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인과응보
“역겨운 네크로맨서답군. 지저분한 소꿉놀이가 취미인가 보지?”
“이런 사랑스러운 생명체들을 보고 지저분하다라……. 하긴, 범인들의 눈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알렉스가 좌우로 도열한 몬스터들을 쓰다듬었다.
녀석의 눈에는 피부 내부가 훤히 보이는 몬스터들이 정말로 사랑스럽게 보이는 모양이다.
“아무리 봐도 그 눈은 장식으로 달려 있는 것 같네. 라식 정도론 안 될 것 같고. 그냥 뽑아버리는 걸 추천할게.”
파츠츠츠!
진혁의 단검을 따라 푸른 기운이 일어났다.
눈부신 빛이 단숨에 검 전체를 집어삼켰다.
“푸하하! 검강이라니. 과연, S급답군. 아니, 이 정도 마력이면 S급 중에서도 발군이겠어.”
그러나 검강을 봤음에도, 알렉스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죽거렸다.
“네놈 뒤에 있는 누더기들을 믿고 큰소리치는 거라면, 그거 크게 실수하는 거다.”
“아무렴. 고작 이것만으로 당신을 상대하려 했을까?”
알렉스가 생긋 웃었다.
동시에.
쿠쿠쿠쿠쿠!
검은 기운이 몰아쳤다.
[알렉스가 Lv5 ‘마력 용해로’를 발동합니다!]
저택 전체를 범위로 하는 광역 스킬.
흉흉한 기운이 삽시간에 피부로 파고들었다.
“끄아아악!”
“머리가…… 내 머리가!”
“몸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아.”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전신의 생기를 강제로 뽑아내는 저주.
때문에, 이곳에 있던 사람들은 산 채로 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에 직면해야만 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말이다.
“크읍.”
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릿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마력으로 신체를 보호한 덕분에 피부가 녹아내리는 꼴은 면할 수 있었다.
“사, 살려…….”
“제발…….”
사람들이 목숨을 애걸했다.
대부분은 중년이나 노인이었지만.
“아빠…… 엄마. 아파.”
간혹 나이가 어린 아이도 있었다.
‘초대장을 받은 사람의 가족인 건가.’
단지 이곳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죽기엔 너무 가혹한 처사다.
특히나 어린아이가 죽는 걸 내버려뒀다간 평생 꿈자리가 뒤숭숭하겠지.
완전히 용해돼 죽기 전까진 아직 1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을 터.
그 안에 시전자인 알렉스를 제압해 용해로를 멈추게 한다면, 아직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10분.
10분이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내가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다.
성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더욱더 없고.
그러나 걸리적거리지 않은 채 지금처럼 얌전히 바닥에만 누워 있는다면…….
“…….”
진혁이 알렉스를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쳤다.
“뭐가 불만스러운 표정인가 본데, 왜? 벌레들이 죽는 게 그렇게 신경에 거슬리나?”
“벌레들?”
“그래. 이렇게 마력의 재료로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미물들을 보고 벌레라고 말하는 것 외에 다른 표현 방법이 있을까?”
피식.
알렉스의 말에 진혁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쯤 되면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질 않는다.
“이래서 너희 마인 놈들하곤 안 맞는다니까. 어울려 주고 싶어도 존재 자체가 마음에 안 들거든.”
“흐음. S급이면 좀 더 현실적이길 기대했건만. 역겨운 감성팔이들과 같은 종류였나? 이 세상은 동정심 따위로 굴러가는 게 아니다. 철저하게 약육강식으로 지탱되는 거지.”
“그건 말 잘했네.”
약육강식.
다른 건 몰라도 저 말에는 동의한다.
“네 입으로 내뱉은 말이니까, 죽더라도 원망 마라.”
“마치, 네놈이 나보다 강하다는 듯한 말투로군.”
“아니라고 생각하나?”
순간.
파츠츠!
진혁의 검이 꿈틀거렸다.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
알렉스가 사용했던 것보다 훨씬 짙고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푸른빛으로 타오르던 검강이 어느새 검게 물들었다.
동시에.
콰앙!
진혁이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질주했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역수로 쥔 단검이 몬스터들의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키에에엑!”
“케에엑!”
제법 두꺼운 피하지방을 가지고 있었지만, 검강을 막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콰콰콰콰콰콰!
닿는 것은 무엇이든 잘라 버리는 최강의 스킬.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검격에, 10마리가 넘는 몬스터들이 수십 조각으로 토막 났다.
하지만.
[‘피의 결계’가 활성화됩니다!]
[범위 지정 ‘언데드를 대상으로 한 재생’이 시작됩니다!]
마력 용해로의 효과로 인해 발동된 추가 스킬 ‘피의 결계’가 활성화되었다.
꿀렁! 꿀렁!
절단된 살덩이가 순식간에 아물기 시작했다.
“벌레들이라도 이 정도 숫자가 모이면 제법 쏠쏠하단 말이지. 회복용으로 쓰기에 이보다 좋은 재료가 없으니까.”
알렉스가 킬킬댔다.
과연.
이런 식으로 나오면서 시간을 끌겠다 이거군.
사람들의 생기를 쭉쭉 뽑아내는 이상 몬스터는 계속해서 살아날 테고.
결국엔, 이쪽이 마력이 고갈돼 지쳐 버릴 테니까.
정석적인 방법이다.
정석적인 방법이긴 한데…….
“안쓰럽네.”
“뭐?”
“고작 이런 걸 비장의 카드라고 들고 와서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꼴이 안쓰럽다고.”
재생? 회복?
그거야 할 틈도 없이 소거해 버리면 그만 아닌가?
진혁이 단검의 끝을 알렉스에게 향했다.
우우우웅!
한 점에 모이기 시작한 빛.
검은 강기가 걷히며, 눈부신 섬광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Lv2 ‘데이 라이트’가 발동됩니다!]
망막마저 태워 버리는 백색 기운에 몬스터들이 온몸을 마구 뒤틀었다.
“키에에에에!”
“케에에엑!”
괴로운 거겠지.
빛 속성 스킬은 발현되는 것만으로도 어둠 속성 몬스터에게 큰 피해를 줬으니까.
“쳇! 역시, 그걸 쓰는군!”
알렉스가 예상했다는 듯 혀를 찼다.
천유성과의 대결 영상에서 이미 봤었다.
한 점으로 압축시킨 마력을 일직선으로 방출시키는, 언데드에 있어 악몽과도 같은 바로 그 스킬.
그렇기에, 대비해 뒀다.
저 스킬이 발동한다면 그 즉시 산개하도록 말이다.
알렉스가 마력을 재분배했다.
언데드들의 뇌리에 지휘관의 명령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언데드들은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 뭐지?”
뭐긴.
“발바닥을 얼려 버렸으니 당연히 움직이지 못하는 것뿐이지.”
스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진혁은 보유하고 있는 스킬들로 몇 가지 조합을 짜 뒀다.
그중 하나가 광역 스킬인 ‘데이 라이트’와 움직임에 제한을 거는 ‘얼음 조형’을 이용한 것이었다.
‘데이 라이트’의 유일한 단점은 발동까지 소요되는 시간이다. 허나, 얼음 조형이라면 보완할 수 있을 터.
이걸로.
“체크 메이트다.”
진혁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바로 그 순간.
콰콰콰콰콰콰콰!
거대한 빛이 몬스터들을 집어삼켰다.
***
치이이익!
지면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
재생할 수 있는 세포 하나까지도 전부 증발해 버린 탓이다.
‘처음 써 봤지만, 기대 이상이군.’
진혁이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복사한 스킬들을 융합해 상위 버전의 새로운 스킬을 만들고.
그걸 조합해 전투에 최적화된 판을 짠다.
거기로부터 나오는 짜릿함이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반면.
“이, 이럴 수가…….”
알렉스는 지금 이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10분. 고작 10분만 버티면 끝나는 싸움이었다.
이곳에 있는 인간들이 모두 용해된다면, 상위 언데드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피의 결계’까지 사용한 언데드들이 일격에 쓸려 버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빌어먹을!”
척!
알렉스가 품 안에서 외과용 메스를 꺼냈다.
예리한 칼날에서 투명한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독이다.
아니, 절박한 건 알겠는데.
“진심이냐?”
네크로맨서가 근접전으로 덤벼 온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때.
알렉스가 손에 있는 메스를 냅다 집어던졌다.
정확하게 안면을 노리고 날아온 공격을.
카앙!
진혁이 일격에 쳐내 버렸다.
반으로 잘린 메스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실망인데. 기껏 한다는 생각이 도주였나?”
왜 무기로 시선을 끄나 했더니.
투척을 통해 잠깐이나마 주의를 돌리고 그사이 자신은 도망칠 계획이었던 모양이다.
알렉스의 몸 주위로 검은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인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수 스킬.
‘비틀린 틈.’
단거리 공간 이동을 위한 도주기였다.
스스스스.
연기가 점점 더 짙게 물들었다.
스킬이 발동되려는 것이다.
물론.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진혁이 아니었다.
“투척은…… 이렇게 하는 거야.”
목표와의 최단 거리를 파악하는 게 기본.
그러면서 상대가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빨라야 한다.
퍼억!
진혁의 손을 떠난 단검이 알렉스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끄아아악!”
묵직한 통증과 함께 스킬 발동이 취소되었다.
“어때, 눈높이 교육을 좀 해 줬는데. 이해가 좀 가?”
“쿨럭! 컥! 커어억!”
“아! 애써 대답하지 않아도 돼. 지금 단검이 박혀 있는 곳이 폐라서 숨 쉬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까.”
“끄으으으…… 사, 살려…….”
“다른 사람이 고통 받는 건 그렇게 즐겼으면서, 본인은 싫은 건가?”
그건 좀 불공평하지 않나?
진정한 네크로맨서라면 자기 고통도 즐길 줄 알아야지.
“커윽, 컥. 끄르르…….”
알렉스가 진혁의 신발을 붙잡았지만, 진혁은 그 애원을 무시했다.
“지금부터 네가 어떻게 죽을 건지 말해 줄게.”
인생 스포일러를 해 주는 거니 잘 들어라.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 대한 이야기니까.
“앞으로 한두 시간 동안 폐에 피가 천천히 찰 거야.”
사람의 목숨이라는 건 의외로 질기다.
어떻게든, 단 1초라도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게 전신에 있는 모든 장기들이 제 역할을 해 주거든.
“그리고 그 긴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폐에 피가 가득 차 질식사할 수 있을 거야.”
불에 타 죽는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방법 또한 가장 처참한 죽음 중 하나였다.
자신의 최후에 대해 들을수록, 알렉스의 얼굴은 점점 더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건…… 아…… 안 돼.”
“물론, 길게 고통 받지 않도록 해 줄 수도 있어. 네 스스로 마력 용해로의 가동을 멈춘다면.”
“……!”
“왜? 설마, 아직까지도 마인 협회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게 남아 있는 거냐? 어차피 죽으면 다 부질없을 텐데?”
최후까지 지조를 지키면 마인 협회에서 초상화라도 걸어 두고 1년마다 제사라도 지내 줄 줄 안다면 큰 오산이다.
알렉스의 가치라고 해 봐야 기껏해야 버림패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이런 식으로 위험한 일에 쓰다가 필요 없어지면 새로운 놈으로 갈아치우겠지.’
그러니 그런 놈들을 위해 충성을 다할 필요는 없다.
그냥 배신하고 편해지라고.
그편이 서로에게 좋을 테니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알……겠다. 약속. 쿨럭! 약속은…….”
“지킬 테니, 마력 용해로나 멈춰.”
“…….”
결국, 알렉스는 결심한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알렉스가 ‘마력 용해로’를 파괴합니다!]
[‘피의 결계’가 해체됩니다!]
저택을 옭아맸던 마력이 사라졌다.
동시에 손님들의 신음 소리 또한 잦아들었다.
“이제…… 이 빌어먹을 고통……에서 날 해방시켜 줘. 커억! 쿨럭! 쿨럭!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아.”
알렉스가 애걸했다.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표정은 더욱더 처절하게 일그러졌다.
아마도 폐부 깊숙이 달군 꼬챙이를 들쑤시는 느낌일 거다.
“미안하지만, 내가 살인을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말이지.”
“……뭐?”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한 법이니까, 차마 내 손으로 목숨을 끊을 수가 없더라고.”
“그, 그게 무슨 개소……리야.”
알렉스가 진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물론, 느려 터진 손으론 진혁의 바짓가랑이조차 붙잡을 수 없었다.
‘쓰레기에게 어울리는 최후군.’
아니, 1시간도 너무 짧다.
녀석이 지금까지 저질러 온 악행을 생각하면 말이다.
네크로맨서의 전직 퀘스트. 그걸 성공한 것만으로도 일말의 동정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가능하면 최대한 길고 고통스럽게 죽어라.
무고한 사람들로 인체 실험을 하고, 죽은 사람들을 능욕해 언데드로 만든 죄를 사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