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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만렙 뉴비-48화 (49/653)

48화 블랙마켓 (1)

“조심하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진혁이 목소리를 낮췄다.

[저 녀석. 냄새가 이상해. 불쾌하고 찝찝하다고 해야 하나? 너랑 다르게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먹고 싶지 않은 향이야.]

뭔가 했더니.

피 냄새 이야기였냐?

이 녀석은 대체 사람을 뭐로 생각하는 걸까?

걸어 다니는 도시락?

아니면 심심할 때 먹는 간식?

어느 쪽이든 정상은 아니다.

[표정 보니까 대충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장난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충고해 주는 거야. 저 남자, 절대 일반인이 아니야.]

꽤나 진지한 목소리다.

“흠…….”

진혁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단순히 농담으로 하는 말은 아니리라.

힐끗 앞쪽을 보자 금발에 흰색 정장을 입은 백인 남자가 보였다.

20대 정도로 돼 보이는 젊은 나이. 하지만,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는 여유는 어딘지 모르게 연륜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하하! 별거 아닙니다.”

“아니, 진짜로요! 대체 어떻게 아신 거예요?”

뭐가 즐거운지 남자와 스튜어디스가 연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젊은 CEO나 재벌가의 2세 같은데…….’

과연, 엘리스의 말대로 무언가를 더 숨기고 있는 걸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진혁이 상대가 눈치 채치 못 하도록 조심스럽게 ‘진실의 눈’을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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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알렉스 주드로

성별: 남

나이: 24세

레벨: 27

힘 15 민첩 13 체력 15 마력 61

보유한 스탯 포인트: 0

보유한 코인: 0

직업: 네크로맨서

고유 능력: 잊혀진 고분

스킬: Lv5 ‘사자부활(死者復活)’, Lv5 ‘망자의 계약’, Lv5 ‘마력 용해로’, Lv4 ‘죽은 자의 손길’, Lv4 ‘이종교배(異種交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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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 조건: 대상과의 친밀도에 따라 고유 능력과 스킬들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습니다. 단, 최고조의 친밀도를 달성하기 위해선 ‘마인 협회’에 가입해야만 합니다.]

이건 설마……!

진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설마, 저 남자가 마인 중에 하나였을 줄이야.

능글맞은 얼굴도 다 거짓말이었단 건가?

[거 봐. 내 말 맞지? 이래봬도 내 코가 시련의 탑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명품…….]

엘리스가 자기 잘났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반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은 덕에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녀석은 유용하긴 한데, 말이 많은 게 유일한 단점이다.

자기가 아직까지 여왕인 줄 아는 것도 문제고.

그때였다.

“여행은 편안하게 즐기고 계신가요? 강진혁 플레이어님?”

승무원이 생긋 웃으며 다가왔다.

때마침 잘됐다.

알렉스에 대해 추가적인 정보를 물어볼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예. 덕분에요.”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아! 그리고 간식거리도 좀 가져왔는데, 드시겠어요?”

“안 그래도 출출했는데, 감사합니다.”

진혁이 소고기 스테이크를 넣은 샌드위치와 블랑 캔 맥주를 건네 받았다.

그러면서 넌지시 알렉스에 관한 운을 땠다.

“보니까 1등석에 저 말고 다른 분도 타 계신 것 같은데. 혹시 각성자인가요?”

“아, 알렉스 씨 말씀이시군요!”

알렉스에 관해 묻자, 승무원이 반색하며 대답했다.

어지간히 환심을 사 둔 모양이다.

“프랑스 유명 화장품 기업의 임원이에요. 한국에 업무 차 왔다가 오늘 막 미국으로 가신다고 하더라구요.”

저 녀석이 화장품 기업의 임원이라고?

시체를 다루는 네크로맨서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다.

재밌네.

'아마, 저 녀석이 나와 함께 1등석에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거다.'

계획적으로 탑승했을 확률이 높겠지.

그리고 그 이유는 단 하나.

저번에 2인조가 실패했던 섭외를 다시 한번 하기 위함이리라.

‘그나저나 이번엔 또 어떤 식으로 나올지 궁금하군.’

천유성의 암살 의뢰가 실패했기에, 녀석들도 대놓고 접근하진 못할 것이다.

그때보다 더 매력적인 조건을 들고 오든가 천천히 호감을 쌓아 포섭하려 할 터.

진혁이 느긋하게 팔짱을 꼈다.

상대의 목적을 미리 알아챈 이상, 이 연극의 결말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해야 할 건 순진한 얼굴로 녀석의 노림수에 넘어가 주는 척 연기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알렉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정확히는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어? 설마…….”

진혁을 본 알렉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현실에서 유명 인사를 만난 것처럼.

“실례합니다. 혹시, 오늘 한국에서 S급 판정을 받으신 강진혁 플레이어님 아니십니까?”

살짝 들뜬 얼굴.

떨리는 목소리.

이야. 연기력 봐라.

이 정도면 기업의 임원이 아니라 영화배우라고 해도 믿겠는데?

하지만 연기력 하면 이쪽도 지지 않는다.

“예. 조금 전에 S등급으로 재판정을 받았습니다.”

“역시! 오늘 [시련의 탑] 커뮤니티에 올라온 동영상 저도 몇 번이고 다시 봤습니다. 진짜 신기하네요. 영상 속에서 본 분을 직접 만나게 될 줄이야.”

한참 신나서 떠들던 알렉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양복 안쪽 주머니를 뒤적였다.

“이거 실례를…… 저는 알렉스 주드로라고 합니다.”

건네받은 명함엔 ‘드 페오나 코퍼레이션의 해외 영업이사’라고 적힌 글자가 적혀 있었다.

“강진혁입니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바에 가서 한잔하는 게 어떻습니까? 긴 여행 길 술이라도 있어야 시간이 빨리 가죠.”

우연을 가장한 친목 다지기라.

확실히,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특히나 젠틀한 마스크와 화려한 언변을 갖고 있다면 더욱더.

하지만 글쎄.

과연, 이 담화에서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누가 되려나?

“뭐, 시간 때우기 좋겠네요. 저도 맥주만 마시려니 살짝 아쉬웠던 참이었거든요.”

***

도착한 곳은 퍼스트와 비즈니스 승객들을 위한 바였다.

“제가 즐겨 마시는 술이 있는데, 그걸로 해도 괜찮을까요?”

“도수만 있는 거라면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하하.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루이 13세.

살롱에선 병당 1500만 원에 판매되는 최고급 코냑이다.

알렉스는 그걸 자판기에서 콜라 뽑듯이 태연하게 시켰다.

한 잔, 두 잔.

독한 양주가 비워질수록 둘 사이의 경계심은 조금씩 허물어졌다.

적어도 알렉스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병 전체가 비워졌을 때.

“사실, 제가 한국에 온 건 화장품 관련 때문이 아닙니다. 각성자 관련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였죠.”

알렉스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달그락.

어린이 주먹만 한 얼음이 유리잔 안에서 움직였다.

진혁이 모른 척 되물었다.

“각성자 관련 사업이요?”

“예. 일단 시작은 가볍게 해 보려고 했습니다만. 작은 문제가 생겨서요.”

“문제라면 어떤……?”

“그걸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강진혁 플레이어님은 최근 가면을 쓰고 다니는 자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물론 알고 있지.

그 가면 지금도 캐리어 안에 들어있으니까.

당장 꺼내서 쓰면 이 녀석 표정이 꽤나 볼 만해질 같지만…….

지금 당장은 참아야 한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으니.

진혁이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영상을 통해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1층에 있는 ‘타락한 자들의 회랑’을 공략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플레이어죠. 얼마 전 대형 길드끼리 열린 회담에서도 4층 공략을 선언했고요. 그런데, 그 사람이 알렉스 씨 회사와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일종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희 쪽에서도 보스를 공략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그분께서 워낙 강하게 막으셨습니다. 아마도 모든 공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거겠죠.”

이놈 봐라?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말을 막 지어내네?

마인과의 연관성이 있는 부분을 편집한 뒤 영상을 올렸더니…….

제3자는 절대 진실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구라를 쳐도 어떻게 당사자한테 구라를 치냐?’

이건 뭐, 속아 주고 싶어도 속아 줄 수가 없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어디까지 개소리를 하는지 들어보는 것도 꽤나 재밌을 듯싶다.

“굉장히 욕심이 많은 친구군요. 그 가면을 썼다는 사람.”

“맞습니다! 너무하죠! 그래서 말입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혹시 저희와 함께 가주신다면……. 저희로선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제가요?”

“예! S급부터는 단독 행동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강진혁님을 터치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니까.

S급이 갖고 있는 특권을 이용해 4층 공략에 한 숟가락 얹으시겠다?

뭐라고 해야 하나?

진짜 낯짝 한번 두껍다고 해야 하나?

볼펜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겠네. 이거.

“알렉스 씨가 싫은 건 아니지만, 부탁치곤 조금 과하군요.”

“물론, 무리한 요구만큼 그에 걸맞은 대가를 드릴 생각입니다.”

알렉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었다.

우우웅!

찬란한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투명한 크리스털에 담긴 푸른빛 액체, 엘릭서였다.

죽을병에 걸려도.

혹은 심장이 박살난 상황이라도 치료할 수 있는 전설의 물약.

‘진짜 이놈들은 대체 뭔 짓을 하길래 저런 비싼 걸 잔뜩 갖고 있는 걸까?’

아니, 진심으로.

가능하면 언제 한번 날 잡고 마인들의 하루를 다룬 브이로그라도 찍어 보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얼마나 악독하게 살아야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 수 있는지. 좀 보고 배우게.

진혁이 엘릭서가 든 병을 만지작거렸다.

“이건……. 탐나긴 하네요.”

그러자, 알렉스가 서류 한 장을 꺼냈다.

“계약서에 사인만 하시면 엘릭서는 강진혁 플레이어님의 것입니다.”

[알렉스가 Lv5 ‘망자의 계약’을 발동합니다!]

희미한, 그렇지만 불길한 기운이 솟구쳤다.

계약한 상대로부터 구속력을 갖는, 네크로맨서들의 고유 스킬이었다.

‘역시, 이걸 사용하는 건가.’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계약서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무서운 거다.

모르고 당하기 너무 쉬웠으니까.

‘절대 판정이기 때문에, 한 번 걸리면 반드시 계약서에 적힌 내용을 수행해야 하지.’

불이행은 곧 죽음뿐. 따라서 여기에 낚여선 안 된다.

하지만, 사인을 안 하자니 엘릭서가 너무 아까웠다.

“아!”

무언가 생각났는지 진혁이 가볍게 손뼉을 마주쳤다.

“결정하셨습니까?”

“예. 죄송하지만, 사인은 하지 않겠습니다. 요새 워낙 사기가 많아서 함부로 펜을 놀리지 말자는 주의거든요.”

“그것…참 실망스러운 말씀이네요. 그렇다면 엘릭서 역시 없던 일로 하는 수밖에요.”

알렉스가 진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계약이 틀어졌으니, 엘릭서를 내놓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건 제가 갖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또 한 번 입에 넣은 사탕은 다 먹을 때까지 뱉지 않는다는 주의이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말하고는 은근슬쩍 마력을 끌어 모았다.

쿠쿠쿠쿠쿠!

비행기가 격하게 흔들렸다.

“스, 승객 여러분. 난기류로 인해 비행기가 잠시 휘청거리니 다들 안전벨트를…… 꺄아아악!”

“모두 이동하시는 걸 잠시 멈춰 주시길 바랍니다.”

승무원들이 허겁지겁 움직였다.

다들 이 현상이 난기류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저는 이만 안전을 위해서 자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알렉스 씨도 승무원의 지시에 따르세요.”

진혁이 어금니를 꽉 깨문 알렉스를 향해 능글맞게 웃어 줬다.

왜?

억울하면 힘으로 해 보든가?

그런데 괜찮겠어?

네크로맨서가…… 시체 하나 없는 곳에서 뭐 어쩔 건데?

설마,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기라도 하려고?

‘글쎄.’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 정도 일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알렉스가 마인 협회 내에서 갖고 있는 권한은 크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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