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오대세가(五大勢家) (2)
[스킬 ‘검마제왕보(劍魔帝王步)(S)’를 획득하셨습니다!]
[검마제왕보]
입수 난이도: S-
내용: 오대세가 중 하나인 남궁세가의 무한보와 마교의 검마의 독문무공 ‘검의 무덤’이 융합된 무공으로, 의(義)와 협(俠)을 추구하는 정파와 패도를 추구하는 마교의 이질적인 성격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사용 시 이동 속도가 70%만큼 상승하며, 마력을 발에 집중할 경우 공격 수단으로도 활용이 가능합니다.
이동기와 공격력.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스킬을 손에 넣었다.
‘패시브형인 얕은 호흡과 연계하면 이제 장거리를 이동하더라도 효율적으로 체력을 사용할 수 있겠지.’
게다가 체중과 마력을 실을 수 있게 됐으니 같은 공격을 하더라도 위력이 훨씬 더 커질 것이다.
그야말로 ‘무림’ 본래의 정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스킬이었다.
진혁이 스킬의 상세 내용을 다시 한번 눈으로 훑었다.
‘본래라면, 20층은 가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멍청한 놈들이 제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와 준 덕에 몸보신 한번 든든하게 했다.
반면.
“크윽!”
진혁이 웃고 있는 걸 본 남궁현은 어금니를 부서져라 깨물었다.
열 받는 거겠지.
상대는 여유로운데 자신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으니까.
자존심에 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바로 그때.
“괜찮은 거냐? 현아.”
남궁현 옆으로 남녀 세 명이 다가왔다.
서른 중반의 남자는 남궁세가와 함께 오대세가 중 하나인 황보세가 소속된 황보군악이었고.
“현 오라버니가 진땀 흘리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네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여자는 독의 명문으로 알려진 당문의 당소하였다.
“저런 놈을 상대로 왜 이렇게 고전하는 거야?”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 보이는 남자는 제갈세가의 제갈천이었다.
“빌어먹을. 나 혼자서도 충분했어. 너희들 도움 따윈 필요 없단 말이다.”
“네 실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야. 하지만 장문인께서 내리신 명령은 척살이 아닌 회유라는 사실 또한 잊지 마라.”
“황보군악 오라버니 말씀이 맞아요. 순순히 저희와 함께하겠다고 한다면, 굳이 싸울 이유는 없죠.”
“하지만……! 저 녀석은 우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우리가 탑에서 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고!”
남궁현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여유롭게 웃고 있던 세 사람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뭐라고?”
“그게 사실인가요?”
“저 녀석이 우리에 대해서?”
뒤쪽에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남궁현과 진혁의 대화까진 엿듣지 못했는데.
설마, 그런 말을 했을 줄이야.
만약 남궁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보통 큰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여러 유망한 플레이어들과 접촉해 왔었으나, 자신들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던 자는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응? 탑에 사람이 산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무리 서울 집값이 로켓 달고 천장을 뚫었다지만, 이런 곳에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정신 나간 사람이 있다고?”
정작 당사자인 진혁은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자식이…… 조금 전에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않았냐?”
“응 내가?”
“그래. 네놈이 분명!”
“아! 네 몰골이 탑에서 1만 년은 보낸 노숙자 같다는 말을 하긴 한 것 같은데. 혹시 그 얘기였어?”
“노, 노숙자라고? 지금 그거 나한테 한 말이냐?”
“아니면 아닌 거지. 괜히 발끈하지 마. 억하심정 갖는 거 추해 보이니까.”
“…….”
스릉!
남궁현이 다시 검을 뽑았다.
“결정했다. 회유고 나발이고 간에 우선 네놈의 혓바닥부터 잘라내기로.”
말에 배어 있는 끈적한 살기.
남궁현이 자세를 잡았다.
부우우우웅!
순식간에 검이 뻗어 왔다.
빠르다.
그리고 매섭다.
마치, 독이 오른 뱀이 낙엽을 스치는 것처럼 궤도를 예측하기 힘든 검격이 점과 선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러나 진혁은 남궁현의 공격을 너무나 가볍게 피했다.
‘역시나, 이런 놈들의 행동 패턴은 뻔하다니까.’
도발에 이렇게 쉽게 걸려서 앞으로 어쩌려는 건지.
게다가 녀석 스스로도 말하지 않았는가?
혓바닥을 잘라내 주겠다고.
아무리 과정이 복잡한들, 목표만 알고 있다면 피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나도 꽤 좋아해. 술래잡기 하는 거.”
진혁이 이죽거렸다.
“쥐새끼 같은 놈!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수 있는지 보자!”
[남궁현이 Lv11 ‘무한보(無限步)’를 발동합니다!]
순간, 완전히 달라진 움직임.
남궁현이 남궁세가 대표 보법을 발동한 채 따라붙었다.
콰콰콰콰콰콰!
검의 궤도도.
검에 실린 내공도 그대로다.
사람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그저 발놀림이 달라졌을 뿐.
허나, 그 단순한 차이 하나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었다.
“왜? 이제 미꾸라지처럼 도망가지 못하겠나? 그렇게 큰 소리 치더니 꼴이 우습게 됐구나.”
남궁현이 진혁의 뒤를 잡았다.
이제 무방비 상태인 상대의 볼 속으로 날붙이를 쑤셔 넣어 줄 시간이다.
물론, 저 건방진 혓바닥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Lv1 ‘검마제왕보(劍魔帝王步)’가 발동됩니다!]
한줄기 바람이 일어났다.
***
시간이 지날수록 남궁현의 얼굴이 점점 더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처음엔 방심했다.
입만 산 놈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적당히 가지고 놀다가 찍어 눌러 줄 생각이었다.
20층과 4층 사이에는 그만큼 거대한 격차가 있었으니까.
무림인과 햇병아리 플레이어 사이에는 결코 넘지 못하는 벽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첫 번째 교전 이후 상대를 너무 우습게봐서는 안 된다며 생각을 고쳤다.
‘전력을 다해 찍어 누른다.’
가장 자신 있는 무한보와 고혼일검을 사용한다면, 세 호흡 안에 승기를 잡을 수 있으리라.
그래,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데.
갖고 있는 최고의 절기를 모조리 구사했음에도.
대체 어째서!
상대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한단 말인가?
압도적인 보법의 차이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처럼 다가왔다.
‘무슨 이런 괴랄한 움직임이…….’
직선적이면서도 중간 중간 엇박자로 섞여 있는 변칙적인 발놀림은 도무지 예측이 가질 않았다.
틀림없다.
적어도 무한보 보다 몇 수는 위의 상승 무공이다.
“현아. 열 받은 마음은 알겠는데, 적당히 놀아라. 혹여 상하게 했다간 뒷일이 골치 아파지니까.”
“현 오라버니! 빨리 끝내세요. 벌써 5분이 다 돼 간다고요.”
“아예 반격할 엄두도 못 내는 놈을 상대로 시간 끌 것 없잖아?”
같이 있던 다른 문파의 동료들이 한 마디씩 건넸다.
두 사람의 눈엔 그저 남궁현이 압도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놀고 있는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젠장.
이쪽은 똥줄 빠져라 움직이는 중이라고!
남궁현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헛손질을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실수인 척 죽여 버릴까?
공을 들여야 하는 생포와는 달리 살초만 사용할 수 있다면…….
반격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보법으로 도망만 다니는 놈쯤이야 얼마든지 요리할 방법이 있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남궁현이 ‘태화검기(太華劒氣)’를 발동합니다!]
파츠츠츠!
허리춤에 찬 검이 눈이 시린 빛을 뿜어냈다.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검기였다.
동시에.
“그거, 실수하는 거야.”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진혁으로부터.
정확히는 진혁이 갖고 있는 한 쌍의 검으로부터.
[쌍룡검이 주인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오싹!
‘……!?’
남궁현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탓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크오오오!”
“그아아아!”
날카로운 고음이 끼어들었다.
삼합회 플레이어들이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우측에서 좀비 웨이브입니다!”
“수는 약 1천. 3분 거리입니다!”
정신없이 싸우는 사이, 첫 번째 웨이브가 코앞까지 밀려왔다.
이제 더 이상 노닥거릴 시간 따윈 없다.
“운이 좋았군.”
황보군악이 진혁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좀비 웨이브가 조금만 늦게 왔다면, 승부는 났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그래, 덕분에 살았네. 우리 소공자님.”
진혁 또한 반쯤 뽑았던 쌍검을 집어넣었다.
“어머나, 저분 말하는 것 좀 보세요.”
“너보고 살았단다. 푸하하! 꼴에 주둥이는 살아가지곤. 안 그러냐. 현아?”
“어? ……어어…….”
남궁현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대체 뭐였지?
방금 느꼈던 그 엄청난 살기는.
등골까지 얼어붙을 정도의 흉흉한 기운 때문에 아직까지 손발이 벌벌 떨렸다.
무림에서 느꼈던 그 어떤 것과도 다른 이질적인 마력.
확실한 건 하나다.
방금 제대로 싸웠으면…….
‘죽었어.’
그래.
틀림없이 죽었다.
남궁현은 그 사실을 깨달았다.
안타깝게도 제갈천은 그러지 못했지만.
“어이. 다음엔 기막힌 타이밍에 끼어들어 주는 좀비도 없을 테니 까불지 말고 알아서 기어라. 그렇잖아? 옛날부터 우리 속국으로 살아온 너희는 우리가 요구하면 넙죽 엎드려서…….”
제갈천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콰앙!
안면이 으스러지며 입안에 있던 옥수수를 모조리 뿜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미안, 방금 뭐라고 했나?”
진혁이 손에 묻은 피를 닦으며 환하게 웃었다.
***
“끄아아악!”
제갈천이 양 손으로 안면을 감쌌다.
완전히 주저앉은 콧대.
손마디 사이로 피가 울컥울컥 새어나왔다.
“이 자식이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냐!”
“크윽!”
황보군악과 당소하가 순식간에 각자의 무기를 움켜잡았다.
반면, 남궁현은 얼어붙은 채 꼼짝도 하지 못 했다.
“계속 싸우는 건 상관없는데, 괜찮겠어? 싸우면 그쪽이 꽤나 불리할 텐데?”
어느새 삼합회를 상대하느라 지쳤던 유연화와 이태민 그리고 테레사와 천유성까지 모두 체력과 마력을 회복한 상태였다.
“크오오오!”
“캬아아악!”
물론, 이 와중에도 좀비들은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히고 있었고.
“……아무래도 대화는 나중에서 이어서 해야겠군.”
황보군악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장은 우리 거니까. 들어올 생각하지 말고 다른 곳을 알아봐.”
“그런 쓰레기 같은 곳은 이쪽에서 사양한다. 게다가 거점 정도는 이미 정해 놨어.”
“호오. 거점을 확보해 뒀다고?”
“그래, 4층에서 가장 좋은 곳이지.”
황보군악이 힐끗 뒤쪽을 바라봤다.
경기장 바로 앞에 있는 대형 마트.
역시, 저길 고른 건가.
“나쁘진 않네.”
대형 마트는 사방이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데다 입구가 좁아 방어가 수월하다.
특히나 방어하는 인원이 몇 백 명이나 된다면 더욱더.
내부에는 통조림과 물을 포함한 식료품이 가득할뿐더러 수많은 잡화들로 인해 장기간 농성을 펼치기에 최적화된 장소였다.
세상이 멸망하고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다면 가까운 마트로 가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저곳엔 치명적인 약점이 한 가지 있다.
아무도 모르는 최악의 단점이.
‘이거 4층 공략이 아주 흥미진진해질 것 같네.’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건방진 무림의 떨거지들을 포함해 거점 방어전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지금 막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