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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만렙 뉴비-182화 (183/653)

182화. 붉은 맹세의 문양 (2)

[층계의 보스 몬스터 중 하나가 당신의 행동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냅니다.]

붉게 물든 상태창이 나타났다.

동시에.

[하…… 이거 어이가 없네. 지금 뭐 하는 거냐? 응?]

전음을 통한 목소리가 뇌리에 파고들었다.

짜증이 잔뜩 섞인 여성의 목소리다.

‘역시, 놈들 중에선 이 녀석이 가장 먼저 반응하는군.’

몬스터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9층에서도 단연 손에 꼽는 강함을 지닌 세 마리의 몬스터.

새와 여자의 모습이 섞인 반인반수(半人半獸) 뇌조(雷鳥), ‘아타샤’.

원하는 거물급 네임드 몬스터가 미끼를 덥석 물었다.

“왜? 귀여운 애완동물 몇 마리를 잡아서 기분이 좀 나쁜 건가?”

[야…… 보니까. 인간들 중에선 그럭저럭 강한 모양인데, 그런 것 믿고 까불지 마. 한 방에 가는 수가 있어. 응? 들었어? 고작 오우거 몇 마리 이겨 놓고 이죽대지 말라는 거야. 내가 거기 있었으면 너 따위는 그냥…….]

음…….

“신기하긴 하네.”

[신기하다고? 뭐가?]

“지금까지 많은 보스들이나 네임드 몬스터들과 싸워 왔지만, 너처럼 무게감 없이 천박한 놈은 처음 만나 봤거든.”

예외가 있긴 하지만.

보통 주둥아리랑 실력은 반비례를 한다고 하던데.

예전보다 더 말이 많아진 지금은 과연, 그 말의 반만큼이나 따라올 수 있을지 묘하게 기대가 된다.

[크으으! 좋아. 재밌겠어. 역시 물고기는 팔팔해야 때려잡는 맛도 있지.]

“나도 마침 널 어떻게 패야 제 맛일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통하는 게 좀 있나 봐?”

진혁이 생긋 웃었다.

그리고 아타샤가 뭐라 하기도 전에 한 마디 덧붙였다.

“아! 발끈해서 쏘아붙이진 마. 보이스까지 첨부된 간접 메시지 남발하려면 코인 소모가 쭉쭉 될 텐데, 네 주머니 사정으론 무리잖아? 다른 사람 계좌가 떡락하는 걸 구경하는 것만큼 재밌는 게 없긴 한데…… 그것도 좀 있는 놈 이야기고. 넌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될까 봐 걱정돼서 조언해 주는 거야.”

새대가리 주제에 모아 둔 게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아니, 모아 둔 게 있어도 돌아서면 까먹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뇌조라면 더욱더 말이지.

[……죽여! 당장 죽이란 말이다!]

고함 소리와 함께.

구구구구구!

통로의 벽 한쪽이 올라갔다.

모습을 드러낸 건 또 다른 오우거들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처음 죽였던 놈들과는 생김새가 달랐다.

앞선 놈들이 근육질에 육중한 몸이 인상적이었다면, 지금 나타난 놈들은 긴 팔과 다리에 날렵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1.7m의 예리한 검과 둔탁해 보이는 직사각형 모양의 방패. 그리고 급소를 전부 쇠사슬로 가린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확실히 좀 다르긴 하네. 육질이 아주 질겨 보이는 게, 식탁에 올리기엔 무리일 것 같은 친구들이야.”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전신에 새겨진 문양이다.

호랑이의 갈기를 연상케 하는 문양에선 은은한 붉은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까 내가 보낸 건 그저, 정찰대야. 적당히 간만 보고 빠지는 용도랄까? 반면, 이 녀석들은 전투용. 성가신 놈들을 처리하기 위해 우리가 고른 정예들이야. 봐. 문양부터 다른 게 보이…….]

뇌조의 장황한 말은 채 끝을 맺지 못했다.

스윽…….

툭!

진혁의 손바닥이 오우거의 복부에 닿았다.

퍼퍼퍽!

섬뜩한 파육 음과 피 분수가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빠, 빨라?]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속도.

기동성과 대인전에 특화된 개량형 오우거들이 반응도 하지 못했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러나 더욱 놀라운 건 저토록 가벼운 손짓 한 번에 중형급 몬스터인 오우거가 즉사했다는 점이다.

예상외의 상황에 당황하는 뇌조와 달리.

‘손맛 한번 끝내주는군.’

진혁의 입꼬리는 가파르게 위로 올라갔다.

흑천마황공.

암황이 썼다는 무공답게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동안 주로 검을 이용해 전투를 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몸과 몸을 부딪치는 전투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특히나 ‘달을 가리는 손톱’과 내공과 마력을 동시에 운용하는 묘미는 꽤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새로운 쾌감을 느끼게 만들어 줬다.

‘몸 풀기로는 딱이겠어.’

크기도 큰 덕분에 치는 맛도 일품이다.

진혁이 ‘검마제왕보’를 사용해 단숨에 또 다른 오우거의 뒤를 잡았다.

콰아앙!

또 다시 주먹이 오우거의 갑주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크에엑!”

몸이 완전히 기역자로 꺾인 오우거가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이걸로 둘.

마지막 녀석은 거의 발악에 가까운 반격을 했다.

하늘 높게 솟구친 검이 수직으로 내리 꽂혔다.

순간,

쿠쿵!

진혁이 딛고 있는 지면이 둥그런 모양으로 움푹 파이더니.

쿠쿠쿠쿠쿠!

몸에서부터 검은색 기운이 일어났다.

흉흉하기 짝이 없는……. 천마신교에서도 극소수만이 익힐 수 있는 마기(魔氣) 중 하나.

정수리를 향해 날아오던 검이 그 기운에 막혀 허공에 우뚝 멈췄다.

두려움에 가득 실린 오우거의 동공에 날아오는 주먹이 맺혔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주먹이 엄니를 부수고 두개골까지 파고들었다.

콰콰콰콰콰쾅!

콰아아앙!

360도 회전한 오우거의 몸이 벽을 뚫고 반대편 벽까지 가서 박혔다.

그리고 또 다시 반대편 벽을 뚫고 그 다음으로 넘어갔다.

온몸이 박살나고 곤죽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계속해서…….

마침내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오우가 멈췄을 땐 이미 7개가 넘는 벽들에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무, 무식한……!]

뇌조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가득 배었다.

하지만, 처음과 다르게 그 분노에는 확신이 결여되어 있었다.

“인사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으니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지.”

진혁이 살짝 고개를 치켜들었다.

저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3마리의 몬스터를 향해서.

“어디에 있든 꼭꼭 숨어 있어. 아주 꼭꼭.”

이 미로가 든든한 은신처가 되어 줄 거라고 믿고 있겠지만 글쎄…….

고작 10,000km 정도의 모래상자를 믿고 있다간 이 술래잡기가 순식간에 끝나 버릴 거다.

***

“이, 이럴 수가…….”

그 모든 전투를 지켜보던 프리드먼이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숨이 막힐 정도의 압도적인 강함에, 숨 쉬는 것마저 잊어버린 탓이었다.

“고작…… 주먹 몇 번으로 저 괴물들을…….”

‘고작’.

그러한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단순해 보이는 움직임과 직선적인 공격은 심지어 허무해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입 조심하거라. 얼핏 보기엔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너의 어설픈 수준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경지의 무위를 보이신 거니.”

월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흑풍회에서도 최고수의 반열에 들어선 월영은 지금 진혁이 보인 움직임과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곧바로 옆에 있던 멜레나가 맞장구쳤다.

“저 녀석이 완전 괴물이긴 하지. 그래서 다들 착취당하는 거지만.”

“그러고 보니 소저는 누구신지요? 주군께서 함께 데리고 온 걸 보긴 했습니만…….”

“그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너랑 저기 뒤에 있는 놈들도 고인물 코퍼레이션인지 뭔지 하는 회사에 강제 입사한 거야?”

“그런 문파에 대해선 들어본 적 없습니다.”

“새파랗게 어려서 말투는 완전히 애늙은이 같네. 무슨 사극 찍냐?”

“사극이라면……?”

월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멜레나가 답답했는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쯧쯧. 너도 고생길이 참 훤해 보인다. 같이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처지에 누가 누굴 동정하겠느냐마는.”

“주군이 걸어가는 길이 혈겁으로 얼룩져 있을 거라는 것쯤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한데, 말씀하시는 걸 보면 소저께서는 주군에 대해서 제법 잘 알고 계시는 듯 보이는군요?”

“잘은 아니고…… 아니, 뭐 저 녀석과 만나고 나서도 살아남은 놈이 많이 없을 테니. 잘 아는 편에 속하려나. 아무튼 뭐가 궁금한데? 회사의 선배로서 아는 거라면 말해 줄게.”

“주군의 평소 모습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월영은 앞으로 모시게 될 진혁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나 없었다.

암황의 수제자라는 것과 강진혁과 언노운의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렇기에, 모든 게 알고 싶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전부 다.

그러자.

흠…….

잠시 고민하던 멜레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왕……이라고 해야 하나.”

무섭도록 강하고 누구보다 끈질기며, 적에게 있어서는 일말의 자비도 두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가 알고 있는 진혁이란 인물이었다.

바로 그때.

“둘이서 뭔 그리 대화를 많이 하고 있냐?”

당사자인 진혁이 다가왔다.

“아, 아냐! 아무 말도 안 했어. 진짜로!”

당황한 멜레나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면.

“고생하셨습니다.”

월영은 다양한 심정이 담긴 얼굴로 허리를 숙였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완성도 높은 무공을 보여 준 것에 대한 경외심과.

암황의 제자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당연함이 섞인 탓이리라.

[월영의 충성도와 호감도가 +5만큼 상승합니다.]

[복사 조건 완료까지 남은 충성 포인트: 95]

진혁의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과연 이런 식으로 복사 조건을 달성할 수 있는 거군.’

이런 식으로 월영에게 강한 존재감을 어필한다면 머지않아 녀석이 가진 능력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좋아.

이건 해결됐고…….

“그쪽은 부상자들 데리고 이만 빠져나가세요. 보다시피 그쪽 수준에서 상대할 만한 놈들이 아닙니다.”

진혁이 프리드먼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까지 얼이 빠져 있던 프리드먼은 진혁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번뜩 차렸다.

‘상대할 수준이 아니다’라는 것 정도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내 실력으론 저 사람들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겠지.’

고블린들을 일거에 쓸어버린 흑의인들은 엄청난 실력을 지닌 강자임에 틀림없었다.

록히드 길드 전원을 데리고 와도 저 서른 명 중 10분의 1의 역할도 맡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그런 흑의인들이 깍듯이 모시는 언노운은 아예 차원이 다른 실력을 보유한 괴물이었다.

그런 틈에서 억지로 끼어들려고 해 봤자 걸리적거리는 짐밖에 더 되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뒤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프리드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록히드 길드의 생존자들이 시신과 부상자들을 수습하는 동안 진혁과 월영 그리고 멜레나는 커다란 바위 뒤에 모여 앞으로의 일을 논의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정공법으로 일일이 출구를 찾아야 하나?”

“천천히 유람 여행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이곳이 경치를 구경하기엔 영 조건이 안 좋아서 말이지.”

퀴퀴한 미로에서 고생한 건 1층에 있던 미궁으로 족했다. 또 다시 이끼와 박쥐나 잡아먹으면서 몇 개월이란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다는 뜻이다.

“주군. 생각해 두신 거라도 있으신 겁니까?”

“잘 봐.”

진혁이 ‘코인 거래소’에 접속했다.

지금부터 미로를 최단 시간 내에 공략할 수 있는 고인물식 공략 법을 보여 줄 테니.

***

미로에서도 깊숙이 숨겨져 있는 틈.

얽히고설킨 통로와 수많은 함정들을 통과하고 나서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9계층에서 넘어온 몬스터들이 머무는 장소가.

고블린부터 오크를 비롯한 소형종부터 오우거와 와이번 등의 중형종까지. 그야말로 수십 종류의 몬스터들이 으르렁대며 이빨을 드러냈다.

당장이라도 날뛰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끓어오르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서로를 공격하는 놈들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는 세 명의 보스 몬스터들은 수정구를 눈앞에 두고 충격과 경악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수정구에서 보여 주는 광경엔 진혁이 있었다.

거기까지는 놀라울 게 없었다.

문제는.

“이런 미친……!”

“제, 제정신인가?”

“내가 말했잖아! 완전히 또라이라고!”

그 요주의 대상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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