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달빛이 머무는 축제 (1)
[1성급 결계 ‘광학 굴절’을 배우시려면 3개의 룬어를 배치해야 되는데…….]
그거야 쉽지.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혁이 순식간에 룬어를 그렸다.
어깨에 새겨진 ‘달의 각인’이 순간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1성급 결계 ‘광학 굴절’을 습득하셨습니다.]
[쿠키백 이벤트 당첨!]
[750,000코인이 환불됩니다!]
[다음 결계를 배우는 데 도전하시겠습니까?]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에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는 방식.
일종의 주입식 교육처럼, 진혁의 머릿속에 광학 굴절에 대한 새로운 내용들이 스며들었다.
‘호오. 광학 굴절을 이런 식으로도 쓸 수 있던 거였나?’
진혁의 입가에 흥미롭다는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99%를 알고 있더라도 1%의 신선함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능력을 배울 가치는 충분할 터.
이래서 안 해 본 직업을 선택하는 게 좋다.
정말 오래간만에 탑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
‘확실히 정식으로 습득하는 게 더 완벽하게 결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긴 하네.’
진혁은 곧바로 다음 결계를 오픈했다.
[1성급 결계 ‘어두운 발밑’을 배우시려면…….]
이번엔 함정형 결계인가.
마찬가지로 진혁은 설명이 채 중간을 향하기도 전에 룬어를 그린 뒤 배치해 버렸다.
기본적인 술식에 관한 힌트는 들을 필요조차 없다.
이 정도쯤이야.
자면서도 할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지.
‘하긴, 겨우 1성급짜리니까.’
심드렁하게 중얼거린 진혁이 다음 과제를 받았다.
그렇게 도전을 하고 코인을 환불받는 무수한 과정이 이어졌다.
결계사를 선택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야 간신히 풀 수 있을까 말까 한 난제였지만.
진혁에게는 기본 중의 기본일 뿐이었다.
시간이 흘렀고.
결계의 성(成)을 표시하는 숫자가 높아졌다.
[2성급…….]
[3성급…….]
빠르게 점멸하는 상태창.
난이도가 오를수록, 오히려 결계를 습득하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고인물이 서서히 감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만 좀 해, 이 미친놈아!]
[우린 흙 파서 장사하냐!]
[어떻게 된 놈이 코인은 한 푼도 안 쓰고 우리 걸 있는 족족 죄다 빼먹고 있어! 이 어린놈의 시키가……!]
한계치를 넘은 시스템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상도덕이라는 걸 완전히 무시해 버리는 행동.
750,000개나 되는 코인을 줬다 뺐다 무한 반복하니 당연히 열이 받을 수밖에.
하지만 진혁은 시스템의 경고를 가볍게 무시해 버렸다.
“이야. 이 집이 아주 맛집이네. 이건 뭐,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호구라고 놀릴 수준이겠어.”
손해가 나든 말든 그건 너희들 사정이고.
이쪽은 정해진 규칙 하에 정당하게 권리를 행사하는 것뿐이다.
진혁이 속도를 더욱 높였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결계들이 모조리 주파 당했다.
그리고 마침내.
[117번째 결계를 습득하셨습니다.]
배울 수 있는 결계를 모조리 클리어해 버렸다.
고작 2시간 30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
시련의 탑 6층.
탑 밖에서의 일을 모두 끝마친 진혁은 엘프들의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한가해서 좋긴 한데, 이래서야 완전히 아포칼립스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네.’
원래도 플레이어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긴 했으나, 10층의 공략 소식이 퍼진 뒤로는 아예 유령 숲이 되어 버렸다.
하긴, 10층에 입장할 수 있는 건 10층을 클리어한 플레이어의 허락을 받은 자들뿐이었으니까.
당연히 모두들 눈에 불을 켜고 언노운을 찾으려고 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정확히는…….
‘언노운이라고 믿고 있는 천유성을.’
진혁의 얼굴이 음흉하게 변했다.
이미 천유성이 언노운이라는 떡밥을 커뮤니티 구석구석에 뿌려 둔 상황.
어디까지나 심증에 불과한 글이었지만, 그럴듯한 가설들을 첨가해 둔 덕에 낚인 물고기들이 제법 많았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천유성 주위엔 수많은 기자들과 길드 관계자들 그리고 비뚤어진 팬들로 인해 8월 부산 해운대 뺨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을 것이다.
이걸 위해서 일부러 10층 레이드 영상에서 천유성의 존재를 쏙 빼놨지.
‘나중에 사과라도 하든지 해야겠어.’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진심을 담아 미안하다고 하면 아마도 이해해 줄 거다.
아마도…….
아마도 말이다.
진혁이 머릿속에서 천유성에 관한 일들을 지워 버렸다.
지긋지긋한 칼쟁이 녀석이 그동안 해 왔던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복수 축에도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생각 대신, 진혁은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귀염둥이 애완동물을 꺼냈다.
아장아장 걸어 나온 고구마가 열심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뭐든지 신기해 보이겠지.
“초록 모기!”
“그래그래. 이게 풀이라는 거야.”
진혁이 흐뭇한 표정으로 풀냄새를 맡고 있는 고구마를 바라봤다.
검은색 고구마가 꼼지락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언젠간 하얀 눈이 오는 층에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군고구마는 겨울에 어울리는 법이었으니까.
행복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고구마가 독버섯을 입에 넣으려고 하기 전까진 말이다.
“잠깐! 그거 먹는 거 아니야!”
“빨강 모기!”
고구마가 오물오물 광대버섯을 씹어 먹었다.
말려 봤자 소용없다.
도리질을 치며, 죽어도 안 뺏기겠다고 하는데 무슨 수로 말리겠는가?
물론, 고대종이 독버섯 하나 먹는다고 탈이 나진 않겠지만…….
“후우.”
진혁이 복잡한 심정이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부모들이 애한테서 한 시도 눈을 떼면 안 된다고 하는 모양이다.
한바탕 난리 후, 진혁은 고구마와 함께 숲을 거닐었다.
남은 시간은 약 3시간.
시간 안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그렇게 익숙한 숲과 나무를 지나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둘은 만나기로 했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빌어먹을 엘프들 같으니.’
제 시간에 맞춰 도착했건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실비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천년을 넘게 산다고 한두 시간정도 늦는 건 여백의 미 정도로 생각하는 건가?
그 시간 동안 거꾸로 메달아 놓아도 시간 약속을 우습게 볼 수 있을지……. 그걸, 시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혁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다.
신선놀음이나 하는 것들한테 시간의 소중함을 논해 봤자 이쪽만 손해다.
‘이참에 호텔에서 마무리하지 못했던 거나 해야겠어.’
원래 엘프들의 마을에서 들어간 뒤 하려고 했었는데.
기왕 시간이 빈 거 지금 처리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다.
진혁이 곧바로 상태창을 활성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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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강진혁
성별: 남
나이: 27세
레벨: 35
힘 20 민첩 20 체력 20 마력 80 간극 100 행운 10 적응형 78
보유한 스탯 포인트: 15
보유한 코인: 127,558
직업: 룬의 해석사
고유 능력: ‘융합(融合)’, ‘검의 무덤’, ‘별의 가호’, ‘아누비스의 심판’, ‘혈마기(血魔氣)’, ‘만다라(曼茶羅)’ ‘1초 무적’
스킬: Lv6 ‘불의 원소’, Lv5 ’탐식의 눈’, Lv4 ’교감’, Lv5 ‘염혼의 낙인’, Lv4 ‘독식’, Lv4 ‘얕은 호흡’, Lv8 ‘빙하조형(氷河造形)’, Lv4 ‘데이라이트’, Lv2 ‘거인의 손아귀’, Lv3 ‘추혼검(追魂劍)’, Lv1 ‘이중첩자’, Lv1 ‘진태청화랑심법(眞太淸花郞心法)’, Lv2 ‘검마제왕보(劍魔帝王步)’, Lv1 ‘흐릿한 체취’, Lv1 ‘정신방벽’, Lv1 ‘천상의 선율’, Lv1 ‘이세계 식당’
결계: 배운 결계의 숫자가 너무 많아 ‘접어두기’ 상태로 전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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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차게 꽉 차 있는 내용들.
이 모든 것들이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를 증명해 주는 결과물이었다.
‘결계 종류는 워낙 많으니 저런 식으로 표시되는 것 같고.’
중요한 건 바위 거인을 잡아서 얻은 스탯 포인트를 분배하는 거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지금까지는 주로 마력을 올려 왔지만, 이제 부턴 조금 변주를 줘야 한다.
‘한번에 4개 층을 건너뛰었으니 11층부턴 다른 스탯의 밸런스도 맞춰줄 필요가 있겠지.’
특히 체력.
패시브인 ‘얕은 호흡’과 시너지를 내려면 체력 스탯은 올려 두는 편이 좋았다.
이후에는 전투가 길어지거나 혹은 난전으로 갈 일이 더욱 많았기 때문이다.
[힘이 20 → 22로 상승합니다.]
[민첩이 20 → 22로 상승합니다.]
[체력이 20 → 31로 상승합니다.]
다른 것도 올리되, 체력에 비중을 크게 싣는 쪽으로.
이렇게 스탯 분배가 완료되었다.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
고인물로서의 경험과 빼곡히 채워지는 스킬들. 거기에 최초 클리어를 통한 막대한 스탯 보상까지.
두근! 두근! 두근!
진혁의 심장이 빠르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감히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에, 흥분감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그래.
‘앞으로도 가장 먼저 앞서나가겠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오직 최선의 과정을 통해 최고의 결과를 창출할 것이다.
그걸 위해 탑의 정상을 봤던 거였으니까.
그리고.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탑의 정상을 보지 못할 테니까.’
다른 누구도 안 된다.
세상에 단 한 명.
이 탑을 끝까지 오를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뿐이다.
진혁이 다시 한번 전의를 다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 일찍 오셨네요!”
수풀 너머에서 단발머리에 뾰족한 귀를 갖고 있는 엘프가 나타났다.
레인저인 실비아였다.
진혁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일찍 오셨네요?”
일찍 오셨네요라고!?
“왜, 왜 그러세요?”
“내가 여기서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요?”
“네? 그, 그게 저도 잘은…….”
실비아가 작게 고개를 도리질 쳤다.
하아.
너 잘 걸렸다.
“이거 보여요? 하도 오래 기다리다가 내 몸에서 버섯이 자라난 거?”
“아……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조용히 해요! 뭘 잘했다고 큰소립니까 지금! 예!? 뭣보다 그리고 그걸 먹다가 우리 애가 배탈이 났다고요!”
진혁이 손가락으로 고구마의 입을 가리켰다.
“빨강 모기!”
고구마의 입가엔 먹다 남은 광대버섯 부스러기가 매달려 있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말이었지만, 속사포처럼 몰아치는 진혁의 말에 실비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완전히 혼이 쏙 빠진 듯 입술이 덜덜 떨렸다.
경험 없는 초짜 레인저 놀려먹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100년 묵은 능구렁이와 갓 태어난 노란 삐약이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해야 할까?
결국, 실비아는 30분 정도 늦게 온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그, 그런…… 죄, 죄송해요. 저는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렇게 오래 기다리고 계셨을 줄은 몰랐어요.”
“앞으론 조심 좀 합시다. 예?”
“네 네! 다음부터는 꼭 제 시간에 맞춰 올게요.”
실비아가 빠른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고분고분해진 모습에 진혁의 기분이 다소 풀렸다.
스트레스를 푸는 덴 역시 겁먹은 뉴비를 놀리는 만한 게 없다.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늦은 겁니까?”
“아. 사실 축제 관련해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바빴어요.”
“하긴, ‘늪지 무화과’를 모으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죠.”
진혁의 말에, 실비아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 그런 건 또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예요?”
어떻게 알긴.
예전에 마을에 갔다가 영구 추방까지 당한 적이 있으니 알고 있지.
그때도 그 과일들 모으느라 엘프들의 등골이 휘었던 기억이 난다.
“어디서 주워들었습니다.”
대충 둘러댄 진혁이 숲을 향해 몸을 돌렸다.
“외, 왼쪽으로 가야 마을이 나오는데…….”
쯧쯧.
이것도 엘프라고.
“이쪽 길이 훨씬 더 빨라요.”
실비아가 손을 뻗었지만, 진혁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앞장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