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만렙 뉴비-215화 (216/653)

215화. 꺼지지 않는 모루 '오룬' (2)

"이런 말도 안 되는……!"

오룬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 진혁의 손놀림은 꽤나 준수한 편에 속했다면…….

지금 보여 주는 건 아예 차원이 다른 영역이었다.

꿀꺽.

목구멍을 타고 마른침이 넘어갔다.

카앙! 카앙! 카앙!

튀어 오르는 불꽃 너머로 드래곤의 피가 단검에 스며들고 있는 게 보인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련의 과정.

예술의 영역으로 승화된 경지는 지금까지 오룬이 알고 있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저것이 망치질인가.'

두근! 두근! 두근!

오룬의 심장이 빠르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있던 무언가가 지금 이 순간, 다시 한번 타올랐다.

바로 그때.

진혁의 손이 우뚝 멈췄다.

거짓말처럼 달아올랐던 공기가 식어 버렸다.

"왜…… 그러는가! 대체 왜 여기서 멈춘 거냔 말일세!"

클라이맥스 직전을 놓친 것마냥, 오룬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하면 아이템 강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마지막 고비 하나만을 남겨 둔 상태였던 것이다.

"제 실력으론 여기가 한계입니다. 더 하면 단검이 부서질 거예요."

진혁이 담담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

"마지막은 오룬 님께서 완성해 주세요."

이 대미를 장식하는 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날…… 믿는다고? 이 아이템은 자네에게 소중한 것 아니었나?"

"비싸고 소중하죠. 그렇기 때문에 오룬 님에게 부탁드리는 겁니다."

"내가 지금까지 열 개가 넘는 장신구를 박살 낸 건 알고 하는 말인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과는 다르죠. 지금은…… 다시 한번 망치를 두드리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습니까?"

"……."

오룬이 진혁과 망치를 번갈아 바라봤다.

고민을 하는 듯 보였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해 보겠네."

"그전에 이것부터 한번 마셔 보세요."

진혁이 오룬을 향해 검은색 병 하나를 던졌다.

까드득!

병뚜껑을 연 오룬이 안에 든 액체의 냄새를 맡았다.

코끝을 찌르는 역한 냄새에 오룬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뭔가? 약재 같긴 한데…… 처음 보는 거구만."

당연히 처음 보겠지.

이건 편의점에서 구입해 둔 숙취 해소 음료였으니까.

"믿고 쭉 들이키세요. 아마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트라우마의 문제도 있었지만, 오룬에겐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혈종알코올 과다증.

간단하게 말해 1년 365일 24시간 내내 술을 처마셔대니 본래 실력이 안 나오는 거다.

[상태 이상이 해소됩니다.]

[집중력과 정교함이 300%만큼 상승합니다!]

병에 든 걸 전부다 입속에 털어 넣은 오룬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기할 수밖에 없다.

정신이 말똥말똥해지고 울렁거리는 취기가 삽시간에 사라졌을 테니까.

이게 바로 야근과 회식으로 닳고 닳은 현대 직장인들을 위한 필수품이란 것이다.

"끝……내주는군. 이런 영약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네."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이제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해 주세요."

"이런 귀한 것까지 줬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나만 믿게."

오룬이 결연한 표정으로 망치를 하늘 높게 들었다.

"하지 마. 진짜 저 믿을 게 없어서 저 영감탱이를 믿는 거야? 믿으면 안 된다고! 절대 믿으면 안 돼!"

엘리스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쓴 맛을 본 당사자가 강력하게 말리니, 뭔가 살짝 불안하긴 하다.

사실 엄청나게 불안하긴 하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흐어어업!"

각종 스킬이 중첩된 망치가 단검을 강타했다.

단순하게 보여도 수십 년의 세월이 축적된 일격이었다.

'제발……!'

우우우웅!

바로 그때,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대장간 내부가 하얗게 물들었다.

***

[놀라운 장인의 솜씨! 극한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성유물의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펜타그리스의 송곳니(파란색)]

공격력: 5570

내구도: 2200 / 2200

특수 효과(기본 패시브형): 매 3번째 공격 시마다 크리티컬 확률이 7%만큼 상승합니다.

자기 희생(액티브형): 펜타그리스의 송곳니를 자의로 파괴할 경우 100% 확률로 공격력의 100배를 상승시킬 수 있는 옵션이 추가됩니다.

색깔이 한 단계 바뀌었다.

초록빛을 머금은 검신이 이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진짜로 성공했군요."

"어라? 진짜로 성공해 버렸잖아?"

"이럴 수가. 내가 성공했다고?"

이번엔 세 명이 동시에 놀랐다.

한 명만큼은 놀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성공했으니 그런 문제는 넘어가도록 하자.

지금 중요한 건 이 미친 아이템의 자태를 감상하는 거였으니까.

'제국의 보물창고에서 얻은 창보다 오히려 공격이 높아.'

단검이 지닌 휴대성과 속도라는 측면을 고려했을 때 이건 말도 안 되는 능력치였다.

거기에 성유물의 강화라는 극악의 확률을 뚫은 덕분에, 뜻밖의 특수 효과까지 두 개나 붙었다.

진혁이 떨리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차분하게 상태창에 적힌 글자들을 읽어 나갔다.

3회 타격 시 크리티컬 확률 7% 증가라…….

'이것도 훌륭하지.'

전투가 길어질수록 크리티컬이 터질 확률이 높아지는데다, 7%란 확률 자체도 꽤나 높은 축에 속했다.

상대하는 입장에선 갑자기 들어오는 큰 데미지에 당황할 수밖에 없을 거다.

'게다가…… 이 자기 희생이라는 액티브 효과는 거의 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일격필살(一擊必殺).

무려 55만에 해당하는 데미지를 입는다면, 제아무리 보스 몬스터라 할지라도 버텨내기가 쉽지 않으리라.

통상적인 중‧대형급 몬스터들의 체력도 50만은커녕 10만도 채 넘지 않는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좋아.

아주 만족스럽게 일이 마무리됐다.

아니,

아직 딱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더 남아있긴 했지만.

진혁이 오룬을 향해 생긋 웃었다.

"역시 훌륭한 솜씨십니다. 탑 내에서 제일가는 대장장이란 말이 맞았네요."

"커흠! 내가 원래 이 정도는 하네. 지금까지는 살살 해서 그렇지. 이제야 손이 좀 풀리는구만. 솔직히 말해. 나만 한 대장장이가 없긴 해. 안 그런가? 허허허!"

잔뜩 콧대가 높아진 오룬이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그건 그렇고. 피해 보상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음? 무슨 피해 보상?"

"저희 소중한 동료의 보물들을 전부 박살 냈으니. 당연히 그에 대한 값을 치르셔야죠."

"하, 하지만 그건 자네가 괜찮다고…… 넘어가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랬죠. 저는 그랬는데……."

진혁이 슬쩍 옆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그곳엔 분노로 일그러진 고고한 여왕폐하가 서 있었다.

"이 친구는 아니라는데요?"

"헉!"

쿠쿠쿠쿠쿠쿠!

대장간에 있는 각종 물건들이 허공을 향해 떠오르기 시작했다.

'블러드 로드'로 인해 발현된 핏방울들이 서서히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감히 내 보물들을…… 다 부숴? 그리고 내 걸 다 부수니까 그제야 성공을 한다고? 지금 장난하는 거지? 아니면 날 열 받게 하려고 아주 환장을 했거나."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이 오룬의 전신을 짓눌렀다.

마치, 드래곤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와 같은 압박감이다.

이건…… 틀림없이 죽는다.

오룬이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살아야겠다는 일념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얼……마를 보상해 주면 되는 거지?"

"8000억 코인은 주셔야겠는데요?"

"8000, 8000어어억?"

오룬이 두 눈이 하마터면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이 친구가 워낙 고가의 보물들만 취급해서요. 그것도 많이 깎아 드린 겁니다."

"내, 내가 그런 코인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 황제라고 해도 그 정도 보상을 해 주는 건 무리야."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밖엔 없겠네요."

진혁이 마력이 깃든 종이 한 장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입사지원서였다.

"귀하의 이번 상반기 공채 지원을 환영합니다. IT와 빅데이터를 선호하는 저희 기업은…… 이, 이게 다 무슨 뜻인가? 읽을 순 있는데,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별 내용 아닙니다. 자질구레한 내용이니 자세하게 읽어 보실 필요는 없어요. 자세하게 읽어 보지 말라고요."

"아, 알겠네."

"그 아래쪽에 서명과 날인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예. 바로 거기요. 거기에 오룬 님의 성함을 적으면 됩니다."

"잠깐……!"

본능적으로 뭔가 불길하다는 걸 인지했지만…….

진혁은 반강제적으로 오룬의 서명을 받아냈다.

이걸로 회사의 든든한 사원 하나가 더 늘었다.

'애초에 제작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야.'

전문가가 있는데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이곳에 매달려야 할 이유는 없다.

오룬을 자극했던 것도 모두 이 드워프의 능력을 복사해 다른 스킬들과 융합하기 위해서이지.

결코 스스로 제작을 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조만간 복사한 스킬들을 가지고 더욱 다채로운 융합을 시도해 봐야겠어. 물론, 스킬들에 익숙해지는 수련도 뒷받침되어야겠지.'

'데이라이트'와 '화룡의 숨결'을 융합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광역 스킬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치 고구마의 고유성창(固有聖唱)과 같은 효과를 지닌 스킬을 말이다.

그렇게 앞으로 해야 할 과제들을 생각하자 진혁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갔다.

더욱더 강해지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이 아직 한참이나 많이 남아 있다는 건 역시나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대——앵!  대——앵!  대——앵!

길고 높은 종소리가 성내를 뒤흔들었다.

"이건 설마……."

오룬은 곧바로 이 종소리가 무얼 의미한지 깨달았다.

그리고 진혁 역시 이것이 뜻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펠로몬의 종.

제국의 수도가 공격받고 있을 때만 울리는,

'최후의 종'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종이다.

***

"적습이다! 전 병력은 성 위로 집결해라!"

"궁수대! 마법 병단은 대기! 일제히 화력을 집중해만 한다!"

"근위대는 폐화와 황족을 보호하라! 절대 놈들을 이 안으로 들여선 안 된다!"

중간급 지휘관들이 미친 듯이 병사들을 지휘했다.

제국의 심장부에 위치한 이곳에 적이 왔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었지만.

지금 코앞까지 다가오는 적들을 보면서도 현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갑주를 입은 병사들과 각종 병대들이 분주하게 성 안에서 움직였다.

철컹!

투석기에 거대한 바위들이 장전되고. 기사단이 검을 뽑은 채 성 내에 있는 거점들로 이동했다.

각종 전략 물자들을 나르는 짐꾼들과 가축들로 인해 성 내부는 그야말로 혼돈에 가까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 이곳에 적이라니."

"대체 어떤 놈들이 여기까지 온 거야?"

"그런 건 나중에 신경 쓰고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엄마……."

시민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전투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안쪽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망루 위에 있던 진혁은 그 모든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

처음에 종소리를 들었을 때 다양한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가장 확률이 높은 건 무림이었고 두 번째 순위는 얼마 전에 만났던 마인 협회 놈들이었다.

두 녀석 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서슴없이 저지를 테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건 무림도 마인 협회도 아니었다.

"이번에도 꽤 만만치 않겠네. 완전히 허를 찔렸어."

엘리스가 짧게 혀를 찼다.

확실히 그 말대로다.

설마하니 놈들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과연,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건가."

온다.

진혁이 새로 얻은 송곳니를 움켜쥐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