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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220화 (221/653)

220화. 혈검(血劍), 백사(白蛇) (2)

진혁이 팔과 다리의 상처 부위를 움켜쥐었다.

욱씬!

예리하고 날카로운 날붙이에 당한 자리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하지만, 당장의 통증보다 중요한 건 무엇에 당했는지를 파악하는 것부터다.

"그 무기……."

진혁의 눈매가 늘어졌다.

백사의 손에 들린 검이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촤르르륵.

톱날로 된 검은 어느새 7m가 넘게 늘어진 상태였다.

연검(軟劍).

단순히 묘하게만 생겼던 검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검의 궤도를 예측하는 게 난해하기 짝이 없는 무기이지만.

제대로 다룰 줄만 알면 그 어떤 무기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게 바로 저 연검이었다.

게다가.

'피에 섞인 마력까지 흡수하다니.'

피를 머금은 칼날이 오히려 하얗게 변하는 게 굉장히 특이하다.

마치, 한 마리의 백사(白蛇)를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놀랍군. 그것마저도 반응한 건가. 천마신교의 10대 분파 놈들 중에서도 첫 일격을 이 정도로 받아 넘긴 건 네놈이 처음이다."

"생긴 거하고 어울리지 않게 되게 섬세한 걸 쓰네. 아저씨."

가뜩이나 무식한 내공과 실전 경험을 지니고 있는 적이었건만.

저 검을 쥐자 완전히 그 기세가 변했다.

호랑이 등에 날개라도 단 것 마냥 백사의 전신에서 붉은색 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온다.

진혁이 자리를 박차는 것과 동시에.

취리리릿!

연검이 지면을 휩쓸며 다가왔다.

흙과 자갈에 부딪친 검이 묘하게 궤도를 바꿨다.

저걸 예측하려고 해선 안 된다.

지금까지 쌓아 온 경험으로 대응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카카칵!

카아아앙!

진혁이 허공에서 미친 듯이 송곳니를 휘둘렀다.

'검마제왕보'를 통해 강화된 몸으로도 연검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젠장! 분명, 생포하겠다고 하지 않았어?"

이건 완전히 제대로 놀아 보겠다는 의지가 뚝뚝 묻어나온다.

모처럼 연검을 써서 흥분되는 건 알겠는데, 이렇다가 사람 하나 잡는 건 시간문제일 거다.

"도망만 치지 말고 제대로 싸워라. 검은 강기를 사용할 줄 아는 놈이 겨우 이 정도로 무슨 엄살이란 말이냐!"

거칠게 포효한 백사가 연검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이건 심상치 않다.

[백사가 Lv19 '혈사연폭(血蛇軟暴)'을 시전합니다!]

수백 갈래로 퍼진 강기가 삽시간에 일대를 집어삼켰다.

콰콰콰콰콰!

일검에 주위에 있던 나무들이 이쑤시개처럼 쓰러졌고.

가로막는 것이 바위든 무엇이든 간에 반 토막으로 쪼개졌다.

속도도 빠른 데다 공격력까지 무식할 정도로 막강하다.

"큭!"

몇 번이나 튕겨나간 진혁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별의 가호'로 인해 상처가 치유되곤 있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느렸다.

아마 저 검에 상처를 악화시키는 무언가가 발라져 있는 거겠지.

그러나 숨을 채 돌릴 틈도 없이, 또 다른 공격이 이어졌다.

퍽!

퍼억! 푸욱!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방금 전까지 발을 딛고 있던 부분에 바람구멍이 생겼다.

연검이 꿈틀대며 발등을 노리는 듯하더니, 이내 궤도를 틀어 다리를 노렸다.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이번에도 진혁의 몸에 상처가 하나 늘었다.

"후우……."

잃어버린 혈액량이 늘어날수록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문제는, 마력의 절대량 차이 때문에 상대는 아직까지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방어만 하다가는 결국 당한다.'

시간은 상대의 편.

반격의 틈을 노린다면, 그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검이 멈추는 그 순간을 찌르는 것뿐이다.

진혁이 튀어 오르는 불꽃 속에서도 칼날이 움직이는 방향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또 다시 온다.

검을 쥔 자세를 살짝 바꿨다.

그리고 일부러 허점을 노출한 순간.

콰아아앙!

반원을 그리며 날아온 연검이 측면부를 강타했다.

무겁다.

하지만, 어떻게든 견뎌내었다.

'지금!'

유일하게 연검이 다음 공격을 하기 전까지 틈을 보이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Lv11 '빙하조형(氷河造形)'이 발동됩니다!]

[고유 능력 '화룡의 숨결'이 발동됩니다!]

두 개의 스킬이 동시에 사용되었다.

화르르륵!

파츠츠…….

얼음과 불의 만남.

상극의 스킬이 같은 장소에 작렬했다.

"이런 잡기술 따위로……!"

백사가 호신강기를 사용해 달라붙는 얼음 조각과 불꽃을 단숨에 털어냈다.

워낙에 내공이 깊었기에, 이 정도 공격으로는 녀석의 몸에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었다.

하지만.

"시선을 끌어 주는 걸로 충분했어."

본 게임은 그게 아니다.

어느새 허리춤에 찬 검집에 쌍룡검을 집어넣은 진혁이 극한까지 마력을 끌어 모았다.

단 한 번뿐인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승기를 잡기 위해서.

기꺼이 살을 내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상대의 뼈를 취할 시간이다.

꾸욱…….

섬세한 손가락이 칼자루의 끝을 어루만졌다.

[Lv2 '발검(拔劍)'이 발동됩니다!]

응축된 마력이 뿜어진 건 바로 그때였다.

'백월야(白月夜)'

하얀 그믐달이 칼날을 통해 그 형을 갖췄다.

동시에, 한 줄기 섬광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고유 능력 '고속검(高速劍)'이 발동됩니다!]

제국 최강이라 칭송받는 기사의 능력이 더해지자, 가속하던 검이 이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인지를 초월한 검격.

한 줄기 선풍이 먼저 그 시작을 고했고.

그렇게.

모든 것이…….

하얗게 물들었다.

***

'……당했다.'

방심을 한 것도 아니고. 손속에 사정을 둔 것도 아니다.

그저 연검의 유일한 약점을 상대가 파고들었을 뿐.

그 작은 실수가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

백사는 대응할 수 없는 공격을 눈앞에 둔 채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물었다.

이제 잠시 뒤엔, 그 실수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운이 좋아야 팔이 잘리고.

운이 없다면 목숨을 잃게 되겠지.

그런데.

콰아아앙!

발검과 고속검으로 구현시킨 백월야가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진혁과 백사의 사이에 누군가 끼어들었다.

백사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두 눈을 부릅뜬 건 진혁도 마찬가지였다.

이 느낌. 이 감각.

설마…….

틀림없다.

"암황……."

"지존!"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조금만 늦었다면 큰일 날 뻔했구나. 고양이 새끼 정도로 생각했건만, 알고 보니 호랑이 새끼였어."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결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건장한 체구의 노인이 작게 그슬린 손바닥과 진혁을 번갈아 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며, 면목 없습니다. 제가 그만 방심을 해서……."

"되었다.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생포 명령을 내린 내 잘못도 있으니. 차라리 죽이라고 했으면 이렇게 까진 되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에 와선 다 의미 없는 가정들이겠지."

암황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느꼈는지 숲의 저 너머를 바라봤다.

"부대주와 음영대는 저쪽으로 보낸 거냐?"

"예. 이자의 동료들을 처리하라 지시했었습니다."

"흐음……. 또 하나의 괴물을 데리고 있었군. 완전하지는 않지만, 제약이 풀리면 나도 상대하기 쉽지 않겠어."

암황이 숲의 반대쪽을 바라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희미한 공기의 떨림만으로도 저곳의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 짐작이 되었다.

멀쩡히 제 발로 서 있는 놈이 단 하나도 없는 게 틀림없었다.

"계약을 한 당사자가 너인 게로구나. 계속해서 마력을 공급하는 와중에도 백사와 동수를 이루면서 허까지 찌르다니……."

"거의 성공할 뻔했죠. 암황께서 끼어들지만 않았다면요."

"부정하지 않으마. 내가 오지 않았다면 이 싸움은 네 승리였겠지."

"그런 의미에서 그냥 이긴 걸로 해 주면 안 될까요?"

"무어라?"

"그 왜. 강호의 도리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후배들 싸움에 어른이 끼어드는 것도 영 모양새가 안 좋기도 하고요."

"푸하하하! 이것 참 맹랑한 아이로구나."

진혁의 능글거림에, 암황이 폭소를 터뜨렸다.

화가 난 것이 아닌,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왜 계속해서 이 아이가 신경 쓰는가 했는데, 직접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실력과 그에 못지않은 입담을 가진 인재라면, 그 누구라도 끌릴 수밖에 없는 법이지. 안 그러느냐 월영?"

암황이 부드럽게 미소를 그렸다.

그러자.

그 옆으로 익숙한 그림자가 꿀렁였다.

월영이었다.

"……."

월영은 복잡한 심정이 담긴 눈빛으로 진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젠장. 이건 실연한 연인을 다시 보는 것도 아니고.

배신감과 실망감으로 얼룩진 얼굴을 마주하자니 솔직히 말해 양심이 살짝 찔리긴 한다.

"잘 지냈어?"

"주군…… 아니. 그쪽이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삐졌네.

이건 확실히 삐진 거다.

"껄껄껄! 사내놈들끼리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나. 묵힌 감정이야 나중에 풀고. 우선 나부터 할 말을 해야겠다."

"할 말이라면…… 저에게 말입니까?"

"그래. 사실 나는 네놈이 마음에 든다. 그 재능과 실력을 이대로 쳐내 버리기엔 너무 아깝지. 해서 말인데, 우리와 함께하는 게 어떻겠나?"

천마신교는 그 무엇보다 실력을 우선시 한다.

가문의 휘광도.

개인의 과거도.

전부 상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뜻밖의 제안에, 가장 크게 당황한 건 백사였다.

"지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탑 밖에서 온 외인을 받아들이는 건……!"

"백사. 내가 지금 말을 하고 있지 않느냐?"

"죄…… 죄송합니다."

백사가 움찔하며 꼬리를 말자, 암황이 재차 진혁에게 물었다.

"어떤가? 우리에게 온다면, 고작 탑의 중층부가 아니라 상층부를 노릴 수도 있다. 부와 명예가 보장되는 것 또한 예정된 일이지."

무엇보다…….

"전투광인 그대에게 있어 질릴 정도의 대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거다."

"마치, 제가 싸움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아닌가? 내가 볼 때 그대는 뼛속부터 무광(武狂)으로 보이네만?"

암황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거야…….

이쯤 되면, 어느 쪽이 능구렁이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암황은 알고 있을까?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제안마저 모두 각본에 쓰인 대사를 읊고 있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걸렸군.'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암황과 여기서 만나게 될 것까진 예상하지 못했으나, 만약 저 영감님과 만나게 된다면 이런 식의 제의가 올 거라는 것쯤은 예상해 두고 있었다.

강한 자에게 끌리는 건 무인의 본능일 터.

과거 시련의 탑에서도 암황은 이런 식으로 제안을 해 온 적이 있었다.

'시기의 차이로 인해 스킬들을 전부 볼 수 없는 건 아쉽긴 하네.'

그래도 '탐식의 눈'을 통해 암황에 대한 정보가 대략적이나마 파악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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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암황(暗皇)

성별: 남

나이: 72세

레벨: ???

힘 ??? 민첩 ??? 체력 ??? 마력 15 내공 ???

보유한 스탯 포인트: 0

직업: ???

고유 능력: 흑천마황공(하위 등급의 고유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간파에 성공했습니다.)

스킬: '탐식의 눈'의 레벨이 너무 낮아 대상의 능력을 간파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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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 조건: 당신은 평소 암황의 수제자를 자청했습니다. 그것을 거짓이 아닌 현실로 만든다면, 흑천마황공의 온전한 12식을 당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단, 최소 수련 기간이 1달은 되어야 합니다.)]

본래 암황의 독문무공을 완벽하게 익히려면 수십 년이란 세월이 필요하다.

하지만, 복사 조건을 따른다면 그 기간을 한 달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리느냐는 건데…….

잠시 고민하던 진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암황께서 제 제안들을 들어 주신다면 한 번 고려해 보겠습니다."

능력 복사부터, 이번 전쟁에 있어 암황이란 카드를 활용하느냐는 것까지.

그 모든 걸 결정지을 수 있는 담판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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