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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만렙 뉴비-87화 (88/653)

87화. 산제물의 의식 (1)

진혁이 내뱉은 산뜻한 말과 함께.

[‘썩어 가는 심장’이 격노합니다!]

[‘마왕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저주는 당신이 죽기 전까지 지속됩니다.]

쿠쿠쿠쿵!

전신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젠장. 더럽게 아프네.’

진혁은 비명을 속으로 삼켰다.

당연한 말이지만, 심장에 각인을 새기는 과정에 ‘익숙해진다’라는 말 따윈 없다.

매번 할 때마다 신선한 고통을 준다는 뜻이다.

몇몇 변태들은 이런 고통들도 하앍거리며 즐기곤 하던데, 그건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을 저버린 놈들 이야기고.

가능하면 육체적인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게 사람의 본능 아니겠나?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다.

이 저주를 받는 것조차 이번 층을 클리어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니까.

[3분간 모든 스탯이 90%만큼 하락합니다.]

[무리하게 전투를 할 경우 탈진 상태에 이르게 되며, 최악의 경우 기절하거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남은 시간: 0h:2m:59s]

[상위 신격의 강한 개입으로 인해, 히든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히든 퀘스트]

난이도: A

내용: 타인의 생명을 함부로 빼앗는 타락한 광신도들은 ‘악인’입니다. 그들을 1명 죽일 때마다 적응형 스탯이 +0.1만큼 상승합니다. 단, 교주를 죽일 경우 적응형 스탯이 +30만큼 증가합니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신격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생긴 개연성의 오류.

당연히 시스템은 그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저주를 받은 플레이어에게 그만큼 합당한 보상을 해 주게 되어 있었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내용이었다.

전부 다 예상했던 내용이었는데.

딱 하나.

보상으로 주는 스탯이 기존과 달라졌다.

‘설마, 적응형 스탯을 줄 줄이야.’

진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보너스 스탯을 0.1씩 줬는데, 지금은 그 조건이 무려 적응형 스탯으로 바뀌었으니까.

정상적인 방법으론 구할 수 없는, 오직 탑의 정상을 봤던 플레이어에게만 주어지는 스탯.

그걸 계속해서 쌓아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진혁의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손에 넣어야 된다.’

보상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노른자위가 나왔는데, 실패 따위란 있을 수 없다.

반드시, 반드시 성공시키고야 말겠다.

진혁이 모처럼 의지를 불태웠다.

그때였다.

욱씬!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저주의 여파가 세긴 세네.’

왼쪽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의식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당장은 이 장소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적어도 3분 동안은 제대로 싸울 수 없을 테니까. 왕국으로부터 받은 ‘흐릿한 기척’ 또한 이 시간 동안은 사용할 수 없겠지.

“미안한데, 무승부로 하면 안 될까?”

진혁이 멋쩍은 미소를 띠운 채 브레이커를 올려다봤다.

“크오오오!”

쿵! 쿵! 쿵! 쿵!

브레이커가 망치를 든 채 달려왔다.

하여간 귀여운 맛이라곤 조금도 없구나.

하는 수 없지.

진혁이 재빨리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데다 언제 막다른 벽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미로였으나, 진혁은 단 한 번도 멈추거나 머뭇거리지 않았다.

‘여기서 왼쪽.’

‘그리고 그 다음에서 오른쪽.’

적어도 이 병동의 지리는 앞마당처럼 훤히 꿰뚫고 있다.

눈을 감고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조리 외우고 있다는 뜻이다.

좁은 틈을 헤치고 통로들을 돌아. 그렇게 도착한 곳은 약품 저장 창고였다.

‘아슬아슬하게 늦진 않겠어.’

브레이커가 도착하기 전까진 몇 초밖에 남지 않았다.

진혁이 재빨리 창고 안으로 들어가 가장 안쪽에 있는 캐비닛으로 몸을 날렸다.

철컹!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틈에 몸을 끼워 넣었다.

[특수 필드 ‘캐비닛’에 들어갔습니다.]

[은신 효과가 발동됩니다.]

정신병동에서는 특정 장소에서 사냥꾼들로부터 은신할 수 있는 장소들이 있다.

지금 숨은 곳도 그중 하나였다.

완벽하게 숨을 순 없지만, 약간의 운이 따라 준다면 충분히 시선을 따돌릴 수 있을 터.

“후웁.”

캐비닛 안에 숨은 진혁이 숨을 멈췄다.

……물아일체(物我一體).

물아일체!

떠올려라!

‘내가 곧 캐비닛이고 캐비닛이 곧 나다!’

스스로를 세뇌하고 주위에 있는 배경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이건 귀신이 와도 찾지 못할 것이다.

바로 그때.

쿠웅! 쿠웅!

브레이커가 케비넷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진혁을 찾기 시작했다.

당황하지 말자.

‘나는 이미 캐비닛 그 자체니까.’

겁먹을 이유도. 들킬 이유도 없다.

그런데.

“…….”

캐비닛에 있는 틈 사이로 브레이커의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진혁은 애써 시선을 피했다.

‘……잘못 본 거겠지.’

잘못 본 거여라. 제발.

“…….”

붉은 눈동자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는 녀석의 호흡과 썩은 입 냄새가 틈 사이로 느껴질 정도였다.

‘젠장. 안 통하네.’

뻘쭘한 상황에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지금은 수치심 따위를 느끼고 있을 때가 아니다.

부우우웅!

브레이커가 망치를 크게 휘두르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진혁은 캐비닛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브레이커가 멈칫했다.

플레이어가 캐비닛에 들어가거나 나왔을 경우 사냥꾼에게 생기는 0.2초 남짓의 딜레이.

그 틈을 이용해 진혁은 캐비닛의 뚜껑을 열고 들어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완벽하게 타이밍을 맞추지 않으면, 뼈째로 으깨지는 운명에 처할 테지만.

썩은 물인 진혁에게 있어 이 정도쯤은 숨 쉬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크아아아!”

분노할 대로 분노한 브레이커가 괴성을 질렀다.

[브레이커가 Lv11 ‘육탄돌파’를 발동합니다!]

콰콰콰콰콰콰!

이번엔, 거대한 망치가 캐비닛을 통째로 박살냈다.

그러나 진혁의 움직임이 한 박자 더 빨랐다. 망치가 캐비닛을 완전히 으깨 버렸을 땐 이미, 진혁이 캐비닛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간 뒤였다.

욱씬! 욱씬!

격하게 움직이니 심장 부위가 더욱 쑤셨다.

일부러 장애물이 많은 곳을 골랐지만, 언제까지나 저 무지막지한 공격을 피할 순 없었다.

이쯤 난리를 피웠으면 슬슬 올 때도 됐는데…….

좀 빨리 좀 와라.

이렇다 죽겠다.

진혁이 거리를 벌리며 툴툴거렸다.

바로 그때.

우뚝.

거짓말처럼 브레이커의 움직임이 멈췄다.

무언가를 경배하기라도 하는 듯 망치를 양손으로 잡고 무릎을 꿇은 자세.

동시에, 차가운 한기가 엄습했다. 등골을 타고 소름이 오소소 일어났다.

‘드디어 온 건가?’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

진혁이 뒤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과연, 산제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간이로구나.”

엄청난 수의 광신도를 이끌고 온 교주의 모습이 보였다.

***

포로가 된다는 건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그것이 산제물이 될 운명이라면 더욱더.

“우, 우린 다 죽을 거야.”

“이런 빌어먹을 곳에 오질 말았어야 했어. 말았어야 했다고!”

“그깟 보상에 눈이 멀어서……. 나,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은 정말로 몰랐단 말이야.”

포로로 잡혀 온 플레이어들이 절규했다.

자신들이 했던 안일한 선택과 장밋빛 꿈을 저주하면서.

고유 능력과 스킬마저 봉인당한 상태였기에, 탈출한다는 선택지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으음. 곰팡이가 좀 많아서 그렇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숙소네. 룸서비스로 라면 정도만 가져다주면 딱이긴 할 텐데.’

진혁은 침대에 누워서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포로로 잡힌 덕에 마왕의 저주로부터 약화된 체력과 마력이 전부 회복되었다.

완벽하게 제 컨디션을 되찾았다는 소리다.

게다가 놈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본거지 깊숙한 곳에 끌어들여 준 덕분에, 귀찮은 관문들과 함정들을 돌파하지 않아도 됐다.

적응형 스탯을 얻기 위한 악인 처단 퀘스트 역시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고.

뭐 하러 힘들게 적들을 찾아다니나?

곧 있으면 알아서 전부 한 자리에 모여 줄 텐데?

다 차려진 밥상에 준비해 둔 몇 가지 ‘조미료’만 첨가한다면, 교주 녀석이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자신만만해 하는 놈들 뒤통수치는 게 제일 흥미진진한 법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이런 좁고 냄새나는 감옥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바로 그때.

“닥쳐라! 시끄럽게 굴면 그 녀석을 가장 먼저 형틀에 묶어 고만한 뒤, 괴물들의 먹이로 던져 버리겠다!”

간수가 플레이어들이 있는 철장을 향해 으름장을 놨다.

살벌하게 생긴 고문 기구를 휘두르는 건 덤이다.

삽시간에 주위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당연한 일이다.

가뜩이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고문으로 보내고 싶은 사람을 없을 테니까.

“조용히 시켰습니다. 이제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간수장이 고개를 조아렸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돈되자 진혁의 감옥 앞으로 두 사람이 다가왔다.

한 명은 차가운 표정의 교주였고.

다른 한 명은 검은색 두건을 쓴 남자였다.

“직접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로군. 강진혁. 맞나?”

이자는……?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풍기는 특유의 마력은 익숙하기 짝이 없었다.

대충 어디서 온 놈인지 짐작이 간다.

‘요즘 잠잠하다 싶더니, 마인 협회 쪽에서 온 놈이었나.’

그러고 보니 3층에서 만났던 멜레나가 마인 협회의 목적이 성물을 모아 마왕을 부활시키는 거라고 했었지.

5층의 광신도 교주와 마인 협회.

마왕의 부활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는 이상 쿵짝이 잘 맞을 수밖에 없다.

‘탑의 보스와 접촉할 정도라면, 협회 내에서도 꽤나 높은 위치에 있는 놈이라는 뜻인데…….’

진혁이 남자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날카로운 인상의 백인 남성.

검은색 턱수염과 푸른 눈동자가 꽤나 잘 어울렸다.

‘과연 외모만큼이나 실력도 있을지 궁금하군.’

‘탐식의 눈’이 대상의 상태창을 꿰뚫었다.

그런데.

띠링!

[상태창 열람에 실패했습니다.]

[대상에겐 Lv14 ‘정신 결계’가 발동된 상태입니다.]

‘염시’나 ‘간파’는 물론, 심지어 ‘눈’까지 막을 수 있는 결계.

‘이래서 얼굴을 내비친 거였구만.’

자신감 있게 나타난 것부터. 여유 있는 말투까지.

준비해 둔 한 수가 있으니 이토록 당당했던 것이다.

허나 상관없다.

진혁이 주머니 속에 넣어 뒀던 ‘하얀색’ 단약을 쥐었다.

힘을 주자 단약이 과자처럼 바스러졌다.

[흰색 단약을 사용했습니다.]

[단약의 효과로 인해 스탯 중 하나를 2배로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속 시간은 10분입니다.]

올릴 건 당연히 ‘적응형’ 스탯이다.

원래 흰색 단약은 교주와 싸울 때를 대비해 준비해 뒀던 거지만.

어차피 히든 퀘스트로 인해 추가적인 적응형 스탯을 얻을 수 있게 된 이상, 지금 쓰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다.

마인 협회의 고위급들이랑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자주 오는 게 아니었으니까.

[적응형 스탯이 10 → 20으로 상향되었습니다.]

[Lv4 ‘탐식의 눈’이 대상을 간파합니다.]

역시.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레벨 차이가 무지막지하게 나는 엘리스나 펜다리엘 급이면 몰라도.

고작 플레이어 따위가 이걸 막을 순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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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호센벨트

성별: 남

나이: 41세

레벨: 38

힘 19 민첩 25 체력 18 마력 28 사념 80

보유한 스탯 포인트: 0

보유한 코인: 30,855

직업: 원탁의 기사

고유 능력: 수호자의 영역

스킬: Lv14 ‘정신방벽’, Lv10 ‘단죄의 검’, Lv10 ‘브리튼의 가호’, Lv9 ‘기사의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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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이 주르륵 나타났다.

진혁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호오.’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물이 나타났다.

원탁의 기사라는 직업은 오직 마인 협회의 최상위 간부들만이 가질 수 있었으니까.

다시 말해.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은 ‘기사’의 칭호를 갖고 있는 녀석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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