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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만렙 뉴비-49화 (50/653)

49화. 블랙마켓 (2)

으득.

알렉스는 어금니를 부러져라 꽉 깨물었지만, 공격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다.

네크로맨서는 근접전을 위한 포지션이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은 회유 뿐. 전투에 관한 건 위쪽의 허가가 필요했다.

“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겁니까? 제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었는지 말입니다.”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지. 그래도 2인조 때보단 좋았어. 자연스럽게 보이려는 노력이 티가 나더라.”

그땐 거창한 외부 설계만 신경 쓰느라 정작 세세한 디테일을 놓쳤었다.

덕분에 함정이란 걸 바로 눈치 챘지만.

“저번에도 그렇고……. 계약금만 쏙 빼먹는 데 아주 도가 트셨군요.”

“그거야 뭐, 너희들이 호구처럼 당해 주니까 어쩔 수 없이 계속하게 되더라고.”

강제로 입속에 케이크를 쑤셔 넣어주는데.

사람인 이상 맛있는 음식을 씹을 수밖에.

“나는 그저 자연스럽게 행동했을 뿐이야.”

진혁이 생긋 웃었다.

반면, 알렉스의 얼굴은 더더욱 일그러졌다.

“너무 저희를 자극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당장에야 골치 아픈 적이 나타나서 그 녀석이 우선이지만, 이후엔 당신에게도 이번 일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테니까요.”

“골치 아픈 놈이라면 가면 쓴 놈 이야기냐?”

“그렇습니다.”

“글쎄. 너희 수준으론 그 녀석을 어떻게 할 수 없을 텐데?”

“하! 조금 전까진 아예 들어본 적도 없는 것처럼 구시더니. 이제 와서 그런 말씀하셔 봤자…….”

알렉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진혁의 말이 이어진 순간.

알렉스는 이번 계획의 근간이 된 모든 가정들을 뒤엎어야만 했다.

“룬어가 새겨진 가면을 쓰고 얼마 전 대형 길드와도 접촉했었지. 물론, 거기엔 너희도 있었고.”

“……!”

알렉스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식은땀이 나고 목구멍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설마.

‘정말로 가면을 쓴 녀석과 알고 있던 사이라는 건가?’

업로드된 영상엔 마인들에 관한 부분이 편집되어 있기에 제3자는 절대 알 수 없을 터.

‘다시 말해, 저 말은 진짜다.’

물론, 또 다른 가능성이 한 가지 존재하긴 한다.

바로 둘이 동일 인물이라는 가능성이 말이다.

허나, 알렉스는 가면을 쓴 남자와 진혁이 동일 인물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1층에 있는 타락한 자들의 회랑을 공략하기 위해선 플레이어가 1레벨을 유지해야만 했다.

당연히 가면을 쓴 남자의 레벨도 1이었겠지.

하지만, 눈앞에 있는 진혁은 몇 시간 전 무도회를 통해 추정 레벨 20이라는 결과를 받은 상태다.

둘 사이의 레벨 격차는 무려 19.

‘고작 며칠 만에 그 격차를 따라잡기란 불가능해.’

그렇기에 둘은 타인이다.

적어도 알렉스는 그렇게 확신했다.

이 또한.

진혁이 설계해 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니까.

‘어설프게 알고 있는 놈들일수록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확신하는 법이지.’

진혁이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마인 놈들이라면 회랑을 공략하는 법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워낙 정보의 범위도 넓고 보유하고 있는 아티팩트도 화려했으니. 어설프게나마 정보의 편린 정도는 찾았으리라.

하지만.

시련의 탑, 지하 1층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이 세상에 오직 나 하나뿐이다.’

결코 범접할 수 없는. 동시에 영원히 따라잡힐 리 없는 정보의 격차.

오랜 시간, 고통을 즐긴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특권이었다.

결국, 알렉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자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강진혁 플레이어님의 장난은 어느 정도 참아야 한다, 뭐 이런 뜻이겠군요.”

“그런 뜻이지. 그리고 혹시 알아? 어찌 됐든 나랑 그 녀석도 경쟁 관계니 나중에 너희들한테 쓸 만한 정보 좀 풀어 줄지?”

“알……겠습니다. 현재로선 그 정도로 만족해야겠네요.”

알렉스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정도면 놈들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게 정립한 것 같다.

“아!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진혁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예?”

“고작 천유성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가면 쓴 놈한테도 쩔쩔맬 정도라면 나한테 덤비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암살이니 고문이니 하면서 강압적으로 정보를 빼낼 생각이라면 다시 생각해라.

적어도.

“내가 그놈들보단 훨씬 까다로울 테니까.”

***

일련의 이벤트 후 비행기는 다시 순조롭게 상공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도착한 건 저녁이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알렉스는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진혁은 녀석에 대한 신경을 껐다.

지금 당장은 녀석에 관해 신경 쓰는 것보다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매 시작 전까지 남은 시간은 약 4시간.

‘일단은 자본금부터 모아야겠군.’

달러가 필요하다.

그것도 가능하면 많이.

‘최소한 지금 갖고 있는 돈의 200배 정도는 불러야 할 텐데…….’

한상진에게 돈을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자금의 출처니 뭐니 하면서 캐묻는다면 나중에 일이 골치 아파질 수도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정부부처가 세무청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갖고 있는 돈으로 해결하는 것뿐이다.

지갑에 있는 원화를 환전해 봤자 4천 달러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이걸론 턱도 없다.

경매장의 최소 입찰 단위가 5만 달러부터였으니까.

그렇다면.

“세계의 기억을 불러오겠다.”

진혁이 저장해둔 스킬들을 불러왔다.

필요한 건 ‘진실의 눈’과 융합할 능력이었다.

‘나중에 정령계열 쪽 능력이랑 융합하려고 했었지만,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지.’

정령계열은 능력을 남용해도 부작용을 완화시킬 수 있는 완충제 역할을 한다.

반면, 암속성 계열은 효율성이 좋은 대신 부작용을 갖고 있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안전성과 효율성.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현재의 여건상 진혁은 후자를 선택했다.

[‘진실의 눈(SS)’과 ‘혈마기(S)’가 융합합니다.]

[융합에 성공하셨습니다!]

[스킬 ‘탐식의 눈(SSS)’을 획득하셨습니다!]

우우우웅!

밝은 빛과 함께 두 스킬이 하나로 합쳐졌다.

[탐식의 눈]

입수 난이도: SSS

내용: ‘진실의 눈’의 상위 버전 스킬로, 모든 종류의 결계에 면역을 지니고 있으며 상대의 상태창을 엿볼 수 있는 건 물론, ‘시야 공유’와 ‘마인드 리딩’을 통해 내면적인 부분까지 간섭할 수 있습니다. 단, 혈마기의 특성상 자주 사용할 경우 시전자의 인격을 오염시킬 위험 또한 존재하며, ‘시야 공유’와 ‘마인드 리딩’은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대상을 상대로 단 한 번(효과는 발동 후 1시간 동안 지속됩니다.)만 발동할 수 있습니다.

탐식의 눈.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인간미를 잃어버릴 수 있는 부작용이 존재하긴 했지만.

효율성 측면에선 가히 비교 불가능할 정도의 압도적인 능력 자랑하는 스킬이었다.

‘나쁘지 않네.’

진혁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인 준비는 다 했으니.

이제 돈을 긁어모으러 갈 시간이다.

낮보다 밤이 화려한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

라스베이거스 ‘룩소 호텔’ 카지노.

이곳의 보안실장인 데이비드는 연이어 터지는 소식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시, 실장님. 벌써 100만 달러 넘게 잃고 있습니다.”

“4번째 딜러 교체입니다만.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보안 카메라상으로도 문제가 없어요. 카지노 전체에 고유 능력과 스킬을 차단하는 결계도 제대로 작동중이고요.”

보안실의 직원들이 굳은 얼굴로 보고했다.

“뭐,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냐 지금! 다 아니라면 대체 이건 무슨 수로 설명할 건데?”

콰앙!

데이비드가 CCTV 모니터를 내려쳤다.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양인 손님 한 명.

바로 이 사람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었다.

‘고작 4천 달러 가지고 와서 1시간 만에 10만 달러를 넘게 딴다고?’

단순히 운에 맡기는 슬롯머신이나 룰렛을 돌린 거면 말도 안 한다.

종목은 오롯이 포커.

실력이 반영되는 도박인 만큼 호구가 오래 앉아 있으면 있을수록, 결국엔 카지노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동양인 남자는 거기서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았다 뿐이랴?

아예 폭주를 하고 있는 중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딜러들을 농락하면서.

‘승률이 높은 게 아니야.’

승률은 고작 10%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다.

그런데 문제는, 가끔 이길 때마다 큰 판을 모조리 쓸어가 버린다는 점이다.

마치 테이블 위에 있는 패를 모조리 엿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냐?’

고유 능력도 아니야.

스킬도 아니야.

그렇다면 녀석과 손잡은 내부자가 이 안에 있을 수밖에.

그게 데이비드가 내린 결론이었다.

“딜러, 다시 바꿀 준비해. 이번엔 내가 직접 지명하겠다.”

같은 시각.

진혁은 포커 테이블에서 한창 돈 따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젠장. 이번에도 지면 안 돼. 어떻게든…….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고.]

‘마인드 리딩’을 통해 딜러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J 원 페어]

공유한 시야로 딜러의 패 또한 훤히 보였다.

나머지는 상황을 봐 가며 여유롭게 배팅만 하면 된다.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군.’

아무리 카지노 내에 결계가 펼쳐져 있더라도 면역 판정을 지닌 ‘탐식의 눈’을 막을 순 없다.

마치 도박을 위해 최적화된 스킬이라고 해야 할까?

시간만 충분하다면 전 세계 카지노에 있는 돈이란 돈은 모조리 쓸어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다음부턴 블랙리스트에 오를 테니 현실적으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급한 돈이 필요한 건 이번뿐이었으니까.

“콜. 저는 10 투 페어입니다.”

진혁이 쌓여 있던 칩을 밀어 넣었다.

딜러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러다 마지못해 패를 펼쳤다.

“……10 투 페어 윈. 축하드립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썼던 블러핑마저도 간파당한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패배를 시인하는 것뿐이었다.

“세상에나…….”

“대체 딜러들이 몇이나 박살난 거야?”

“벌써 네 명째야. 젠장. 내가 카지노 10년 차인데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처음 봐.”

“어지간히 많이 긁었군. 적어도 100만 달러는 넘겠는데?”

“미친. 완전히 복권 당첨된 수준이잖아. 근데 슬슬 일어날 때도 된 거 아니야? 꼭 끝까지 버티다가 입고 있던 옷까지 날려먹더만.”

“그건 멍청한 놈들 이야기고. 저 남자는 완벽하게 페이스 조절을 하고 있다고. 이대로 가면 카지노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를걸?”

“푸하하! 그건 볼 만하겠네.”

지켜보던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진혁의 화려한 솜씨에 어느새 매료되어 버린 탓이었다.

촤르륵!

진혁은 칩들을 모아 다시 색깔별로 높게 쌓았다.

이걸로 20만 달러 추가다.

하지만.

‘부족해.’

경계심 많은 딜러들이 쉽게 미끼를 물지 않았다.

덕분에 시간은 흐르는데, 배팅 액수는 좀처럼 커지질 않았다.

남은 시간은 이제 30분.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딜러, 한 번 더 교체하도록 하겠습니다.”

창백한 피부의 비쩍 마른 남자가 나타났다.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얼굴에 뼈에 가죽만 들러붙은 모습.

허나, 기형적인 외모보다 인상적인 건 남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었다.

호오.

이것 봐라?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각성자를 딜러로 쓰겠다?’

아마도 자신들은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결계 쪽에도 뭔가 장난질을 해둔 게 틀림없었다.

잃은 돈을 회수하기 위해 카지노에서 수작을 부릴 거라곤 생각했지만…….

귀엽네.

‘탐식의 눈’ 앞에서 재롱을 부리겠다니.

진혁은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셔플하겠습니다."

딜러가 새로운 카드뭉치를 쥐었다.

우우웅!

손가락 끝에 마력이 맺히는 게 보였다.

[마이클 패드로가 Lv3 ‘교묘한 눈속임’을 발동합니다!]

촤촤촤촤!

카드가 빠른 속도로 뒤섞였다.

하나, 둘.

위아래로 포개지며 클로버와 하트가 어지럽게 날뛰었다.

그에 맞춰 진혁의 눈동자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섯, 여섯…….

그리고 마침내.

셔플이 끝난 카드가 딜러와 진혁 앞에 놓였다.

그러나 진혁은 카드를 뒤집지 않았다.

따닥! 따닥!

대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딜러의 신경을 긁었다.

“카드…… 확인 안 하십니까?”

결국, 딜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확인?”

“예. 확인을 하셔야 배팅을 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글쎄.

“총 일곱 번. 내가 본 것만 세 개의 스킬로 장난질을 했는데. 굳이 카드를 봐야 할까요?”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딜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이 친구가 카드로 장난질을 하는 건 제법인데, 연기 교육은 제대로 안 받았네.

정곡을 찔렸다고 표정에 다 나타나서야 쓰나?

“됐고. 호텔 지배인이나 보안팀 쪽 매니저 나오라고 하세요. 지금 당장.”

진혁이 명령조로 내뱉었다.

그러자 바로 그때.

“지저분한 동양인 나부랭이가 감히 누구보고 나오라 마라야? 그리고 뭐? 스킬? 사기? 이게 진짜 미쳤나. 넌 오늘 엠뷸런스에 실려 나가게 될 줄 알아. 알겠어?"

데이비드가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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