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죽은 자들의 모태(母胎) ‘펜다리엘’ (1)
[시련의 탑에 새로운 영상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진혁이 올린 영상으로 인해 시련의 탑 게시판이 또 한 차례 뒤집어졌다.
-냥냥펀치: 와. 저 대형 길드가 고작 좀비 하나 막지 못해서 이 사달을 낸 거?
-타이완 이즈 넘버원: ㄹㅇ 진심 민폐 쩌는 거 보소. 그냥 해도 만만찮은 걸 아주 지옥 난이도로 만들어 버렸네. 보니까 히든 보스를 알고 있는 플레이어 자체가 없다며? 뭔 수로 깨냐 이걸?
-Line을 잘 서야 돼: 대체 얼마나 방심했으면 2웨이브를 못 버티냐. 진심 역겹다 수준.
-홍차맛떡볶이: 조금 전에 여왕 선제 공격하려는 대형 공격대들도 전멸했다고 함. 진짜 아까운 유망주들인데. 하아. 저 ㅂㅅ들이 삽질해서 애꿎은 목숨을 잃었네.
욕설이 봇물 터지듯이 이어졌다.
하지만, 정작 중국 쪽 대형 길드들은 입 한번 뻥끗할 수 없었다.
삼합회는 전멸했고 무림에 소속된 자들은 플레이어가 아니었기에 반박할 수 있는 영상을 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진혁이 계획했던 그대로 흘러갔다.
-백수 위에 트수: 그래도 강진혁 플레이어가 보스 어그로 잘 끌어 줘서 대량 학살은 막을 수 있었음.
-킹갓엠페러: 진짜 강 형 없었으면, 작은 거점에 있는 사람들 모조리 죽었을 듯.
-David H: 그건 좋은데, 다섯 명이서 여왕이랑 싸우는 게 말이 됨?
-조선제일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진혁은 게임 최강국에서 인정한 S급 플레이어다. 믿어 볼 만함.
-스벅매니아: 강진혁 치면 연관 동영상 쭉 나오니까 정주행 한 번 하고. 진짜 믿고 보는 카드임.
-새영언환: 이럴 때 언노운은 안 나오나? 그 플레이어랑 강진혁 플레이어랑 같이 싸우는 거 보고 싶은데.
대조적으로 진혁에 대한 평가는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갔다.
랭커들조차 죽어 나가는 상황 속 오직 진혁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탓이다.
“오빠. 진짜 판을 너무 크게 벌린 거 아니야?”
유연화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아는 진혁은 언제나 상식을 깨 버리고 다른 길을 찾긴 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판 자체를 엎어 버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뒤통수가 얼얼하다.
“형, 이곳에 보스 몬스터가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안 거예요?”
현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이태민도 마찬가지였다.
“뭐, 그냥 이것저것 시험해 보다가 발견했어.”
“…….”
이것저것 시험해 보다가 발견했다니.
말은 가볍게 해도 숨겨진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도전과 시도를 했을 것이다.
“마트를 부순 것도 진혁 씨가 한 거 맞죠?”
테레사도 궁금했던 걸 물었다.
“글쎄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부서지진 않았겠죠?”
하지만, 진혁은 빙그레 웃을 뿐 말머리를 돌렸다.
“잡다한 건 아무래도 좋다. 그래서, 여왕을 상대할 방법은 있는 거냐?”
마지막으로 천유성이 가장 중요한 걸 언급했다.
그렇다.
판을 벌리고 모든 대중의 시선을 끄는 것까진 좋았으나,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 없다면 이 모든 게 자살 행위밖에 되질 않는다.
그리고 당연히.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있어.”
진혁은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하진 않을 것이다,
허나 얻는 보상을 생각한다면, 위험을 무릅쓸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건 아니라서 다행이군.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
“방법을 알려 주면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다.”
“나중에 가서 말 바꾸면 안 돼. 이번에는 네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거든.”
“……말해 봐라.”
천유성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굉장히 어려운 임무를 맡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려운 건 맞다.
단지 녀석이 예상하는 것과 다른 종류의 어려움일 뿐이지.
“녀석들에게 한 방 먹이려면, 상당한 규모의 스킬이 필요해. 문제는…….”
“문제는?”
“이게 꽤 비싼 거라서 말이야.”
“설마…….”
천유성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웃기지 마라. 내가 왜 네놈에게 내가 모은 코인을 줘야 한다는 말이냐? 아니, 그것보다 왜 나한테만 코인을 뜯어내려고 하는 거고!”
부유하다는 평가를 받는 테레사나 꽤나 잘 나가고 있는 이태민과 유연화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
“유연화는 쌍룡검을 줬고. 테레사 씨는 이전에도 갖고 있는 코인을 넘긴 적이 있어. 뭣보다 짠돌이처럼 굴지 마. 얼마 전에 올린 영상 조회수 대박난 거 알고 있으니까.”
“빌어먹을. 그걸 본 거냐.”
“응, 봤지. 너답지 않게 꽤 신선하고 재밌게 만들었던데?”
제목이 ‘옆집 할머니도 던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주는 검술’이었지 아마?
검성이 직접 지도해 준다는 말에 어그로 하나는 제대로 끌렸다.
물론, 어그로만으로는 대박이 날 수 없다.
그러나 천유성이 지닌 압도적인 실력 덕분에, 영상은 당일 ‘명예의 전당’에 오를 정도로 대박이 날 수 있었다.
“안면 모자이크 편집을 알려 준 녀석을 죽여야겠군.”
“너무 뭐라고 하진 마. 나니까 대번에 알아본 거니까.”
녀석 나름대로 얼굴은 안 팔리려고 어설프게 편집 기술을 사용했지만, 추혼검 특유의 검술까지 숨길 순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눈을 속일 순 없지.
추혼검이라면 나 역시 눈을 감고도 구절을 줄줄 읊어 줄 수 있는 경지였으니까.
“……개인 퀘스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했던 거다.”
“아무렴. 어련하시겠어.”
검성으로서 성장하기 위해선 다수의 인정을 받는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했다.
과거에는 플레이어 수가 워낙 적어 그 기준이 낮았지만,
전 세계의 모든 이목이 집중된 지금은 몇 십 몇 백이 아닌 백만 단위의 인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머니 두둑한 거 알고 있으니까. 팀을 위한 차원에서 기부해.”
“얼마나 말이냐?”
“10만.”
정확히 천유성이 벌어들인 코인 수익과 일치하는 양이다.
액수를 들은 천유성의 표정은 똥 씹은 것처럼 변해 버렸다.
미래를 위해 알토란 같이 모아야 할 시드를 몽땅 날리게 생겼으니 그럴 수밖에.
“너도 코인은 많지 않나? 나한테 뜯어내지 않아도…….”
“그렇긴 한데, 나도 10만 코인은 아깝거든.”
뭐 하러 내 지갑에 있는 걸 쓰나?
눈앞에 든든한 돈줄이 있는데?
“빨리 내놔 시간 없어.”
진혁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 거점의 선장은 나고.
너는 이곳의 선원이다.
무엇보다 밖에 있는 강대한 적에 맞서기 위해선 선장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지.
“……넌. 진짜로 편하게 죽진 못할 거다.”
[플레이어 천유성 님으로부터 100,000코인을 받으셨습니다.]
천유성이 어금니를 깨물면서도 갖고 있는 코인을 모두 토해냈다.
바로 그때.
쿠웅―! 쿠웅―! 쿠웅―!
저 멀리서.
지축을 흔드는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놈들이 오고 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
필드형이나 미궁형 등 특수한 층을 제외한다면, 탑의 각 층에는 그 층을 지배하는 보스 몬스터가 존재한다.
‘강함’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정의되는 절대자들.
하지만, 그들의 실력은 반드시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층에 비례하지 않는다.
따분하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혹은 자신이 갖고 있는 층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실력에 비해 낮은 층을 고집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펜다리엘 역시 그들 중 하나에 속했다.
모든 게 멸망해 버린 아포칼립스.
죽은 자들만이 배회할 수 있는 이 땅이야말로 그녀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였다.
“키에에에!”
“크아아아!”
셀 수 없이 몰려 있는 좀비들이 거리 한가운데서 포효했다.
그러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는 않았다.
바로 그때.
저벅.
펜다리엘이 한 걸음 앞으로 걸었다.
치이이익……!
아스팔트 위로 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시독(屍毒)에 의한 ‘부식’ 효과다.
일반적인 좀비들도 어느 정도 시독을 갖고 있지만, 펜다리엘이 갖고 있는 시독은 차원이 달랐다.
접촉하는 건 물론 근처에 있는 공기까지도 태워 버릴 수 있었으니까.
“고작. 이 수준인가. 인간들은.”
펜다리엘의 입이 가로로 찢어졌다.
전신이 피로 물든 끔찍한 외형.
창백한 피부와 허리까지 오는 붉은 머리카락은 악몽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끄으으으…….”
펜다리엘 앞에 있던 남자 한 명이 신음을 내뱉었다.
이안 스미스.
유럽의 대형 길드 ‘판테온’에 소속된 랭커인 스미스는 진혁이 업로드 한 동영상을 본 직후, 공격대를 꾸려 여왕을 사냥하려 나섰다.
모두가 과거 [시련의 탑]을 1년 이상 플레이해 본 건 물론, 최근 유적의 레이드의 경험까지 있는 실력자들로만 추려서.
그러나 결과는 이 모양이다.
55명으로 구성된 공격대는 여왕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하고 모조리 썩어 버린 시체가 되었다.
“무슨 이런 터무니없는 괴물이…….”
그 누가 오더라도 이 괴물을 이길 순 없다.
애초에 이런 녀석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치에 모순을 자아냈다.
스미스가 마지막으로 여왕을 올려다봤다.
공허하고 차가운 절대자의 눈을.
콰콰콰콰콰콰!
그리고 그것이 유럽의 기대주로 촉망받던 랭커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인간. 빼고. 죽여라. 모조리. 녀석은 내가 직접 죽이겠다.”
펜다리엘이 끝없이 도열해 있는 좀비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키에에에!”
“케에엑!”
좀비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질주했다.
3m 크기의 강화형 좀비들이 선두에서 탱킹을 담당했고, 팔이 늘어나거나 머리가 기형적으로 긴 특수 좀비들이 뒤를 따랐다.
모두 웨이브의 후반에서야 볼 수 있는 녀석들이다.
여왕을 깨운다는 특수한 상황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 싸울 일은 없었겠지.
하지만, 그 강력한 적들이 모두 한 곳에 모였다.
콰콰쾅!
콰아앙!
입구를 지키고 있던 식물들이 모조리 박살났다.
바위 식물과 자폭 식물들이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막으려 했으나, 채 몇 분도 막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겨우 세 번째 웨이브에서 막을 수 있을 만한 종류가 아니었으니까.
“끝났군.”
멀리서 전투를 지켜보던 펜다리엘은 확신했다.
아주 잠시 뒤엔 건방을 떨던 인간이 자신 앞에 끌려 나올 것이라고.
그러나 경기장을 습격한 좀비들로부터 들려온 전음은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네 명의 인간이 얼음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던 인간은 보이질 않습니다.]
“인간들이 갇혀 있다? 얼음 안에?”
스스로를 얼음 속에 집어넣었다는 말인가?
자신에게 고문당하다 죽는 게 두려워서?
그것도 아니면 설마…….
‘다른 꿍꿍이가 있다?’
펜다리엘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좀비들을 거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일부러 도발을 한 것이다.
그 이유는 뭘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쪽의 전력을 약화시기키 위해서.’
철저하게 힘을 분산시킨 다음.
‘……나를 사냥하려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펜다리엘은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빙하조형(氷河造形) 제3식(式), ‘빙옥만화경(氷獄萬化境)’이 발동됩니다!]
검게 일그러진 세상이 하얀색으로 덧칠해졌다.
그렇게.
우우우우웅!
얼음 유리로 만들어진 수많은 벽들이 여왕과 그녀를 호위하던 좀비들을 완전히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