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만렙 뉴비-58화 (59/653)

58화. 3층의 끝, 심장 없는 군대 (4)

절의 북쪽에 위치한 문.

그곳에서 강력한 마력이 느껴졌다.

대형 길드의 공격대는 아니다.

혼자 하겠다고 회담에서 못을 박아 놨으니까.

우우우웅!

끈적끈적 피부에 달라붙는 기분 나쁜 기운.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틀림없다.

네크로맨서, 정확히는 마인 협회에서 온 게 틀림없었다.

‘역시 포기할 생각이 없는 건가.’

완전히 꼬여 버린 마인 협회의 일정을 풀어내기 위해 캐드릭이 부하들을 이끌고 직접 이곳에 왔다.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간다.

“방송, 조금 있다가 킬 수 있으면 다시 켜겠습니다.”

진혁이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dead998: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고자가 아니라…… 갑자기 급방종이라니!

-백수 위에 트수: 형. 지금 시청자수 떡상하고 있는 거 안 보임? 물 들어오는데 노 저어야지.

-피자탕수육 존맛탱: ㄹㅇ. 100만 뷰튜버 각 세게 나왔는디.

-고인물 감별소: 이 중요한 타이밍에 방종을 때리는 비제이가 있다?

-새영언환: 최소한 몇 시에 다시 켤 건지나 알려줘.

시청자들은 이제 막 방송에 재미를 붙이고 진혁의 콘셉트에 익숙해지려 하고 있었다.

당연히 반발이 거셀 수밖에.

“몇 시에 다시 켤지는 나도 모르니까 알아서 들어오세요.”

-dead998: 이런 식으로 구독 알림 설정을 유도한다고?

-피자탕수육 존맛탱: 까칠 컨셉 오지게 잡으면서 챙길 건 다 챙기려 하네.

-새영언환: 이기적인 모습 좋다. 고인물이라면 그래야지ㅋㅋㅋ

-고인물 감별소: 한 번 낚여 준다. 보스 레이드 기대하겠음.

그 채팅을 끝으로.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첫 번째 방송이 끝났다.

정신없이 빠르게 올라가던 채팅창이 멈췄다.

“생각보다 피곤하네.”

진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BJ 생활 오래 하면서 방송은 꽤나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몇 십 명을 이끌고 하는 거랑 몇 만 명이 난리치는 건 레벨이 다르긴 다르다.

그래도 뭐 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처음부터 유명한 사람은 없었으니까.

이제 보는 눈이 사라졌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캐드릭과 놀아 줄 시간이다.

‘제발 등골 빠지게 열심히 준비했으면 좋겠군.’

성격이 살짝 꼬여서 그런가.

남이 열심히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게 그렇게 재밌더라.

그 대상이 쓰레기들이라면 더욱더 말이지.

***

절의 북문 ‘태화문(太和門)’.

내실로 가는 열쇠가 보관된 4층 석탑에 도달하기 위해, 수십 명의 네크로맨서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벌써 1시간 가까이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좀처럼 길이 열리지 않았다.

석상들의 방어벽이 워낙에 두꺼운 탓이었다.

“병력을 모아라! 한 점으로 돌파해야 한단 말이다!”

캐드릭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마력을 쏟아 붓고 있는데, 결과가 나오질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

이대로 질질 끌리다간 보스한테 가기 전에 네크로맨서들이 전부 탈진해 버릴 판국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듀라한을 가장 앞선에 세워! 방어력이 높은 놈들이 어그로를 끌어 줘야 된다!”

“저주도 걸고, 디버프 있는 거 다 퍼부어!”

[캐드릭이 Lv5 ‘시체들의 밤’을 발동합니다!]

[요한이 Lv3 ‘약체화’를 발동합니다!]

[세츠나가 Lv2 ‘피로’를 발동합니다!]

“케에에엑!”

“키이이!”

언데드 군대가 거칠게 포효했다.

대부분 스켈레톤 워리어나 아처들이었지만, 간혹 듀라한급의 중형 몬스터들도 보였다.

‘확실히, 보는 맛이 있네.’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 넣어 뒀던 팝콘과 콜라를 꺼냈다.

엄청난 규모가 서로 맞부딪치는 장관은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나 다수를 부리는 데 특화된 네크로맨서의 집단전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오오오!”

“쿠우우우!”

입구에서 쓰러뜨린 크기가 작은 석상들이 이곳엔 수백 기가 넘게 존재했다.

주먹과 다리를 휘두르던 그때와는 다르다.

갑주와 방패, 창으로 무장한 모습은 완전한 군대와 같았다.

바로 그때.

콰콰콰콰콰!

제1열이 격돌했다.

“크아아아!”

“그오오오!”

뼛가루가 날리고 바위 파편이 무너져 내린다.

서로 다른 군대.

하지만 상대를 쓸어 버리겠다는 목표만큼은 같았다.

피아를 식별하기 힘든 공방전이 이어졌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팽팽하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아주 미세하게, 허나 무시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호오. 설마 돌파하려나?’

의외로 네크로맨서들과 언데드 군대가 선전하고 있다.

마치 죽음을 각오한 채 배수진을 친 사람들 같다고 해야 할까?

독기 어린 눈에선 집념마저 느껴졌다.

“흐음…….”

그건 좀 곤란한데.

여기서 캐드릭이 열쇠를 얻는 건 별로 달갑지 않다.

물론, 열쇠 하나 얻는다고 해 봤자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번 레이드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나 하나만 족하니까.’

경쟁자는 일찍 제거해 버리는 게 답이겠지.

스윽.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한쪽이 압도적인 상황이라면 몰라도 둘이 엇비슷한 상황이라면.

살짝만…….

아주 살짝만 개입해도 팽팽했던 균형은 한순간에 무너지리라.

‘가장 아픈 곳부터 노려야겠군.’

어디를 찔러야 상대가 피눈물을 흘릴지는 이미 확인해 뒀다.

우우우웅!

진혁이 마력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그 순간.

전장에 새로운 변수가 끼어들었다.

“뭐, 뭐야?”

정신없이 흑마법을 사용하던 네크로맨서가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놀란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는 갑자기 측면에서 인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인간이 들고 있는 검에서 눈이 시릴 정도의 검강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쉴드를 펼쳐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는 확률이 1%라도 오른다.

순간, 네크로맨서의 몸 주위로 검은 막이 펼쳐졌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방어 스킬을 발동한 것이다.

물론, 그런 유리 한 장 따윈…….

있으나 마나였다.

“……어?”

서걱!

깔끔하게 잘려 나간 목에서 핏줄기가 뿜어졌다.

목을 잃은 남자가 몇 걸음인가 비틀대다 그대로 고꾸라졌다.

네크로맨서들이 진혁의 존재에 대해 눈치 챈 그로부터 몇 초가 흐른 뒤였다.

그것도 하필이면 진혁이 마력 소모를 아끼기 위해 검강을 거둔 타이밍에.

운명의 장난처럼, 네크로맨서들의 눈엔 고작 단검 하나 들고 설치는 불나방으로 보였다.

“기습이다!”

“플레이어인가? 몇 명이지?”

“혼자야. 주위엔 아무도 없어!”

“어이가 없네. 이 정도 수를 상대로 혼자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

기껏해야 날벌레 한 마리쯤.

바로 정리하고 다시 전투에 집중하면 그뿐이다.

“죽여라!”

짜증 섞인 명령과 함께 스켈레톤 아처들의 활이 진혁을 향했다.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독, 냉기, 화염.

각기 세 가지 속성을 띤 마법 화살이 동시에 발사됐다.

그러나 화살이 명중하기 바로 직전.

쿠쿠쿠쿠쿠!

[Lv2 ‘얼음 조형’이 발동됩니다!]

[‘별의 가호’가 발동됩니다!]

격이 다른 마력이 솟구쳤다.

눈꽃 문양이 새겨진 얼음 기둥들이 날아온 화살들을 모조리 박살냈다.

자욱한 얼음 가루들이 흩날렸다.

“크으윽.”

“무슨 놈의 냉기가…….”

네크로맨서들이 어금니를 깨물며 뒷걸음질 쳤다.

전신에 솜털이 전부 일어날 정도로 지독한 냉기다.

게다가 하늘에서 쏟아진 빛으로 인해 몇몇 상위 언데드들이 통제에서 벗어났다.

“크아아!”

듀라한들이 미친 듯이 도끼를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박살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이 미친놈들이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냐?”

“다시 사념 제어에 집중해. 신성력 때문에 이 녀석들 전부 이성을 잃었어!”

“사, 살려 줘!”

순식간에 질서와 통제가 무너져 버린 전장.

이건 캐드릭에게 보내는 선전포고다.

‘초인종을 거하게 눌러 줬으니까. 어디 손님 접대 한 번 제대로 해 보라고.’

***

가장 후방에서 모든 병력을 지휘하던 캐드릭은 천국에 있다가 지옥으로 가는 듯한 기분을 제대로 느끼는 중이었다.

“저 망할 놈은 나타나도 꼭 최악의 타이밍에 나타나는 것이냐!”

승기는 이미 잡았다.

조금만 더 밀어붙인다면, 4층 석탑 안에 숨겨진 열쇠를 손에 넣을 수 있을 터.

목표까지는 단 한 걸음만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가면을 쓴 플레이어로 인해 모든 계획은 완전히 진흙탕 속에 빠져버렸다.

“캐, 캐드릭 님. 3번째 거점까지 박살났습니다.”

“일부러 거점들만 노리는 게 틀림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스켈레톤이나 듀라한 정도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습니다.”

언데드 몬스터를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둔 4개의 거점.

간이 마력 공급이 가능하게 만들어진 소중한 중개소가 하나둘씩 무너지고 있었다.

“으아아악!”

캐드릭이 괴성을 내질렀다.

정말로 열이 받는 건 단순히 아픈 곳을 찔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이곳엔 엄청난 자원을 투자해 만든 데스 나이트가 무려 세 기나 존재했다.

검강을 사용하는 플레이어와 보스 몬스터까지 처리하기 위해 갖고 온 비밀 병기였다.

문제는 상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 그걸 이용한다는 점이었다.

“이쪽이야 이쪽!”

실컷 거점을 유린하던 진혁이 이번엔 석상들 쪽으로 갔다.

그리고 있는 힘껏 무언가를 불렀다.

바로 석상들 중에서 가장 강한 마력을 지닌 대형급 종.

‘모아이 석상’이었다.

“그렇게 느려 터져서야 날 잡을 수 있겠어?”

진혁이 상대를 도발한 뒤, 이번엔 언데드 한복판으로 파고들었다.

“그오오오!”

“그아아!”

얼굴만 있는 거대한 석상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언데드 몬스터와 네크로맨서들의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으아악! 왜 이쪽으로 와, 이 미친놈아!”

“피해! 깔렸다간 즉사다!”

비명과 고함이 오고가는 바로 그 순간.

모아이 석상이 낙하했다.

콰아아앙!

운석이 충돌한 것처럼 지면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밑에 깔린 언데드 몬스터들과 네크로맨서들이 어떻게 됐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물론.

이 일을 일으킨 당사자인 진혁은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이야, 아프겠네. 아무리 뼈가 튼튼해도 이건 못 버티겠어. 칼슘 과다 섭취정도론 해결이 안 되는 레벨이구만.”

골다공증 걸린 것 마냥 스켈레톤들의 뼈가 아주 가루로 변해 있었다.

역시나 일반 언데드로는 안 된다.

모아이 석상을 막으려면, 데스 나이트를 투입하는 수밖에 없겠지.

캐드릭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를 노리자니 병력 전체가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고, 그렇다고 방치하자니 이런 식으로 천천히 말라 죽을 테니까.’

어느 쪽을 선택하든 녀석에게 밝은 미래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한 캐드릭이 진혁을 향해 소리쳤다.

“이…… 이 자식이. 대체 우리랑 무슨 원수를 졌기에 이토록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게냐?”

“응?”

“우리는 너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다. 헌데, 왜 이렇게 하는 일마다 초를 치냔 말이다!”

아.

그 이야기였나.

진혁이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여긴 내가 먼저 침을 발라 놓은 장소거든.”

그런데 너희들이 와서 침 발라 놓은 사탕을 삼키려 하니, 당연히 고춧가루를 뿌려야지.

“게다가 마인이라는 놈들이 무슨 초를 지니 뭐니를 따지고 있어?”

던전 안에서 ‘하하, 이쪽 자리는 제가 먼저 맡아 놨습니다.’, ‘어이쿠 그러시구나. 제가 몰랐네요. 사냥 끝나면 자리 예약 좀요.’ 뭐, 이런 걸 원하는 건가?

그런 게 어디 있냐?

먼저 먹는 놈이 임자고 언제든지 뒤통수 때릴 수 있는 게 이 바닥인데?

약자면 죽어서 땅에 묻히고 강자는 살아서 탑을 오른다.

그것이 시련의 탑이 허락한 단 하나의 규칙이었다.

“징징대지 말고 불만 있으면 힘으로 말해.”

진혁이 캐드릭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