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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만렙 뉴비-189화 (190/653)

189화. 고인물이 이중 전직을 하는 법 (1)

장(掌)법이 극에 달하면 형(形)을 이루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창파(槍破)’다.

손바닥에서 뻗어 나온 묵빛 검.

배에 바람구멍이 난 아타샤는 아직까지도 믿을 수가 없다는 얼굴로 상처와 진혁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설마, 이렇게까지 터무니없는 위력의 근접 스킬을 갖고 있을 거라곤 상상을 하지 못한 탓에 최고의 방어구인 ‘뇌갑’을 두를 타이밍마저 잡지 못했다.

하지만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만약…… 모든 걸 쏟아 부었다고 한들, 이 괴물을 넘어서진 못했을 것이다.

“아예…… 나……와는 격이 다른 놈이……었어.”

속에서부터 울컥 핏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이미 상태가 글렀다는 건 그 누구보다 그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카라칼과 서리칼날 부족으로 인해 뒤엎어진 전황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었다.

카라칼의 손에 목이 떨어진 리자드 킹과.

이제 여유를 되찾은 흑풍회와 월영의 합공으로 인해 꼬리를 만 채 도망가 버린 블랙 팽.

이제는 더 이상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수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타샤는 웃었다. 너무나 차게 웃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인했어.”

핏기가 완전히 사라진 얼굴로.

마지막 숨을 토했다.

“뭘 말이지?”

“네…… 수준으로는…… 그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걸.”

그 말을 끝으로.

아타샤의 몸이 무너졌다.

동시에.

오싹하고.

공기가 급변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레벨이 올랐다는 다는 메시지가 연거푸 올라왔으나,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지독한 살기가 내부를 장악했다.

흉흉하기 짝이 없는 기운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설마…….’

진혁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새로운 그림자가 보였다.

검은색으로 일그러진 공간에선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존재가 아래를 관조하고 있었다.

흑발에 오드아이를 가진 남자는 모습을 드러낸 것 그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저릿! 저릿! 저릿!

피부를 찌르는 마력이 익숙하다 못해 따갑다.

이 느낌. 이 감각.

알고 있다.

아니, 어찌 모를 수 있을까?

탑의 정점 중 하나라 평가받는 ‘마족’을.

“…….”

오만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눈빛으로 마족은 죽은 아타샤의 시체와 침입자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덜덜덜덜!

서리칼날 부족의 아이스 트롤들은 물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맡은 임무를 수행한다고 알려진 흑풍회의 대원들조차도 감히 녀석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운이…….”

“주……군!”

월영과 카라칼이 버티는 게 고작.

심지어 고구마와 정령수들이 그 압박을 견디다 못해 아공간 인벤토리로 역소환을 당할 정도였다.

압도적이다.

괜히 신격들의 위치에 근접했다는 말을 듣는 게 아니다.

하지만 진혁이 눈살을 찌푸리는 이유는 단순히 놈이 이 자리에 나타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계약을 어길 셈인가…….’

이번 일이 있기 전.

정확히는 미로에 들어오기 전 진혁은 릭과 계약을 맺었다.

[플레이어 강진혁은 중간 관리자 릭 헤네시에게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넘긴다. 대신, 릭 헤네시는 플레이어 프리드먼의 생방송 송출에 대한 10분 딜레이와 편집을 담당하여, 강진혁과 언노운과의 모든 연결점을 없애야만 한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연결점이란, 프리드먼을 포함한 이곳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또한, 이 층계에 대한 ‘최상위 세력’의 개입을 금한다.]

마인 협회의 멜레나가 이곳에 오면서 풍겼던 수상쩍은 위화감.

진혁은 그 위화감의 정체가 마왕을 비롯한 마족들과 관련된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놈들의 지상 과제는 바로 그들을 부활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릭과 계약을 맺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계약은 깨진 유리잔이 되어 버렸다.

바로 눈앞에 마족 중 하나가 현현해 있었으니까.

진혁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빌어먹을.

완벽하게 대비했다고 생각한 일에 구멍이 생기는 건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그것이 생존 확률이 한없이 0에 가까운 상황이라면 더욱더 말이지.

***

툭!

하늘에 있던 마족이 지상에 착지했다.

“흐음…….”

서로 다른 색의 눈동자가 카라칼에게 향했다.

1초 남짓의 짧은 시간.

“아니고…….”

이번엔 월영에게 향했다.

“이 녀석도 아니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시선이 진혁에게 우뚝 멈췄다.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힘이 실린 눈동자다.

“……너로구나. 우리 애들을 전부 몰살시킨 게.”

목소리가 들린 건 앞이 아니었다.

뒤다.

정확히는 목덜미 너머로 속삭이는 듯한 음성이 들렸다.

“……!”

반 박자 늦게 반응한 진혁이 크게 거리를 벌렸다.

재빨리 자세를 잡았지만, 이미 상대는 시야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뒤였다.

퍼퍽!

다리를 향해 날아온 검은색 탄환.

진혁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엄지손톱만 한 구체를 피했다.

곧바로 주먹을 뻗었으나, 이번에도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없었다.

‘빠르다.’

솔직히 말해 기척을 놓친다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과거에는 워낙에 레벨과 스탯이 높았기에, 설령 신격들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기척을 감지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이 된 지금은 모든 게 리셋됐다.

과거보다 더 빠르고 완벽한 성장을 하고 있지만, 아직 마족과 정면 대결을 벌이기엔 한참이나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상황이 불리했기에.

‘재밌네.’

진혁은 이 상황이 참기 힘들 정도로 흥분되었다.

역시, 강한 녀석을 끊임없이 만날 수 있는 게 시련의 탑이 매력적인 이유다.

그래. 이 정도는 돼 줘야 따분하지 않지.

“호오?”

마족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치켜떴다.

당연한 이야기다.

자신은 모든 생명체들이 두려워하는 마의 일족.

바닥에 납작 엎드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트롤들이나 인간들처럼 겁에 질려 절망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대체 어째서일까?

지금 눈앞에 있는 인간에게선 그러한 감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웃고 있어.’

즐기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을.

그리고 자신과 만나게 됐음을……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너는 별로 긴장을 하고 있지 않는구나.”

“미안하지만, 너보다 성가신 놈들하고도 몇 번 만나 봤거든.”

피를 쪽쪽 빠는 모기 녀석은 1층으로 보낸 터라 지금 당장은 이 자리에 없었지만, 탑의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대자 중 하나였고.

사막에서 만난 이집트의 동물농장 친구들 역시 마족보다 적어도 몇 단계는 윗줄의 신격들이었다.

그리고…… 탑의 50층에 있는 ‘그놈들’은 아예 차원이 다른 존재들이었고.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상대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들을 뛰어넘었다.

그런데, 고작 마족 하나에 겁을 집어먹는다면 그건 모순이다. 아무리 지금 상황에서는 자신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흐음.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는 건가?”

“물론이지.”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탐식의 눈’을 통해 상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 뒀다.

[대상의 레벨이 너무 높아 정보의 일부만 열람이 가능합니다.]

[마케드로스 - ‘죽음을 먹는 자’]

종족: 마족(魔族)

서열: 26위

전체 서열: ??

나이: ???

레벨: ???

힘 ??? 민첩 ??? 체력 ??? 마력 ???

고유 능력: 최초의 마법

스킬: ???

상세 설명: 마계의 권속 마케드로스는 ‘백작’의 작위를 가진 귀족입니다. 마계 서열은 26위로 매우 수준 높은 마법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마계는 서열 경쟁을 명분으로 전쟁이 발발한 상태인데, 그 점을 이용한다면 이 상황을 유리하게 설계할 수 있을 겁니다.]

‘탐식의 눈’이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탑의 존재들은 전부 다 외우고 있었지만.

눈이 있다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는 추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전쟁이라…….

‘이것도 시기가 조금 더 당겨졌군.’

아무래도 탑의 공략 타이밍이나 다른 변수들 때문이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어떤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그에 맞는 파훼법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진혁이 차분히 머릿속으로 주어진 정보들을 재배열했다.

마인 협회의 존재 이유와 목적 그리고 멜레나의 존재……. 5층에서 만났던 마왕 ‘썩어 가는 심장’과 그가 제안했던 2차 전직 ‘검은 사도’.

가지고 있던 패와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조합해 최강의 변수를 창출한다.

경우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진혁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네가 이곳에 왜 왔는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더 재밌는 제안을 하지.”

“어이가 없군. 그래도 제법 쓸 만한 실력을 지녔길래 나름대로 기대를 했건만,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이 영양가 없는 제안으로 목숨을 구걸하겠다는 건가?”

“들어보지도 않고 너무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거 아니야? 들어보면 마음이 바뀔 텐데?”

“아니, 그럴 일은 없다. 네놈 따위가 할 수 있는 약속이라 해 봤자 나에겐 시간 낭비일 게 뻔하니까.”

흥미를 잃어버린 듯.

새하얀 손가락이 재차 진혁의 심장을 향해 뻗었다.

파츠츠츠!

손끝에서 검은색 스파크가 일어났다.

조금 전, 사용했던 흑마법이다.

단, 이번에는 피할 수 없도록 동시에 10개가 넘은 마법 술식을 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글쎄. 서열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이라면 보잘 것 없는 인간의 말이라도 귀담아 듣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만…….”

이어지는 진혁의 말에.

“……너.”

마케드로스의 손가락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처음으로 당황한 얼굴이 여과 없이 전해졌다.

“마계의 일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전부 다 실토해라. 지금 당장!”

“정보의 누설이 염려되는 거라면, 너희 쪽에서 얻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무엇보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 않아?”

“이 썩을 놈이…….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건 네놈이 아니다! 어쭙잖은 말꼬리는 그만 잡고 묻는 말에나 답해라. 산 채로 타들어 가는 게 어떤 건지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분노가 가득 실린 음성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화르르륵!

작은 구체가 순식간에 재배열됐다.

마케드로스의 등 뒤로 5개의 오망성이 나타나면서, 각각의 마법진으로부터 불길한 흑염이 타올랐다.

헬파이어……와 비슷한, 마족 특유의 흑마법이었다.

서클로 따지면 9서클.

바위마저 증발시켜 버릴 수 있는 화염계 최강의 공격 마법 중 하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10서클의 실드나 성유물이 아닌 한 이 마법을 막을 수 있는 것 따위는 없다.

검강으로 상대한들 강기는 버텨도 몸이 타들어가 버릴 정도였으니까.

‘과연, 10마왕을 제외한 상위 마족답네. 거저 26위까지 올라간 게 아니라 이건가.’

그러나.

진혁은 그 무지막지한 겁화를 눈앞에 두고서도 겁먹지 않았다.

동요하거나 당황하지도 않았다.

“마케드로스.”

차분하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나는 마왕의 봉인을 풀 수 있는 ‘성물’의 위치를 전부 다 알고 있다.”

상대가 가장 원하는 걸 언급했다.

그러자.

“……!”

[마케드로스가 Lv?? ‘심상세계(心象世界)’를 발동합니다!]

세계의 시간이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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