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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216화 (217/653)

216화. 새로운 세력 & 중층부의 균형 (1)

'설마 이 녀석들이 지금 타이밍에 움직일 줄은 몰랐는데…….'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성 밖으로 다가오는 건 크기 5m의 중형급 거인들이었다.

숫자는 총 일곱.

많지는 않지만,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는 놈들이다.

하나의 거인은 1개 중대급의 병사들로도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것이 제국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수도에 난입했다간, 어떤 피해가 일어날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거인들은 영역 본능이 충실한 놈들인 걸로 아는데…… 아니, 그보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아무리 제국이 내부 분열로 인해 약화된 상태라지만, 저 크기의 거인들을 놓칠 정도라고?"

엘리스가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마…… 저길 통해서 온 걸 거야."

진혁이 성 오른쪽으로 흐르는 강을 가리켰다.

강과 바다가 만나 내륙으로 흐르는 통로. 해운(海運).

7개의 왕국을 거느린 제국답게 각종 물자를 운반하기 위한 수송 루트 또한 갖추어 두었다.

"놈들이 배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는 거야?"

"그것보단 좀 더 터무니없는 방법을 썼어."

자세히 보면 거인들의 몸이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설마…….

"물…… 속으로?"

"그래. 놈들이 있는 성체에서 이곳까지. 물속을 통해 별동대를 보낸 거야."

이렇게 한다면, 국경 수비대의 눈을 피해 제국 깊숙이 잠입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이 그리 맑지 않는다는 점 역시 거인들의 몸을 숨기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을 테고.

어떻게 물속에서 호흡을 했는지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런 방법을 떠올린 '놈'의 특성을 봤을 때 무언가 기발한 방법을 찾아낸 게 틀림없었다.

'거인들의 왕이라…….'

진혁이 과거의 추억을 회고했다.

오그라쿤.

녀석은 탑의 중층부에 있는 소수 세력. 거인들을 이끄는 왕으로.

제국과 무림이란 거대 세력 속에서도 유일하게 그 영역을 지켜낸 한 종족의 군주이다.

'동시에, 이번 전쟁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놈이기도 하지.'

어찌됐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제국도 무림도 아닌, 거인들의 손에 의해서.

***

"대체 국경 수비대들은 뭘 했길래 일곱이나 되는 거인들을 놓친 거냐!"

"젠장. 그건 나중에 따지고. 우선 막아야 돼!"

"쏴라! 있는 대로 다 퍼부으란 말이다! 놈들을 성벽에 접근하게 해선 안 된다!"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지축을 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쿵! 쿵! 쿵! 쿵!

육중한 체구로부터 나오는 충격음이 피부에 다가왔다.

마치, 한 무리의 코뿔소들이 돌진해 오는 것만 같은 압박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콰콰콰콰쾅!

콰아아앙!

각종 마법들이 거인들의 몸에 작렬했다

불꽃과 얼음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크오오오!"

"오오오!"

전신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거인들이 울부짖었다.

하지만, 잠시 속도를 멈췄을 뿐이다.

거인들은 기계적으로 성 바로 아래 있는 해자까지 도달했다.

"빌어먹을! 벌써 여기까지 왔어!"

"아무리 놈들이 커도 여긴 20m가 넘는다고. 쉽게 기어오르진 못할…… 허억?"

말을 하던 병사 하나가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체격이 상대적으로 큰 거인 둘이 작은 거인의 양 발을 붙잡더니.

이내 허공을 향해 높게 던져버린 것이다.

도움닫기를 받은 것처럼 거인 하나가 단숨에 성벽 위를 뛰어넘었다.

하필이면 성벽 중에서도 방어가 가장 취약한 궁수대가 밀집해 있는 곳으로.

그것이 의도였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단지, 확실한 건 이곳에 있는 방어 병력으론 거인을 막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뿐이었다.

"죽……어라!"

거인이 거칠게 포효했다.

이어진 것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콰콰콰콰콰!

거인이 바위도 일격에 두 동강을 내 버릴 것 같이 커다란 도끼를 휘둘렀다.

"끄아아악!"

"내, 내 다리가!"

"사…… 사람 살려!"

철갑주과 방패로 무장한 병사들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아예 방어한다는 선택지 자체를 무색케 하는 공격이었다.

보병이 뚫리자 바로 옆에 있던 궁수대가 그대로 거인에게 노출되었다.

원거리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궁병을 잃는 건 전략적으로 값을 따질 수 없는 손실일 터.

반드시 궁수대가 전멸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특히나 적이 이곳까지 올 수 있던 방법을 모르는 상태라면 더욱더 말이다.

"전부 모조리 죽……여 버린……다!"

거인이 인간의 언어를 중얼거린 채 미친 듯이 도끼를 휘둘렀다.

팔과 다리가 조각조각 잘려 나가며, 허공이 피분수로 붉게 물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거인의 앞으로 누군가 끼어들었다.

"설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화르륵!

검신을 따라 눈이 시린 푸른색 광휘가 맺혔다.

오러를 다루는 자.

제국이 보유한 최강의 무기.

……바로 기사다.

"와아아아!"

"템플 기사단이다! 템플 기사단의 멜베른 경이 왔어!"

"이제 됐다. 살았다고!"

방금 전까지 지옥에 있던 병사들이 멜버른의 등장에 환호했다.

금발에 청안을 가진 멜버른이 단숨에 거인의 팔을 밟고 목덜미가 있는 곳으로 도약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동작으로 거인의 뒤를 잡은 멜버른이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카아아앙!

거침없이 질주하던 검이 갑자기 허공에서 튕겨나갔다.

"오……러를 막았다고?"

멜버른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틀림없다.

거인은 도끼를 이용해 검격을 맞받아쳤다.

신체적인 스펙의 우위만으로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게 거인이라는 종족의 특징일진데…….

설마, 오러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까지 갖고 있을 줄이야.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멜버른이 재빨리 몸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이번엔 도끼가 옆으로 비스듬히 기우는가 싶더니.

콰직!

멜버른의 검과 함께 그 몸을 정확하게 두 쪽으로 박살 내 버렸다.

"멜버른 경이…… 일격에 당하다니."

"미, 믿을 수가 없어."

"무슨 거인의 저따위인 거야? 저걸 무슨 수로 이기라고?"

희망이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기사가 채 1분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는 사실에 병사들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크크……크크! 인간……들. 약하다. 우리는…… 강하다."

거인이 기괴한 웃음을 터뜨리며 입꼬리를 씰룩댔다.

스스로의 힘에 도취된 듯 인간들을 내려다봤다.

"오……랫 동안 우리를 괴롭혀 온 버러지 같……은 인간 놈들. 오늘 전부 죽인 다음…… 그 고기로 만찬을 벌여 주마."

거인이 포식의 꿈에 부푼 채 더욱더 공포에 질린 인간들의 표정을 즐겼다.

역시, 사냥감은 감히 포식자에게 덤빌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잡아먹히는 게 자연의 순리다.

그런데.

웬 겁대가리를 상실한 인간 하나가 태연하게 거인을 향해 다가왔다.

모두가 벌벌 떨고 있는 와중에도 녀석은 조금도 겁을 먹지 않은 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미……친 건가? 아니면…… 멍청한 건가?"

거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이내 도끼를 하늘 높게 치켜들었다.

방금 전 멜버른이라 불리는 기사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상대의 머리통을 쪼개 버릴 생각이었다.

부우우웅!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도끼가 남자의 머리로 향했다.

하지만…….

거인이 기대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콰아아앙!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던 도끼가 처음으로 가로막혔다.

그것도 겨우 얇디얇은 단검 한 자루에 의해서.

***

"나쁘지 않은 무기야."

진혁이 거인의 도끼를 슬쩍 바라봤다.

오러에도 견딜 수 있는 운철(隕鐵).

바로 이것 때문에 거인이 기사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본래의 힘과 속도도 무지막지했으니, 당연히 기사가 당해낼 수 없었을 수밖에.

"드워프들까지 개입됐나?"

"그, 그걸 어떻게……?"

"뭘 놀래? 뻔한 걸 가지고."

이런 고급 기술은 거인들이 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태생부터 대장장이라 할 수 있는, 오직 드워프들에게만 허락된 종류지.

거대 세력의 이권 다툼에 소수 세력들이 말려들어 피해를 보더니.

결국 그들이 연합을 해 또 하나의 세력을 만든 모양이다.

"궁금한 건 전부 해소됐어. 짧은 만남이었지만, 여러 가지로 고마워."

"고작…… 잠깐 막은 걸 가지고 으스대지 말아…… 크허업!?"

거인과 멜버른 사이에 있던 일이 그대로 반복되었다.

차이점이라면 그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점이랄까?

그그그극!

카칵!

도끼의 표면에 서서히 균열이 일어났다.

오러에도 멀쩡하게 견디던 운철이 송곳니를 견디지 못해 쪼개지고 있었다.

무려 파란색 등급.

대장장이 오룬의 고유 능력과 펜타그리스라는 상위 환수의 조합은 역시나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 대체 뭐 하는 인간……이냐?"

"곧 죽을 놈이 그것까진 알 것 없고.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어."

이건 진심이다.

몇 날 며칠을 물속에서 걸어오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물론, 그 고생에 대한 보답도 제대로 받기도 전에 죽게 됐지만.

그 말을 끝으로.

서걱!

단검이 거인의 목을 날려 버렸다.

거대한 머리가 성벽 위로 데구르르 굴렀다.

치가 떨릴 정도로 강했던 거인의 최후치곤 너무나 허망한 결말이었다.

"우, 우리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지?"

"젠장. 같은 걸 봐 놓고 뭔 꿈 타령이야?"

"대체 어느 기사단 소속된 분일까? 이렇게 강한 기사님이라면 한 번쯤 봤을 법도 한데……."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은 지금 자신이 본 게 현실이 맞는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몇몇은 손으로 눈을 비비거나 머리를 터는 이들도 있었다.

최근 새로 임명된 기사단의 기사단장.

혹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는 최상위 등급의 용병.

대부분은 눈앞에 나타난 남자가 둘 중에 하나라고 확신했다.

그만큼 지금 진혁이 보여 준 광경은 평범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자, 잠깐! 저 사람. 수배서에 있던 죄인이잖아?"

누군가의 말에 또 다시 동요가 일어났다.

"그래. 탑 밖에서 온 플레이어. 귀족 나리들의 회의장에서 난동을 부렸다던 그 남자야."

"현상금만 해도 우리가 평생 모아야 될 돈이라고 들었는데."

"그럼, 잡아야 되는 거 아니야?"

"잡는다고? 뭔 수로 잡아 저 괴물을?"

그렇다.

아무리 현상금이 많이 붙어 있으면 뭐 하나?

자신들의 능력으론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나무열매인데?

게다가 생명을 구해 준 은인에게 곧바로 칼을 들이미는 것도 영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급한 것은 범죄자의 체포가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거인들 아닌가?

지금 성벽을 초토화로 만들어버린 거인은 고작 일곱 마리 중 하나였을 뿐.

남은 여섯 마리를 상대하려면 당장 전력을 재정비해야만 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세요."

진혁은 담담하게 그들을 제지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직 저 아래 남아 있는 놈들이……."

"남아있는 놈들이라면 누굴 말하는 거죠?"

기습은 끝났다.

이미 또 하나의 플레이어인 '언노운'이 나섰으니까.

기하학 무늬가 새겨진 가면을 쓴 플레이어가 하늘 위에 떠 있는 게 보였다.

[엘리스가 고유 능력 '블러드 로드'를 발동합니다!]

그렇게.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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