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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224화 (225/653)

224화. 몽환의 실낙원 (1)

몽환의 실낙원을 수호하는 백색 나무.

거인들의 성채의 상징이자 모든 결계의 근본인 이 나무는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마력을 뿜어내는 성유물이다.

당연히, 마력에 끌려 모여드는 몬스터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거인들의 보호가 없더라도 자체적으로 침입자들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을 지니고 있었다.

'거인들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 우습게 봤다가 오히려 큰 코 다치지.'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철저하게 준비해 둬야 한다.

[달짝지근한 페리 아카시아의 벌꿀 1L - 1,000코인]

[나무의 숨결 - 5,500코인]

[오시움 산맥의 빙하수 100L - 2,250코인]

[기원전 발견된 ???뼈 0.349365Kg - 10코인]

[기원전 발견된 ???뼈 349.365Kg - 10,000코인]

진혁이 코인 거래소에서 구입한 재료형 아이템들을 빠르게 훑었다.

수많은 경우의 수들이 있었지만, 여길 돌파기 위한 단 한 가지 가능성은 바로 이걸 구매하는 것이다.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진혁이 '기원전 발견된 ???뼈'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 아이템은 랜덤 가챠형으로 구입 후 실체화 전까진 어떤 몬스터의 뼈인지 알 수 없으나.

딱 한 가지.

그 커튼 뒤를 살펴볼 수 있는 편법이 있었다.

'뼈를 두 번에 걸쳐 구입하는 거지.'

서로 다른 무게의 뼈를 소수점 단위까지 정확히 입력해 사야지만, 충족되는 조건.

한창 가챠에 빠져 모은 코인을 모조리 탕진해 가며 알아낸 정보다.

[히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3가지 뼈 중에 하나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익수종 '케챨코아틀라스' × 1]

[해수종 '타이달로스' × 1]

[고대 병사 × 10]

주르륵 나열되는 황금색 상태창.

진혁이 쓰디쓴 입맛을 다셨다.

'젠장, 이걸 보니 또 끔찍한 추억이 떠오르네.'

생각해 보니 그땐 이런 도박성 콘텐츠에 빠져 삼각 김밥 사 먹을 돈까지 모조리 쏟아 부었었지.

하루 종일 쫄쫄 굶는 건 당연했고, 버스비가 없어서 지하철 열 정거장 거리를 걸어 다니기도 일쑤였다.

그러고 보니 한창 PK로 악명 높던 천유성을 시도 때도 없이 죽여서 현상금을 뜯어내던 것도 바로 그때였다.

유일하게 천유성이 아닌 진혁이 먼저 시비를 걸었던 시절이다.

'그래서 나한테 원한이 그렇게 깊었나?'

잠시 갸우뚱하던 진혁은 이내 고개를 털었다.

설마, 사내놈이 그런 것 가지고 원한을 가지려고…….

그런 사소한 것보다 중요한 점은 어떤 몬스터의 뼈를 선택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선 질보다 양이야.'

아직까진 티본 외의 상위 언데드 몬스터들을 다룰 수 있는 역량이 부족했다.

괜히 다루기 힘든 놈들을 소환하느니, 조금 약하더라도 고분고분한 놈들을 데리고 있는 게 나으리라.

진혁이 쌓여 있는 뼈를 향해 스킬을 발동했다.

[Lv1 '언데드 제조'를 발동합니다!]

[고대 병사가 소환됩니다!]

[고대 병사]

레벨: 3

힘 20 민첩 20 체력 20 마력 20

상세 내용: 지금은 이름이 잊혀진 고대 수인(獸人)종 왕국의 병사들입니다. 죽어서까지 왕과 왕국을 수호하려는 충성심을 당신에게 향할 수 있다면, 고대 병사들은 향후 엄청나게 든든한 부하들이 될 것입니다.

특이사항: 시전자의 숙련도가 부족해서 크기가 50cm급으로 제한됩니다. 지능이 굉장히 떨어집니다.

마치, 가분수의 SD 캐릭터를 보는 것 같다.

두개골에 뾰족한 외뿔이 달려 있는 걸로 보아 일각수족인 것 같긴 한데…….

'본래 능력의 10%의 능력치도 안 되네.'

유럽에서 상대했던 리치로부터 얻은 대마도사의 로브와 회랑에서 획득한 멀린의 지팡이.

두 아이템의 도움을 받아도 이게 한계인 모양이다.

효율은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데드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모든 종족 중 유일하게 이 성채의 결계로부터 자유로운 게 바로 언데드였기 때문이다.

"달각? 여긴 어디?"

"달그락. 살아났다."

다시 생명을 얻은 고대 병사들이 앙상하게 마른 뼈를 바라봤다.

까만 동공과 하얀 백골이 꽤나 잘 어울렸다.

크흠! 큼!

진혁이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내가 너희의 주인……."

"달각. 주인?"

"그만 달각거리고. 내가 이제부터 너희의 주인이니까……."

"달각. 달각. 주인이래."

"주인이 뭐지? 먹는 건가?"

"주인. 주인."

……끝이 없어 보인다.

"후우. 아니다. 시간도 없는데, 교육까지 내가 시킬 순 없지."

진혁이 이번엔 아공간 인벤토리를 통해 티본을 불러왔다.

"마스터. 부르셨습니까?"

"이제부터 네 부하로 쓸 놈들인데, 내가 다른 밑준비 하는 동안 교육 좀 잘 시켜 놔라."

"예!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티본이 깍듯이 거수경례를 올렸다.

그리고 묘한 안광을 뿜어내면서 고대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환영한다. 내가 너희들의 대선배인 티본이라고 한다. 달그락."

대체 며칠이나 먼저 온 고참이라고.

잔뜩 거드름을 잡는 모습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우리랑. 같은. 언데드다."

"왜 명령을 내리려는 거지?"

"명령을 내리는 이유는 간단해. 내가 근본 있는 뼈야. 땅속에 처박혀 있던 너희와 다르게 하늘에서 만들어졌거든. 일종의 성골 출신이라고 보면 될 거다. 달그락."

저 말은 사실이긴 하다.

비행기 기내식으로 나왔으니까.

"거기다 고대종이랑 형님들이랑 뱀파이어 중에 최강이라는 진조 안주인님. 한 번쯤은 들어봤지?"

"고, 고대종."

"진조……. 달그락."

"위대한 존재들이다."

"그래. 거기에 5대 원소의 정령수들까지 직접 모시고 있지. 한 마디로 너희보다 까마득하게 높이 있는 경호대장인 셈이다."

고구마랑 엘리스까지 튀어 나올 줄이야.

으음.

저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과장이 좀 많이 심한데?

옆집에 있는 뽀삐 보고 드래곤을 키우고 있다고 하는 수준이다.

대체 어느 멍청이가 저런 말에 현혹될까 싶었지만.

그런 걸 덥석 믿어버리는 게 바로 갓 태어난 언데드였다.

"오오!"

"대단한 해골이다."

"저렇게 출세한 언데드는 처음 봤다."

"언데드 킹! 따른다 우리는!"

지능이 낮은 게 이래서 슬프다.

말도 안 되는 허세에도 나팔을 불어 줬으니까.

뭐, 덕분에 통솔하는 입장에선 편하게 됐지만.

티본이 양팔을 높게 치켜 든 채 교주 놀이를 하고 있는 사이 진혁은 나머지 구입한 아이템들을 합성하기 시작했다.

'달짝지근한 페리 아카시아의 벌꿀'위에 '나무의 숨결'을 불어 넣고.

그렇게 완성된 끈적끈적한 꿀을 '오시움 산맥의 빙하수'에 섞었다.

['천혜향'을 합성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모든 식물들이 이 향에 매료됩니다.]

[저항력이 10%만큼 낮아집니다. 결계로 인한 저주의 영향력이 10% 추가로 하락됩니다!]

[특수효과 '도발'이 강제로 발동됩니다!]

그러자 바로 그 순간.

"그오오오오!"

백색 나무가 그 향에 반응했다.

***

시작이다.

진혁이 자세를 잡았다.

부우우웅!

츠츠츠…….

수많은 잡음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백색 나무의 꽃잎처럼 보이던 것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나비를 닮은 듯한 곤충형 몬스터들.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얀 날개와 푸른색 눈을 가진 나비들이 하늘을 빼곡하게 뒤덮었다.

땅에서는 검은색 외피를 가진 대형 지네와 거대한 곤충들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많이도 숨겨 놨네.'

수도 수지만, 개별 개체의 전투력이 보통이 아니다.

하긴, 그랬으니 거인들이 안심하고 이곳을 비워 둔 거겠지.

"나비랑 지네들은 상관없으니, 중간 중간에 오는 대형 곤충들의 진로만 방해해 줘."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마스터?"

"괜찮고 자시고 이 방법밖에 없어."

엘리스나 월영의 서포팅이 있다면 더 수월하겠지만.

두 사람에겐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리고 저 정도쯤이야…….

백색 나무의 본체나 거인들의 왕 '오그라쿤'이면 몰라도 벌써 징징거릴 순 없다.

그때였다.

"키에에에!"

집채만 한 장수풍뎅이가 풀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높이는 낮지만, 길이가 4m에 이르는 중형종이었다.

양쪽으로 벌어진 집게가 단숨에 진혁의 몸통을 토막 내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콰가가각!

집게는 뼈로 만든 두 개의 기둥에 의해 가로막혔다.

"마스터. 자잘한 놈들까지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호오. 제법인데? 그래도 놀고만 있던 건 아닌가 보네?"

"훗! 제가 이래 봬도……어어어? 부, 부러진다! 부러집니다아!"

콰드득!

우둑!

집게발이 가볍게 뼈를 박살내려 하자, 티본이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하여간, 조금만 칭찬해 주려고 하면 꼭 이런다니까…….

"쯧쯧."

작게 혀를 찬 진혁이 티본을 내버려둔 채 지면을 박찼다.

장수하늘소와 또 다른 대형 투구벌레 한 쌍이 나타났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고대 병사들이 온몸을 던져 막아냈다.

'조금만 가다듬으면 나쁘지 않겠어.'

고구마와 정령수 그리고 티본과 고대 병사.

갈수록 늘어나는 아군을 보니, 든든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우우웅!

송곳니 끝에 하얀색 빛이 일점으로 맺혔다.

공기가 메마르고 수분이 타들어간다.

[Lv9 '데이라이트'가 발동됩니다!]

콰콰콰콰콰콰!

극한까지 모인 빛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곤충형 몬스터들이 제법 단단한 외피를 지니고 했다고 해도 지근거리에서 광역기인 데이라이트에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백색 나무까지 훤히 뚫린 길.

어느새 진혁의 손엔 송곳니 대신 긴 장궁, 어금니가 쥐어져 있었다.

'적색 마탄'이 화살 대신 허공을 꿰뚫었다.

밤하늘 속으로 붉은색 섬광이 점멸했다.

퍼억!

퍽!

"케엑!"

"케에엑!"

하늘 위에서 분진을 뿌리던 나비들의 몸에 바람구멍이 생겼다.

총 17마리.

균형을 잃은 나비들이 지면으로 추락했다.

딱 한 마리를 제외하곤 말이다.

"마, 마스터. 한 마리는 왜 남겨 두시는 겁니까……?"

티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저주 속에서 싸우는 게 워낙 오랜만이라서 살짝 헷갈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회사 대표의 체면이라는 게 있지.

진혁이 짧게 대답했다.

"인간미."

고인물에게도 사람 냄새는 나는 법이다.

"제가 봤을 땐 좌우를 착각하신 것 같던데 말입니다."

"다시 한번 말해 줄래? 잘 못 들어서."

"그러니까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활을 쏘신 것 같다는 뜻이었……."

"야."

"예?"

"네 몸에 있는 뼈들을 화살 대신 써 버리기 전에 쓸데없는 의심 갖지 마라. 그리고 내 뒤로 한 마리라도 따라붙게 했다간 너희 전부 해장국 집에 뼈다귀해장국용으로 팔아 버릴 테니 그리 알아."

흠칫하고.

티본과 고대 병사들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동시에 티본의 머릿속엔 한 가지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마스터나 레이디 마스터나…… 함께하면 성격도 비슷해지는 건가 하는 의문이.

***

성채의 중앙에 위치한 대연회장.

거대한 공간을 비추는 거라곤 중앙에 놓여 있는 작은 모닥불이 전부였다.

불꽃 너머로 거인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번져 나갔다.

"오그라쿤. 적들의 공격이 심상치 않다."

거인 중 하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

새벽에 접어든 늦은 시간. 모두가 깨어서 이곳에 모여 있는 건…….

모두 사방에서 들이닥친 적들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함이다.

모두의 시선이 대연회장 가장자리에 있는 왕좌로 향했다.

묵빛 철로 만든 왕좌와 그 뒤에 걸려 있는 백색 나무의 휘장.

그리고…….

그 왕좌에 앉아 있는 자가 바로 거인들의 왕 오그라쿤이었다.

모두가 불안해하는 와중에도 오그라쿤의 표정에는 별다른 동요가 보이지 않았다.

"……."

대신 따분하다는 듯, 술잔을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렸다.

"왕! 인간 놈들이 결계에 수를 썼다. 이대로라면 성문이 뚫릴지도 모른다."

제국은 타이탄과 각종 공성 병기를 앞세워 압박을 가했고.

무림은 절정급 고수들을 위주로 차근차근 성벽을 공략하는 중이었다.

"……."

그러나 오그라쿤은 애가 타는 보고에도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뭐라도 지시를 내려 달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포위망은 점점 더 촘촘해질 테고 성문 앞은 놈들의 병력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야 그렇겠지."

"대체 뭐냐 그 반응은……! 적들이 커질 때까지 그냥 방관만 하고 있자는 말인가?"

"바로 그런 말이다."

"뭐?"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이 싸움은 또 다시 우리의 승리로 끝나게 될 것이다."

오그라쿤이 단숨에 술잔에 들어 있는 술을 들이켰다.

비릿하게 뒤틀린 입을 따라 흐르는 와인은.

너무나 새빨간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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