체력 25 마력 30

보유한 스탯 포인트: 8

보유한 코인: 10,850

직업: 없음(현재 직업 퀘스트가 진행 중입니다.)

고유 능력: 별의 가호

스킬: Lv5 ‘신성 강화(神性强化)’, Lv5 ‘은밀 기동’, Lv4 ‘축복받은 손길’, Lv4 ‘성호(聖號)’, Lv4 ‘허상 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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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 조건: 테레사는 세계 100위권에 해당하는 랭커입니다. 그런 그녀의 목숨을 구한다면, 원하는 고유 능력과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습니다.]

굉장한 수치다.

‘과연,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할 만하네.’

진혁이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건 완전히 고급 호텔 뷔페다.

게다가 상태창을 열람한 덕분에 상대가 이곳에 온 동기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현재 직업 퀘스트가 진행 중입니다.]

‘그런 거였군.’

그래서 보스 공략을 포기하고 이곳에 왔던 거였나.

이거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다.

어쩌면 이 카드를 꽤나 유용하게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Lv1 ‘교감’이 발동됩니다.]

[대상이 당신에게 미미한 호감을 느낍니다.]

따스한 기운이 일렁였다.

테레사가 진혁을 보며 생긋 미소 지었다.

마치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청록색 눈동자다.

“고마워요……. 물 잘 마실게요.”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별의 가호’.

성기사 직업을 선택하는 이에게 있어 가장 좋다고 평가받는 고유 능력.

이걸 얻을 기회를 줬으니까.

문제는…….

이 여자가 위험에 빠질 만한 상황을 연출하고.

또 거기서 목숨을 구해 줘야 한다는 건데.

‘확실히 조건이 쉽지는 않군.’

진혁이 아랫입술을 혀로 적셨다.

고민할 때 나오는 특유의 버릇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처, 천화 형! 이쪽으로 좀 와 봐요! 지금 당장!”

이어지는 다급한 비명에.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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