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만렙 뉴비-108화 (109/653)

108화. 랭커 섭외. ‘시련의 탑을 오르다’ (1)

시청율 40%를 자랑하는 초인기 프로그램 ‘시련의 탑을 오르다’.

이 프로그램은 각성자 협회와 각종 길드의 관계자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연령층에서 사랑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만큼 알짜배기란 뜻이다.

‘반드시… 성공해야 돼.’

김다운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뷰튜브니 파프리카TV니 하면서 사람들이 TV보다 인터넷 방송을 더 즐겨보는 지금. 방송국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시청률 10%만 나와도 대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시련의 탑의 도래로 인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정부와 각성자 협회의 대대적인 지원 하에. 시련의 탑과 관련된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일생의 한 번뿐인 천금 같은 기회.

KDS는 이 기회를 어떻게든 살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 희망의 불씨를 이어갈 수 있게 된 히든카드가…….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다.

“여기 민트초코가 아주 실하네요. 아주 치약 맛이 제대로 살아있는데요? 설마, 진짜로 넣은 건가?”

강진혁.

한국의 16번째 S급 플레이어이자 수많은 화제를 낳고 있는 인물.

솔직히 말해, 섭외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상대는 흔쾌히 미팅에 나와 줬다.

‘제발… 너무 터무니없는 출연료를 요구하진 않아야 할 텐데.’

김다운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저기… 강진혁 플레이어님?”

“예?”

진혁이 빨대에서 입술을 뗐다.

“전화상으로 말씀드렸다시피 내일 오후7시. 생방송 토크쇼에 나와 주시면 되는 건데요.”

“아. 알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제 소개와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에 대한 썰을 풀어주면 된다. 이거였죠?”

“맞아요. 주요 활약 씬이나 기타 장면들은 강진혁 플레이어님의 뷰튜브에 있는 영상들을 재편집해 함께 틀어드릴 예정이고요. 강진혁 플레이어님은 그 중간중간에 코멘트를 덧붙여 주는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에요.”

한 마디로 영화 같은 데서 감독이 작품 코멘트를 달아주듯 똑같이 해 달라 이거잖아?

뭐, 민감한 부분이야 적당히 얼버무리면 될 테고.

이후에 Q&A시간도 좀 갖다보면 방송 분량은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대충 해야 할 일은 들었고.

“그럼, 보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그렇다.

방송에 출연해서 인지도를 올리는 것도 목적 중 하나였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출연료다. 이것 때문에 김다운의 제안을 날름 수락했지.

진혁이 생긋 웃자, 김다운의 얼굴에 긴장한 빛이 스쳤다.

“저희가 B급인 분들의 경우엔 1회에 1,000만원을. A급인 분들은 5,000만원을 드리고 있어요. 그리고 S급인 분들은 5억으로 책정이 되어 있긴 한데, 원하신다면 조금 더 올려드릴 순 있습니다.”

5억.

단 한 번의 출연으로 받을 수 있는 것치곤 파격적인 액수였다.

하지만, 진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액수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이번에 필요한 게 돈이 아니어서 그렇지.

“혹시, 부족하신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닌데… 저는 출연료로 돈 대신 마정석을 지급받고 싶습니다.”

“예?”

“마정석에서 마력을 뽑아내야 할 일이 있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방송국에서 마정석 관련 사업에 지분투자를 한다고 들었는데, 거기서 출연료를 떼 주셨으면 합니다.”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잠시 국장님에게 전화를 해도 될까요? 지급 방법은 제 수준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서요.”

……걸렸다.

“물론이죠. 편하게 하고 오세요.”

진혁이 느긋하게 소파에 기댔다.

그러자 김다운이 핸드폰을 든 채 쪼르르 커피숍 밖으로 나갔다.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 있겠지.’

거절 따위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이쪽에서 무엇을 요구하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음료를 홀짝인 지 얼마나 됐을까?

전화를 하러 나갔던 김다운이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보였다.

“일이 잘 안 풀린 겁니까?”

“아…. 마정석 건은 승인이 떨어졌어요. 방송이 끝나는 즉시 지하에 있는 저장고에서 정산해 드릴 거니. 그때 받아 가시면 될 거예요.”

“다행이네요.”

“하지만, 저… 한 가지 더 말씀드려야 할 게 있는데요.”

김다운이 곤란한 듯 말끝을 흐렸다. 무언가 일이 꼬인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듣고 있습니다.”

“내일 방송에 다른 분도 약속이 잡혔나 봐요. 그래서 혹시 그분과 같이 출연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저 말고 다른 사람도 온다고요?”

분명….

내일은 올 사람이 없어서 곤란하다고 하지 않았나?

“예. 죄송합니다. 윗선에서 이야기가 된 거라 저도 미처 파악하지 못 했던 부분이었어요.”

“우선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어설프게 둘러대는 것보다 솔직하게 말해주는 걸 선호한다는 걸요.”

“네?”

김다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든 표정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역시….

갑자기 새로운 게스트가 추가된다니.

아무리 관료제식 일처리가 개판이어도 그렇지. 그렇게 일이 주먹구구식으로 처리 될 리가 없지.

그렇다는 건.

“누굽니까? 저와 같이 온다는 사람.”

“……그, 그게….”

답답하네. 지금 칼자루가 누구한테 쥐어져 있는지도 깨닫지 못 하고 있는 건가?

이렇게 인재가 없으니 방송국이 망해가고 있는 거 아냐?

“좋습니다. 말해주지 않겠다면 제가 빠지도록 하죠.”

진혁이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다급해진 건 김다운 쪽이었다.

“호, 홍덕표 대표님. 예! 그분이에요! 홍대표님이 강진혁 플레이어님을 섭외했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꼭 오겠다고 하셔서….”

홍덕표라면?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기억이 났다.

무도회장에서 까불었던가 흑역사를 제대로 썼던 ‘흑운 길드’의 마스터.

기자회견을 위한 밑거름으로 사용된 비운의 주인공.

그래. 그 녀석이었지.

‘나와 함께 방송에 나오겠다고 방송국 쪽에 압력을 행사했다 이건데….’

홍덕표가 기를 쓰고 오겠다는 걸 보면, 또 무언가 멍청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여간, 세상엔 한 번 혼쭐이 난 걸로는 정신을 못 차리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했으면 안 되는 걸 모르나?

‘……설마?’

진혁은 곧바로 그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만만한 걸 보니 홍 대표 말고도 같이 오는 사람이 있나 보네요.”

무도회 이후 홍덕표가 크게 실력을 올렸을 확률은 없다.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적이나 미궁이 있긴 하지만, 그것들이 아직까지 공략됐다는 메시지는 나오질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녀석은 그럴 그릇이 못 된다.

그렇다면.

‘쓸 만한 실력자를 섭외해 뒀다는 뜻이겠지.’

그것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예. 맞아요. 해외 대형 길드의 랭커 몇 분도 함께 온다고 들었어요.”

역시, 이렇게 된 거였군.

요즘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는 자신과 해외 유명 랭커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을 수 있는 기회.

방송국 입장에선 굳이 홍덕표의 압박이 아니었더라도. 포기하기 힘든 유혹이었으리라.

대한민국은 인맥이라는 이건가.

재밌네.

진혁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럼, 저도 게스트 겸 해서 지인들 좀 불러도 될까요?”

***

다음 날 저녁.

홍덕표는 약속 시간보다 1시간 먼저 방송국 앞에 도착했다.

“드디어 이 날이 왔군.”

상기된 얼굴에선 기대감이 뚝뚝 묻어 나왔다.

그동안 당했던 수모를 되갚아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당연히 흥분될 수밖에.

‘비명을 지르며 밤에서 깨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밖에서 밥을 먹더라도 강진혁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속이 뒤집힐 정도로. 홍덕표에게 있어 무도회 날은 떨쳐내기 힘든 악몽이었다.

허나, 그것도 이젠 끝이다.

이번에야 말로 당한 것의 1000배를 되갚아줄 시간이다.

그때였다.

“젠장, 한창 망상에 빠져있느라 흥분상태인 건 알겠는데, 당신 때문에 우리가 이런 코딱지만 한 땅까지 와야 돼?”

“강진혁은 위에서도 주의 깊게 보는 인물이니 어쩔 수 없죠. 그건 그렇고. 홍 대표님. 보수는 잊지 마세요. 우리를 이 촌구석까지 불렀으니 대가는 확실히 받아갈 겁니다.”

홍덕표 옆에서 다소 이국적인 외모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살모사처럼 날카로운 인상을 갖고 있는 남자와 긴 흑발이 허리까지 오는 여자다.

두 사람은 한국에 온 게 불만인 듯 불평을 내뱉었다.

그러자.

마지막 세 번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둘 다 조용히 해라. 기자들까지 와 있는데, 목소리를 높였다가 행여 길드의 이미지가 실추되기라도 하면…….”

잠깐의 쉼표.

이어진 것은 감정 따윈 없는 통보였다.

“너희 둘 다 내손으로 직접 죽일 거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아, 알겠습니다.”

“……예.”

기계적이라고 해도 좋을 무미건조한 말에, 두 사람의 불평소리가 쏙 들어갔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이번 복수를 위해 [중화 길드]의 S급 랭커가 무려 셋이나 왔다.

세 사람만으로도 어지간한 길드를 쓸어버릴 수 있는 실력자들로만 추려서.

허나, 개개인의 무력보다 더욱 중요한 건. 중국 최강의 길드가 직접 나섰다는 점이다.

길드에 소속된 플레이어만 해도 수만 명.

게다가 그 정점에 서 있는 남궁천은 걸어 다니는 보스 몬스터라는 별명이 붙어 있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무력을 자랑했다.

이 정도로 화려한 진용이 갖춰진 이상. 솔플을 고집하는 일개 플레이어는 감당할 수 없을 터.

‘어디, 개쪽 한 번 시원하게 당해봐라.’

홍덕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떡으로 친 놈은 다시 떡으로 쳐줘야 한다고.

안 그래도 이번 무대의 화룡점정을 위해 기자단까지 부른 상태였다.

잠시 뒤 있을 대대적인 참교육은 역시 보는 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테니까.

그런데 홍덕표가 낄낄거리던 바로 그때였다.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우글우글 모여 있어?”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모습의 남자가 나타났다.

진혁이었다.

왔구나!

홍덕표가 두 눈을 번뜩였다.

흥미가 동한 건 중화 길드에서 온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가장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는 랭커를 마주했으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중화길드의 리더가 진혁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을 건네려던 찰나.

“네가 강진혁….”

“중국산 안 사요.”

진혁이 단칼에 말을 끊었다.

“뭐, 뭐라고?”

리더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런 미친! 지금 이분들이 누군 줄 알고 함부로 지껄이는 거냐! 중화 길드에 소속된 랭커란 말이다!”

홍덕표가 다급하게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아.

저 양반이 왜 이렇게 당황하나 했는데.

“믿고 있던 게 이 녀석들이었어?”

이것 참.

굉장한 실력자를 섭외했다고 하길래. 어디 유명한 랭커라도 데려왔나 했더니.

중국산 양산품을 데리고 왔을 줄이야.

문양이나 복장으로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건 기대 이하였다.

‘세 명이라…….’

진혁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중화 길드에서 온 플레이어들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뭐한 능력치와 고유능력들이다.

천유성 선에서 전부 정리가 가능한 수준이랄까.

‘중국 쪽도 영 기대 이하네.’

그나마 남궁천이 직접 오면 그럭저럭 싸워볼 맛은 날 거다. 물론, 그것도 과거 시련의 탑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잘 성장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됐습니다. 홍 대표님. 제가 말하도록 하죠.”

리더가 홍대표를 만류했다.

기자들을 신경 쓴 탓이겠지. 얼굴은 분노로 달아올라 있는데, 참으려고 하니 아주 속에서 천불이 날 거다.

“강진혁 플레이어. 그래. 자신감이 넘치는 건 좋아. 그럴 만한 일을 해냈으니까. 하지만, 혼자서 대형 길드를 상대할 수 있다곤 생각하지마라.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우리 중화를.”

“음. 솔직히 말하면 혼자서도 충분할 것 같긴 한데.”

힘으로 찍어누르는 건 재미가 없지.

상대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것.

그걸로 찍어 눌렀을 때가 가장 짜릿한 법이다.

그나저나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부우우웅!

도로에 검은색 외제차가 나타났다.

롤스로이스 팬텀.

강남에서도 흔히 보기 힘든 최고급 차량이었다. 구름 위를 흐르듯 다가온 롤스로이스는 이내 방송국 앞에서 멈췄다.

“뭐, 뭐지?”

“누가 또 오기로 한 건가?”

“여기서 저 차를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기자들의 시선이 차에 쏠렸다.

곧이어, 운전기사가 밖으로 나와 정중하게 문을 열었다.

절도 있는 동작이다.

단순히 문을 연다는 행위만으로도 기품이 우러나올 정도로 말이다.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차 안에서 나오는 이들로 인해.

“헉?”

“이, 이럴 수가!”

“당장 여기로 다 모여! 카메라 다 갖고 오라고! 당장!”

방송국 앞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경악에 찬 탄성을 내뱉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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