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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만렙 뉴비-50화 (51/653)

50화. 블랙마켓 (3)

근육만 풍선처럼 부풀린 덩치들이 잔뜩 나타났다.

“어이, 노란 원숭이. 다시 한번 말해 봐. 지금 우리 카지노가 불법을 저질렀다는 거냐?”

데이비드가 두 눈을 부라렸다.

가뜩이나 심기가 좋지 않은데, 제대로 걸렸다는 얼굴이다.

방귀 뀐 놈이 성 낸다고.

이쯤 되면 낯짝이 두꺼운 건 지구촌 관습인 듯싶었다.

물론, 내로남불이야 웃어넘길 수 있지만.

딱 하나, 저 주둥아리만큼은 넘어갈 수가 없다.

“노란…… 원숭이?”

“그래, 너희 동양인들은 피부색이 다 그렇잖아. 게다가 사내새끼 얼굴이 그게 뭐냐? 여자처럼 곱상하게 생겨선.”

방금 이걸로 결정했다.

“일단, 넌 얼굴이 노랗게 변할 때까지 맞자.”

이야기는 그다음이다.

“완전히 겁대가리를 상실한 미친놈이군. 손님들 즐기시는 데 방해되지 않게 안으로 데려가라.”

데이비드가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그러자 경호원들이 손마디를 우두둑 꺾으며 진혁에게 다가갔다.

“예, 실장님.”

“이거 뭐, 살짝만 주물러도 뼈가 다 부러지겠는데?”

“대체 뭔 배짱으로 까부는 건지 모르겠네.”

“조금 뒤에 질질 짜는 모습이 기대되는구만.”

압도적인 서양인의 신체.

그리고 여기 있는 경호원들은 그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엘리트들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손이 진혁의 어깨에 닿는 순간.

우드득!

뼈가 박살나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아아악! 팔이! 내 팔이!”

비명이 나온 건 그로부터 1초 남짓이 흐른 뒤였다.

180도 가량 뒤틀린 오른팔.

근육질 남성이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뭐, 뭐야?”

모두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허나 상황을 파악할 틈도, 거기에 대응할 여유도 없었다.

한 명을 처리한 진혁이 다음 사냥감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으니까.

콰앙!

“컥!”

콰득!

“으아악!”

가벼운 몸놀림이다.

하지만, 결과까지 가벼운 건 아니었다.

“으으으…….”

“사, 살려 줘. 제발…….”

꺾여 버린 팔과 다리.

인대가 완전히 파열됐으니 앞으로 평생 자기 손으로 포크 하나 들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팔을 다친 사람들은 다행이었지. 몇몇은 휠체어 신세를 면하기 어려워보였다.

일말의 자비도 없는.잔혹함이 잔뜩 배어 있는 손속이었다.

“저게 말이 돼? 방금 혼자서 몇 명을 때려눕힌 거야?”

“프, 플레이어다! 저 사람, 전투계열 플레이어라고!”

“하긴 그게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긴 하지.”

잔혹하면서도 화려한 손속에, 지켜보던 사람들조차 탄성을 내뱉었다.

이제 남은 건 한 명뿐.

“우아아악!”

가장 덩치가 큰 백인 남자가 주먹을 휘둘렀다.

그래도 나름대로 훈련은 받았는지, 관자놀이를 정확하게 노린 공격이다.

물론, 진혁은 고개를 슬쩍 움직이는 걸로 주먹을 피했다.

동시에 번개처럼 오른손을 움직였다.

“커억?”

순간, 백인 남자의 호흡이 멈췄다.

강철처럼 단단한 손이 목을 틀어막았으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정말로 놀라운 건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그그극!

180cm에 살짝 못 미치는 키.

몸무게도 70kg에 불과한 동양인이,

신장 2m에 100kg이 가볍게 넘는 덩치의 목을 잡고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것도 한 손으로.

그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마침내 데이비드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자신의 판단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 돼. 켁! 케엑! 안 돼애애!”

진혁의 손에 조금씩 힘이 실리자, 남자가 온몸을 마구 뒤틀었다.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될지 그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돼.”

우득!

쇄골이 박살나며.

마지막 남은 경호원까지 처참한 말로에 합류했다.

이걸로 끝이다.

거추장스러운 놈들은 다 정리했으니 입에 걸레를 문 친구를 손봐 줄 시간이다.

“아무래도 질질 짜야 할 건 너희 쪽인 것 같은데?”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후, 후회할 거다. 우리 카지노는 스캐빈저 길드와 계약이 되어 있다고.”

“스캐빈저?”

“그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도망치는 게 좋을 거다. 네놈이 아무리 각성한 플레이어라도 길드한테는 안 될 테니까.”

스캐빈저. 스캐빈저라.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길드 같은데…….

“거기, 마일로인가 뭔가 하는 놈이 있는 곳 아니냐?”

“그, 그걸 어떻게?”

어떻게긴.

예전에 [시련의 탑]을 했을 때 만나 본 적 있었으니까 알고 있지.

어중간한 실력을 갖고 있는 주제에 하는 짓은 쓰레기라서 초보존에서 뉴비들을 학살하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때마침, 그곳에 볼일이 있던 나에게까지 시비를 걸어서 아주 제대로 털어 버렸던 기억도 나고.

‘갯벌에 산 채로 머리만 빼고 묻어 버린 다음에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지구과학 실험을 한 적도 있었고. 숟가락으로만 때려서 죽인적도 있었지.’

생각해 보니 철이 없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한 30번 정도 따라다니면서 죽이니까 그 뒤론 아예 보이지 않았다.

자존심이 완전히 짓뭉개져 버린 탓이리라.

그런데 믿는 구석이 겨우 그 녀석들이었다고?

“별거 아니네.”

진혁이 피식 웃었다.

***

‘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데이비드는 진혁의 여유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각성한 플레이어라도 길드 앞에선 한낱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혼자서 날뛰어 봤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하물며 스캐빈저 같은 A급 규모의 길드라면, 이름을 듣는 순간 꼬리부터 마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그때였다.

지지직!

데이비드의 귀에 낀 이어폰에서 잡음이 들렸다.

보안실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시, 실장님. 아까 부탁하신 거 지금 찾았습니다!”

“부탁이라면. 아! 그래. 프로필. 어떻게 됐어?”

“그, 그게 말입니다…….”

“빌어먹을! 뜸 들이지 말고 빨리빨리 말해!”

“강진혁이라고 어제 한국에서 S급 받은 랭커입니다. 무도회 영상이라고 있어서 확인했는데 완전히 괴물이에요. 절대, 절대 싸우면 안 됩니다. 그 사람하곤.”

“S, S급? S급이라고!?”

데이비드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만 혀를 깨물 뻔했다.

휘청하고.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풀렸다.

덜덜덜.

심장이 엇박자로 뛰기 시작했다.

‘그, 그렇게 등급이 높을 줄이야.’

미국에서조차 S급은 스무 명도 채 되질 않는다.

국가 차원에서 전력으로 지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중에 하나를 건들이다니.

중견에 불과한 스캐빈저로는. 길드 전체가 달라붙어도 상대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벌집을 건드렸구나.’

아무리 탑에 관해 무지한 데이비드라도 알고 있었다.

높은 등급의 랭커들이 현 시대에 갖고 있는 영향력에 대해서.

그리고 만약, 상대가 작정하고 날뛴다면…….

꿀꺽.

식은땀이 흘렀다.

카지노의 평판이고 나발이고 간에.

머릿속엔 온통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내뱉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몰라 뵙고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실되고 간절한 목소리로.

그러나.

“왜 갑자기 사과하는 거지?”

진혁의 얼굴은 더더욱 일그러졌다.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예? 그게. 방금 보안실에서 강진혁 플레이어님에 관해 들었습니다.”

왜 태도가 180도 바뀌었나 했더니.

“등급을 듣고 나니 잘못 건드렸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였어? 그래서 사과한 거고?”

만약 F급이거나 혹은 일반인이었으면 계속해서 무시했겠네?

“제, 제 말은 그런 게 아니라…….”

데이비드가 다급히 변명하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퍼억!

“우어억!”

복부 깊숙이 파고든 주먹으로 인해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과만 하면 끝이 아니잖아? 죄송할 짓이면 아예 시작부터 하질 말았어야지.”

사람 죽여 놓고 ‘죄송합니다.’ 하면 끝인가?

뒤늦게 후회하며 눈물이라도 찔끔 흘리면 모든 게 끝이냔 말이다.

“마, 맞습니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다시 또 그러든 말든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이미 한 짓에 대해서만 맞자.”

약속했다.

얼굴이 노랗게 될 때까지 패 주겠다고.

그리고 진혁은 진심으로 그렇게 해 줄 생각이었다.

“잠……까아아으아악!”

쾅!

콰앙!

진혁이 주먹으로 데이비드의 안면을 가격했다.

한 방. 한 방.

이곳에 와서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풀 듯, 무게를 실어 내려쳤다.

그렇게 서른 대쯤 맞자 데이비드가 죽는 소리를 냈다.

“살려…… 살려 주십쇼.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만…….”

여기저기 피멍이 든 건 물론, 코뼈까지 주저앉았다.

진혁이 파운딩을 멈췄다.

“뭐든지?”

“예! 예! 뭐, 뭐든지!”

“그럼, 저기 손거울 앞에 가서 이길 때까지 가위바위보 하고 있어. 도중에 멈췄다간 다시 맞을 거니까 명심하고.”

"예? 가, 가위바위보요?”

“모르겠으면 됐어. 그냥 계속 맞자. 나도 그게 더 속 편할 것 같거든.”

“아,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쇼!”

데이비드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손거울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마지막 승부를 펼치는 것처럼 사력을 다해 가위바위보를 하기 시작했다.

진혁은 다시 테이블에 앉았다.

그 앞엔 벙 찐 표정의 딜러가 서 있었다.

“자, 그럼. 우리는 이어서 해야죠?”

“예? 이어서…… 하신다는 말씀이 어떤 의민지.”

“아까 했던 게임. 승부가 나지 않았으니 계속 하자는 말입니다.”

“지, 진심으로 말입니까?”

“알아요. 당신이 장난질 친 거.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진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장난질?

스킬?

얼마든지 해 봐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말이지.

[여기서 또 스킬을 썼다간 나도 실장님과 같은 꼴이 될 거야. 그건 안 돼. 여기에 목숨을 바칠 정도로 의리를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고.]

‘탐식의 눈’을 통해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 앞으로 무조건 올인만 할 겁니다. 무슨 뜻인지…… 잘 아시리라 믿어요.”

진혁이 쌓여 있던 칩을 모조리 밀어 넣었다.

게임이 재개되었다.

***

약 5분 뒤.

스캐빈저 길드가 카지노에 도착했다.

“데이비드 실장님?”

스캐빈저 길드의 A급 플레이어 존 스미스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다.

바닥에는 팔다리가 꺾인 채 신음하는 경호원들.

게다가 자신들을 이곳에 부른 데이비드는 길드 사람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가위바위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실장님! 정신 차리십쇼!”

스미스가 한 번 더 고함을 치고 나서야. 데이비드가 거울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누가 실장님과 경호원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거죠?”

“아, 아닙니다. 아무 일도……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을 리가.

이 난장판을 보고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을 믿으란 소리냐.

바로 그때 스미스의 시선이 테이블로 향했다.

정확히는 터무니없이 쌓여 있는 칩들과 함께 있는 진혁을 향해서.

“저놈이 그런 거군요.”

굳이 설명 따윈 필요 없다.

이 상황에서 느긋하게 게임을 즐기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잠시만. 젠장, 잠시만요! 절대, 절대로 저 사람을 건드리지 마십쇼! 저희는 괜찮습니다. 그러니 그냥 가 주세요. 제발.”

데이비드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애걸했다.

“실……장님?”

스미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자아내는 사이.

“어이구. 시간이 벌써 이렇게? 바쁜데 이거 어느 세월에 다 환전하려나?”

진혁이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데이비드의 손에 10달러짜리 칩 하나를 꼭 쥐여 줬다.

“아! 실장님. 오늘 잘 놀다 갑니다. 돈 꼻느라 몸도 마음도 추우실 텐데 이걸로 가는 길에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드세요.”

역시 헛헛할 땐 뜨끈한 국밥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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