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 (3)
[긴급 지원 요청합니다! 이 괴물을 저희만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가……!]
[리커창 공대장이 맞서고 있지만, 사,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보급 부대. 측면에서 기습을 받고 있습니다. 적의 수는 적은데…… 강해요!]
[이대로라면…… 얼마 못 가 전멸합니다! 즉시 추가 지원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일.
영상과 함께 수백 개의 상태 메시지가 쉬에화의 눈앞을 어지럽혔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쉬에화가 떨리는 목소리를 삼키지 못하고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펼쳐지는 광경은 자신들의 계획이 모조리 박살나는 걸 보여 주는 거울이었으니까.
갑자기 하늘에서 나타난 뱀파이어에 의해, 숲의 지형이 모조리 새로 그려지고 있었다.
제2 공대장 리커창이 있는 곳이었다.
이변을 느낀 제1 공대장, 텐챠오가 이쪽으로 빠르게 오고 있었지만 쉬에화는 직감했다.
이미 이번 임무는 돌이킬 수 없게 망가져 버렸다는 걸.
으득.
어금니가 갈리는 소리가 텐트 안에 울려 퍼졌다.
이렇게 된 이상…….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엘프 포로들에 버금가는 성과를 올리는 수밖에 없다.
쉬에화가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죽여야 한다.
바로 이 남자를.
중화 길드의 앞길을 막는 적을 죽인다면, 남궁천 님도 이번 일을 넘어가 주실 것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쉬에화가 Lv9 ‘독안개’를 사용합니다!]
후욱!
순간, 회색빛 연기가 텐트 안을 가득 메웠다.
호흡기를 통해 대상의 사지를 마비시키는 독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우우우웅!
거침없이 뻗어나가던 연기는 진혁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정확히는 그 주위로 펼쳐진 반투명한 벽 앞에서.
“결……계라고?”
“독공을 쓴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 당연히 이 정도 대비는 해 뒀지.”
이미 ‘탐식의 눈’을 통해 상대에 대한 정보 정도는 파악해 뒀다.
궁지에 몰리면 어떻게 나올지도 훤히 예상이 갔고.
남은 건…….
“두 분은 밖에서 나머지 놈들을 상대해 주세요. 5분 정도만 버텨 주면 그 뒤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진혁이 엘프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그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실비아와 레인저가 텐트 밖으로 나갔다.
A급들은 부관과 함께 이곳에서 떠났으니, 크게 위험한 일은 없을 거다.
다시 고개를 돌린 진혁이 쉬에화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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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쉬에화
성별: 여
나이: 25세
레벨: 28
힘 16 민첩 26 체력 25 마력 33 내공 57
보유한 스탯 포인트: 0
보유한 코인: 51,558
직업: 독술사(毒術士)
고유 능력: ‘천독(千毒)’
스킬: Lv9 ‘독 안개’, Lv8 ‘중급 암기술’ Lv8 ‘독기 주입’, Lv7 ‘해독’, Lv7 ‘극독 추출’, Lv6 ‘호신 강기’, Lv5 ‘독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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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 조건: 이독제독(以毒制毒). 즉, 쉬에화가 사용한 독을 더 강한 독의 조합으로 해독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녀가 갖고 있는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단, 쉬에화가 보유한 독 중 가장 강한 독을 해독할 경우 그녀의 고유 능력을 복사할 수 있습니다.]
독으로 독을 제압한다라…….
복사 조건을 다시 한번 곱씹은 진혁이 피식 웃었다.
내용은 간단해 보여도 사실 굉장히 터무니없는 조건이다.
독을 전문으로 다루는 적에게 독으로서 우위를 점하라는 뜻이었으니까.
십중팔구는 시도할 생각조차 못 하겠지.
하지만.
그건 탑에 관해 잘 모르는 평범한 놈들의 이야기고.
‘나라면 가능해.’
독에 대해 통달한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탑의 정상까지 오르면서 독을 잘 다루는 놈들을 여럿 만나 봤었다.
쉬에화와는 아예 격이 다른, 진짜 놀라울 정도의 독술을 구사하는 고수들을.
그렇기에 이 정도 복사 조건 정도는 그리 어려운 축에 속하지도 못했다.
‘기왕이면 고유 능력을 복사하는 쪽으로 해야겠군.’
스킬들도 나쁜 건 아니었으나, 역시 가장 좋은 건 ‘천독(千毒)’ 능력을 손에 넣는 거다.
그러려면 우선 적당히 상대를 긁어 줄 필요가 있겠지.
“그나저나 독술에 조예가 깊다는 말을 들었는데, 다 헛소리였나 봐? 하급 결계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걸 보면.”
“지금…… 제 실력이 수준 이하라는 말인가요?”
진혁의 말에, 쉬에화의 분위기가 한층 더 살벌해졌다.
좋아.
미끼를 덥석 물었다.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내가 기대를 너무 했나 싶어서. 이 정도면 혼자서도 중화 길드 전체랑 붙어도 해 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살짝 든 정도랄까?”
“감히…… 또다시 그런 시건방진 말을 지껄이다니. 좋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놀아보죠.”
쉬에화가 독 안개를 흩어 버렸다.
동시에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쉬에화가 고유 능력 ‘천독(千毒)’을 발동시킵니다!]
[천극천화독(千亟天禍毒)이 개화합니다!]
호흡기가 아닌, 마력 회로를 통해 전신에 있는 장기를 파괴하는 극독.
실 모양의 형태로 발현된 수천 가닥의 점액질이 일제히 진혁을 향해 폭사되었다.
빠르다.
게다가 이건 결계로는 막을 수 없는 종류다.
‘……역시 이걸 쓰는군.’
예상했던 대로 쉬에화는 그녀가 갖고 있는 독 중 가장 지독하고 효과가 좋은 것을 꺼내들었다.
피부에 1mg만 흡수되더라도 10m급의 대형종 조차 반나절을 버티지 못 하는 극독이었다.
당연히, 사람은 1분도 버티기 힘들 수밖에.
허나.
‘독의 종류만 미리 알고 있다면, 얼마든지 해독할 수 있다. 특히, 그게 마력의 흐름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진혁은 상대의 공격을 고스란히 허용했다.
콰콰콰콰콰콰!
거미줄 형태를 갖춘 실들이 진혁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피부 위로 불그스름한 선들이 죽죽 그어졌다.
곧, 붉게 달아오른 선들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됐다.
“하! 걸렸군요!”
쉬에화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독이 효력을 발휘한 이상, 설령 상대가 제아무리 날고 기는 랭커라 하더라도 소용없다.
2차 전직을 완료한 성 기사나 힐러들조차 이 독 앞에선 설설 기는 게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흠. 이쯤에서 마력을 차단해 주고. 여기서부턴 다시 1% 정도씩 흐름을 풀어 주면…….”
고통과 절망으로 몸부림치고 있어야 할 당사자는 정작 혼잣말을 중얼거릴 뿐, 너무도 태연한 얼굴이었다.
“제발…… 긴장이라는 걸 좀 하세요! 지금 당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 건지 모르는 건가요!”
“응? 내가 처한 상황?”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윽! 좋아요. 보아 하니 이쪽에 문외한인가 본데, 곧 어떻게 될지 설명해 주죠. 천극천화독에 당하면 우선 혈관이 부풀어 오르고 오른쪽 다리 끝에서부터 서서히 감각을 잃게 되는데…….”
“다리라면 잘 움직이는데?”
진혁이 오른쪽 다리를 가볍게 움직였다.
씰룩씰룩.
발끝부터 종아리에 이어 허벅지와 골반까지.
근육들이 탭댄스를 췄다.
“어라? 이게 왜……?”
음…….
“독이 좀 허접한 거 아니야?”
“무, 무슨 소리예요! 본문의 절기를 두고 허접하다니!”
“아니면 말고.”
아니면 아니지 왜 큰 소리냐?
실제로 별 효력도 없구만.
진혁이 대수롭지 않는 듯 이죽이자 쉬에화의 얼굴이 더더욱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무슨 수를 쓴 건지 모르지만, 2번째 증상은 피할 수 없을 거예요.”
마비야 천운으로 버텼다고 하더라도 다음은 없다.
2차 증상은 전신에 있는 마력 회로를 따라 퍼지는 거였으니까.
“하아암. 별로 기대는 안 되지만, 그래도 이번엔 네 말이 맞았으면 좋겠어. 이게, 확실히 매콤한 맛은 있는데, 땀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거든. 불닭 소스를 반만 넣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 여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기대하죠.”
쉬에화가 잠시 후 있을 장면을 기대하며, 차게 웃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칠공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져야 할 상대는 너무나 평온하게 웃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설마.
“천극천화독을…… 해독했다는 걸…… 지금 믿으라는 건가요?”
근접형 전투계열 능력자가. 거기에, 중국이 아닌 한국에 소속된 랭커가 독공에까지 조예가 깊다니.
이곳에 다른 공대장들이 있었다면, 듣자마자 폭소부터 터뜨렸을 법한 헛소리다.
허나 상대가 모든 혈도와 마력 회로 그리고 거길 통해 흐르는 독의 양과 종류를 계산해 전부 파훼해 버렸다는 뜻.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으나, 저토록 멀쩡한 걸 보면 그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네 독에 [혈마기]를 배합해 더 지독한 독을 만들었지. 그걸 적절하게 흘려보내 독을 상쇄시켰고.”
말을 하고 보니 거창하긴 한데.
솔직히 말해 아직까지 경문혈이니 천주혈이니 하는 혈도가 뭔지, 어디에 있는 건지도 잘 모른다.
그저 닥치는 대로 몸으로 외우고 습득하는 게 더 편했으니까.
결국 이 모든 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직접 습득한 노력의 산물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스킬 ‘천독(千毒)(AA)’을 획득하셨습니다!]
[천독(千毒)]
입수 난이도: AA
내용: 천 가지 독을 다룰 수 있는 고유 능력으로, 효과가 즉시 나타나는 극독으로부터 서서히 증세를 악화시키는 지연성 독까지 그야말로 수많은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독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지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해독’ 능력도 함께 습득됩니다.
진혁의 눈앞엔 복사의 성공을 알리는 상태창이 나타나 있었다.
이걸로 또 하나의 능력을 손에 넣었다.
그것도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고유 능력을 말이다.
그리고 당연히 능력을 새로 얻었으면, 당장 사용하는 게 인지상정.
“독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이번엔 내가 한 수 알려 줄게.”
잘 봐라.
독이라는 걸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
“……!”
쉬에화가 긴장하며, 공격에 대비했다.
독인끼리 대결은 당연히 중독과 해독의 연속.
더욱 수준 높은 독공을 사용하는 쪽이 이 대결에서 승리할 것이다.
‘당황하지 말자. 침착해야 돼.’
중국에 몇 남아 있지 않은 독문가의 자제.
자신은 어려서부터 영재 교육을 받은 고수 아니던가?
수많은 독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고, 셀 수 없이 많은 희귀한 독들을 찾아 가며 연구했다.
상대가 아무리 날고 기는 고인물이라고 한들 독에서만큼은 결코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 헛된 기대는…….
“쿨럭!”
마지막에서마저 무너져야만 했다.
쉬에화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나왔다.
언제 독을 사용했는지.
언제 중독이 진행되었는지.
심지어 어떤 독을 사용했는지 마저도……
파악할 수 없었다.
“대체…… 당신은…….”
짧은 탄식과 함께.
쿠웅!
쉬에화의 몸이 무너졌다.
***
빌어먹을.
……빌어먹을!
“일이 꼬여도 어떻게 이토록 꼬일 수 있단 말이냐!”
엘프 마을의 중앙을 맡았던 텐챠오는 숲으로 난 길을 따라 미친 듯이 질주했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다른 공대장들은 물론, 모든 소대와 연락이 두절된 상황.
게다가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요술방망이를 휘두르는 미친 엘프와 레인저들의 추격으로 인해 전력의 30% 이상을 잃어버렸다.
최악의 상황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쉬에화와 만나 전체적인 전열을 수습한다면…….
아직까지 수세에 몰린 이 판을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까스로 본진에 도착했을 땐.
텐차오는 무언가 일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텐트가 모조리 불타고 있다.
그리고 공대장이 있는 텐트엔,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쉬에화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그 옆에서 또 다른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는 고인물의 모습도 보였고.
“먼 길 오느라 고생했는데 어떡하냐? 여기 막다른 길인데.”
진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