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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218화 (219/653)

218화. 새로운 세력 & 중층부의 균형 (3)

똑똑.

다시 한번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암살자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예의 바른 행동이다.

아니, 오히려 저렇게 자신감을 드러내는 편이 더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들어오세요."

진혁이 송곳니를 단단히 움켜쥔 채 전방을 주시했다.

덜컹.

문이 열리자…….

……의외의 인물이 나타났다.

"이야. 손님 대접이 영 박하군. 다양한 집에 놀러 가 봤지만, 칼부터 들이미는 경우는 처음이야."

금발의 청안을 가진 미남자.

공작의 측근 중 하나인 에브라함이었다.

반쯤 남은 와인 병을 흔들며 생긋 웃는 모습이 누가 보면 10년 지기 친구인 줄 알겠다.

"그쪽은 기본 예의라는 것도 없어? 이 야심한 시간에 왜 남의 방에 불쑥 들어와?"

"딱딱하게 그러지 말고. 가볍게 술이나 한잔하지. 어차피 시간도 많이 남아 있잖아?"

에브라함이 허락도 없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거실에 있던 엘리스가 깜짝 놀라 가면을 다시 썼다.

그리고 재빨리 자신의 방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다다다.

쪼르르 자기 방으로 도망가는 모습이 고양이를 피해 도망가는 햄스터 같다.

"저 친구는 왜 저러는 거냐?"

"냅둬. 낯을 많이 가려서 그래."

"그런가? 흠. 하긴 마도사들이 좀 괴팍한 구석이 있긴 하더군. 그것도 대마도사의 반열에 오른 실력자라면 더 특이하긴 하겠지."

"대마도사라고?"

엘리스가?

"몰랐나? 성벽 위에서 보여 준 마법은 제국의 수석 마법사이신 필그림 님도 혀를 내두르실 정도였다. 처음엔 드래곤이 나타난 줄 알았다며 얼굴이 하얗게 질리셨더군."

하긴, 하도 맹탕 같은 모습을 많이 보여서 그렇지.

엘리스가 원래 대단한 존재이긴 하다.

본래라면 제국의 마법사나 기사들이 감히 엘리스의 격을 정면에서 받아내기도 힘들었을 테니까.

'그런데 어쩌다가 저렇게 바보가 된 건지…….'

진혁이 문틈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는 엘리스를 보며, 혀를 쯧쯧 찼다.

"그래서 저 녀석을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였냐?"

"아니, 나는 그대를 보기 위해 왔다. 솔직히 말하면, 마도사보다는 검사가 내 취향에 더 맞거든. 전투란 직접 맞부딪쳐야 한다는 게 지론이기도 하고."

"검을 쓰는 놈들은 왜 하나같이 전투에 미친 놈들뿐인지……."

"음?"

"아니야. 너랑 비슷한 놈이 있어서 그래."

천유성이라고.

검만 들면 피에 굶주린 검귀가 되어 버리는 의학계의 꿈나무 같은 녀석이 있다.

정확히는 있었지.

지금은 무림 녀석들이랑 쿵짝이 맞아 상대 진형으로 넘어가 버렸을 테니까.

"편집하느라 피곤했는데, 네 말대로 술이나 한잔하지. 마침, 내 쪽에서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

진혁이 테이블에 앉았다.

"시원시원해서 좋군. 마음에 들어."

에브라함이 투명한 유리잔에 붉은색 액체를 꼴꼴꼴 따랐다.

이미 엘리스가 휩쓸어 버린 식탁이었기에, 안주는 전멸하다시피 한 상태였지만, 치즈 몇 조각이면 충분할 거다.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봐라. 대답해 줄 수 있는 거라면 대답해 주지."

"생긴 거랑 다르게 나쁜 놈 같지는 않은데, 어째서 공작 편에 붙은 거냐?"

진혁의 질문에, 에브라함의 손끝이 움찔했다.

"흠. 시작부터 센 질문이로군."

"밤은 가뜩이나 짧은데, 그걸 너랑 계속 보내고 싶진 않거든."

"푸하하! 그래. 남정네 둘이서 밤새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할 수는 없지."

"이유가 뭐냐? 그랜드 소드마스터가 황제가 아닌 공작 편에 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을 텐데?"

"제국의 내부 사정에 대해 아는 게 많은 것 같으니, 편하게 말하마. 그대도 현재 황권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는 알고 있겠지?"

라인하르트 황제는 손과 발이 모두 절단 난 허수아비 황제다.

제국의 미래를 위해선 반드시 새로운 별이 필요하다는 뜻.

다시 말해 라인하르트의 이름을 이을 황자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1황자는 나이가 충분히 들었으나 황제가 될 그릇이 아니었다.

'무능한 폭군이 있다면 딱 어울릴 만한 녀석이지.'

녀석은 심성이 포악하고 잔혹했으며, 치세를 펼치기보단 당장 눈앞의 쾌락과 권력을 탐했다.

제법 총명했던 2황자는 사냥을 나갔다가 의문의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이거야 귀족들 쪽에서 손을 썼을 확률이 높았고.'

마지막으로 3황자는 역사에 길이 남을 군주의 덕목을 갖추고 있었으나, 나이가 너무 어렸다.

'위협이 되려면 시간이 너무 걸리는 데다, 2황자에 이어 3황자까지 손을 쓰기엔 아무리 베인슈텔른이라도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겠지.'

확실한 건 어차피 3황자가 기반을 닦고 날아오르기도 전에, 귀족들에 의해 날개가 갈가리 찢겨 나갈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귀족들 편에 붙었다?"

"제국의 앞날을 위해서다. 철혈이란 수식어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고 각 왕국들이 호시탐탐 제국에 반기를 들 눈치만 살피고 있는 게 현실이었으니까. 게다가 무림과 제3 세력까지 있는 이상, 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흠.

황제 하나보다는 수백만 제국민의 앞날이 더 중요하다 이건가.

"그런 명분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나에게 접근한 이유는 뭔데?"

에브라함이 진혁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모든 걸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진심이냐?"

"술은 제법 마셨지만, 헛소리를 내뱉을 정도로 많이 마시진 않았다."

장난치는 거라 생각했지만, 연신 눈웃음을 짓고 있던 녀석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져 있었다.

……이건 진심이다.

"그대와 펜하이머와의 관계는 알고 있다. 역시 그 영감님은 포기를 모르더군. 그래서 조금 더 깊이 조사해 봤다. 제국의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탑 밖에서 온 플레이어가…… 사실,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가 쌓아 온 업적이 어느 정도인지. 전부."

에브라함이 와인을 한 모금을 머금었다.

"사실, 나는 한 인간으로 인해 대국이 바뀐다는 건 믿지 않는다. 설령, 그 대상이 인간의 경지를 아득히 초월한 그랜드 소드마스터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공작에게 붙었다.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없다면.

차선의 선택이라도 해야 했기에.

"허나, 그대를 보고 생각을 조금 달리하게 되었다. 어쩌면, 한 인간이 정말로 제국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설마…… 다시 황제의 편으로 돌아서겠다는 거냐? 공작을 배신하고?"

"그렇게 될지 아닐지는, 나에게 달려 있지 않다."

"내 행보가 결정한다 이거군."

"그렇다."

[Lv10 '탐식의 눈'이 대상이 한 말의 진위를 판별합니다.]

[에브라함이 한 말은 '사실'입니다.]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다.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

에브라함의 변덕으로 인해, 커다란 변수 하나가 나타났다.

잘만 이용하면 공작에게 치명상을 가할 수 있는 히든카드가.

'문제는 이걸 얼마나 잘 활용하냐 이건데…….'

진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쪽에 붙을 생각이지?"

"그대가 말한 대로 제국의 도움 없이 거인들의 성체를 공격해 거점을 확보해라. 실력을 증명하는 것이야말로 이 모든 것의 대전제니까."

뭐, 이거야 원래 하기로 했던 거니 별 대수롭지 않은 조건이다.

"두 번째로. 무림에 그대의 친우가 있다고 들었다."

"친우는 아니고 거머리 같은 웬수에 가까운데……."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내부에 같은 편이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지."

"아니, 지금은 같은 편이 아니라니까?"

"그자로부터 무림 내부의 정보를 얻어 오는 게 두 번째 조건이다. 당연히 여기서 말하는 정보란, 전세에 도움이 되는 정보여야 한다."

젠장.

이쪽 말은 아예 들어먹을 생각이 없다.

어떻게든 두 가지를 전부 성공시켜야만 저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겠다는 뜻이리라.

물론, 이 정도만 해도 예상 밖의 수확이었다.

한밤중에 휴식을 방해받은 것치곤 지나치게 훌륭한 소득이지.

"대충 이야기는 다 한 것 같군. 그럼, 행운을 빌지. 나는 먼저 일어나도록 하마."

에브라함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의 걱정과 기대감을 간직한 채.

무언가 생각났는지 그런 녀석을 진혁이 불러 세웠다.

"아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혹시 일이 잘못되어 배신한 게 들통 나더라도 너무 걱정하진 마."

"그건 또 무슨 뜻이냐?"

"별건 아니고. 혹시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도 너 하나 정도는 챙겨 줄 수 있다는 소리야."

에브라함 앞에 종이 한 장이 나타났다.

"고인물…… 코퍼레이션?"

"아주 훌륭한 회사야. 인재를 알아보는 곳이랄까?"

진혁은 마지막으로 영업 제안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회사의 대표로서 능력 있는 신입 사원은 언제나 환영이었으니.

***

거인들의 성체를 공략하기 위해 각종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워낙 소수로 움직여야 하는 데다, 거인들이 있는 곳까진 가장 빠른 루트로도 일주일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감히, 짐에게 짐을 들라는 것이냐?"

엘리스가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흑……."

머리에 혹이 하나 생겨난 엘리스가 자기 몸보다 큰 짐을 등에 멨다.

다음은 진혁 옆에서 자랑스럽게 무기를 손질하는 티본이 눈에 들어왔다.

티본에게는 고구마나 다른 정령수들과 함께 벌레 굴에서 레벨업과 성장에 주력하라고 명령해 뒀었지만…….

이번 일을 위해 다시 불러들였다.

다른 녀석들은 안 돼도 언데드 몬스터로 계약이 된 티본만큼은 가능했기 때문이다.

"달그락. 티본. 강해졌다. 마스터는 내가 지킨다."

티본이 앙상한 뼈를 한껏 부풀렸다.

으음.

언제 오우거 밀크로 목욕이라도 한 번 시켜 줘야겠다.

뼈 사이에 구멍이 송송 뚫린 게 딱 봐도 칼슘이 부족해 보이네.

신장 차이가 30배는 족히 날 적이랑 싸우게 시킬 생각을 하니 묘하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 셋이서 가는 거야? 거기까지?"

"그래. 기대되지? 자연을 벗 삼아서 크으……."

가다가 버섯도 따다 먹고 가재도 잡아먹고.

캠핑하는 기분을 제대로 낼 수 있을 거다.

엘리스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런 것 따윈 알 바 아니다.

애초에 중세시대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이라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늦으면 놓고 간다."

진혁이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기, 기다려."

"달그락."

그리고 그 뒤를 엘리스와 티본이 따라나섰다.

***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제국의 수도에서 멀어지자, 한적한 산길이 이어졌다.

따사로운 햇살과 푸른 풀 내음. 상쾌한 공기까지.

미세먼지와 황사로 가득한 서울의 봄과는 꽤나 대비되는 광경이다.

물론.

서울에선 대낮의 평범한 여행길에 꼬리가 따라붙지 않는다.

그것도 흉기를 든 놈들이라면 더욱더.

"확인했어?"

엘리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빠르게 눈을 굴리며, 숲속을 살피는 게 역시나 마력 감지 하나만큼은 인정해 줄 수밖에 없다.

"그래. 나도 조금 전에 눈치챘어."

처음엔 산적 같은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붙을 녀석들은 그런 놈들하고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나도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할 정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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