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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240화 (241/653)

240화. 영웅들의 귀환 (1)

'간다라…….'

진혁이 천천히 그 이름을 곱씹었다.

7대 길드 중 하나이며, 최근 들어 급하게 성장하고 있는 중형급 세력이다.

당연히, 탑에 있는 여러 세력의 러브콜을 받은 상태였고 그 중에서 '무림'을 선택해 본격적으로 기반을 다지고 있는 중인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밸마리옐을 처리했다니.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하나는 무림에서 공성전에 투입한 이들보다 더 수준이 높은.

다시 말해 각 문파의 장문인에 해당하는 고수가 지원을 해 줬거나.

혹은, 간다라 길드를 이끄는 랭커 '니라샤'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는 거겠지.

만약 후자의 경우에는 니라샤가 어지간한 거주자들보다 더 큰 폭으로 성장을 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마족들의 현현으로 인한 피해를 수습하느라, 두 세력이 잠시 휴전 상태에 접어들어 있는데. 이거 상황이 재밌게 돌아간다.

어쩌면 통곡의 마녀가 있는 15층으로 가기 전에 재밌는 이벤트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걸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연도.

"페시스 씨. 이거, 다른 사람의 랭킹은 확인 못 하는 건가요?"

"원래라면 조건이 있습니다만, 진혁 님에게는 특별히 한 번은 서비스로 해 드리죠. 니라샤 플레이어님을 보여 드리면 될까요?"

"부탁드려요."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또 하나의 상태창이 나타났다.

[니라샤(275위)]

275위…….

상당히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게다가 이 순위는 계속해서 변동되는 거니, 앞으로는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겠지.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됐어요."

"아, 그런데 제가 알기론 월영이랑 분과 안드리아라는 분도 같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네요?"

페시스가 다시 한번 일행들 사이를 두리번거렸다.

"그 친구들은 마무리할 일이 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웠어요."

"마무리할 일이라면……?"

"개인적인 일입니다. 아마 황궁에 도착했을 때쯤엔 만나 볼 수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흠. 뭔가, 일이 있나 보군요. 알겠습니다. 더 이상 캐묻진 않겠습니다. 만날 수만 있다면 저도 상관없으니까요."

"그럼, 이제 그만 슬슬 출발하도록 하죠. 이곳은 밤이 되면 몬스터들이 자주 출몰해 꽤나 위험하거든요."

진혁이 힐끗 나무 사이를 바라봤다.

지금이야 잠잠하지만, 밤이 되면 대형종들이 잠에서 깨어 활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그 전에 이 숲속을 벗어나야 한다.

물론.

누군가는 이 숲에서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을 테지만 말이다.

***

희미한 달빛이 비추는 어둠 속.

"허억. 허억…… 헉."

남궁천이 미친 듯이 숲속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호흡이 가팔라지고 전신은 땀과 피로 젖었지만, 잠시도 발을 멈출 순 없었다.

슥.

스슥!

계속해서 포위망을 좁혀 오는 다수의 그림자들.

이미 옆에서 함께 도망치던 동료들은 전부 사라졌다.

다른 곳에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죽었는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그딴 거에 신경 쓸 여유는 없다.

지금 중요한 건 조금이라도 더 멀리 움직여야 한다는 것뿐이었으니까.

"내가…… 이 남궁천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순 없어."

위로 올라가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남았다.

쓸모없는 놈들은 가차 없이 버리고 유용한 놈들은 이용해 가며…….

마침내 이 자리에까지 왔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바로, 강진혁이란 빌어먹을 놈 단 하나 때문에!

"죽여 버리겠다. 다음에는 반드시……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의 모든 무림인을 끌고 와서라도 멱을 따 버리겠단 말이다!"

나무 뒤에 몸을 숨긴 남궁천이 어금니를 깨물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아니, 당신에게 다음이란 없어요."

낮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허공을 따라 울려 퍼졌다.

이 목소리. 틀림없다.

계속해서 동료들을 습격했던 바로 그 여자다.

"비겁하게 기습만 하지 말고 당장 모습을 보여라!"

"비겁하다라…… 하긴, 당신 눈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숲속에서 하얀 단발머리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5계층의 보스이며, 정신병동이란 대형 거점의 주인.

안드리아였다.

"몬스……터였나? 어째서 보스 몬스터가 인간의 밑에 들어간 거지?"

"누군가를 따르는 데 종족 따위가 무슨 상관이죠?"

"보스는 자존심이 높다고 알고 있으니까. 자신보다 하등한 인간의 밑으로 들어가는 게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다."

"재밌네요. 그분이 저보다 아래라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플레이어이면서 각 층계의 보스 몬스터들을 앞서는 무력과.

상황을 설계하고 전체적인 판을 짜는 판단력은 인간이란 범주에 넣을 수준이 아니다.

아니, 설령 탑의 그 어떤 존재라고 할지라도 진혁을 이길 순 없을 것이다.

진혁에겐…… 수치를 뛰어넘어 승리라는 결과를 강제할 수 있는 묘한 힘이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진혁 님은 광신도로 비참하게 살다 제물로 바쳐질 제 삶을 구해 줬어요."

평생 동안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

안드리아가 검을 드는 데 있어 그 이상의 이유는 필요 없었다.

"크윽!"

흉흉하게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남궁천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것 또한 탈출구가 되진 못했다.

"퇴로 따윈 없다."

뒤쪽에서 들린 낮고 무거운 음성.

'음영극살'을 발동한 월영이 나무에 드리운 그림자에서 천천히 솟구쳤다.

검광이 눈이 시린 빛을 토했다.

더군다나 어느새 나뭇가지 위에는 복면을 쓴 수많은 이들이 빽빽이 둘러싸고 있었다.

백사와 음영대다.

이로서 도망칠 구석은 없다.

"으으으……."

완벽하게 형성된 포위망 속 남궁천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주군에게 검을 겨눈 죄. 그리고 그 더러운 입으로 함부로 주군을 깎아 내린 죄. 모두 죽어 마땅하다."

월영이 검이 앞으로 향했다.

동시에.

안드리아 역시 예리한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 봐라. 협상을…… 하자. 원하는 걸 말해라. 돈? 그것도 아니면 권력? 뭐든지 내가 들어주겠다. 그러니 제발……!"

남궁천이 다급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자존심이고 뭐고 간에 머릿속에는 온통 살아야 한다는 일념만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필요 없어요."

"내키지 않는군."

돌아온 건 차가운 거절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푹!

서걱!

"으아아아악!"

중화 길드를 이끌고 결국에 중화 길드를 버렸던 남궁천의 최후였다.

***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진혁과 일행들은 제국의 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기나긴 여정이었다.

특히, 고구마와 엘리스의 무시무시한 식성을 감당하는 게 가장 골치 아팠지.

'나름 요리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착각이었어. 위장에 아공간 인벤토리가 들어 있는 건지 원…….'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난 진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고생은 모두 끝났다.

거대한 재앙을 막은 자신들에겐 성대한 환영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말을 증명하듯.

진혁이 성문 안으로 들어가자 엄청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와아! 영웅님들이다! 제국을 구원하신 분들!"

"환영해요. 어서 오세요!"

수천 명이 사람들이 길을 따라 진혁과 나머지 일행들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경비병들이 가까스로 막았지만,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이를 정도로 시민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가장 앞에 계신 분이 마족을 잡은 영웅님인가?"

"흠. 글쎄, 뒤에 있는 남자분이 더 영웅 같은데? 생긴 것만 봐도 딱 견적이 나오지 않나?"

"하긴, 앞에 있는 사람은 너무 평범해. 그에 비해 저 남자 기사님은 차가운 조각상 같아…… 어떻게 저렇게 생길 수 있지?"

"거지와 왕자님이잖아 아하하!"

오른쪽에서 세 번째 줄 아가씨와 좌측 일곱 번째 줄 아저씨. 마지막으로 7살쯤 돼 보이는 꼬맹이.

다들 똑똑히 기억해 놨다.

조만간 치안 경비대가 찾아가면 지금 한 말 때문인 줄 알아라.

진혁이 속으로 데스노트에 이름을 적고 있을 때였다.

"저 사람들 말이 신경 쓰여?"

옆에 있던 엘리스가 피식 웃었다.

"아니 전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아. 단지, 얼굴만 좀 봐 두려고. 나중에 다시 보게 될 수도 있으니까."

"인간들이 보는 눈이 좀 없네. 난 겉멋만 든 검성보다 네 쪽이 더 나은 것 같은데."

호오. 웬일로 이 녀석이 옳은 말을 다 하는 걸까?

"기특하네.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나 봐?"

"……그런 게 아니라…… 아니다. 그래, 나중에 맛있는 거나 한 번 사 줘."

엘리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한 것도 있으니, 탑 밖에 나가게 되면 배터지게 먹게 해 줄게."

살짝 기분이 풀린 진혁이 다시 느긋하게 말을 몰았다.

그러다 문득…….

'……?'

인파들 사이에서 묘한 눈빛을 느꼈다.

진혁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위화감의 정체가 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아주 미미한 시선이 수많은 인파에 묻혀 버렸기 때문이다.

아주 잠시 동안, 간다라 측에서 염탐한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진혁은 이내 그 가능성을 지워버렸다.

만약, 플레이어였다면 이토록 능숙하게 기척을 조절할 수 없다.

무엇보다 조금 전에 느낀 기운은 너무도 익숙했다.

마치…….

엘리스에게서 느꼈던 기운과 같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전신에 신경이 곤두섰다.

'……설마, 또 다른 뱀파이어가 있다는 건가.'

그것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거기에 이 정도면 평범한 뱀파이어가 아닌 진조일 확률이 높다.

엘리스를 노리려는 목적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아마 제국에 있는 '그걸' 확보하기 위해 온 것이리라…….

"……."

"왜?"

"아니야. 아무래도 조금 예민했던 것 같아.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한 거겠지."

진혁이 별 거 아니라는 듯 재차 말을 몰았다.

지금 여기서 엘리스에게 걱정을 끼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그렇게 황궁까지 이어지는 긴 환영 행렬을 통과해 도착한 곳은 화려하기 짝이 없는 알현실이었다.

제국에 왔을 때 보았던 인물들이 진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좌에 앉아 있는 초췌한 노인은 제국의 황제, 라인하르트 3세였다.

그리고 그의 양 옆으로 베인슈텔른 공작과 펜하이머가 서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소. 정말 고생이 많았구려."

라인하르트의 입에서 힘없는 대사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진 거다.

황권을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버린 채 눈이 죽어 있던 그때와는 달리, 황제의 동공에 미미한 빛이 깃들어 있었으니까.

'머지않아 그 꿈을 이뤄 드리겠습니다. 당신뿐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도.'

[제국의 황제 '라인하르트 3세'의 신뢰를 얻고 제국을 완전한 번영의 길로 이끄십시오.]

[성공할 경우 '최초로 탑을 정복한 자'를 위한 세 번째 특전이 해금됩니다.]

상생 관계.

세 번째 특전을 얻기 위해선, 황제와 한 배를 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법이라는 것도 좀 보여 줄 필요가 있겠지.'

원래 논공행상 땐 이렇게 해야 가산점을 받는 법이다.

허례허식을 좋아하는 귀족들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진혁이 영화 속에서 자주 보던 장면을 떠올리며, 한쪽 무릎을 공손하게 꿇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황제의 얼굴에 미미한 미소가 드리웠다.

"성채를 확보하고 흉악한 마족들로부터 제국의 위엄을 세운 공로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짐은 그대들에게 작은 성의를 표하고자 하노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황제의 보상이 공개되었다.

진혁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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