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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만렙 뉴비-123화 (124/653)

123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 (4)

천재지변이란 말이 있다.

한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너무나 갑작스럽고 예상하지 못했을 때 찾아오는 재앙.

그리고 바로 지금, 텐챠오는 천재지변이라는 게 어떤 건지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마른 나뭇가지처럼 갈라지는 지면.

“크으으으…….”

텐챠오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손발이 벌벌 떨렸지만, 불평할 시간조차 없었다.

곧바로 다음 공격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콰아앙!

폭사된 검강이 텐챠오의 태도(太刀)를 강타했다.

텐챠오의 몸이 4m 가량 뒤로 튕겨 나갔다.

간신히 균형을 잡았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그대로 지면에 처박힐 뻔했다.

“이야. 의외로 튼튼하네. 중화 길드 스카우터들도 그럭저럭 쓸 만한 인재들을 발굴해 뒀나 봐?”

진혁이 의외라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니, 진짜로.

세 합 안에 끝내려고 했는데, 다섯 번이나 버틸 줄은 몰랐다.

잘하면 두어 번은 더 버티겠는데?

“감히…… 이딴 짓을 벌이다니. 중화 전체에서 보복에 나선다면 네놈이 아무리 유명한 랭커라고 한들 절대 그 모든 걸 홀로 상대할 순 없다. 빌어먹을. 네놈도 알고 있지 않느냐!”

텐챠오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대중화(大中華)!

그 한 마디면 모든 게 통했었지.

세계의 유명 길드들이 난색을 표하고, 중소 길드들은 벌벌 떨었다.

하긴, 엄청난 인원과 막대한 자본력 거기에 강한 랭커들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콧대가 높을 수밖에.

무엇보다 남궁천이란 이름 석 자가 버티고 있는 중화 길드는 세계에서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공고히 한 상태였다.

하지만.

놈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토록 신격화하고 있는 남궁천조차 탑의 20층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눈앞에 있는 진혁은 그곳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곳까지 올라가 본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말이다.

“널 죽이고 나머지 놈들도 쓸어 버리면, 남궁천이 직접 여기까지 온다는 건가?”

“뭐?”

텐챠오의 눈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마치, 자신이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믿기 힘든 것처럼.

그러나 진혁은 그런 텐챠오의 반응 따윈 가볍게 무시한 채 할 말을 이어 갔다.

“들은 대로야. 다들 앵무새처럼 그 녀석 이름을 쫑알거려서 대체 얼마나 성장했는지 좀 보고 싶거든.”

“……미쳤군. 그분을 직접 만나면 지금 한 말을 후회하게 될 거다.”

“그러니까 그걸 좀 확인해 보자고. 후회할지 안 할지. 내가 울게 될지, 남궁천이 울게 될지. 그게 미치도록 궁금하니까.”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긴장감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너무도 태연한 말투와 함께.

그 모습에, 텐챠오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저 남자가 정말로 남궁천 님과 상대가 될 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수준으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적이라는 거다.

일대일로는 당연히 승산이 없다.

그렇다고 도망쳐 봤자 어차피 길드에 의해 죽은 목숨.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텐챠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전부. 혈마진(血魔陣)을 펼쳐라!”

“……!”

“……!”

뒤에서 대기하던 플레이어들의 얼굴빛이 변했다.

혈마진(血魔陣).

오롯이 대상을 죽인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포위한 아군까지 함께 공격하는 진형이다.

전력 차이가 극심할 경우 사용하는 최후의 방법으로, 방어 따위는 도외시한 채 모든 걸 쏟아 붓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전부 이곳에서 뼈를 묻더라도 반드시 저 남자만큼은 제거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크윽!”

명령이 떨어진 이상 제아무리 무리한 일이라 할지라도 따라야 한다.

플레이어들이 진혁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진을 갖췄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통과하지 못할 것 같은 탄탄함.

중화 길드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해 왔는지를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이미 사람들을 대상으로 숱하게 연습까지 한 상태일 거다.

대외적으로는 불문율에 붙였지만, 중화길드가 얼마나 잔혹하게 훈련하는지에 대해선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으니까.

***

‘역시. 혈마진을 펼치는군.’

진혁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토록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어 최후의 수단을 쓰게 만들기 위해서.

정확히는 그걸 통해 원하는 ‘복사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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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텐챠오

성별: 남

나이: 35세

레벨: 29

힘 31 민첩 24 체력 25 마력 33 내공 55

보유한 스탯 포인트: 0

보유한 코인: 17,463

직업: 지휘관

고유 능력: ‘태산검(太山劍)’

스킬: Lv10 ‘태산검기(太山劍氣)’, Lv9 ‘진법 강화’, Lv9 ‘혈혼수(血魂手)’, Lv8 ‘태산보(太山步)’, Lv7 ‘천라지망(天羅地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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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 조건: 동귀어진(同歸於盡). 텐챠오와 그가 따르는 무리들을 극한의 상황에까지 몰아넣어 양패구상의 혈마진을 사용하게 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그 진에서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텐챠오가 갖고 있는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미 ‘검의 무덤’에 ‘추혼검’까지 있는 이상, 더 하위 능력인 ‘태산검’을 복사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거추장스럽기만 하지.’

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별 효율도 없는 잡스킬을 잔뜩 복사한 뒤, 이만큼이나 많은 스킬을 갖고 있다며 정신승리나 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텐챠오가 전부 쓸데없는 스킬만 갖고 있느냐고 묻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공격형 스킬은 별 볼일 없지만, 딱 하나. 탐이 나는 비전투 계열 스킬을 갖고 있으니까.

‘역시 공대장쯤 되면 구르는 재주 하나 정도씩은 가지고 있는 모양이군.’

천라지망.

하늘 아래 도망갈 곳이 없다는 포위망은 이후에도 여러모로 사용할 구석이 많았다.

그래, 복사를 한다면 바로 이 스킬이다.

‘그나저나 혈마진이라…… 예전에 무림 쪽 녀석들이랑 푸닥거리했을 때 이후가 마지막이었으니. 꽤 오래간만에 상대해 보는데.’

진혁이 천천히 포위망을 훑었다.

무림 쪽에서 직접 전수받아 완성시킨 진형답게, 전체적인 견고함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 누가 이 안에 있더라도 식은땀을 흘리며, 스스로의 목숨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진혁의 눈엔 여기저기 허점이 보였다.

아주 미미하긴 한데, 그냥 넘어가 주자니 밤에 잠이 편히 안 올 것 같다.

지적할 건 해야지.

그건 고인물의 본능과도 같은 거니까.

“음……. 거기 우측에서 두 번째. 좌수검법을 주로 사용할 거면, 혈마진의 날개에 해당하는 부위를 맡으면 안 돼. 옆에 있는 동료들과 합을 맞출 때 반 보 정도 엇박자가 나거든.”

“뭐?”

“중앙에 있는… 어딜 보냐? 그래 너. 니 이야기야. 무게 중심이 너무 앞으로 쏠렸어. 진의 앞쪽이 아니라 양옆으로 이동할 수 있게 자세를 잡아야 하는 거다.”

“그, 그걸 어떻게……?”

지적이 이어질수록 플레이어들이 화들짝 놀라 자세를 바꿨다.

반면, 텐챠오의 얼굴은 점점 더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진혁이 하는 말 중엔 틀린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저토록 완벽하게 혈마진을 파악하고 있는 적을 상대로 이 진을 고집한다면…….

이 싸움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굳이 말할 필요조자 없으리라.

그걸 알고 있는데도.

“죽여라!”

텐챠오는 공격을 명령을 내려야 했다.

지금 남은 수단은 오직 이것 하나뿐이었으니까.

탓!

타앗!

제1식, [혈마옥쇄진(血魔玉碎陣)].

수십 개의 검이 서로의 검로를 지우며 폭사되었다.

방해한다면 아군까지 베는 것은 물론, 상대의 도주 방향까지 계산한 공격.

때문에 이 1식만으로도 어지간한 랭커들은 제압할 수 있었다.

카카카캉!

카아앙!

눈부신 불꽃이 피어올랐다.

셀 수 없이 많은 공방전이 오갔다.

그러나 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고막을 찌를 뿐.

살이 베이면서 나는 파육음도, 고통을 삼키는 신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공격이 모조리 막혀 버린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만난 녀석들 중에 가장 합이 잘 맞았어.”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진심이다.

그럭저럭 쓸 만한 수준은…… 아니,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어깨에 힘 좀 줘도 될 수준이다.

물론,

상대의 입장에선 이런 칭찬마저 모욕으로 들릴 테지만.

“빨리…… 지금 당장 제2식을 연계해라!”

텐챠오가 고함을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누가 가만히 구경해 주고 있겠대?”

진혁은 이미 혈마진의 가장 약한 지점에 파고든 뒤였다. 2식을 발동하느라 연결 부위가 느슨해진 터라 기습은 더욱더 빛을 발했다.

“여, 여기다!”

“젠장!”

“쳐…… 쳐라!”

플레이어들이 몸을 돌려 진혁에게 검과 창을 휘둘렀다.

허나, 그 헛된 몸부림은…….

[고유 능력 ‘별의 가호’가 발동됩니다!]

하늘에서 낙하하는 눈부신 빛에 가로막혔다.

우우우웅!

별빛의 가호와 신성력이 한 자리에 어우러지며, 진혁의 몸 주위로 은은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실컷 방어만 해 줬으니. 이번엔 내 차례야.”

단검을 회수한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쌍룡검을 불렀다.

일그러진 공간에서 한 쌍의 성유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위험하다. 텐챠오가 그렇게 느낀 순간.

부드러운 검격이 지면을 휩쓸었다.

***

일격.

단 일검에, 혈마진이 깨졌다.

정확히 말하면 깨진 수준이 아니라, 그 진을 구축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전부 절명했다.

그리고 그 재난 속에서 살아남은 건 텐챠오 한 명뿐이었다.

“이, 이럴 수가…….”

텐챠오의 목소리가 격렬하게 떨렸다.

시련의 탑이 도래하기 전부터 중국 무술의 근맥을 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수련한 동료들과 부하들이…….

중화 길드 내에서도 이번 임무를 위해 추리고 추린 정예들이…….

이토록 허무하게 쓰러질 줄이야.

‘대체…… 얼마나 강한 거냐. 이 녀석은.’

동귀어진으로 함께 죽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목숨까지 내던질 각오로도 상처 하나 입히는 것조차 너무도 버거운 일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남궁천이 와야만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인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이제는 정말로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절대…… 그분에게 검을 향하게 해선 안 된다.’

텐챠오의 본능이 외쳤다.

결코 그 둘을 한 곳에 몰아넣어선 안 된다고.

만약 생사결의 진검 승부가 펼쳐질 경우, 가정할 수 있는 경우의 수중 가장 최악의 카드를 뽑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텐챠오가 양손으로 대검을 움켜잡았다.

“이번 공격으로 승부를 가리겠다. 지든 이기든, 내게 다음은 없다.”

그 말을 끝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니, 달라진 건 분위기만이 아니다.

검 끝에서부터 타오르는 푸른 기운.

파츠츠…….

담금질된 검기가 예리하게 치솟았다.

‘태산검형(太山劍形)’.

십 미터짜리 암석마저 일격에 쪼개 버릴 수 있는,

‘제2식(第二式)’.

태산검의 비기가 시전 되었다.

‘태일섬(太一殲)’!

콰콰콰콰콰콰!

검기가 진혁의 코앞까지 쇄도했다.

이제 찰나가 지난다면 목이 깔끔하게 잘릴 터.

바로 그때.

진혁이 천천히 자세를 갖췄다.

‘추혼검무(追魂劍舞)’.

검성이 검의 끝에 도달하기 위해 선택한 검.

혼마저 베어 버릴 수 있다고 구전되는 최강의 검이.

지금 이 순간 쌍룡검을 통해 발현되었다.

‘제8식(第八式)’.

격이 다른 기운이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검의 무덤’을 통해 발현된 칠흑 같은 검은색 강기가 식의 완성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무림에 소속된 거주자들조차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 누군가 첫 발을 내디뎠다.

암혼일체(暗魂一體).

그렇게.

모든 게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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