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7대 길드의 유망주 (2)
“그나마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군.”
요시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응?”
진혁은 무슨 뜻이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여자를 말려 줘서 고맙다는 뜻이다. 만약 그 이상 했으면, 우리도 가만히 참고만 있지 않았을 테니까.”
아!
그런 뜻이었나.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인데…….”
진혁이 생긋 웃었다.
그리고.
[Lv10 ‘빙하조형(氷河造形)’이 발동됩니다!]
파츠츠츠…….
어느새 손에 나타난 얼음 망치.
진혁은 얼음 망치를 단단히 움켜 쥔 채 수직으로 내리 꽂았다.
콰득!
츠토무의 등에서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커억!”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손속에 일말의 사정을 두지 않는, 어찌 보면 잔혹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의 망치질.
“움직이지 마. 뼈 맞는다?”
콰앙!
“끄아아악!”
“에헤이. 그러니까 움직이지 말라니까.”
퍼억!
“커억!”
“아. 미안. 이번 건 내 실수. 아팠겠다.”
퍼어억!
“꾸어어억!”
온몸이 보라색으로 변한 츠토무가 연신 거대한 몸을 꿈틀거렸다.
완전히 가래떡에 가까운 형태가 되고 나서야 진혁의 무두질이 끝났다.
후우.
표면적이 넓으니 확실히 골고루 때리기가 쉽지 않다.
“……네놈.”
요시오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허리춤에 있는 공간이 일렁이며, 일본도의 손잡이 부분이 나타나는 게 보였다.
그러나 진혁은 요시오의 간접적인 협박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내가 말린 건. 네놈의 부하를 구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야.”
말 한 마디 실수에 대한 엘리스의 손속이 너무 가혹하다는 데서 나온 동정심은 아니다.
사무라이 길드나 요시오가 두려웠던 건 더더욱 아니고.
단지.
“나에게 함부로 말한 놈은 내가 패야 제 맛이거든.”
맞을 짓을 한 놈을 다른 사람이 처리하게 두는 건 그 쾌감이 죽는다.
은혜를 갚는 것도.
복수를 하는 것도.
모두 직접하는 게 맞기 때문이지.
진혁이 말린 이유를 들은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맞다. 이 녀석. 원래 악마였지.
엘리스는 바로 납득했다.
반면.
요시오의 얼굴은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우리는 중화 길드와도 동맹을 맺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는 뜻이냐?”
남궁천이 이끄는 중국 최고의 길드.
워낙 많은 수의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상위 랭커들의 실력도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나 최근 들어선 그 상승폭이 비이성적이라고 하다는 말도 듣고 있었으니까.
물론, 검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라고 평가받는 사무라이 길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거대 세력이었다.
그런데, 그 두 개의 거대 세력에게 이빨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죽고 싶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중화 길드와 사무라이 길드가 동맹을 맺었다라…….”
“그렇다. 이제야 좀 실수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냐?”
“글쎄. 실수한 건 내가 아닌 것 같은데…….”
진혁이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하얀색 가면이 사라지며, 맨 얼굴이 드러났다.
“강……진혁!”
요시오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급격하게 떨리는 동공.
하필이면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플레이어를 만났다.
‘유연화나 이태민, 테레사 그리고 그 검성 놈 정도하고만 어울린다고 들었는데…….’
백발의 소녀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그렇기에, 요시오는 상대가 진혁일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젠장…….’
뽑을 수 있는 패 중에서 가장 최악의 패를 뽑았다.
여기선 물러나야 한다.
저런 놈을 상대로 싸운다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다.
적어도…… 무도회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진 참는 수밖에.
그때가 되면 이 수모를 갚아 줄 기회가 있었다.
애초에 이번 일을 위해 그 모든 걸 준비해 왔었으니까.
‘조금 뒤에서 웃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
기자들 앞에서 당한 수모. 반드시 1000배로 되돌려줄 테니.
요시오가 어금니를 깨문 채 한 걸음 물러섰다.
“세, 세상에나…….”
“강진혁이다. 한국의 강진혁!”
“역시, 저 사람도 초대장을 받은 거구나.”
“그보다 저거 봤어? 요시오가 찍 소리도 못 하고 물러난 거?”
“아무리 대형 길드라고 하더라도 강진혁 플레이어한테는 안 되겠지. 지금까지 올라온 영상만 봐도 알잖아. 완전히 괴물이라는 거.”
“하긴, 어떤 정신 나간 놈이 1:1로 시비를 걸겠어?”
“맞아……. 진짜로 미치지 않고서야 싸우진 않겠지.”
백발의 소녀가 보여 줬던 압도적인 위용과.
진혁의 등장.
두 개의 사건이 맞물리자. 기자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 압도적인 광경을 연출했기에, 여파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촤촤촤촤촤촤!
또다시 카메라 셔터가 눈부시게 점멸했다.
조금 있을 실시간 검색어와 헤드라인을 장식할 소재를 건졌으니, 당연히 손이 바쁘질 수밖에.
무도회장으로 들어가기 전, 진혁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네가 어디랑 손을 잡았든 상관없어. 너희들이 골목대장 노릇을 하며 어울려다니는 거에도 관심 없고.”
솔직히 말해. 자기들 영역에서 자기들끼리만 논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에 걸림돌이 되지는 마라.”
조금 전 사람들을 깔보던 눈빛.
너희 같은 약자들과 자신은 아예 차원이 다르다며, 비웃던 그 마음.
이해한다.
너희를 보는 내 기분 역시 똑같았으니까.
“어차피 너희들이 백날 애써 봐야 탑을 오르는 덴 실패할 테니.”
할 말은 이걸로 끝이다.
진혁은 분노로 얼룩진 요시오와 기절해 있는 츠토무를 뒤로한 채 무도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
[이벤트 지역에 입장하셨습니다.]
눈부신 빛과 함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완전히 바뀌었다.
‘호오.’
진혁이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궁전을 연상케 하는 엄청난 크기의 내부.
영화 속에서나 보던 샹들리에와 화려한 장식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나쁘지 않네. 고작 1층에 있는 것치곤 그럭저럭 살 만한 구색은 갖춰 뒀구나. 고귀하신 이 몸이 잠시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구나.”
엘리스도 꽤나 놀랐는지 토끼눈을 떴다.
으음.
꽤 오랫동안 누군가도 1층에 처박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1층의 가장 구석탱이에 있는 회랑에 말이지.
“왜 그런 기분 나쁜 눈빛으로 보는 거야? 설마, ‘햇빛 한 줌 안 들어오는 골방에서 살던 게 눈만 높아져서 다른 집 품평회는 왜 하냐’는 건 아니겠지? 정확히 딱 그런 눈빛인데?”
“역시…….”
“뭐야 그 감탄 어린 탄성은?”
“아니, 진조가 다르긴 다르구나 해서. 나름대로 ‘정신 방벽’까지 사용하는 중인데도 속마음을 간파당할 줄은 몰랐거든. 몇 천 년을 살아온 것답게 독심술 스킬 레벨이 높긴 높나 보네.”
“뭐, 뭐라고!”
엘리스의 목소리가 2옥타브 정도 올라갔다.
또다시 잔뜩 아타락시아 가문과 자신의 위대함에 대한 일장연설이 이어졌지만, 진혁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에 쏠린 뒤였다.
‘이를 제대로 갈고 준비했나 보네.’
과거에도 규모가 상당하긴 했으나, 지금은 아예 수준이 달랐다.
물론.
내부의 장식보다 눈에 들어오는 건 각양각색의 가면을 쓰고 있는 플레이어들이었지만.
이미 연회장 내부에는 여러 명의 남녀가 모여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실력자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이들을 불러 왔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
‘어디보자…….’
정신을 집중하자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마력이 하나둘씩 잡혔다.
하나, 둘, 셋, 넷…….
대충 훑어봐도 열은 훌쩍 넘어 보인다.
완전히 잭팟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밟히는 건 검은색 드레스에 긴 금발을 늘어뜨린 여성과 마찬가지로 짧은 금발 머리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성이었다.
나비모양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사실 저 쌍둥이는 너무나 유명한 랭커다.
케이시와 주드로.
쾌락 전투광이라는 말로 더 유명한 변태들.
오롯이 말초적인 자극만을 추구하는 전투 스타일은 유럽 내에서도 알아주는 기피 대상으로 손꼽혔다.
……내로라 하는 슬레셔 무비 감독들도 저 둘이 올린 영상을 보고 구토를 할 정도였으니, 평범한 사람들은 오죽했으랴.
그래도.
저 둘의 주특기인 ‘공유’ 능력은 꽤나 탐났다.
‘무도회의 메인 이벤트 때 저 둘의 능력도 손에 넣어야겠어.’
지금이야 선뜻 다가가기 어려웠으나 잠시 뒤 있을 메인 이벤트에선 얼마든지 플레이어들과 접촉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가면무도회의 메인이벤트.
그렇다.
애초에 이곳에 플레이어들이 모인 이유는 가면을 쓰고 춤이나 추자는 이유가 아니었다.
바로 탑의 하층부와 중층부를 담당하는 세력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
조금 더 덧붙이자면, 앞으로 탑을 오를 때 어느 세력을 선택할지를 고르기 위해서.
이곳에 모인 것이다.
그리고 진혁은.
그 모든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해답을 알고 있었다.
***
“그래서…… 그놈이 저희 이름을 댔는데도, 무시했단 말씀입니까?”
“예. 동맹을 했다는 말에도 코웃음을 치더군요. 경고를 했지만, 소용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흐음…….”
중화 길드의 2인자.
랴오위가 깊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방금 전까지는 이번 무도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에,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만끽했지만.
그 부유감은 요시오의 말 한 마디로 인해 산산이 박살났다.
이유는 단 하나.
강진혁.
또다시 그놈이다.
밑도 끝도 없이 물어뜯는 그 사냥개 같은 놈 때문에 달아올랐던 분위기에 찬물이 거허게 끼얹어졌다.
‘하필이면 남궁천 님이 자리를 비우셨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중화 길드에서 초대장을 받은 플레이어는 둘.
남궁천과 랴오위였다.
그러나 남궁천은 중원의 남궁세가로부터 새로운 검을 받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중화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묻긴 해야 한다.’
이미, 5층 엘프의 숲에서도 크게 한 번 당했는데, 연거푸 두 번의 수모를 겪을 순 없었다.
그건 길드 전체의 명성에 똥칠을 하는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 힘만으론 힘들다.’
분노보다 이성이 앞섰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
랴오위는 냉정하게 상대와 자신들의 실력 차이를 평가했다.
이대로 감정적으로 나선다면 또다시 패배의 쓴맛을 맛봐야 할 터.
허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고민이 깊어지고 있을 때였다.
“뭔가 걱정거리가 있나 보군.”
누군가 말을 걸어 왔다.
1m의 아담한 체구.
여리여리해 보이는 몸을 지닌 소인족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를 무시할 순 없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이자는 자신들을 이곳에 초대해 준 존재.
탑의 하급 관리자중 하나였으니까.
“카……만 님?”
“나에게 말해 보거라. 누가 감히, 나의 세력에 소속된 자들을 건드린 건지.”
무림 세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카만은 유망한 플레이어들과 각종 길드들을 무림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애써 왔고.
그 결과 중화와 사무라이라는 굵직한 카드들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곳에 참석할 수 있었으니, 하급 관리자로선 꽤나 성공한 거라고 봐야 할 거다.
“괘, 괜찮습니다.”
“별 일은 아닙니다. 카만 님께서 직접 나서 주실 필요까지는…….”
랴오위와 요시오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상위 랭커라고 하나, 하급 관리자는 격이 다른 존재.
때문에, 두 사람은 그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어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카만이 주위를 훑었다.
그러자 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진혁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가.
바로 저놈이 그토록 신경을 거슬렀던 거구나.
“어느 세력에 소속돼 있는 놈이지?”
“아직, 소속 세력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놈의 특성상 워낙 몇몇 소수 인원들하고만 다니는 걸 좋아해서요.”
그렇다는 건.
무림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찍어 눌러 버릴 수 있다는 뜻.
“걱정 마라. 건방진 인간 애송이 하나 내가 단단하게 교육을 해 주고 올 터이니.”
카만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