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만렙 뉴비-151화 (152/653)

151화. 가면무도회 (1)

[영상이 재생됩니다.]

그 짧은 문장이…….

……이토록 처절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백진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봤다.

“이, 이럴 수가…….”

입에서 흘러나오는 침음성.

영상에 나온 내용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헉!”

“무, 무슨 아이스 트롤들이 저따위야?”

백진호와 함께 영상을 보던 단군 길드의 플레이어들도 비명을 질렀다.

아이스 트롤이 저층에서 강한 축에 속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장은석이 상대하고 있는 놈들은 기존에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달랐다.

영상 너머로도 전해지는 압박감.

……강하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덩치가 훨씬 트롤 하나는 아예 격이 달랐다.

“세상에나 저 인원으로도 밀리다니.”

“미, 밀리는 수준이 아니야. 완전히…….”

무언가 말하려던 여자가 이내 말꼬리를 흐렸다.

차마, ‘완전히 가지고 놀고 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 누가 그녀를 탓할 수 있을까?

모두의 눈에도 단군 길드의 공격대가 변변찮은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박살나는 게 뻔히 보였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족장으로 추정되는 아이스 트롤이 단군 길드의 플레이어들을 죽이지 않음에도.

오히려 장은석이 어린 아이스 트롤의 새끼를 붙잡은 뒤 협박했다.

-발광머리앤: 와 인성 실화냐?

-엄마 재 흙먹어: 뭐…… 이기는 게 중요하긴 하지. 레이드의 성패가 달린 거니까.

-KKK1004: ㅇㅇ. 이해는 하는데, 보기가 살짝 좋진 않네. 실력에서 밀리는 걸 꼭 저리 해야 되나?

-버그로 꿀빠는 플레이어: 뭔 소리임?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음. 어설프게 선비질 하지 마. 명예 찾다가 죽으면 너희가 책임질 거냐?

-무공으로 레벨업하는 마왕님: 취향 차이인 듯. 근데 나한테는 별로임. 3류 길드에서 저러면 몰라도 단군에서 저럴 줄 몰랐거든. 1위는 1위다운 맛이 있어야지.

-우럭아 왜우럭: 그치. 한국 최강이면 불리한 상황에서도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

세계 7대 길드. 그리고 한국 부동의 1위.

이 타이틀을 짊어진다는 건 그만큼 많은 책임감을 요구했다.

비록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여겨질지라도 그것마저도 감싸 안아야 하는 게 바로 1위라는 자리가 지닌 무게였다.

그런데 저 멍청한 놈이 애써 쌓아 온 공든 탑을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이 정도면 먹칠을 한 게 아니라 완전히 똥칠을 해 버린 수준이랄까.

때문에 백진호는 화를 주체하지 못한 채 길길이 날뛰었다.

“으아아아아!”

콰콰콰콰콰!

묵직한 굉음과 함께 종유석이 통째로 잘려 나갔다.

“허억. 허억. 허억. 저…… 새끼. 지금 당장 애들 보내서 잡아 와. 7층이 아니라 탑 꼭대기에 있다고 해도 상관없으니까 당장 잡아오라고!”

백진호가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지만, 그 누구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야 이 새끼들아 지금 내 말을…….”

“혀, 형……!”

스크린을 보던 남자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이것 좀 봐 바.”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엔 아주 익숙한 남자가 있었다.

그제야 백진호가 상황을 인지했다.

“이……걸 노리고 영상을 올렸던 거였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지.

화면이 전환되었다.

나타난 건 진혁이었다.

순식간에 장은석을 제압한 진혁이 족장과의 일기토에 돌입했다.

“어, 엄청나다. 젠장. 방금 페인트 몇 개를 쓴 거야 대체.”

“인간이 저렇게 움직일 수 있다고?”

“공격대가 다 덤벼도 안 되는 걸 혼자서 비등하게 싸우다니…….”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족장과 진혁이 싸우는 모습은 그야말로 용호상박.

모두의 눈엔 단 한 번의 실수로 승패가 갈리는 접전이 그러졌다.

허나, 딱 한 명.

‘아니야.’

백진호만은 같은 장면을 보고도 전혀 다른 종류의 탄성을 내뱉었다.

‘대체 어딜 봐서 저게 비등비등하다는 거냐?’

편집 기술을 워낙 교묘하게 사용한 탓에 대부분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상위 랭커인 백진호는 몇몇 동작만 보고도 둘 사이의 격차를 절감했다.

유흥을 즐기는 고양이와 처절하게 발버둥치는 쥐.

그것이 둘 사이의 관계라는 걸.

그리고 그 예상을 뒷받침하듯.

시간이 갈수록 진혁이 족장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물론, 적당한 연출감과 화려한 퍼포먼스로 시청자들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든 동작과 대사 하나하나조차도 완벽하게 계산된 각본이라는 방증.

-발광머리앤: 와. 지린다. 역시 한국 최강!

-엄마 재 흙먹어: 한국 최강이라고? 전 세계 다 뒤져 봐도 저렇게 싸울 수 있는 랭커 없음.

-KKK1004: ㅇㅈㅇㅈ. 내가 강 형 영상 애청자인데, 처음부터 말도 안 되게 강했지만, 더 놀라운 건 다음 영상 업뎃됐을 때 보면 훨씬 더 강해져 있음.

-버그로 꿀빠는 플레이어: 근데 진짜 저렇게 썩은 물은 예전에 탑을 몇 층까지 올라가 봤을까?

-무공으로 레벨업하는 마왕님: 현재 알려진 정보로는 최고층 등반자가 20층 부근까지라고 하더라. 아마 그쯤이겠지.

-내가 박혁거세라니!: 그것도 걍 헛소문임. 지금 플레이어들 수준을 좀 봐라. 10층까지 가는 것도 기적처럼 보이지 않냐?

-미용실 기도메타: 하긴, 아무리 최상위 랭커라도 20층은 못 넘겼을 것 같다.

-새영언환: 글쎄. 강진혁이라면 어쩌면 그 이상 가 봤을 수도.

-하울의 무빙 오지는 성: 아무튼 기대되는 플레이어라는 건 분명함.

단군 길드에서 올린 영상과는 온도 차가 극심하다.

1초에 수백 개씩 달리는 댓글은 백진호조차 쫓아가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남들은 목숨을 걸고 하는 레이드에서도 벌써부터 영상을 올릴 것까지 안배를 하며 싸운단 말인가.’

백진호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질투심과 경외감에 속이 다 울렁거렸지만, 눈은 자신도 모르게 계속해서 화면에 꽂혀 있었다.

매력적이었기에.

그리고 그만큼 압도적이었기에.

경쟁 관계라는 사실마저 그만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

세계의 모든 길드와 사람들이 강진혁이란 플레이어에게 주목하고 있는 동안.

정작 화제의 중심에 있는 진혁은 현재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미쳤지, 왜 그런 말을 해 가지곤.’

일행과 헤어져 모처럼 탑 밖으로 나온 것까진 좋았다.

그래. 거기까지는 그동안의 여독을 풀어 주려는 계획으론 완벽했다.

문제는…….

“후후후. 과연, 이 정도는 되어야 고귀하신 이 몸에게 어울리는 마차니라.”

지금 눈앞에서 만면에 미소를 띠우고 있는 대왕 모기다.

엘리스가 만족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그녀가 타고 있는 건 ‘아폴론 IE’.

아시아에 단 한 대뿐인 하이퍼카였다.

가격만으로도 36억에 이르는 괴물 중의 괴물인데, 그걸 태연하게 보석 몇 개 던져 주고 구입해 버렸으니 난리가 날 법도 하다.

인도니 뭐니 절차가 복잡한 건 S급이라는 명함으로 모두 생략시켜 버렸으니 거리낄 게 없는 상황.

엘리스는 탑 내에서는 가질 수 없는 신문물에 크게 기뻐했다.

‘고생했으니 아무거나 하고 싶은 걸 다 해도 괜찮다고 하면 안 됐어.’

저번에 하도 온갖 걸 다 사 버려서 더 이상 무식한 쇼핑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타락시아 가주의 탐욕을 너무 우습게 본 것 같았다.

“너…… 저번에 산 건 다 쓰기는 하는 거냐?”

“짐은 한 번 입은 옷이나 장신구는 두 번 다시 걸치지 않는다.”

“그런 것 치곤 매일 똑같은 걸 입고 다니는 것 같다만…….”

진혁의 말에 의표를 찔렸는지. 갑자기 엘리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건 똑같은 게 여러 벌 있는 거라고!”

순식간에 뾰족해지는 음성.

그래. 너도 알긴 아는구나.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돈지랄인지.

“예. 예. 제가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아주 이참에 나라를 사 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그럼 그 땅에 있는 게 전부 고귀하신 엘리스 님의 것이 될 텐데 말이죠.”

“흠. 국가라……. 하긴 나 정도 되는 존재가 왕국 하나 없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지. 이참에 인간 세계에도 아타락시아 가문의 지부를 하나 세워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남산타워라는 곳이 높다고 하니 거기쯤에다가 성을 짓고…….”

“…….”

이걸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점에서 더 이상 대화할 이유가 없어졌다.

작게 한숨을 쉰 진혁이 엘리스가 망상을 하게끔 잠시 내버려뒀다.

엘리스는 혼자 남겨진 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혼자만의 왕국을 건설하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띠링!

진혁의 앞에 상태창 하나가 나타났다.

[릭 헤네시 님으로부터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이 초대창을 지참할 경우 시련의 탑 1층 대연회장에서 열리는 ‘가면무도회’에 참가하실 수 있습니다.]

[가면무도회]

내용: 탑이 지정한 최상위 랭커들을 상대로 한 일종의 친목회입니다. 서로간의 정보를 교류하는 건 물론, 다양한 서브 이벤트들이 준비되어 있으니 모쪼록 모든 분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무도회는 금일 자정에 열리오니 참고 바랍니다.)

‘호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가면무도회라면 시련의 탑에 있는 이벤트성 퀘스트 중 하나.

보통은 25층에나 가야 발생하는 게 벌써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하긴, 그래도 예전처럼 나중에 하는 것보단 빨리하는 게 훨씬 낫긴 하겠네.’

과거에는 진혁이 25층에 도달할 당시 시련의 탑을 플레이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모래 한 줌밖에 남질 않았다.

가끔 이 게임이 뭔지 궁금해 하던 뉴비들이나 희귀 콘텐츠 개발한다고 난리를 피우던 BJ들이 간간히 들어오던 게 전부였달까?

덕분에 명색이 무도회라면서 성대하게 내부도 치장하고 폭죽도 쏘고 별 난리를 다 피웠는데.

정작 대연회장에 온 건 한 명뿐이었다.

셋도 둘도 아닌 단 한 명.

그래.

‘빌어먹을 나 혼자 말이다.’

결국, 아무도 없는 방에서 거울 보면서 혼자 춤추다가 열 받아서 무도회장을 전부 불태워 버렸던 기억이 난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진혁이 고개를 흔들었다.

‘흑역사는 이제 그만 잊자.’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이번에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시련의 탑을 등반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전 세계에 있는 최상위 랭커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매력적인 제안이다.’

남궁천이야 7층에서 얼핏 만났었지만, 일본이나 북미 그리고 유럽의 유망주들하고도 안면을 틀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안면을 튼다는 의미는 하하호호 웃으며, 친목질이나 하자는 게 아니다.

보기만 해도 탐이 나는 고유 능력과 스킬들.

그걸 얻을 수 있는 최고급 뷔페에 한 숟가락 얹겠다는 뜻이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진혁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엘리스.”

“응?”

“쇼핑은 이쯤하고 슬슬 갈 준비 하자. 해 지기 전에 다시 탑으로 들어가야 돼.”

“뭐, 뭐라고? 아직 살 게 산더미만큼은 남았는데!? 그리고 치킨이랑 곱창이랑 연어랑 맥주랑 해서 다 먹기로 한 거 잊었어?”

엘리스가 하도 놀라 하이퍼카의 창문을 부술 뻔했다.

농담이 아니라 등 뒤에 숨겨 뒀던 날개가 살짝 보이려고 할 정도다.

자칫하면 근처에 있는 대형 길드의 공격대가 죄다 이곳으로 몰려올 뻔했다.

“조……심 좀 해라.”

“조심이고 뭐고 간에. 내 밥은 어떡하고!”

“그런 거야 나중에 얼마든지 사 줄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어.”

이 가면무도회에는 사실 재미난 포인트가 한 가지 있다.

이중에서 누구도 알지 못하는.

심지어 주최자 중 하나인 릭 헤네시조차 모르는 포인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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